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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바의 흰토끼

이나바의 백토에서 넘어옴
파일:이나바의 흰토끼.png

[ruby(因幡, ruby=いなば)]の[ruby(白兎, ruby=しろうさぎ)]

1. 개요2. 기원에 대한 논쟁3. 전설
3.1. 이나바의 흰토끼 이야기3.2. 고금소총 교토탈화(교활한 토끼가 화에서 벗어나다, 狡兎脫禍)3.3. 여수시 오동도 토끼 설화(박갑수 본, 1980년 채록)3.4. 여수시 오동도 토끼 설화(문정인 본, 채록시기 불명)3.5. 오세아니아 북서부에 있는 뉴기니아 원숭이 설화3.6. 시베리아 동부에 거주하던 오로치족의 여우 설화3.7. 베트남의 토끼 설화3.8. 중국의 소수민족 요족의 설화3.9. 기타
4. 대중문화 속의 이나바 흰토끼5. 같이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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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기≫에 기록된, 일본 신화의 한 에피소드. 또는 이즈모 지방에 전하는 오오쿠니누시의 국토건설 설화에 나오는 토끼를 가리킨다. 이나바의 흰토끼 설화는 한국 남부의 오동도 설화와 중국의 토끼 설화와 관련성이 엿보이는데,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지방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 일본서기≫에는 없다.

2. 기원에 대한 논쟁

일본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설화가 베트남 등 남방 해양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이다. 아래에서 서술되는 오동도 토끼 설화를 두고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으로 옮겨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총독부는 1915부터 1921년까지 사용한 보통학교 조선어 및 한문독본(普通學校朝鮮語及漢文讀本) 제6권 6~7과에 '흰 토끼(白兎)'라는 제목으로 고사기의 토끼 설화를 수록했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용한 초등국어독본(1941-1944)에서도 이나바 흰토끼 설화를 수록하여 교육했기 때문에 이런 견해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만약 오동도 토끼 설화 전설이 고사기의 편찬시기(712년)보다 앞선다면 1200년 동안 다른 기록도 남아있어야 할 텐데 없고, 광복이 되고도 35년이나 지나 1980년이 되어서야 오동도 토끼 설화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1980년 당시 현지 주민으로부터 채록된 오동도 토끼 설화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로 알려진 이나바 흰토끼 설화가 여수에서 현지화된 것에 불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1]

또한 고사기의 흰토끼는 장래를 예언하는 신이 되고 고사기에 등장하는 부들은 실제로 약효가 있지만, 오동도 토끼는 단순히 말을 못하게 되는 벌을 받는 동물일 뿐이고 치료제로 등장하는 억새풀은 약효가 거의 없으므로 다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2]

반면 조선시대 후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금소총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다른 나라의 토끼 설화에 비해 오동도 토끼설화는 이야기 구조가 고사기의 이나바 흰토끼 설화의 구조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나바 흰토끼 설화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국 학자 중 해당 설을 주장하는 학자로서는 울산대학교 노성환 교수가 유명하다.[3] 노성환 교수는 고금소총보다 오동도 설화가 이나바 토끼 설화와 유사하다는 입장인데, 2013년 논문에 따르면 고금소총의 토끼설화는 전형적인 극동아시아계(시베리아 동부)에 속하는 동물설화지만, 오동도 토끼 설화는 중국, 일본(고사기)에 퍼친 동아시아계 동물설화 계통이라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금소총은 조선시대 후기에 편찬되었다고 추정되고, 내용 중 일부는 조선시대 인물을 저자로 삼기는 하나 사실은 정확한 편찬시기가 불확실하며, 최초로 일부 내용이 출판된 1947년 이전 #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편자 미상의 우스개소리 모음집이다. 토끼설화가 포함된 전체가 간행된 때는 1959년이었다. 또한 고금소총 설화의 뒷부분에서 자라가 등장하거나 덫에 걸렸을때 구더기를 이용해 썩은 것으로 위장하는 등의 내용은 별주부전에서 차용해온 것으로 보인다.

