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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3:55

자유행성동맹/역사/말기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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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치적 문제3. 군사적 문제4. 국민들의 문제5. 재정적 문제6. 인적 문제7. 언론 문제8. 희망은 있었지 않았을까?9. 제국보다는 나았다10. 총론

1. 개요

"쉽게 말해 동맹은 이제 수명을 다 써버린 겁니다. 정치가는 권력으로 장난치고, 군인은 암릿처에서 봤듯 투기적인 모험에 골몰하고.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이를 유지할 노력을 태만히 했지요. 아니, 국민들조차 정치를 일부 정치꾼에게 맡긴 채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니.......[1] 전제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군주와 중신들의 죄 탓이라지만, 민주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모든 국민 책임입니다. 당신을 합법적으로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스스로 그 권리와 책임을 포기하고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치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아치운 거지요."[2]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 항복을 주장하는 트뤼니히트의 말에 반박하면서.

민주주의 부활을 외치며 건국된 자유행성동맹이건만 결국 우주력 790년대 말인 본 이야기 시점에는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전방위적으로 전형적인 국가적 말기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인터뷰에서 동맹이 부패한 원인을 목적의 변화로 꼽았다. 민주공화정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를 설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맹을 유지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고,[3] 유지를 목적으로 하다가 점점 스케일이 작아져서 종국에는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는 것.

다만 이는 제국령 침공작전이라는, 실패할 시 국가적 대재앙을 불러올 것이 뻔한 작전을 단지 지지율 상승이라는 목적으로 제대로 검토도 안 해보고 실행한 점과 정작 동맹 시민들은 작가의 말대로 동맹이라는 국가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본 목적인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에도 적극적이라는 점을 보면 작가가 말한 문제점은 정치인들의 문제지 동맹 시민 전체의 문제점은 아니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건 아니지만.

2. 정치적 문제

먼저 중우정치가 판을 쳤다. 그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게 욥 트뤼니히트.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선거와 자신의 지지율에만 골몰했고 군사적 치적을 쌓기 위해 무리한 대 제국 군사작전을 벌이는 일이 많아졌다.[4] 그 절정을 보여주는 게 제국령 침공작전.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당시 동맹의 아슬아슬한 국력으로 제국령 침공은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지만 지지율 반등을 위해 최고평의회는 제국령 침공안을 가결시켜버린다.

제국령 침공 이후 동맹의 정치 부패는 가속화되는데, 정계와 재계의 부정부패는 일상화되고 지도층의 무책임함도 극에 달한다. 이 상황이 극에 달하여 구국군사회의 쿠데타가 터지자 트뤼니히트는 미리 정보를 입수했음에도 혼자 도망쳤고, 반전파 정치가 동맹정부를 지지한 군인이 나서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숨어 있다가 다 끝날 때쯤 기어나와서 정권을 장악했다. 더 나아가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서는 위기가 닥치자 시민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잠적한 뒤 적국이 수도까지 진출하자 항전을 주장하는 월터 아일랜즈 알렉산드르 뷰코크 지구교의 협력으로 모조리 연금하고 제국에 항복하는 추태를 보인다. 심지어 바라트 화약 이후에는 몇몇 정치꾼들은 자기네들 이득을 위해 구국영웅인 양 웬리를 팔아먹는 짓거리까지 저지른다.[5]

여기에 정치깡패 우국기사단이 대낮에 도심을 활보하며 시민들을 폭행하고 분서를 저지르지 않나 아예 경찰과 협력하여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반전파 시위대를 구타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정치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한 수준으로 뇌물수수나 횡령은 이미 일상화된 수준이었다.

OVA에는 동맹의 정치적 문제가 더 부각되어 테르누젠에서 벌어진 보궐선거 당시 반전파 후보 제임스 쏜다이크 정치깡패에 암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다.

