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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3:06:10

경기수영

파일:조선군 좌독기_White.svg 조선 수군 수영
삼도수군통제영 휘하 수영 삼도수군통어영 휘하 수영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 경기수영 황해수영
경기도수군절도사영
삼도수군통어영

京畿道水軍節度使營兼三道水軍統禦營
파일:경기도수영수역.jpg
경기도수군절도사영의 관할 수역.
<colcolor=#fff> 위치 <colbgcolor=#fff,#191919> 경기도
지휘 수군절도사

1. 개요2. 역사3. 관할구역 및 예하 관포
3.1. 관할지역3.2. 예하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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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수군절도사영(京畿道水軍節度使營) 또는 경기수영(京畿水營)은 조선 시대 경기도 교동군에 존재하던 수군절도사영이다. 지휘관은 정3품 당상관 수군절도사이다.

경기도 지역 해안가 및 해상과 한양으로 들어가는 한강 하구 길목을 방호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으며, 한양으로 들어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임무도 같이 병행하였다.

2. 역사

조선 초기에는 남양도호부 화량진(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에 있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남양만에 왜구의 침입을 저지할 성곽을 쌓기 시작한 것이 화량진인데, 조선 초 지방의 수군절도사영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경기수영은 이 화량진에 본영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1624년( 인조 2년) 강화도호부로 옮겼다가 1627년(인조 9년) 교동도로 이전했는데, 이것은 왜구의 침입이 없어지고 경기도 해안까지 왜적이 침입할 가능성이 없어져 화량진의 군사적 가치가 낮아졌고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후 충청, 경기, 황해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의 창설과 함께 경기수사가 삼도수군통어사를 겸직하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수군진들의 흔적은 교동도 본영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는 경기도 수군진들이 조선 중기부터 활용도가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조선시대 경기도 수군진이 대부분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가 되어 흔적이 없어진 점도 있다.

3. 관할구역 및 예하 관포

3.1. 관할지역

경기도 전 해안 지역이 관할구역이며, 남쪽으로는 평택쪽 해안을 기준으로 충청수영과 경계하였으며, 북쪽으로는 교동도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경기수영의 수군진이 남양(화성)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조선후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수영이 교동도로 이전하면서부터는 수군진의 대부분이 강화도, 교동도, 인천 지역에 집중되었다.

조선후기의 경기수영은 효종~숙종 시기를 겪으며 개편이 이뤄졌는데, 정포영, 초지량이 혁파되고, 제물량, 영종포가 강화도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덕적진(현 인천광역시 덕적도 지역), 영흥진(현 인천광역시 영흥도 지역), 주문진(현 인천광역시 강화도 동쪽 지역), 장봉진(현 인천광역시 장봉도 지역) 등이 신설되었다.

3.2. 예하관포

<신증동국여지승람> 기준
[1] 영종포가 이동해오면서 기존 자연도로 불리었던 섬의 이름이 영종도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