오동도 토끼 설화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져 생겼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는, 해당 설화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가 이나바 흰토끼 설화가 한반도 전역에 퍼진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갑자기'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이 점은 고금소총 역시 자유롭지 않다. 그로므로 해당 논쟁은 고금소총이 언제, 어떤 경로로 편찬되었고 그 중 저자미상의 '교토탈화' 이야기가 어떤 사료적 가치가 있는지 먼저 밝힌 뒤에야 진도가 나갈 것이다[4]

또한 이나바 흰토끼 설화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단 설에서는 오동도 설화의 이야기 구조가 (다른 나라의 토끼설화에 비하여) 고사기 설화의 이야기 구조와 가장 유사하다[5]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1980년에 채록된 박갑수본은 위와 같이 광복 35년 뒤에 최초로 채록된 설화라 한계가 있고, 문정인본을 채록한 문정인은 1987년부터 1999년까지 여수문화원장을 역임하기는 하였으나 본래는 약학대학을 졸업하여 약사가 본업 재야사학자로서, 해당 오동도 설화를 언제 누구에게서 채록하였는지 전혀 언급한 바가 없다. 그래서 오동도 설화(문정인 본)는 일본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문정인도 사망했기 때문에 해당 설화가 언제 어디서 채록하였는지 그 기원을 알 길도 없어졌다.

고사기≫에 이나바의 흰토끼 설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뼈대인 ' 아메노히보코 신화'가 기록되어 아메노히보코 신화와의 연관성에도 주목하는 학자들이 있다.

3. 전설

3.1. 이나바의 흰토끼 이야기

고사기에 기록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날, 오키(淤岐)섬에 사는 흰토끼 한 마리가 (오늘날 돗토리현 동쪽 지방인) 이나바에 가고자 했다. 그러나 오키섬과 이나바 사이는 바다여서 도저히 자력으로는 건널 수 없었다. 결국 흰토끼는 꾀를 부렸다. 물 속에 있는 상어[6][7]에게 "상어야, 너희 동료와 우리 동료 중 어느 쪽이 많은지 비교해보자." 하고 제안하여, 상어들이 이나바의 나라까지 일렬로 서 있게 한 뒤 그 위를 폴짝폴짝 뛰어서 건너갔다. 그렇게 케타(氣多)곶에 도착할 즈음, 너무나 기쁜 나머지 "너희들은 속았어."라고 말해버렸다. 맨 끝에 있던 상어가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흰토끼의 털을 전부 잡아 뽑아 눈 깜짝할 사이에 벌거숭이로 만들자, 흰토끼는 털이 뽑힌 아픔 때문에 모래사장에서 울었다.

오오쿠니누시와 형제신들은 이나바의 나라에 야카미히메(八上比賣)라는 아름다운 아가씨[8]가 있다는 소문을 우연히 듣고 청혼하려고 이나바로 가던 참이었다. 형들은 막내 오오쿠니누시를 종자로 삼아 일행의 짐을 다 지우고는 홀가분하게 이나바로 가다가 흰토끼를 만났다. 형제 신들은 사연을 듣고는 재미 삼아 흰토끼에게 " 바닷물로 몸을 씻고,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엎드려 있거라." 하고 말하였다.

흰토끼가 형제 신들에게 들은 대로 하자, 바닷물이 마르면서 살갗이 바람 때문에 갈라져 더욱 더 심하게 아팠다. 너무 아파서 엉엉 우는데, 오오쿠니누시가 다른 형제 신들의 짐을 넣은 큰 자루를 등에 짊어진 채 일행의 꽁무니를 따라가다가 흰토끼를 만났다. 오오쿠니누시가 흰토끼에게 사정을 듣고는 "강어귀에 가서 깨끗한 물로 몸을 씻고, 부들(향포) 꽃가루를 바닥에 뿌려 그 위에서 뒹굴면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9]

