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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2:39

임창용/선수 경력/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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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5년 2016년 2017년

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6월까지2.2. 7월2.3. 8월
2.3.1. 오재원 빈볼 사건과 진상
2.4. 9월2.5. 10월
3. 관련 문서

1. 시즌 전

워낙 분위기가 안 좋았기 때문에 KIA 측에서도 임창용 영입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몇번 나왔을 정도로, 일부 KIA 팬이나(주로 호사방등의 골수 해태팬 출신들이 많은 곳) KIA를 혐오하는 타 팀 팬들이 KIA에서 데려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입성, 안지만, 윤성환의 혐의입증이 길어지면서 전지훈련까지 참여하는 상황에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 어째서 임창용만 쫓겨나는거냐?", "나이 많은 임창용 혼자 독박 쓰는거 아냐?"라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약간 분위기가 호전되는 중이다.

결과적으로는 윤성환과 안지만의 수사결과에 의해 임창용의 입지도 결정날 공산이 크다. 죄가 입증되어 삼성으로부터 똑같은 퇴출수순을 밟게 된다면 거의 은퇴로 방향이 잡히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삼성이 어떻게든 이 둘을 안고가려 한다면 임창용 혼자 독박을 쓰는 모양새가 되므로 구제 여론이 더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임창용이나 오승환과는 달리 단순도박이 아니라 상습도박 등 더 무거운 죄를 지었다는게 밝혀질 경우에도 두 사람에 비해 죄가 가볍다는 이유로 구제 여론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는 상황.

구단들 입장에서도 올해 최대 출전가능 경기수인 72경기를 뛰게 하려면 시즌 시작전인 3월 초까지만 영입을 하면 되므로 시간 여유도 있는지라 추후 윤, 안의 수사결과나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느긋하게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상황이 호전되어 영입을 결정하는 구단이 나올 경우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명분상에서 앞서는 KIA 타이거즈일 것으로 추측되는 중.[1]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윤성환, 안지만 덕에 댓글 분위기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다.

1월 26자로 KBO 리그의 한 구단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직 그 구단이 어느 구단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엠엘비파크에서 떠도는 설로는 SK 와이번스가 유력하다고 한다. 그러나 osen 김태우 기자의 트위터에 따르면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행선지는 두산, LG, 롯데, kt, NC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신생팀이라 장시환 정도를 빼면 불펜진이 약하고 베테랑이 필요한 kt로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3월 17일 KBO 대신에 다시 한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계획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1. KIA 타이거즈 입단

3월 28일 KIA 타이거즈에서 영입을 완료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속보] KIA,임창용 입단 공식 발표

KIA측의 기사에 의하면 임창용 측에서 먼저 접촉을 해 왔고, KIA 입장으로도 여론이 많이 호전된 상태인지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전격 영입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전지훈련-시범경기 기간동안 마무리투수 후보군들이 결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관계로 보험 차원에서 영입을 결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찌됐든 고향팀이라는 '정에 호소할 수 있는 입장'이고 팬들의 의견도 호의적인 편이니 타팀에 비해 비난의견은 적을것이 확실하고, 실제 출장 가능한 시기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도 있는 편이니 그 기간동안 얼마나 긍정적인 면모를 잘 포장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임창용은 연봉 3억원을 전액 기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재능기부를 통한 속죄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며, KIA측에서도 슬슬 어려울 적 아쉽게 떠나보냈던 아픈 손가락식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사를 풀고있는 중이다.그러나 기자들과 팬들은 속죄하겠다면 은퇴하거나 몇년 쉴 것이지 뭔 속죄냐라고 까고 있다. 그리고 3억을 기부해서 감동받아 영입했다고 말한 기아 구단도 실은 영입하고 싶었으면서 뭔 감성팔이냐고 까고 있다.