3. 군사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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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민들의 문제

은하연방과 같은 점: 강한 힘에 의한 회복 원함[6], 국민들이 지쳐감, 퇴폐 문화가 자리잡음, 시민 의식 하락

은하연방과 다른 점: 여전히 민주주의를 자부심으로 여김, 하지만 그로 인해 국수주의가 자리잡음, 사상 경직.

그 외에 부유층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에드워즈 위원회에서 조사한 바로는 사회지도층의 군 입대율 15%에 그나마 전선에 배치되는건 고작 1%였다. 욥 트뤼니히트만 해도 하이네센에서 꿀보직이나 하던 인간으로 문제는 주전파의 대다수가 이런 놈들로 구성된 치킨 호크들 뿐이었다. 여기에 국민들도 오래된 전쟁에 슬쩍 군국주의적 행보를 보이는지 막 아스타테 회전을 끝내고 국가의 영웅이 된 양 웬리를 본 메이어&윌어느 할머니는 대동하고 있던 손자도 커서 군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말은 맞는 말이지만[7] 말하는 것도 단순 립서비스로 한 말이 아닌 진심으로 보이는 점[8] 그 말에 싫어하는 손자를 타박한걸 보면 국민들 자신도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썩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행동들에 대한 업보라면 업보지만 결국 시민들은 은하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욥 트뤼니히트가 자신들을 배신하자 그제서야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5. 재정적 문제

여전히 끊이지 않는 제국과의 전쟁으로 전비 부담, 그로 인한 경제 약화 여기에 페잔에 진 빚 등으로 인해 재정적 문제는 심각했다. 심지어 전투에서 이기고 있거나 손실이 적다면 몰라도 우주력 792년부터 제국령 침공작전 직전까지 승리한 대규모 전투는 아를레스하임 성역 회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뿐인데 제3차 티아마트 회전 아스타테 회전에서 입은 피해가 함대 3개분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났다. 거기다가 다수의 함대를 동원한 전투가 우주력 792년부터 제국령 침공작전 직전까지 최소 6차례다. 단 4년만에 대규모 출병을 6번이나 했는데 얻은건 없고[9] 손실만 잔뜩이니 그 손해액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러니 제국령 침공작전 승인을 놓고 열린 회의에서 조안 레벨로가 이대로 가다간 동맹 경제가 파산하고 말거라고 경고한것도 결코 과장이나 오버가 아니었으리라. 그래도 제국령 침공작전 이전까지는 국채발행이나 증세로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지만 제국령 침공작전에만 무려 국가예산의 5.4%, 국방비의 10%인 2000억 디나르를 투입했고, 작전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당장 유족에게 줄 위로금으로 2500억 디나르를 지출해야 했으며, 이후 유족 연금 지급에다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로 하이네센의 경제가 엉망이 되면서 경제가 파탄나버린다.

이 상황에 제국의 침공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은 경제가 파탄나도 GNP의 30%를 국방비에 투자해야 했다.[10] 거기에다 페잔에게 진 빚 때문에 압박까지 받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 납치 사건 전의 니콜라스 볼텍은 동맹이 페잔에 진 빚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제국과 손잡고 사이좋게 페잔을 짓밟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11]

이 결과로 정부는 재정적 소비를 감소시켜야 했고 양 웬리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사관학교의 전사연구과를 폐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사관학교는 공짜로 다니게 하는 기관임을 감안해보면 그마저도 줄여야 돌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도 많이 망가졌다. 구국군사회의의 포고문 맨 마지막번째에 복지제도의 폐지가 있는 것도 이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사회적인 분위기도 크게 저하되어서 율리안 민츠가 페잔으로 발령받아 하이네센으로 잠시 복귀했을 때 하이네센의 분위기를 보고 예전보다 더 어두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6. 인적 문제