흰토끼가 그대로 하자 이윽고 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흰토끼는 매우 기뻐하며 "그 신들은 야카미히메와 결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형들의 짐을 지고 가는 당신이 야카미히메와 혼인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형제 신들은 오오쿠니누시보다 먼저 도착하여 앞을 다투어 청혼했지만, 야카미히메는 냉정하게 "나는 여러분이 아니라 오오쿠니누시에게 시집갈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모두 거절했다. 그래서 형제 신들은 오오쿠니구시에게 앙심을 품고 해코지하고자 마음먹었다.[10]

흰토끼가 상어 무리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온 바닷가가 오늘날 돗토리현 돗토리시 북서쪽 해변이라고 한다. 해변가 가까운 언덕에 하쿠토(白兎) 신사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신사 터가 흰토끼가 오오쿠니누시의 형제들에게 말을 듣고 바닷물로 씻은 뒤 몸을 말렸던 언덕이라고 한다. 하쿠토 신사 경내에는 여전히 부들이 자라고, 흰토끼가 오오쿠니누시의 말을 듣고 몸을 씻었다는 미타라시 못(御身洗池)[11]이 있다.

고사기에 기록된 신화의 내용 때문에 하쿠토 신사는 피부병에 영험이 있다고 하며, 또한 남녀의 인연을 맺어줄 수 있다고 전한다.

3.2. 고금소총 교토탈화(교활한 토끼가 화에서 벗어나다, 狡兎脫禍)

옛날에 한 마리 숫토끼가 곰이 사는 동굴에 들어가 보니 어미 곰은 바깥에 나가서 없고, 단지 새끼 곰들만 남아 있었다. 토끼는 새끼 곰들에게 "만일 너의 어미가 있었다면 당연히 내가 한번 접촉하였을 터이지만, 마침 없는 것이 가히 애석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드디어 어미 곰이 돌아와 새끼 곰에게 토끼가 말한 것을 듣고는 화가 나서 "호랑이는 山君이며, 세상에 수명의 영웅이 있다할지언정 내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호랑이이다. 하물며 토끼는 쇠의 입에 긴 수염(鐵口長髥)의 괴상한 녀석인데, 어찌하여 감히 나에게 치욕을 준다는 말인가. 만일 토끼가 또 온다면 그 때는 내가 잡아먹으리라." 하고 말했다.

어미 곰이 숲속에 숨어 있자, 이윽고 토끼가 찾아와서는 새끼 곰에게 이전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곰이 뛰쳐나오자 깜짝 놀란 토끼는 도망쳐서, 작은 몸으로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몸집이 큰 곰은 토끼를 쫓아서 들어갔다가 그만 칡넝쿨에 몸이 걸려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토끼가 즉시 덤벼들어 곰을 간통한 다음 도망치며, "이래도 내가 너의 신랑이 아니란 말이냐?" 하고 놀려댔다.

그때 큰 독수리가 하늘에서 황급히 내려와 토끼를 낚아채어 가니, 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너는 이제 어디로 가느냐?" 하고 물었다. 토끼가 "상제가 나를 약으로 쓰시겠다 하여 독수리를 보내 나를 맞이하려는 것이므로 마땅히 독수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하고 답했다. 독수리는 그 말에 겁도 나고 화가 나서 "너를 먹더라도 내 배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차라리 너 같은 놈은 불모의 섬에다 던져서 굶어죽도록 만들 것이다." 하며 토끼를 모래와 돌만이 있는 섬에다 던져버리고 말았다.

