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1b><colcolor=#fff> 이예다 Yeda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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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1년 ([age(1991-01-01)]세) |
인천광역시 | |
국적 | 불명[1] |
가족 | 아버지, 어머니, 아들[2] |
학력 | 유한대학 (산업일본어과 / 전문학사) |
거주지 | 프랑스 일드프랑스 발드메른주 이브리쉬르센 |
병역 | 미필 |
종교 | 무종교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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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2. 양심적 병역 거부와 프랑스 망명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유로 프랑스에 난민 지위 신청을 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사법제재를 받는 것을 난민 신청의 주된 이유로 꼽았고 프랑스에서 2013년 6월 난민 신청을 받아들였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 출신 중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하나만으로 체류 허가를 받은 것을 언론에 공개한 최초의 난민이다.[3]이전에도 병역거부를 이유로 망명에 성공한 사례는 있었으나 유독 그가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사회인식에서 동성애 같은 난민으로 납득받을 만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정치적 망명을 하여 아예 한국을 영영 떠난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예다 이전에도 병역거부(+동성애)로 인한 난민이 있었으나 성소수자가 아니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만한 사유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실제로 호주, 캐나다 난민 허가 사유에서도 "군대 자체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충분하지만 성소수자는 더더욱 위험한 신변의 위협에 처해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군대에서 동성애자는 탄압받는다는 인식도 있었기 때문에 호모포비아라면 몰라도 난민 신청 자체로는 그렇게 충격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 비누 좀 주워줘" 등이 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보통 군대 아니면 교도소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가서 출소한 후 범죄자로 낙인찍혀 불이익과 손가락질을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군대를 갔다오고 만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그의 행동은 병역의무 앞에서 선택에 관한 상식의 틀을 완전히 부순 것이었다. 군대 그 자체만을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그는 강의석처럼 비범한 활동가 경력 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대 졸업 후 PC방 알바를 한 평범한 삶을 살아 온 사람이다.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시기가 탈조선 신드롬과 겹쳤고 지상파 언론까지 출연하였으며 일본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면서까지 언론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단단히 일조했다. 이런 식으로 망명한 사람의 대부분이 비난받을게 뻔하기도 하고 신변을 지키려고도 해서 언론 접촉 자체를 꺼리는 걸 고려하면 대단히 이례적이다.
보통 타국의 징병제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국방세를 납부하는 제도도 있다.[4] 병역거부자를 대체복무시켜 주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로서는 드물게 그런 배려가 아예 없었던 게 문제였다. 대체복무요원이 신설된 것은 그의 망명(2012년)으로부터 거의 10년 후인 2021년의 일이었으며 대체복무요원도 교도소에서 합숙하고[5] 기간도 3년이므로 징역보다 더 길다.
2.1. 반응과 여파
병역에 민감한 한국이지만 의외로 한국 언론들은 그의 망명에 무관심했으며 설령 기사를 낸다고 해도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난민 자격을 획득한 후 2014년 11월 일본 도쿄 외국인 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한국 언론사는 단 하나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며 오히려 해외 언론들이 그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취재했다고 한다. 이는 유승준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그렇게 관심도가 높지 않은 측면이 컸다. 언론에 공개된 건 다 합쳐도 10건이 되지 않으며 알려진 계기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이 커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후술할 비난 여론이 강한 커뮤니티와 차이가 보수 성향인 것만 제외하면 이예다를 알게 된 경로가 20~30대, 남초(사실상 현역) 인구가 많은 커뮤니티 이외에는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한국 언론들의 반응이 무관심한 것은 일단 한국에서 이 사례로 기사를 쓰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적법하게 망명 신청을 했고 이를 프랑스가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비판하면 해외로 망명한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국제법에 어긋나는 국내 병역법부터 고치라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반대로 옹호하는 기사를 써도 병역의무를 우습게 보냐는 비난을 들어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병역은 여전히 언론이 다루기 힘든 성역이다.
한국은 그가 병역거부를 한 시점 기준으로도 병역 문제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정서적 반발[6]이 심하다. 거부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선 당시 기준으로는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남초, 군필자, 30대 이상과 보수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일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다. 이들은 특히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세대라서 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망명을 돕기 위해 자신의 SNS와 이메일 주소를 공개했으나 한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살해협박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통한 망명을 상담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도 하였다.