아울러 임창용의 현역 복귀로 수많은 선수의 현역 유일(唯一) 타이틀을 많이 빼앗아오게 되었다. 이호준 이 갖고 있던 해태의 마지막 우승 경험 현역선수 타이틀, 이승엽이 갖고있던 1995년 데뷔한 유일한 현역 선수 타이틀[2], 강영식이 갖고있던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투수 타이틀[3] 등등. 또한 1998년 12월 타이거즈를 떠나서 무려 만으로 17년 3개월만에 타이거즈로 돌아온 선수라는 기록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KIA 타이거즈에는 불펜을 쓰려거든 영필로 쓰는 불펜 투수가 있기 때문에 팀 내 최고령 선수는 아니다.

참고로 임창용 영입으로 인해서 각종사이트에서 칩아, 땄아 등등 여러 드립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한화가 영입했으면 엄청나게 까였다는 등. 다만 임창용이 KIA에서 도박한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무리수가 있다.

입단은 하였으나 144경기 중 72경기는 징계로 인해 뛸 수가 없다. KBO 차원에서 징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복귀는 7월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2. 페넌트 레이스

2.1. 6월까지

서서히 징계 해제일자가 다가오면서 6월 28일을 기점으로 1군 선수단에 합류하여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8일~30일 LG 3연전이 우천순연 없이 진행되면서 7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고척 원정 경기부터 바로 1군에 등록되었다. 정식선수 전환 시 등번호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때 달았던 12번. 2016시즌 이 등번호를 썼던 배힘찬의 양해를 구하고 사용한다고 한다.

2.2. 7월

7월 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의 넥센과의 시리즈 1차전에 드디어 등판했다. 3⅔이닝 8실점으로 부진했던 지크 스프루일을 이어받아 ⅓이닝 1K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았다. 경기감각 점검 차원에서 올린 듯. 아울러 1998년 10월 4일 광주 OB 베어스전 이후 6,480일만에 타이거즈에서 등판한 기록을 남겼다.

7월 3일 넥센과의 3차전 9회말에 처음으로 세이브 상황에 등판했으나, 첫 실전 세이브 상황에서의 등판이었는지 볼넷과 보크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후 10회는 틀어막았으나 전년 삼성에서 2이닝 이상 던져본 적이 없던 임창용이 11회에도 또 올라왔고 결국 선두타자 볼넷을 내주고 내려갔다. 임창용이 남긴 주자를 한기주 불러들이면서 블론세이브 및 패전투수의 멍에를 안았다.

7월 7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의 kt와의 시리즈 3차전에 두 번째 세이브 상황에 등판하여 1이닝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시즌 첫 세이브를 챙겼다. 이는 타이거즈 소속으로 6,494일만의 세이브.

7월 12일 SK 와이번스와의 주중 3연전 첫 번째 경기에 8회초 2사 1점차 상황에 나와서 홈구장에서 처음으로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9회초 주자들을 연이어 내보낸 뒤 박재상에게 희생플라이를 내주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마무리 투수로써 임창용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들 즈음...

7월 13일 두 번째 경기에서는 9회초 동점 상황에 올라와서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고, 팀은 9회말 김원섭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거두면서 6,502일만의 타이거즈에서 승리투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때 신종길과 서로 끌어안으며 엄청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4] 삼성 시절에는 승이든 세이브든 감정 표현 자체를 했던 적이 없었던지라 삼성 팬들은 벙쪘다고.

7월 20일 사직 롯데전에 8회말 5:5 동점 상황 1사 2-3루에서 등판했으나 공 단 두 개만에 강민호에게 2타점 2루타를 맞고 강판당했다.

7월 24일 NC전 9회에 올라와 1이닝 2실점으로 부진한 채 경기를 마쳤다.

7월 28일 kt전 9대 3으로 앞선 9회 무사 1루 상황에 등판해 삼진과 병살로 경기를 끝냈다.

7월 29일 SK전에서 10대 8로 앞선 8회 2사에 등판하여 간신히 막아내며 세이브를 올렸다.

2.3. 8월

8월 들어 구위가 상당히 올라오며 안정적인 마무리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기아의 불안정적인 불펜진 때문에 8회에 등판하는 경우가 잦다.

8월 4일 한화전에서 1실점으로 막아내어 5:7 승리를 지키며 세이브.

8월 11일 넥센전에 등판해 9회는 잘 막았지만 10회 서건창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패전을 기록했다.

