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부인 잔 드 플란데런 Jeanne de Fland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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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잔 드 플란데런 (Jeanne de Flandre) | |
출생 |
1295년 플란데런 백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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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74년 잉글랜드 왕국 틱힐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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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 장 드 몽포르 (1329년 결혼/1345년 사망) | |
자녀 | 장 4세, 잔 | |
아버지 | 루이 1세 드 느베르 | |
어머니 | 잔 드 레텔 | |
형제 | 루이 1세 드 플란데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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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년전쟁 시기 남편 장 드 몽포르의 브르타뉴 공작 선임을 위해 샤를 드 블루아와 잔 드 팡티에브르를 상대로 맞서 싸운 여인.2. 생애
1295년경 느베르 백작 루이 1세와 레텔 여백작 잔 드 레텔의 딸로 출생했다. 형제 루이는 할아버지인 플란데런 백작 로베르 3세로부터 플란데런 백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녀는 1329년 3월 브르타뉴 전임 공작 아르튀르 2세 드 브르타뉴와 몽포르 여백작이자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더르 3세의 왕비였던 드뢰의 욜랑드의 아들인 장 드 몽포르와 결혼했다.1341년 4월 30일, 브르타뉴 공작 장 3세 드 브르타뉴가 자녀를 낳지 못하고 후계자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사망했다. 1341년 9월 7일,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는 콩플랑에서 장 3세 드 브르타뉴의 조카인 잔 드 팡티에브르를 브르타뉴 여공작으로 인정하고, 잔 드 팡티에브르의 남편인 샤를 드 블루아를 브르타뉴의 후견인 공작으로 인정해, 브르타뉴 귀족들에게 샤를과 잔 부부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그러나 장 드 몽포르는 프랑스 왕실이 필리프 5세부터 도입한 살리카법에 근거해 여자는 공작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다며 자신이 공작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드 몽포르는 잔과 샤를 부부가 필리프 6세를 알현하게 위해 파리로 간 틈을 타 프랑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귀족 및 평민들의 지지를 토대로 군대를 일으켜 낭트, 렌, 디낭, 브레스트 등 브르타뉴의 가장 중요한 도시 및 성들을 빠르게 공략했다. 이에 샤를 드 블루아는 아내의 권리를 지켜주겠다고 선언하고 그 해 9월까지 5,000명의 프랑스 군인과 2,000명의 제노바 용병을 모집한 뒤 장 드 몽포르가 근거지로 삼은 낭트로 진격했다. 장 드 몽포르는 이에 맞서 싸웠지만 샹토소 전투에서 패배한 뒤 낭트로 피신했고, 뒤이은 낭트 공방전에서 낭트 시민들로부터 당장 항복하라는 압력을 받은 끝에 11월 2일 샤를에게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항복했다. 샤를은 그가 성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약속을 파기하고 체포한 뒤 루브르 감옥에 보내버렸다. 그 후 샤를은 1341년 겨울 동안 브르타뉴 동부 전체를 공략하고 1342년 봄에는 렌을 비롯한 브르타뉴 서부 대부분을 공략했다.
하지만 잔 드 플란데런은 남편이 루브르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끝까지 항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신뢰할 수 있는 측근 한 명을 잉글랜드로 보내 원군을 요청하게 한 뒤 엔봉에서 농성했다. 1342년 5월, 샤를 드 블루아가 엔봉을 향해 진군했다. 잔은 이 소식을 듣고 모든 군대에게 무장을 명령하고 큰 종을 울려 모든 사람을 도시 방어에 소환하도록 했다. 얼마 후 엔봉에 도착한 샤를은 포위망을 구축한 프랑스인과 제노바인 장병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는 전투가 며칠 안에 끝날 거라 예상했지만, 잔과 엔봉 수비대, 그리고 주민들의 저항을 쉽사리 물리치지 못했다. 장 르 벨의 연대기에 따르면, 그녀는 마을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돌과 생석회 항아리들을 성벽으로 가져와서 침략자들에게 던져라!"
15세기 판화, 성밖으로 출격하는 잔 드 플란데런.
잔은 공방전이 벌어지는 동안 방어가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매일 탑을 올라 관찰했다. 그러던 중 모든 포위군이 공격을 이끌기 위해 숙영지를 비운 채 전방으로 가 있는 광경을 보고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탑에서 내려온 뒤 공격을 받지 않는 성문을 지키고 있던 300명의 중장병을 소집했다. 이후 이들과 함께 말을 타고 성문을 열고 돌격해 적 숙영지를 급습하여 얼마 되지 않는 적군을 살육하고 진영에 불을 질렀다.