이쪽도 문제, 역시나 제국과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물론 전체 인구가 130억이니 한번 전투가 벌어져봐야 많아도 수백만 정도 죽는 수준이 뭐 크겠냐고 생각되겠지만 전체적 비율은 그렇지만 젊은 세대 관점에서는 결코 그렇지가 않다. 이런 전투가 한두번 벌어지는 게 아니라 양 웬리가 전투에 100번 정도 참여했다는데서 보듯 크고 작은 전투가 10~20년 동안 100번 정도 벌어질 정도니 그 시기동안 최소 1000만 많으면 수천만 정도는 죽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젊은 세대가 경제가 돌아가는데 큰 역할을 하는 계층이요 가장 팔팔한 세대라는 거 그 결과 공무원 평균 연령이 40대이며[12] 수도 하이네센폴리스의 자동화 시스템이 어떤 이유로 기능이 멈췄을때 이것을 정비할 사람이 부족했다. 변방 행성도 아닌 수도 행성, 심지어 수도 행성의 수도인, 그러니까 동맹 전체의 수도조차 이 모양이면 다른 지역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러한 인적 문제인지 은하제국과 마찬가지로 자유행성동맹도 병역의무가 있지만 제국이 2년인데 비해 동맹은 3년이다.

7. 언론 문제

언론도 막장을 타고 있었다. 정언유착(政言癒着)이 일상화되어 기자들은 정치권력을 견제하거나 비판하는 책무를 내팽개치고 정권이 원하는 기사나 뿌리고 있었다[13]. 정치가의 비리가 보도되는 것은 오로지 정계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날 때 뿐이었다. 특히 욥 트뤼니히트 정권은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한 예로, 에드워즈 위원회가 사회지도층이 병역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고 폭로했을 때 언론은 미담이나 사건사고만 보도할 뿐 폭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러다가 시위 중이던 에드워즈 위원회가 경찰과 우국기사단에 진압당하자 언론은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써 회원 간 내분으로 발생한 유혈사태라고 보도했으며 우국기사단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사문회 당시 프레데리카를 비방하는 기사나 양 웬리와 프레데리카 그린힐의 염문설 같은 찌라시를 기사로 썼다.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도중 욥 트뤼니히트가 잠적하자 언론들은 정부를 비판하기는 커녕 전 국민의 책임이라며 물타기를 하고 오히려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권리만을 주장하는 시민'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중 양 웬리가 하이네센으로 귀환하자 한 국방위원회 출입기자는 양 앞으로 달려와 이 자리에서 반드시 선과 악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국민 앞에 맹세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14] 그리고 율리안 민츠의 페잔 탈출을 방영할 때 아나운서가 양 웬리가 율리안을 입양한 이유는 율리안의 가능성을 보왔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를 했다.

그나마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 언론들은 일제히 동맹정부에게 진실을 밝히라며 십자포화를 날렸으나 원작에는 이 뒤에 제국을 비난하면 보복을 각오해야 하지만 동맹정부를 상대로는 펜에 힘이 실리는 모양이라고 비꼬는 서술이 있다.

그래도 기자 단위로 가면 애기가 좀 다른지 더스티 아텐보로의 아버지는 반전 언론인이었다.

8. 희망은 있었지 않았을까?

이러한 문제점을 일시적이나마 해소할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으로 동맹은 이제르론 요새를 제국에서 빼앗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제국은 동맹을 침공할 루트를 잃게 되었으며 되려 제국령 침공을 걱정할 수준까지 몰리게 된다.

이렇게 되었으니 동맹은 제국에게 평화 공세로 나서는 게 상책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요새와 1개 주둔함대로 좀 더 편하게 제국군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15] 따라서 제국군을 요격할 비용이 훨씬 줄어드니 동맹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인적자원 고갈을 막을 수 있을 수 있었다. 어차피 제국도 자신들이 만든 요새의 위력을 아니 함부로 쳐들어 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나 동맹은 선거에서 이기고 싶던 동맹정치인+열폭한 앤드류 포크와 그를 신뢰하는 라자르 로보스로 인해 이 기회를 제국령 침공작전으로 화려하게 날려버렸다.

