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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유엔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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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유엔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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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韓유엔紀念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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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1951년 1월 19일
관리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
운영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소재 대한민국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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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현황
3.1. 조성3.2. 행사3.3. 봉안3.4. 안장자 특징
4. 교통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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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재한유엔기념공원 전경.jpg
재한유엔기념공원 전경
6.25 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들을 안치한 추모시설이자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2. 역사

파일:external/unmck.or.kr/img_01_1.jpg
6.25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유엔군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현재, 매장된 전사자의 출신 국가 11개국이 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관리한다. 관리 예산도 11개국이 분담하며 대한민국은 절반 가까이 부담한다.

3. 현황

3.1. 조성


공원 개방시간은 9:00 - 17:00까지이다 (하절기 5-9월까지는 18:00). 독립국제기구가 관리하는 묘지이기 때문에 운영시간 내에만 입장이 가능하다.

무명용사의 길,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연못은 오후 1시에 분수대가 활성화된다. 주묘역과 인접한 보행로에 위치한 수로는 공원 안장자 중 최연소 전사자인 호주의 17세의 제임스 패트릭 도운트 상병[2]의 이름을 땄다.

UN기념공원 옆에는 UN조각공원이라는 곳도 있는데, 전쟁 50주년을 맞아 2000년에 UN군 참전 21개국 + 대한민국 + 일본의 조각가 29명의 조각품을 기증받아 2001년에 조성한 곳이다.

공원의 중요성으로 인해 군이 경비를 맡고있다. 부산을 위수지역으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 제53보병사단에서 소대급 인원을 UN경비반이라는 이름으로 파견을 보내고 있다.

3.2. 행사

6.25 참전용사가 묻힌 묘지이기에 매년 현충일에 이곳에서 추념식이 열린다. 정부가 주관하는 국립현충원의 추념식에 준하는 수준으로 열리며 부산시장이 추념식에 참석한다. 2021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과 3원 화상 연결을 통해 추념식을 동시에 치렀다.

2007년부터 캐나다 유엔군 참전용사 ' 빈센트 커트니(Vincent Courtenay, 1934 ~ )' 씨의 제안으로 ' Turn Toward Busan(부산을 향하여)'이라고 부르는 행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앙귀비[3] 모양의 배지를 착용하는 전통도 있다.

3.3.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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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재한유엔기념공원1.jpg
파일:재한유엔기념공원2.jpg
1951~1954년 사이에 유엔기념공원에는 유엔군 전사자 약 11,000여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7개국 용사의 유해 전부와 그 외 국가의 일부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되어, 현재 11개국 2,320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참전국 봉안 유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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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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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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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타 15

유독 영국군 전사자들이 많이 묻혀있는 이유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망한 나라에서 장례를 마치고 비석을 세우는 영국의 전통 때문이다

3.4. 안장자 특징

영국군 한국전 참전용사 ' 윌리엄 스피크먼 빅토리아 훈장자(William Speakman Vc)' 안장식

안장자 모두가 6.25 전쟁 당시의 전사자나 순직자인 것은 아니며 참전용사가 아닌 사람도 있다. 전사자나 참전용사의 배우자가 원한다면 합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는 1953년 7월 27일 이후에 사망한 군인이다. 이것은 각국 군대가 휴전 즉시 철수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더 머물러 있었으며 그 시기에 순직한 군인들로 보인다

잘 보면 알겠지만 영국 영연방의 비중이 높은데, 영국에서는 태어난 고향뿐만 아니라 죽은 장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전사자를 고향이 아닌 전사한 땅에 안장하는 경우[4]가 많다. 영국과 동질적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영연방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튀르키예는 종교적 영향을 받아 이곳에 안장자가 많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의 경우, 유가족이 안장 여부를 결정했었다.

안장자/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영국군은 명문에 총 1,177명으로 나와 있으며, 주한 영국 대사관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자국군 6·25 전쟁 사망자 수는 1,109명으로 되어 있다.

인원의 차이는 실종자의 집계 여부, 기타 다른 이유로 송환되지 못한 경우, 위에서 언급한 휴전 후 사망한 경우의 집계 여부가 원인일 것이다. 군인이 아니라 취재차 한국에 왔다 순직한 기자를 안장시킨 사례도 있어 차이가 있다.