8월 12일 8:2로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9회 한기주가 만루를 만들며 강판당하자 올라와 공 하나로 이택근을 병살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한다.

8월 13일 한화전에서 4:6으로 앞선 8회 2사에 등판해 1⅓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2K를 잡으면서 세이브를 챙겼다.

8월 14일 한화전에서 2대3으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또 등판하며 4연투를 했지만 1피안타에 무실점으로 9회를 잘 틀어막았다.다만 팀이 점수를 뽑지 못하면서 경기는 패배했다.

8월 18일 롯데전에서 8회초 3-3 동점상황에 등판하여 1⅔이닝 40구를 던지는 투혼을 보여줬지만 팀은 이후 투수들이 볼질을 거듭한 끝에 끝내기 밀어내기로 패배했다.

8월 19일 롯데전에서 무난하게 1이닝을 막을것으로 예상되던 김광수가 홈런을 맞으며 1아웃을 남겨둔 채로 강판, 등판하게 되었는데 올라오자마자 1타점 적시타를 맞았지만 이후 더이상의 실점은 허락하지 않으며 세이브를 올렸다.

8월 21일 LG전에서 앞서 무너진 김광수와 잠깐 교체되었다가 주자 한명씩을 내보내고 강판된 한승혁과 박준표에 이어 등판, 1루쪽에 뜬공을 야수진이 충돌하며 잡기는 했으나 송구하지 못하면서 그대로 1실점을 하게 되었다. 이후 1⅔이닝을 막아냈지만 타선이 점수를 뽑지 못했고 이 점수는 결승점이 되었다.

8월 25일 삼성전에서 9회초 스코어 4:6으로 2점차 앞서는 상황에서 마무리로 등판해 깔끔하게 세 타자를 틀어막고 18년만에 삼성을 상대로 세이브를 올렸다.

2.3.1. 오재원 빈볼 사건과 진상


16년 8월 27일 두산전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야구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임창용 선수 인생 최악의 사건중 하나이며, 동업자 정신이 결여된 절대 일어나선 안될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팀의 수장이었던 김기태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상대팀에 대한 예의마저 망각한 행동이었다.

네이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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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3-5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서 세이브를 거뒀던 경기. 다만, 2루 주자 오재원의 머리 방향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을 던져 논란이 됐다. 견제구를 바로 던진 것도 아니고, 유격수는 2루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대놓고 겨냥하듯 머리 방향으로 공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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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보면 더 명확히 보이는데, 유격수[5]는 언제 견제 사인이 났냐는 듯이 그저 가만히 있고, 2루 뒤쪽으로 백업 와야 하는 중견수 또한 투수가 뒤로 돌았음에도 가만히 있다가 공을 던지니 그 때서야 뛴다. 또한 견제구를 스텝까지 밟으며 던지는 프로 투수는 없다. 세컨 베이스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혹여나 보크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 공을 던져야겠다 결정했었다면[6] 최소한 백업이라도 하게 중견수가 있는 쪽으로 던지기라도 하는 게 정상적이지만 완전히 반대방향이다. 고의로 오재원에게 공을 던졌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이전에 오재원의 커트나 도루로 인해 쌓인 감정 때문에 홧김에 던졌을 걸로 추정. 이후 임창용은 먼 훗날 인터뷰에서 진짜 이유를 밝혔다. 마지막 문단 참고.