다만 이렇게 되면 페잔 자치령 지구교의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설령 동맹정부가 더 이상의 전쟁을 중지한다 쳐도 페잔이 바람을 넣어 제국령 침공을 결행하게 할 수도 있다. 동맹에 조안 레벨로 황 루이 처럼 견식 높은 정치가가 정권을 잡았다면 바로 무시해 버렸겠지만[16] 당시 동맹 수뇌부는 로열 샌포드 코넬리아 윈저 처럼 재선에 눈이 먼 인물들이었으니... 결국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의 성과는 동맹에게 독이 든 성배가 되고 말았다.

9. 제국보다는 나았다

그나마 나은 것이라면 동맹시민들의 자국과 민주공화정 체제에 대한 자부심.

은하제국의 국민들은 동맹과 달리 권력층을 제외하고는 국민의 애국심이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나마 드러나는 권력층의 애국심과 자부심도 타인을 전장에 떠밀면서 자신은 뒤에서 이익을 취하는 치킨 호크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며, 대다수 시민들은 이념이고 뭐고 그냥 하루하루 먹고사는 소시민이나 체제에 억압받는 피착취자의 모습을 보인다. 라인하르트가 쿠데타로 문벌귀족을 날리고 제국 체제를 개혁하자 골덴바움 왕조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갖다버리고 모두 라인하르트를 찬양하기 바빴다. 그리고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이후 작품의 중심이 페잔과 구 동맹령, 이제르론으로 넘어가면서 제국 주민들에 대한 묘사는 증발해버린다.

반면 자유행성동맹은 정치계만 보면 언듯 무기력한 공화정 국가로 보이지만 의외로 국민들은 저항의식이, 특히 독재자의 노예로 사느니 죽더라도 민주시민으로 죽겠다는, 민주공화정을 사수하려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당시에는 스타디움 학살 사건에서는 20만의 동맹시민이 모여 쿠데타군과 교전했고 멸망 이후 제국 식민지 시절에는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이 일어나 제국군과 교전했다.[17] 이러한 민주정에 대한 열망 때문에 동맹 멸망후에도 제국신민이 되긴 여의치 않다 생각했는지 결국 일부는 민주 자치령으로 놔둬버리게 된 원인중 하나가 된다.

물론 이에 반하는 사례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구 동맹시민들의 반기는 거의 하이네센에 집중되어 나오며 제국 점령 직후에는 제국의 지배를 반기는 시민들도 없지는 않았다고 하며 심지어 양 함대 내에서조차 이탈자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동맹인들의 제국에 대한 저항을 중점적으로 다루기에 이 부분은 잘 나오지 않는다.[21]