미국은 제일 많은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인데도 이 곳에 유해가 안장된 경우는 흔치 않다. 기본적으로 전사자의 시신을 전부 본국으로 보내서 장사지내는 문화[5]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대적인 수가 많아서 단위로 희생자가 참배의 벽에 기록된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사자들은 대부분 알링턴 국립묘지[6]에 안장되었다. 대신에 미군 희망자[7]에 한하여 이곳에 모셔졌으나 이제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만 안장될 수 있다.

한국군 전몰자 가운데 국립현충원이 아닌 이곳에 묻힌 경우는 주로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 주한영연방군에 배속된 KATCOM 소속으로 참전했던 이들이다. 이외에도 비전투원의 유해 11구와 무명용사(유엔군은 확실하지만, 소속 국가와 개인 신상을 알 수 없는 전사자)의 유해 4구가 안장되어 있다.

4. 교통

북문
(유엔조각공원)
1006
남문
(유엔공원.부산문화회관)
(유엔평화공원)
68
134
138[A]
138-1
남구9[B]
위치는 부산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 대연동).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대연역에서 가깝다. 부산박물관 부산문화회관과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부산시민에게 문의할 때 모르면 박물관이나 문화회관의 위치를 물어보면 된다. 원도심에서 출발하는 경우 134번을 타고 서면이나 하단에서 출발한다면 68번을 타고 UN기념공원에서 하차하면 된다.

다른 자세한 방법들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추가로 실제적인 한국 방문이 어렵더라도 안장용사 찾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묘비 사진과 안장자 기록 파일을 모두 인터넷을 통해 받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5. 기타

이 공사를 미 육군 공병 장교들과 친분이 있던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발주[10]받았는데 성공 시 공사비 총액의 3배를 지급, 실패시 반대로 공사비의 3배를 배상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묘안을 떠올랐는데 바로 보리싹을 잔디 대용으로 옮겨심는 것이었다.[11]
정주영은 당시 이 건과 동시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숙소를 서구식 변기 설치 등 리모델링하는 의뢰도 받았는데, 이것도 서울 시내를 싸그리 뒤져 변기를 구해 시공을 완료, 약속대로 공사비의 3배를 지급받고 이후 이 때 얻은 신뢰로 꽤 오랫동안 미 육군의 발주를 받았다. 그리고 현대건설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최대의 건설회사로 자리매김했고 이 공사를 맡았던 정주영 현대그룹의 회장으로 한국 경제사에 영원히 남았다.

6. 관련 문서


[1] 정식 명칭은 “재한 국제연합기념묘지의 설치 및 유지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간의 협정”이다 #. 유엔과 국제연합 용어 사용에 대하여는 유엔 항목 참조. [2] James Patrick Daunt, 1936~1953 [3] 개양귀비 [4] 다른 예로 영국 해군 거문도를 점령했을 때 사망한 영국 수병의 시신은 영국군이 철수할 때 이장해가지 않고 백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거문도에 묻혀있다. [5] 이라크 전쟁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들은 전우가 전사할 경우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해발굴단을 계속 보내 유해를 수습한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전쟁터가 적들의 영토가 되어도 계속된다. 미국이 계속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수습하려고 유해 발굴단을 보내고 싶다고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 때문이다. [6] 참고로 가장 높은 계급의 한국전쟁 중 미군 전사자는 월튼 워커 당시 중장(사후 1계급 특진으로 대장 직위 수여)이며 미국 알링턴에 안장되었다. [7] 6.25 전쟁의 전사자 및 참전용사가 아니라,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한국에서 복무했던 유엔군 출신 미국인이 사망한 케이스 [A] 대연역 연계 [B] 못골역 연계 [10] 정주영의 친동생이자 훗날 현대자동차 사장이 되는 정세영이 육군 통역장교로 미군과 가깝게 지낸 영향도 있었다. [11] 한겨울에 자라기 어려운 잔디와 달리, 보리는 겨울에 씨를 뿌려서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한다. 그래서 12월 쯤에는 보리의 싹이나 다 자란 잔디나 그 모습이 비슷하다.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보리로 덮으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공사를 발주받은 게 아니라, 금액을 보고 일단 발주부터 받은 후 '근데 이제 어쩌지?'하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이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해당 일화는 드라마 영웅시대에도 일부 반영되었다. [12] 다만 공원의 성격이 성격인 만큼 피크닉 등 일반적인 공원처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3] 유엔 참전국 숫자를 형상화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