이전 국해성의 타석에 대기타석을 벗어나 스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던가 사인을 훔쳤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오재원 외에도 저 각도에서 잡힌 타자들은 많았으며, 대기타석을 벗어났던 다른 타자들이 거슬렸다면 심판에게 이야기해서 대기타자의 위치를 조정하면 될 사안이다. 심지어 사인 스틸 논란은 말도 안 되는 것이, 오재원이 2루 도루를 감행한 것이 1-1 상황, 그리고 견제구 역시 1-1 상황에서 들어왔다. 즉 오재원은 2루 오자마자 견제구를 피해야 했다는 것. 임창용은 타자에게 공 한 번 던지지 않았는데 오재원이 사인스틸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오재원의 평소 이미지를 이용한 물타기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2루에서 오재원의 액션을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계속 보고 있더라도 어떠한 이상한 행동조차 없었다. 그냥 임창용과 포수의 배터리간 의심이 이 지경까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창용은 유격수 최병연과 싸인이 맞지 않았다고 말했고 당시 행동에 고의성이 없었음을 밝혔으며 오해가 있다면 만나서 풀고 사과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걸 믿는 팬은 거의 없다. 징계의 유무도 중요한데, 작년 마산구장 공 투척 사건과는 달리 행동의 고의성을 완전히 입증할 방법이 없는 데다가 전반적인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징계가 있을지 없을지는 의문이다. 최훈도 8월 28일 프로아구 카툰에서 아말라이트 AR-15 헤드샷으로 묘사하여 이를 풍자했다.

그리고 다음날 8월 28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공교롭게도 오재원 임창용이 맞붙었다. 8회까지 0:0 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던 상황에서 주자 1,3루 오재원이 임창용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쳐 호쾌한 적시타를 날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임창용 상대로 터진 오재원의 적시타 또한 오재원의 적시타 이후 두산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2루주자로 나선 박건우 임창용을 향해 사인을 훔치지 않는다고 주장 하는듯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며 은근히 신경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파일:박건우뒷짐.png

결국 KBO는 선수 본인은 고의가 아니라고 항변할지라도 상당히 비신사적인 행위라며 위협 견제구에 대해 임창용에 대한 상벌위가 개최되었고 3경기 출장정지와 사회봉사 120시간의 징계를 내리게 되었다. 이 징계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이미 현장에서 심판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심판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

그런데...

2018 시즌 이후 KIA에서 방출되었고 김기태가 감독직에서 사퇴한 후, 임창용이 인터뷰를 통해 오재원에게 사과하면서 # # 김기태 감독이 지시한 내용(팀의 룰)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무관심 도루를 하면 견제를 하는 척 해서 어디든 맞춰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 게다가 이 룰은 사건 이틀 전[7]에 만들어진 거라 팀 룰을 몰랐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었고, 어기면 감독에 대한 항명이 되기 때문에 최고참으로서 총대를 매고 빈볼을 던져야만 했다고 밝혔다(야구 안에도 사회생활이 있다.). 추가로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그 다음해 WBC에서 오재원과 다시 만나 그 때 일에 대해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김기태는 패배가 확실하다 느끼면 경기말 상대팀 마무리 투수가 등판하면 투수를 대타로 내보내 프로 데뷔를 시키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고, 이걸 생각하면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말에 아주 근거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여담으로 이후 오재원이 은퇴 후 수많은 구설수를 일으키다 끝내 마약 투약 사실과 팀 후배들에게 대리 처방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며 처참히 몰락하고 아구계에서 사실상 금지어화되자 임창용의 이 행동이 반농담조로 재평가를 받았다(...).

2.4. 9월

9월 10일 KT전에서 박경수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창용불쇼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9월 11일 KT전에서 4:2로 앞선 9회말 1사 1, 2루에서 견제 실책으로 1사 2, 3루를 만들었으나 남태혁을 삼진, 오정복을 고의사구, 이해창을 삼진으로 잡아 세이브를 거둔다.

9월 13일 넥센전에 9회 2:0인 상황에서 투런을 맞으며 블론. 그러나 서동욱의 염갈량 가슴에 대못을 박는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챙겼다.

이렇게 다시 불쇼를 선보이며 실력이 내려간 데에는 8회부터 올라오는 8무리 기용이 지속되다 보니 혹사의 여파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8월에 있었던 오재원 사건 이후로 자신감을 잃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지속적인 8회 등판에 연투를 이어간다면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기는 힘들 것이다.

9월 18일 대전 한화전에서 9회말 3:1 리드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그러나 첫 타자 오선진에게 중견수 앞 안타를 맞아 위기를 맞았지만, 후속 타자 정근우를 3루 병살타로 처리하였다. 다음 타자 하주석을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세이브를 챙겼다.