흔히 현실 일본 정치를 비판할 때 종종 화자되는 말이 민중이 없는 민주주의일만큼 일본 민주주의는 엘리트 중심적인 면이 강하고, 본 작품에서 묘사된 자유행성동맹의 정치 시스템도 이런 일본식 정치 체제의 특징을 반영한 점이 종종 있다. 반면 상술 된 몇몇 에피소드에 국한되긴 하지만 은영전 작중에서 묘사된 동맹 시민들의 주권 의식과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적극적 충성도는 상당히 오랫동안 고착된 현실, 일본의 정치적 냉소주의 태세와는 놀랄만큼 대조적이다. 현실 정치와 사회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정치 활극으로서 면모가 은영전의 매력 중 하나라면, 하이네센 시민들이 보여주는 행동력과 민주주의적 적극성, 주권 의식은 민주공화주의와 이를 뒷받침 하는 민중의 긍정적인 면모를 집대성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완벽하게 대조되는 민주공화국의 어두운 면인 중우정치, 정치적 기회주의를 상징하는 트뤼니히트 같은 이면도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동맹은 제국보다는 그래도 나은 면이 많은 게 정치체제 자체는 적어도 제국에 비하면 현대적이다. 서기 37세기면서도 무슨 중세 봉건제를 연상케 하는 제국과는 달리 적어도 자유행성동맹은 정치체제 그 자체로는 현대적 시점에 많이 가깝다. 더욱이 제국과는 달리 개천용이 나올 길이 제도적으로 막혔다든가 한건 아니다. 물론 제국도 개천용은 나올 수 있다. 문제는 그 방법이 거의 군인이라는것 .평민들도 공무원이나 다른 자리에 오를 수 없는건 아니지만 귀족들에게 눌려서 승진도 밀리고 군인의 경우조차 공을 뻇기기도 하며 미터마이어의 사례를 보듯 장성급이라 할지라도 대귀족에 찍히면 큰일난다. 하지만 동맹은 일단 신분제 자체는 없다보니 그 개막장 노답 장성들조차 부하들의 진언을 물리치는 등의 막장은 행하지만 부하들의 공을 가로채는 짓은 못한다.[22] 외전에서는 아얘 파트리체프가 프레스부르크에게 우리나라는 은하제국과는 달리 혈연 때문에 출세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 장면이 나오기에 이는 작중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율리안 민츠가 장정 1만 광년에 참여했던 민츠 가문 출신이긴 한데 그렇다고 민츠 가문이 뭐 그렇게 대단한 대접을 받은 가문이라는 얘기도 없고 율리안의 아버지에 대해서 민츠 가문이라는 빽 믿고 안하무인하게 굴었다는 대목은 없는걸 보면 몇몇 유력자 가문들이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 트뤼니히트조차 가문이 어쩌고 하는 얘기는 없고... 심지어 그가 시열대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알프레드 로자스의 장례식에서조차 그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없다. 다만 작가는 욥 트뤼니히트도 나름대로 잘나가는 가문 출신일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는 했고 트뤼니히트 자신은 금수저일 수도 있는 암시도 있다.[23]

그 외에 동맹이 나은 점은 정치체제의 안정인데 툭하면 반란이 일어나는 제국에 비해 동맹은 구국군사회의 쿠데타가 건국이래 최대 규모의 내전일 정도. 제국과 달리 문벌귀족의 사병도 없고 문민통제를 철저히 해 놓았기에 300년에 가까운 동맹 역사 중에 쿠데타 또는 군사반란은 단 4번 뿐이었다.[24] 반면 제국은 루돌프 대제가 죽자마자 공화주의자들의 대반란이 터졌으며 그 이외에도 에크하르트 백작의 반란, 린더호프 후작의 반란[25] 등 문벌귀족 및 왕족이나 대규모 민중반란 등 반란과 궁정음모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이 덕에 다곤 성역 회전 시점에서 동맹군보다 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여 프리드리히 3세가 개입하기 전에는 군무상서가 '대규모 수렵' 이라 표현할 정도로 이전의 그 어느 반란세력들보다도 강한 세력이어도 전혀 위기감도 못 느낄 정도였다만 애초 인류사회가 은하제국이라는 단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것이라고 믿었는) 상태에서 그렇게 강한 군대가 존재할 이유는 없었음을 감안하면 불안정한 정치체제가 제국에 도움을 준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동맹과의 전쟁 이후에는 그나마도 강한 군대 운운도 안 통한다. 오히려 그 강한 군대를 내적 문제에 자주 써야 했으니 내부의 암덩어리면 암덩어리지 도움이 될 리가...