물론 '그의 행동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못하겠지만 한국군이 징집병들을 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유보적인 의견도 있는데 군필자들이야말로 국군이 썩어빠진걸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군복무가 자신의 양심에 반했으나 처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군복무를 한 사람으로서 그의 행동을 응원한다'는 옹호적인 여론도 존재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문제보다 "명예와 보상문제"를 걸고 넘어갔다면 국민의 공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이 기사에서는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가장 흔한 부정적인 반응은 "영원히 입국 금지시켜라."이며 "국외로 추방시켜라.", "국적 박탈해라." 등의 반응도 나왔다. 병역거부자의 시민권 박탈 문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양심적 병역거부/논란 문서와 강제퇴거 문서 참고.
그는 프랑스의 난민법 때문에 한국으로 귀국할 수 없다. 한국 정부에 입국 금지 또는 병역기피로 인한 지명수배[7]가 내려졌을 수는 있으나 이예다 스스로도 설령 한국에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다만 그가 트위터에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이 아닌 제3국에서 가족, 친지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군대의 사건사고가 하루이틀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진 2013년 6월 이후부터 김지훈 일병 자살 사건, 피해자인 윤일병의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가해자인 임병장의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더불어 심지어 시간이 지난 2017년에도 철원 일병 피격 사망사건,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이라는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들이 여럿 일어났으며 2016년 대한민국 대체복무 폐지 논란과 2020년 군인 강제노동 논란이라는 사람을 일개 소모품 쯤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2021년에는 대한민국 군대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의 행동이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2.2. 계기
병역을 거부하게 된 계기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 붓다>라고 전했다. 이 만화에서 생명에 대해 깨닫고 '어째서 내가 타인의 목숨을 죽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입대하기 전에 대한민국 국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저서나 국방부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군대를 안 가겠다는 마음에 차라리 교도소행을 생각했으나 교도소에 가봤자 그저 수감자의 수만 늘어나고 사회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며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라 판단, 병역 거부 및 해외 난민신청을 결정했다. 실제로 정치적 신념의 병역거부자가 매년 한 자리 수 이내로 수감되고 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그도 차라리 나라를 떠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결과적으로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은 후 언론에 보도되면서 헬조선 신드롬까지 겹쳐져 그동안의 종교+정치적 목적의 병역거부자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SBS, 한겨레 등의 언론에 짧게 보도됐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덕분에 언론에 공개된 규모를 감안하면 그의 계산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좋은 것은 알려야 한다고 퍼트렸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분노감을 표출하고 싶어 퍼트리게 되면서 나쁜 것은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주목을 받은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이 초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관심을 끌어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정치적 파장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익명이긴 하지만 그의 소식을 듣고 난민허가에 성공한 다른 사람이 나도 이예다의 사례를 보고 도전해서 성공했다고 언론에 밝힐 정도면 오히려 그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 모두 완벽한 성공이라고 봐도 된다. 이런 그의 결정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8]와 누나는 "그게 네 결정이라면"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감옥을 가면 출소 후 볼 수 있겠지만 해외로 떠나면 언제 볼 수 있겠냐며 극렬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에게 단돈 70만 원만 받아들고 프랑스에 관광 명목으로 들어가서 하루 지난 다음날 난민구호소에 접수하였으며 11개월(신청 절차 4개월, 판정 7개월)의 기다림 끝에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본인의 언급으로는 난민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고 한다. 굉장히 불안했다고 한다. 자긴 '동성애자도 아니고 종교적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 전례가 없는 상황인데 과연 받아줄까?'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꽤 많은 나라들이 병역거부자들을 난민으로 받아줬다.
참고로 그가 프랑스를 택한 이유는 프랑스가 2001년에 징병제를 폐지한 반면 독일은 2011년에서야 징병제를 폐지했기 때문인데 징병제를 오랫동안 실시하던 독일이 자신을 본국(대한민국)으로 되돌려보낼까봐 그걸 가능성이 적은, 그러니까 모병제를 오래 하고 있어서 자신을 본국으로 되돌려보낼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로 오랫동안 추가 사례가 나오고 있지 않았지만 3년만에 난민인정자가 또 나왔다. # 난민 신청 계기는 이예다 본인의 언론 공개 이후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9]
그는 한국 국군의 파병이 권력자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사건이라고 보았으며 당시 병들의 휴대전화 소지 불가, 굉장히 제한적인 외박 · 외출 · 휴가, 사상이나 정치적인 행보 감시 등의 일과 후 자유 부재를 이야기했는데 이런 그의 인터뷰에 당시 난민 심사를 하던 사람이 이를 듣고 '(내가) South와 North를 잘못 봤나?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라고 했을 정도였다. 인권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던 고소득·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죄수보다 인권침해가 더한 수준의 사병 생활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징병제가 사라지면 지금처럼 사람을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왼쪽부터 아마미야 카린(작가), 통역자, 이예다, 안악희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다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1991년에 태어났습니다. 현재 22세입니다. 2012년 7월, 20살이던 해에 징병에 가고 싶지 않아서 망명을 결심하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중략) 2013년 6월, 프랑스 정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징병 거부로 망명한 한국인은 있었지만, 징병제 자체가 망명의 이유로 인정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소수자나 종교를 이유로 징병을 갈 수 없다고 하여, 망명이 허용되었습니다. (중략)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체복무제도 없습니다.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1년 반 동안 수감됩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취직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징병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략)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에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프랑스에 망명한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10]
다른 망명자를 돕기 위해 연락도 받아준다.
