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在 野 史 學주류 사학계와 주류 사학자에 대비되어 재야 사학계와 재야 사학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재야사학은 주로 미시사, 향토사를 다룬다. 사전에 등재된 "재야사학자"의 본디 뜻은 문헌화하지 못한 구전 사료(전설이나 민담 등)를 토착민들에게서 구술받아 채록하거나 주류로 연구되는 거시성을 띤 역사에서 벗어난 중요성이 꽤 떨어지는 미시사와 향토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다. 언뜻 사학계의 은둔 고수를 일컫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처럼 정보 교류와 발표가 쉬운 인터넷 시대에 딱히 그런 이유로 재야인 것은 아니다.
1.1. 특징
재야 사학의 특성상 여러 가지 경향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다음들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찾아볼 수 있다.[1]- 탈정치사적 경향 - 제도권 사학의 정치사, 국가사, 민족사 위주 경향에서 탈피하여 사회경제사, 문화사 등 정치사 이외의 분야를 다룬다.
- 탈거시사적 경향 - 제도권 사학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는 향토사, 문중사, 교사(校史) 등 미시적인 분야를 다룬다.
- 탈지배층적, 민중적 경향 - 아무래도 제도권 사학 연구에서 중시되는 기록된 사료들이 기록 당시의 지배층이나 기득권층, 식자층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 많은 만큼 그들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피지배층이나 평범한 민중, 당대의 지배질서 하에서 소외, 핍박받는 자들 등 아웃사이더의 관점에서 사실을 뒤집어 보거나, 지배층이 남긴 사료, 문헌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제대로 된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는 주류 사학계와 서로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고, 주류 학계가 미시사에 기초한 연구에 돌입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 주력 분야
2.1. 향토사, 미시사
이른바 "재야 사학"이라고 했을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향토사학자들인데, 이들은 미시사적 관점에서 한 동네·집안·인물 또는 단체의 변천사, 또는 민속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온갖 전설과 야담과 민요를 위시한 소위 "로컬 히스토리(Local History)"를 채집하는 등 주류 사학계의 관심을 벗어난 연구를 하기에 "재야"라는 딱지가 붙는다. 지역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이용해 이런 재야 사학자들의 깨알 같은 족적을 음미할 수 있다. 이분들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의 전설과 민담과 씨족별·가문별 역사 정리도 중요하다. 이런 미시사와 향토사의 연구는 주류 사학의 연구에도 필요한 작업이다.'왜 필요한지' 덧붙이면, 전근대 시대의 역사서들은 철저히 왕과 귀족층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 보통사람의 처지나 시선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극히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백성 아무개가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는 사회에서 상당한 물의를 빚거나 크게 칭송받은 일이 아니면 나오지 않고 삼국사기는 그보다 더하다. 향토사. 즉 지방사의 연구는, 이렇듯 중앙 위주로 서술되어 온 역사의 균형을 맞추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이 기사처럼 지방 민속 박물관의 학예 연구사들이 많이 연구하곤 한다. 그밖에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교직, 공직에 재직했던 사람이 퇴직 후에 소일거리 삼아 자기 고장의 향토사를 조사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은 학문상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연구의 다양성을 넓혀 주고 보통사람들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역사를 보통사람에게 조금 더 가깝게 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향토 지역의 문화사와 경제사와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포괄하여 재야사학으로 일컫기도 한다.
2.2. 비주류 학설
주류 사학계와 학벌이나 사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인정받지 못하거나, 한때 학계의 정설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후속 연구를 통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결론이 나 밀려난 비주류 학설을 주창했던 학자들을 일컬어 재야 사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쪽도 제대로 된 연구 과정을 거쳤다면 주류 사학과의 교류를 이용해 정식 사학으로 인정받을 때가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존재의 가치 자체는 인정받는다.2.3. 유사역사학
유사역사학자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재야 사학이라고 참칭하기도 하는데, 관련한 내용은 유사역사학 문서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다만 그 반대로 재야사학=유사사학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 다른 재야사학자분들한테는 엄청난 실례이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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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이야기' 시리즈를 저술한
이이화, 친일파 연구가인
임종국, 또는 우리 주변의 시군구 문화원 같은 곳에서
개량한복 입고 믹스커피 타먹는 영감님들오늘도 조용히 우리 고장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소수의 제대로 된 재야사학자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 2010년대 중국에서도 이것에 관심을 보였다.
- 영국에서는 레스터 지역의 재야사학자들이 500년 전에 사라진 리처드 3세의 유해를 찾아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