여기에 동맹은 제국과 달리 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달고 있어 권력자라도 함부로 시민을 해칠 수 없다. 욥 트뤼니히트도 정적인 양 웬리를 합법적으로 숙청하지 못해서 사문회로 꼼수를 써야 했고[26], 마찬가지로 조안 레벨로 황 루이도 트뤼니히트 정권 하에서 해를 입은 적은 없다. 제국이 대귀족의 요구에 따라 민중을 착취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분노에 행성 하나를 초토화시킨 것을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물론 이 사건은 너무 막나간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27]

그리고 동맹은 제국에 비해 정부의 권위가 높다. 카스트로프 동란 당시 막시밀리안은 "내가 아버지 재산 물려받는데 제국 정부 따위가 웬 간섭이냐?"라고 했으며 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귀족들의 반란이 많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귀족들이 정부를 개무시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28] 하지만 동맹은 적어도 구국군사회의의 쿠데타 전까지는 적어도 동맹정부에 도전하는 내부 세력은 없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절대주의와 중앙집권을 추구한 은하제국은 반대로 지방 귀족들의 반란에 시달린 반면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을 추구한 자유행성동맹은 외려 지방 반란이 없었다는 것. 심지어 동맹이 멸망직전에 몰린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즈음에도 동맹을 탈퇴하기로 한 성계는 고작 엘 파실 하나뿐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를 신호로 동맹령 각지에서 분리주의 움직임이 일어날법도 한데 엘 파실 하나만이 탈퇴한 것이 눈여겨 볼 점이다.아니면 분리독립할 용기가 없었다든가 분명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동맹군 수뇌부는 "전쟁이 길어지면 중소성계들이 중립화[29]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10. 총론

자유행성동맹은 분명 은하연방 이래 사라진 민주공화주의의 부활을 명분으로 일어선 나라지만 결국 말기에 이르자 건국의 이상은 사라지고 은하연방의 말기와도 맞닿는 면이 있는 상황이 되었으며 실제로도 멸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으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고 그렇다고 국가적 개혁을 이끄는 세력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30]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동맹은 라인하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제국보다는 여러 면에서 괜찮았으며 동맹 시민들은 적어도 건국의 이상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들과 양 웬리 함대의 노력으로 바라트 성계 자치령이 탄생하여 민주주의의 명맥을 잇게 된다.