그 다음날 이어진 한화전에서도 9회 1사 상황에 연속 등판해 송광민에게 1, 2간 안타를 허용했으나 김태균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은 후 그 다음 타자 로사리오에게 개인 올 시즌 최고 구속인 152km(!!)의 광속 뱀직구를 꽂아 탈삼진을 뽑아내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듯 2경기 연속 세이브를 따냈다. 9월 초까지 흔들렸던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 결국 시즌 말미에는 창용불패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파일:2016 임창용 152km.gif
팔꿈치 수술을 2번이나 한 41세 노장이 사이드암 피칭으로 152km를 뿌리고 있다.

2.5. 10월

10월 8일 KIA가 마지막 경기를 쿨하게 패하며 시즌이 끝났다. 시즌 중반이 지난 후에 등판하기 시작했는데도 15세이브를 올렸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풀타임 주전이었다면 30세이브가 가능했다고 유추 가능... 창용火=패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만 4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리그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10월 10일 와일드카드 1차전에 9회말 무사 1루 세이브상황에서 등판, 공 5개로 1-4-3 병살타 - 3루 땅볼을 유도해 내며 2016 포스트시즌의 첫 세이브를 올렸다. 임창용은 포스트 시즌 최고령 세이브기록을 만 40세 4개월로 경신하며[8] 건재함을 알렸다. 히메네스를 148km/h 직구로 윽박지르는 뱀직구가 압권. 아울러 타이거즈 소속으로 지난 1997년 10월 23일 LG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 이후로 6,927일만에 세이브를 올렸다.[9]

10월 11일 와일드카드 2차전에는 8회 1사 상황에서 등판하여 노수광 한승택의 호수비로 3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냈으나 9회 첫 타자 정상호에게 안타를 내준 뒤 교체된 대주자 황목치승을 지크가 김용의의 희생플라이로 불러들이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시즌을 끝마친 10월 17일에 부친상을 당했다. 향년 77세.

3. 관련 문서


[1] 임창용 본인이 고향팀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언급은 몇 번 한 적이 있어서 KIA팬들에게도 상당한 호감을 쌓았기에 타 팀에 비해 팬 여론이 상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클 테고, 이래저래 을 중요시 하는 대한민국 정서상 고향팀에서 받아주고 속죄시킨다는 명분은 나름 설득력도 갖고있는 편이다. 여기에 스포츠 선수가 안 좋은 여론을 불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역시 성적을 내는 것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불펜진이 약한 KIA에선 활약 가능성도 많다. 즉 이래저래 KIA가 가장 욕을 덜 먹으면서도 활약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것. [2] 권용관의 경우 1995 시즌에 1군 기록이 없다. [3] 이호준의 투수 경력 때문에 애매해지는 감도 있는 기록이다. [4] 신종길 또한 임창용 못지 않게 고향팀에 대한 애착이 엄청난 걸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5] 임창용 측에서 유격수와 사인이 맞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유격수라고 했지만, 당시 타석엔 우타인 김재호가 들어와 있었으므로 사실은 2루수가 베이스로 들어오는 게 더 일반적이다. 참고 물론 움짤을 보면 알겠지만 2루수도 본인의 수비위치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즉, 견제가 아니라는것. [6] 참고로 1루, 3루 견제와는 달리 2루 견제의 경우엔 몸을 돌린 뒤 공 던지는 시늉만 해도 보크가 아니다. [7] 8월 25일. 실제로 이 룰이 만들어지기 전 날인 8월 24일 NC와의 경기에서 6대3으로 앞서던 9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조영훈이 2루를 훔쳤다. 당시 기록지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실제 기록은 무관심 도루가 아닌 그냥 도루로 기록됐다. 하지만, 저 당시 1루수였던 브렛 필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었고(=점수차가 3점이니 2루 가든 말든 신경 안쓰겠다는 의미.) 이를 무관심 도루라고 보고 김 전 감독이 룰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8] 종전 기록도 2014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이 세웠다! [9] 임창용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만 3세이브를 올렸다. 공교롭게도 6,927일만에 만난 상대가 다시 LG. LG팬들이 전설처럼 모시는 라뱅이 신인이었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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