프랑스군은 자기들 진영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경악해 공격을 중단하고 "배신이다! 배신이다!"라고 외치며 숙영지로 달려왔다. 잔은 포위군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것을 보고 엔봉 마을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브라이트(Brayt) 마을로 이동했다. 브라이트 마을에서 병사들의 인원을 점검한 잔은 닷새 후에 인근에서 모은 200명의 병사를 포함한 500명을 이끌고 엔봉으로 야간 행군했다. 새벽 즈음에 적 포위망을 뚫고 성문 하나에 도착한 그녀는 수비대와 주민들의 열띤 환호를 받으며 입성했다.
이렇듯 잔이 결사적으로 항전하면서 피해가 갈수록 커지자, 샤를은 엔봉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12대의 투석기를 제작한 뒤 레온의 에르베에게 공략을 맡기고 다른 마을을 공략하러 떠났다. 얼마 후 투석기가 마을과 성벽을 파괴하자, 수비대 사이에서 항복하자는 의견이 거세졌다. 급기야 엔봉 내부에 머물고 있던 레온 주교이자 에르베의 삼촌 기가 에르베와 밀통해 항복 여론을 조성했고, 잔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항복 조건을 협상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대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항복을 택해야 했다.
15세기 판화, 잉글랜드 함대를 맞이하는 잔 드 플란데런.
하지만 얼마 후, 잉글랜드 함대가 나타났다. 장 르 벨은 연대기에서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에르베 경은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이때 용감한 부인이 성의 창문을 통해 바다를 보고는 환희에 차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울부짖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들이 오고 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은 그녀가 본 것을 보려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엔봉으로 향하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목격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들이 오고 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은 그녀가 본 것을 보려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엔봉으로 향하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목격했다.
월터 매니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은 무사히 상륙한 뒤 잔이 베푼 연회에 참석했다. 에르베는 이에 격분해 투석기를 동원해 밤낮으로 포격을 퍼부었지만, 월터가 잉글랜드 궁병대 300명을 이끌고 야밤을 틈타 빠져나온 뒤 투석기를 지키고 있던 적병들에게 일제 사격을 가해 몰아낸 후 투석기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적진에 불을 지른 뒤 프랑스군의 추격을 회피하고 귀환했다. 장 르 벨은 잔이 성에서 내려와서 월터 매니와 잉글랜드 병사들에게 차례로 두 세번 키스했다고 밝혔다. 결국 프랑스군은 6월경에 엔봉 공략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그 후 잔은 월터 매니와 함께 100명의 기병과 100명의 궁수를 이끌고 로베르 3세 다르투아가 이끄는 10,000명의 잉글랜드군과 합세해 반 공방전에 참여했다. 그 후 엔봉으로 돌아간 잔은 추가 병력을 얻기 위해 잉글랜드로 항해했지만, 도중에 샤를 드 블루아의 동맹인 카스티야 해군 지휘관 루이스 데 라 세르다가 이끄는 함대와 마주쳤다. 이어진 해전에서, 루이스의 부하들이 잔의 배에 탑승하려고 시도하자, 선원과 기사들은 이를 저지하려고 백병전을 벌였다.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에 따르면, 잔은 "사자의 마음으로 날카로운 검을 잡고 검을 휘두르며 앞장서서 싸웠다"고 한다. 결국 잔이 이끄는 함대는 루이스의 배를 격파하고 잉글랜드로 귀환한 뒤 병력을 모집한 후 다시 브르타뉴로 돌아가서 잉글랜드의 반 공략과 렌 포위전을 지원했다.
1343년 1월 19일,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레스트로이트 휴전 협약을 맺었다. 그들은 3년간 휴전을 준수하기로 했고, 반은 클레멘스 6세의 추기경이 임시로 관리하기로 했다. 또한 루브르 감옥에 갇혀 있던 장 드 몽포르는 프랑스를 떠나거나 브르타뉴로 돌아가지는 못하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1344년 브르타뉴 내전이 재개된 뒤 몽포르 세력이 일방적으로 밀리자, 잔은 아들 장 4세 드 몽포르와 함께 잉들랜드로 이동했다. 1345년 9월 26일 남편 장 드 몽포르가 사망한 뒤, 잔과 몽포르 파벌은 5살된 장 4세 드 몽포르를 우두머리로 내세웠다. 그러나 잔은 얼마 후 정신병에 걸려 에드워드 3세의 명령으로 틱힐 성에 감금되었다.
1364년 아들 장 4세 드 브르타뉴가 오레 전투에서 샤를 드 블루아를 전사시키고 내전에서 승리해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지만, 잔은 브르타뉴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1374년 2월 14일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녀는 그 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가족
- 장 드 몽포르(1294 ~ 1345): 브르타뉴 공작 아르튀르 2세의 아들. 브르타뉴 공작위 주장자.
- 장 4세 드 브르타뉴(1339 ~ 1399): 브르타뉴 공작.
- 잔 드 몽포르(1341 ~ 1402): 드레이튼의 3대 바셋 영주 랄프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