[1] 다만 이건 동맹시민에게 있어 약간 억울한 평가로 확실히 동맹 시민들이 트뤼니히트를 몰아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뤼니히트가 이미지빨은 좋았던데다 거기다가 뷰코크 말대로라면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는 일방적인 양 웬리 VS 구국군사회의 구도였겠지만 이 구도에서 주도적인 역할만 못했지 시민들의 반발과 봉기가 있었다. 특히 스타디움 학살 사건에서는 20만명의 시민들이 3천명의 진압군과 맞서서 시민측 2만명 진압군 1만 5천명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정말 정치를 완전히 정치꾼 따위에게 맡겼다기엔 다소 억울한 부분. [2]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27~328 [3] 6권에서 록웰이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독백하는데, 목적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이다. 심지어 레벨로조차 "국가를, 민주'국가'를 지키지 않고 뭐 하는 건가" 라고 말한 바 있고 심지어 동맹의 유지를 위해 반민주적인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4] 이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군인들이 정치가의 재선을 위해 희생되어갔고, 이는 구국군사회의 쿠데타의 한 원인이 된다. [5] 제국군 장교 라첼은 이들이 투고한 밀서를 보고 양 웬리 덕에 위기를 여러차례 모면해온 작자들이 이제 와 은인을 팔아먹고 있으니 참 추한 행태라고 평했다. [6] 이런 성향 자체가 사실 민주주의와는 반대되는 전체주의에게나 해당된다. 민주주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단결을 통해 유지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동맹 시민들이 독재자를 원한 것은 아니다. 동맹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인 드와이트 그린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오스카 폰 로이엔탈 모두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이들에 대한 저항은 결국 바라트 성계 자치령 설립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 라인하르트조차 정치적으로 중요한 옛 적국의 수도에 자치권을 줘야 했을 정도로 독재에 대한 저항감 만큼은 강했던 셈. [7] 징병제니 틀린 말은 아니다. [8] 분위기가 왠지 군대에 가야 할거 같다든가 군인 집안이 아닌 이상에야 자기 자식, 손자를 군대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9]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어떠한 재생산도 불가능하다. 군대라는 것이 원래 소비만 하는 집단이고 생산은 없는 집단이기 때문. 그나마 현실처럼 다국적 질서라면 타국에 무기를 팔아먹거나 자국군을 용병 비스므리하게 투입시켜 그 대가로 돈을 받아먹을수라도 있지 은영전 세계관에서 국가는 딱 3개뿐이라 그것도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새 영토라도 얻는다면 그 영토에 남겨진 재산, 인구, 인프라 등이라도 얻지 그것도 없었다.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고도 얻은건 물질적 이득은 군수물자 뿐으로 오히려 엄청난 수의 포로 때문에 재정에는 어마어마한 손실이 돌아왔다. [10] 일단 당장에는 이제르론 요새와 양 함대 덕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으로 만일 이제르론 요새가 제국군 소유였다면 동맹은 언제라도 망할 수 있었다. [11] 물론 제정신이라면 이딴 짓을 할 리 없다. 다만 그만큼 동맹이 페잔에 의해 지고 있는 부담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볼텍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았겠지만 본인은 그 동맹 정치인들 때문에 이 걱정을 했다. 지지율 때문에 3천만 병력을 무리하게 보내 2천만을 전사시킨게 몇년 전 일이니 볼텍의 우려도 아주 틀린건 아니다. [12] 이는 통계의 허수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6.70대 이상의 노인들과 경험없는 10대들이 중추를 맡고 있다. 즉 평균값은 의미가 없다. [13] 이런 언론이 현실에서도 있는데, 영어로는 언론+창녀라는 뜻의 언창(Presstitute)이라고 부른다. [14] 오죽하면 웬만한 상황에서도 절대 화 안내는 걸로 유명한 양 웬리도 이때만큼은 진심으로 빡쳐서 쳐들어온 기자에게 독설을 퍼부으려고 했으나 프레데리카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들어와, 그 기자에게 "부디 아군의 승리를 바라신다면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일갈하고 쇤코프가 기자를 쫒아내면서 온화한 신사라는 평판을 유지할 수 있었다. [15] 이제르론 요새 점령 이전 동맹군은 제국군의 공세를 막기 위해 최소 3개 함대, 많으면 5개 함대를 동원해야 했다. 