망명 25시 그는 프랑스의 난민 관련 NGO인 'France Terre d'Asile'을 통해 난민 신청을 하였으며 노숙도 해보고 난민기구에서 자원봉사로 나오는 밥도 먹고 살 정도로 힘든 부분을 겪었던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하는 터라 일본으로 가려고 했지만 난민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서 접었고 복지가 잘 되어있는
북유럽 국가로 가자니 추위가 싫어서 프랑스행을 택했다고 한다.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체복무제도 없습니다.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1년 반 동안 수감됩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취직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징병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략)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에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프랑스에 망명한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10]
만약 당신이 지금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하겠다면 난 독일을 추천하고 싶다.[11] 나는 독일이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폐지한 게 (난민 신청을 할 당시를 기준으로) 겨우 1년 전(2011년 7월)이라서 독일을 피했는데, 작년에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과 독일의 활동가·국회의원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의 비슷한 점을 들며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병역거부권에 호의적이었다. 심지어는 나에게 "독일로 난민 신청을 하러 올 생각을 안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가 돕지 못해서 부끄럽다"라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
- 출처
- 출처
3. 논란 및 사건사고
그는 국군이 이라크에서 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했는데 자이툰 부대는 의료 공병부대로서 나쁘게 말하자면 상수도 공사 정도 하다 돌아온 게 전부다. 미국이 한국군에게 제발 전투지역 가달라고 요청했으나 한국에서 거부하면서 전투 자체가 없었고 치안이 극히 안정된 쿠르드 지역으로 전후복구와 평화의 명목으로 밀고 들어갔다. 때문에 이라크 파병 한국군은 끝끝내 총 한 방 안 쏴 보고 돌아왔다[12]. 애초에 세계최강인 미군 탱크와 장갑차도 터져나간 곳이 이라크지만 한국군은 쿠르드 지역에 60트럭만 달랑 타고 가서 연합군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학살을 저지른 적도 없다.그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을 사고라고 폄하하였다. # 게다가 아예 군대가 필요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징병제를 "총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직업에 종사하는 의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범죄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듯 하다.
양쪽 다 군대를 안갈 생각하면 안 되냐는 말을 했는데 매우 이상주의적인 발언이다. 군대는 단순히 타국과의 전쟁만을 대비하는 조직이 아니다. 재난상황에서 경찰이나 소방을 비롯한 행정기관만으로 위기를 관리하기 어려울 때도 군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군은 재난 상황에서 인명구조와 복구작업을 활발히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 주방위군 역시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재난현장에 출동한 선례가 있다. 또한 우리가 평화주의를 천명했다고 해서 상대 역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인류는 고대부터 전쟁과 함께해왔고, 아무리 평화를 원해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사례도 셀 수 없이도 많다. 한국 역시 전쟁 이전 북한과의 통합선거를 제시했지만 소련과 북한이 거부하였으며 평화를 지킬 힘이 부족하니 6.25 전쟁 때 북한, 중국,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당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힘 없는 나라들은 주변국에 침략을 당하였고 평화를 외치더라도 밟혀왔다.[13]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 산화한 병사들을 영웅시하고 군을 신성시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불만을 가졌다고 밝혔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과거부터 군 복무를 신성한 것이라고 여겼다. 중세 국가들이 노예들에게 병역의무를 지게 하지 않은 것이 그 근거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봉사와 희생을 통해 국민을 보호하는 군인, 경찰관, 소방관들은 사회 통념상 명예로운 직업으로 꼽힌다.[14]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며 그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국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은 옹호와 비판이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신념과 별개로 그가 군대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EBS 강사 군대 비하 사건에서도 나타났던 군대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이 시각에도 국방의 의무를 강제로 수행하고 있는 군인들이 국가를 수호하고 있기에 군대가 없어도 된다는 이상주의적인 말이 가능한 것이다.
