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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0:13:24

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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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의 화가2. 명나라의 장수
2.1. 행적2.2. 대중매체

1. 고려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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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寧. 생몰년도 미상.

고려의 화가.

고려 예종에서 의종 시기까지 화국에서 화원으로 근무했으며, 명화가로 이름이 높았다.

인종 시기인 1124년 고려 사신을 따라 북송으로 파견되어, 당시 북송의 황제 휘종에게 크게 인정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예성강도, 천수사남문도 등이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의 아들 이광필 역시 명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2. 명나라의 장수

李寧 (Li Ning, 리닝)
? ~ 1598년( 만력 26) 4월 20일

명나라의 장수.

2.1. 행적

본래 여러 강과 바다를 횡행하며 노략질을 일삼던 도적 출신으로, 이후 군문(軍門)에 투신하여 이성량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성량은 도적 출신이던 그를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평소 윗사람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또한 창을 잘 다루는 재주를 눈여겨 보고[1] 그를 발탁하여 늘 선봉으로 삼아 전장에 나아가곤 했다.

1586년 2월에 일극회정이 파토아, 초화, 화대 등과 함께 요양을 공격하려 하자 참장으로 있던 이령은 이성량 휘하에서 참전해 싸웠으며, 이후로도 토만과 계속 싸우면서 1589년 윤 3월에는 이성량의 지시로 진이보로 나아가 판승을 공격하고 적 280명을 죽였지만 철수 도중에 적을 만나 수 천의 병력을 잃었다.

1592년 2월에 보바이, 유동양 등이 영하를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키자 명나라의 군사가 파견되었지만 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이여송이 제독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령은 이여송의 부장으로 참전해 보바이가 궁지에 몰리자 양자 극력개를 파견해 파견의 도적들과 결탁하려 하자 이여송의 지시로 극력개를 참수했다.

같은 해에 이여송을 따라 조선으로 출병해 평양 부근까지 진출해 평양을 포위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가 패해 대동강을 건너 용산으로 달아나자 이령은 사대수와 함께 3천명을 이끌고 샛길에 매복해 360명을 죽였다. 평양에서의 승리로 명군이 일본군을 얕보고 추격하다가 재집결한 일본군에게 벽제관에서 포위되고 이여송까지 죽을 위기에 빠졌는데, 이유성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여송을 구하고 이령은 이여백과 함께 달려와 일본군을 협공을 했다.

일본군을 물러나게 했지만 명군의 패배로 끝났으며, 1593년 2월에는 일본군 20만이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이령은 조승훈과 함께 개성에 주둔했다.

1598년 4월 8일에 이광악과 함께 무주성을 침입한 왜군을 격파했지만 4월 20일에 함양에서 정기룡과 함께 함양 사근역에 침입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조선, 명의 연합군은 사근역에 침입한 왜군을 물리쳤다.

2.2. 대중매체

임진록 2+ 조선의 반격에서 명의 영웅 중 하나로 등장하며, 자국 영웅들 중에서 송응창, 이여송 등과 함께 핵심 장수로 등장하고, 화포를 주 무기로 사용한다. 유일한 메카닉 장수이지만 생체 판정을 받는다. 오사카 결전 전 김시민이 자폭으로 곡창지대를 건설하는 적군 명군을 초토화시키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도 화포수의 전직 장수로 등장하며, 2차 장수로 전직하면 불랑기포를 끌고 나온다.



[1] 다만, 게으른 것이 흠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