제국령 침공 작전 때 결국 동맹군을 대부분 말아 먹었지만, 그래도 양 웬리 대장이 이끄는 이제르론 요새와 그 주둔함대의 철벽 방어를 결국 뚫지 못한 라인하르트는 결국 다른 경로인 페잔 자치령을 침략한 다음 동맹 침공의 교두보로 삼게 된다. [16] 바로 뒤에 언급한 두 인간들과는 급이 다를 수준의 악행을 저질렀지만 둘과는 달리 견식이 있던 욥 트뤼니히트도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고 있었기에 반대를 했다. 단 그는 권력을 잡는 게 목적이었기에 앞의 두 명과는 달리 조용히 있다가 막판에 반대를 했다. [17] 위 두 사례 모두 제압군측이 발포했다. 동맹시민들은 전혀 겁먹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투석 등으로 대응하다 병사를 두들겨패고 총기를 탈취하여 반격에 나섰으며 장갑차량이 나타나도 굴하지 않고 열광적으로 반격해서 활활 불태워버렸다. [18] 레사비크 성계에서는 동맹군은 함선을 자침하려던 도중 레지스탕스 부대( 셔우드 숲)의 습격을 받는데 이들은 동맹이 하는 꼴이 보기 싫으니까 함선은 제국과 맞서는데에 쓸테니 함선을 넘기라면서 병사들 중에서 합류하겠다는 이들은 모두 받아주겠다고 했는데 그 말에 그들 중에 같은 생각이었던 하무디 아슈르 소령 이하 4천명의 병사들과 함선 400여척 우주모함 80척이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책임자인 마스카니는 사문회에 끌려가야 했다. [19] OVA에서는 바운스골의 최후도 그려냈는데 무려 기지가 불바다가 되어 죽기 직전인데도 조금의 표정도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다가 기지가 폭파되자 휘말려 죽는다. [20] 그리고 이렇게 끼워주지 않은 이들은 양 웬리와 합류하라고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 수가 약 5500여척. [21] 반면 골덴바움 왕조에서는 이런 류의 미담은 고작해야 메르카츠가 끝까지 골덴바움 왕조에 충성한 것, 은하제국 정통정부 병사 5명이 참가하지 않을 자유가 있음에도 버밀리온 회전에 참전한 것 정도인데... 이 병사들조차 왕조에 충성한건지 아니면 메르카츠 개인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페잔 역시도 마찬가지라 말로는 자유시민, 독립정신을 부르짖지만 정작 페잔 자치령이 멸망한 후 제국에 맞선 이들은 보리스 코네프를 위시로 한 봉쇄돌파 그룹 뿐이었고 대다수의 페잔 시민들은 그저 불평불만만 늘어놓았고 일부는 오히려 제국에 적극 협조했다. 물론 이는 페잔의 정치 및 경제구조 탓도 있지만. [22] 다만 동맹도 상관이 부하를 죽이기도 했다는 대목을 보면 마냥 정상은 아니다. 심지어 군 내에서는 파벌싸움이 만연하여 이게 사관학교로까지 전염되어 사관과 학생이 파벌을 이루고 파벌끼리 유혈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23] 트뤼니히트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지만 그 기간동안 하이네센에서 꿀만 빨며 지냈는데 이게 어쩌다 보니 배치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병역비리라면 그도 금수저라는 말이 된다. [24] 1.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2. 욥 트뤼니히트의 친위 쿠데타, 3. 양 웬리 원수 체포 이후 로젠리터 연대의 반란, 4. 통합작전본부장 록웰 대장의 쿠데타. 그것도 트뤼니히트의 쿠데타는 군인이 아니라 지구교도를 동원한 것이었다. [25] 다만 이건 옹호받을 여지가 있는 게 그 당시의 황제인 아우구스트 2세가 반란을 일으켜서라도 몰아내야 할 막장 폭군이었다. 오죽하면 반란인데도 너도나도 가담하고 황제군조차 제대로 싸우질 않아 항복한 사람이 전사자의 20배나 되었다... 물론 그런 막장 폭군이 나왔다는데서 또 정치적인 문제점이 추가되지만...아무리 샌포드나 트뤼니히트가 병신이라도 이들은 적어도 인육을 먹는단 소문은 없었다. [26] 그나마 이 사문회도 양 웬리를 죽이기 위한 게 아니라 고분고분하게 길들이기(...) 위해서 벌인 짓이였다. 애초에 자유행성동맹에게 있어 양 웬리의 중요성과 명성을 생각하면, 아무리 트뤼니히트라고 해도 함부로 그를 죽일 수 없었다. [27] 이건 13일 전쟁이라는 대 참극으로 인해 인류사회 전체에 핵공격은 안 된다는 비공식적인 규칙에 의한 것이었기에 플레겔을 비롯한 소수의 이들을 빼면 경악 내지는 반대했다. 오죽하면 브라운슈바이크의 충직한 측근이었던 안스바흐조차 어떻게든 말리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이제 망했다고 망연자실했을까... [28] 다만 막시밀리안은 역대급으로 막되먹은 작자기는 했다. 그럼에도 제국 정부의 관료들이 문벌귀족들을 두려워한다는걸 보면 확실히 정부의 권위가 영 아니긴 하다. [29] 이렇게 써놓았지만 이건 듣기좋게 돌려말한거고 실상은 은하제국 밑에 들어간다는 소리다. [30] 반전주의자들도 어디까지나 제국과의 전쟁을 자제하자거나 하는 세력이지 국가적 개혁을 부르짖는 세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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