4. 정말로 병역거부로 난민 신청이 가능한가?
이예다의 난민 인정을 보고 많은 군 입대 예정자들이 난민 제도에 솔깃해 그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도 해봐야지'하는 생각으로 많이 따라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예다가 망명에 성공한 것은 어느덧 10년 이상 전인 2013년의 일이다. 그 직후 유럽은 파리 테러 등 일련의 테러를 겪으며 심사 기준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인해 자국민도 징병 대상에 오르는 상황이라 병역거부 사유의 난민이 지지를 받기는 더욱 힘든 상황이다.[15]
설상가상으로 주요 국가에서 反이민 성향의 정부가 출범하고 있으며 영국 난민 르완다 추방 작전 등 오히려 유럽 난민 사태로 인한 돌파구를 물색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2020년부터는 대체복무요원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이제 양심적 병역 거부 사유로 난민 심사대에서 당위성을 얻기는 매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이예다의 조언대로 스위스에서 난민 신청하다가 추방된 난민의 사례도 있고 프랑스 한인 변호사 역시 이런식으로 난민 신청한 청년들은 연락두절되거나[16] 추방당했다고 한다. #
유럽 난민사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이고 저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난민에게 폭력을 쓰고 강도질을 일삼는 극우 단체 회원들은 프랑스에서도 범죄집단으로 간주할 정도로 인간말종들이고 실제로 프랑스에서 극우 단체들이 난민에게 혐오범죄를 저질러 체포되고 처벌받는 사례가 많긴 하지만 저런 일을 겪었을 때 난민 신분으로 현지 법의 도움과 보호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에서도, '저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을' 뿐 난민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건 사실이니 말이다.
2001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로 난민신청한 한국인들의 숫자와 그 결과를 보면 난민으로 인정받는 게 점점 바늘구멍 들어가기가 되어가는 걸 알 수 있으며 그래도 최근 독일에서 한국인 5명이 난민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다만 난민 신청 사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처벌을 피해 난민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즉 함부로 따라하다간 인생을 망칠 확률이 높다. #
가족들 등골까지 제대로 빼먹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차라리 정 떠나고 싶으면 적법한 이민 절차를 밟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확률적으로도 더 안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면 난민 문서를 참고하고 국내외 여러 NGO들의 도움을 받아서 최대한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길 권장한다.
사실 이예다 역시 난민 인정률이 높고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17], 호주라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굳이 프랑스를 선택한 상황에 대한 몇가지 의문점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예다가 당시 프랑스 상원의 관료 브누아 케네데의 도움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
5. 기타
이예다가 방울토마토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사진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촬영한 개인 사진이 국내 커뮤니티에 확산되어 그를 동경하는 많은 댓글들이 올라왔다. #사실 난민이라고 해서 꼭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본래 태어난 국가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도피한 사람이 새로 정착한 나라에서 경제 활동을 하지 말란 법도 없기에 잘 적응하여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난민 그룹이 다른 외국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실업률에 도달하려면 20년차(!)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져 이민의 꿈을 펼치기에 난민이 적합한 경로인지 의문이 있다. #
주기적으로 이예다의 현황과 관련하여 사실 확인이 미흡한 과장된 정보 또한 확산되고 있다. 이를 통해 도피성 이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부추겨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상은, 이예다가 아파트를 매입했다거나 파리에서 거주한다거나 좋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카더라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의 여유가 부럽다며 올라온 사진 속 와인 역시 병당 13유로(19,226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서민들도 편의점에서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물건. 루브르 박물관 역시 명성이 대단한 곳이라 그렇지, 입장료가 22유로(32,570원)에 불과한데 이런 정도를 오늘날의 한국인의 소득 수준에서 동경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 또한 당장 이예다 본인은 실직자 상태로 홀로 한국인 아동 1명을 돌보는 처지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프랑스에서는 매우 낮은 소득 수준과 3인 이상의 자녀가 있어야만 복지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오히려 한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한부모가족 혜택이 더 문턱이 낮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예다는 대한민국의 복지는 물론 부모님의 도움에 기대기도 힘들어 보인다. 현재 이예다는 대한민국에 입국하지 못 하고 제3국가에서 친지들을 만나고 있기에 그의 부모는 아직 손주를 안아 보지조차 못 했을 수 있다. #
[1]
과거 당사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난민법으로 인해 행사할 수 없는 상태며 대신 프랑스 정부로부터 발급 받은 난민 전용 여행증명서로 국외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간이 경과한 현재로서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국적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있다. 원칙상 후천적으로 외국 국적(
시민권)을 취득한 자는 한국 국적의 말소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거 복수의 외신 인터뷰에서 강력한 귀화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아직 당사자로부터 국적과 관련된 변동사항 발표는 없는 상태다.
