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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8:35:11

자우밍야

자우미냐에서 넘어옴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파일:djalminha.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자우미냐
Djalminha
본명 자우마 페이투사 지아스
Djalma Feitosa Dias
출생 1970년 12월 9일 ([age(1970-12-09)]세)
브라질 연방 공화국 산투스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69kg
직업 축구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CR 플라멩구 (1988~1993)
과라니 FC (1993~1995)
시미즈 S펄스 (1994 / 임대)
SE 파우메이라스 (1996~1997)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7~2004)
FK 오스트리아 빈 (2002~2003 / 임대)
클루브 아메리카 (2004)
국가대표 14경기 5골 ( 브라질 / 1996~2002)

1. 개요2. 클럽 경력
2.1.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이전2.2.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2.3. 은퇴
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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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확실히 그는 차이를 만들었다. 그가 핵심 선수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뿐만 아니라 그의 용감한 캐릭터가 팀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는 항상 공을 필요로 하는 유형의 선수였다. 어려운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는 항상 그것을 잡고 해결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선수였다. 그는 항상 당신을 놀라게 할 수있는 선수였다. 축구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면 자우밍야가 나타나서 새로운 것을 보여줬다. 나에게 이러한 느낌을 주는 3명의 선수로는 자우밍야가 1위, 레알 마드리드 구티가 2위,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이 3위였다.
빅토르 산체스
그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셀타 비고를 상대로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선수였다. 나는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아이콘과 함께 뛰어봤지만 자우밍야의 플레이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파울레타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호나우지뉴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이자 실내 축구선수이다. 축구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2. 클럽 경력

2.1.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이전

브라질의 명문 플라멩구에서 데뷔했다. 플라멩구와 파우메이라스에서 뛰면서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 챔피언십에서 100골이 넘는 골을 기록하며 코파 두 브라질,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등 다수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게 되었고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후 1997년 1000만 유로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나는 스페인에서 뛸 때 지단을 무서운 상대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는 내가 경의를 표한 유일한 상대는 아니었다. 또 다른 사람은 자우밍야였다. 그는 많은 능력과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고 훌륭했다. 코루냐에서 그와 함께 할 때는 즐거웠지만 바르셀로나에서 그를 상대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히바우두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의 4-2-3-1 포메이션에서 빅토르 산체스, 프란 곤잘레스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뤄 최전방의 로이 마카이를 지원하며 1999-00 시즌 구단 역사상 첫 라리가 우승과 2000-01, 2001-02 시즌 구단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최고 성적인 4강 진출에 크게 공헌하는 등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자우밍야는 이루레타 감독과 마찰이 잦았고 결국 이를 계기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영입한 신예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2.3. 은퇴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자우밍야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명문 빈으로 임대를 떠나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2003-04 시즌 데포르티보로 돌아와 11경기 만을 소화하고 멕시코의 명문 클루브 아메리카으로 이적했다.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5경기 만을 뛰고 2004년 축구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6년 10월 16일 리투아니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데뷔했으며 이어진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결승골을 선보이며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했다.

1997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에 프리킥 결승골과 준결승 페루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으로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후 자기중심적이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한 감독과의 마찰, 그리고 쟁쟁한 경쟁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상황이 맞물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는 참가하지 못하는 등 대표팀과 인연이 멀어져갔다.

이 당시 브라질 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리우 자갈루 루이스 스콜라리는 자우밍야의 재능이 브라질을 대표할 만한 재능인 것은 인정했으나, 쟁쟁한 자원들이 즐비한 브라질 대표팀에 인성에 문제 있는 선수를 굳이 여러 리스크를 감수해가면서 쓸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다.[1]

4. 플레이 스타일

나는 오랫동안 자우밍야를 흉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했던 많은 것들은 자우밍야를 모방한 것이다. 내가 백(힐)패스를 하면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묻곤 했다, 난 자우밍야를 봤다.
호나우지뉴
그는 아마도 내가 함께했던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최고의 창의력을 가진 선수 일 것이다.
파블로 피닐로스

브라질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창의적이며 화려하고 변칙적인 드리블 능력과 패싱 센스, 플레이 메이킹 능력, 프리킥을 포함한 킥 능력 전반 등을 두루 갖춘 완성형 선수였다. 이러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축구선수 은퇴 후 실내 축구선수로 뛰었으며 신인 시절 호나우지뉴가 '제 2의 자우밍야'로 불릴 정도로 둘의 플레이 스타일은 비슷한 면이 많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파일:djalmostovoi.gif

동 시기 같은 리그에서 활약한 알렉산드르 모스토보이 포지션, 활약 시기, 장점,[2] 성격, 나이, 신장, 세계 최고 수준의 테크니션임에도 스페인의 중소 클럽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클럽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실제로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셀타비고의 경기에서 두 선수가 맞대결을 펼칠 때 신경전이 엄청났다.

아버지 자우마 디아스(Djalma Dias)도 축구선수로 SE 파우메이라스의 역대급 레전드 반열에 오른 한 시대를 풍미한 명수비수였다.


[1] 더구나 자우밍야 자리에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였던 라이벌 히바우두가 있었으며 또한 뒤를 이어 호나우지뉴가 크고 있던 그야말로 치열한 자리였다. [2] 킥, 플레이 메이킹, 드리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