[2]
과거
사실혼 관계의 한국인 유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있으며 현재는 혼자 양육하고 있다.
[3]
망명자 본인이 자신의 망명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본국의 정부, 언론이 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4]
군복무 대신 세금을 내는 것. 국가가 시키는 것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병역을 해결하는 제도다. 국방세는 원칙적으로 사병의 급여로 활용하라고 징수하는 세금이다. 대신 병역의 의무를 깨버린다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싸다. 해당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를 기준으로 그 나라의 평균연봉에 해당되거나 평균연봉*복무기간에 해당(의무복무기간이 2년일 경우 평균 연봉의 2배, 3년일 경우 평균 연봉의 3배)되는 돈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기준으로 몇천만원 수준의 큰 돈이다.
[5]
물론 일하는 곳이 교도소일 뿐 죄인 신분이 아니다.
교도관이 재소자와 똑같이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범죄자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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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양심적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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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대상자가 해외에 지속 체류할 시 만 25세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병무청의 국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외여행허가나 국적상실신고 없이 병역판정검사나 입영에 불참할 시 병역법 위반으로 지명수배가 내려져 공항에서 체포가 이루어진다. 설령 외국 여권이어도 지문으로 신원 확인이 되기에 외국에 조기유학을 하고 정착한 많은 한인들이 착오로 범법자가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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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계급은
대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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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난민 신청자의 인정여부는 국제법에 따라 반드시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의 소신에 따라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면 본국 정부가 이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병역거부 난민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례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현재로써 수많은 신청자 중 본인의 발표로 언론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사례는 독일 2건, 프랑스 3건, 캐나다 4건, 호주 2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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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예다는 프랑스에서
10년 단위로 체류 기한을 늘릴 수 있는
한국인이다. 이때도 귀국은 가능하지만 입국 즉시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갈 운명이다.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귀국은 불가능하다. 아예 미국인이 된
유승준과는 얘기가 다르다. 다만 스티브 유와는 다르게 한국 국적이 유효한데도 귀국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본인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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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은 더블린 조약으로 인해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에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 실제 난민 인정률은 프랑스보다 독일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다만 중동, 아프라카 등
개발도상국 쪽에서 난민들이 백만 단위로 몰려오면서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안 받으려고 온갖 용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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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없진 않았다. 다만 치열하게 치고받고 정도가 아니라 저항 세력이 멀찍이서 RPG나 박격포 쏘고 별 피해 입지 않은 자이툰 부대가 대응 사격으로 기관총 좀 쏜 게 전부라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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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때 일본제국이 왜 내정을 꾸려나가면서도 국방을 최우선적으로 근대화 시켰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제 2차 세계 대전 시기에도 네덜란드가 중립국을 표방하였으나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은 사례를 생각한다면 결코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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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국은 징병제 국가라 '남자들이면 다녀와야 하는거 아님?'이라는 인식과 군부대의 사건사고로 '군바리'라는 멸칭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은 군대역할인 자위대가 모병제이지만 이쪽은 육체노동을 하대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상 피지컬만 가진 사람들이 가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북미권, 유럽권은 직업군인에 대한 존경이 매우 강한 나라들이 많다. 단, 장교가 아닌 일반 사병에 대한 인식은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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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다가 난민 신청을 할 때만 해도 유럽에서는 "일부 최빈국이나, 국지전 정도의 작은 규모가 아닌 이상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당장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끼리는 전쟁이 없다는 말도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을 전면적으로 깨부수고,
제3차 세계 대전에 대한 걱정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만든 사건이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이 후로 유럽 국가들이 갑자기
모병제를 포기하고
징병제의 재도입을 고려할 정도로 변했으니.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징병제 자체를 이유로 망명하는 사람을 받아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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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진해서 난민 신청을 포기한 케이스다.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한국의 군대나 감옥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귀국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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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링크의 글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사람 역시
캐나다에서는 그래도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유럽보다는 현실적으로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캐나다는 러시아와 가깝기 때문에 군사적인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구도 적고 미국에 의존하는 것도 많다 보니 유럽에 비해서는 징병제에 대한 의견이 아직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