토끼가 섬 한가운데 떨어져 굶어 죽게 되었다. 그때 마침 자라가 물 위에 나와 노는 것을 본 토끼가 화난 얼굴로 숫자를 헤아리며, "외로운 무족(無族)의 자라가 어찌 이곳에서 머무느냐?" 하자, 자라가 "고기와 자라가 모두 나의 족속이며, 그 수는 이 바다를 다 덮고도 남는데, 어찌 외롭단 말이냐?" 하고 되물었다. "그럼 네가 동족을 다 불러서 바다를 덮을 수 있단 말이냐?" 하자, 자라가 무리들을 모두 불러 바다를 차례로 덮었다. 그러자 토끼는 "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겠다." 하며 자라의 등에 뛰어올라 차례로 뛰어다니며 "한 자라, 두 자라, 천 자라, 만 자라" 하며 물가에 이르러 모래밭으로 뛰어내리며 뽐냈다.

그러나 토끼는 사냥꾼의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그 때 머리가 빨간 머리의 커다란 모기가 한 마리가 옆에 와서 앉자 토끼는 또 화를 내며 "자손도 없는 네가 감히 나를 침해하려고 하는가" 하고 말하자, 모기가 화를 내며 "나의 자손은 수레에 가득될 만큼 많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하고 응수했다. 토끼가 놀라며 말하기를 "그렇게 많다면 모두 불러 모아서 나의 몸의 털 하나마다 알을 낳아 보거라." 하고 말했다.

이에 모기는 즉시 앵앵 울며, 무리를 지어 모여들어 토끼의 털에다 알을 낳았더니 벌레와 구더기들이 몸에 가득 차서 토끼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냥꾼이 와서 이를 보고는 탄식하며 "걸린 지 오래되어 토끼가 썩어서 구더기가 생겼으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며, 토끼를 풀어서 산 쪽으로 던져버렸다. 토끼는 뛰어 도망치면서 "달리는 자라가 토끼의 목숨을 구했다."라고 외쳤다. 토끼가 처음으로 자라로 인해 살아났기 때문에 매우 기쁜 나머지 자라(者羅)라 칭하였다. 여기서 자라는 곧 鼈[12]의 속칭이다.

(출처 : 민속자료간행회(1959) ,고금소총, pp.586-587, 노형원의 2013년 논문에서 재인용)

3.3. 여수시 오동도 토끼 설화(박갑수 본, 1980년 채록)

아주 먼 옛날 흰 토끼 한 마리가 멀리 보이는 오동도 섬으로 건너가고 싶어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바닷가로 내려와서 거북이에게 “너희들이 징검다리를 놓아 나를 저 섬까지 데려다 주면 좋은 보물을 주겠다.”하고 말을 했다. 그러자 어리석은 거북은 할아버지, 할머니, 며느리, 손자 할 것 없이 줄로 서서 섬까지 다리를 놓아 토끼를 건네 보냈다가 다시 뭍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었다. 그러자 토끼는 마지막 한 마리의 등에서 깡충 뛰어내리며 “호호 이 어리석은 거북아, 나는 저 섬에 가 보고 싶어서 너희들을 속인 거야.”하고 달아나려 했다.

이에 화가 난 거북이들이 토끼에게 달려들어 껍질을 홀랑 벗겨 버리고 말았다. 껍질이 홀랑 다 벗겨진 토끼는 너무 아파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 때 그 옆을 토신(土神)의 형제가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형은 마음씨가 착하였으나, 동생은 매우 고약했다. 동생은 그 토끼에게 바닷물에 몸을 씻고 모래에 뒹굴면 곧 나을 것이라고 했다. 토끼는 일러 준대로 했다. 그러자 낫기는커녕 몸이 더 쓰라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토끼는 더욱 더 괴로워서 울고 있었다.

그러자 형이 되는 토신이 지나가면서 일러주기를 "얼른 단물에 가서 목욕을 하고 억새밭에 가서 구르면 고운 털이 너의 옷이 되어 줄 것이다."하고 일러 주었다. 그 말을 듣고 토끼는 단물에 목욕을 하고 억새밭에서 뒹구니 솜과 같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억새 털이 온몸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끼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할 수 있었고 그 대신 거북이를 속인 대가로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출처 : 한국민족의 유산8(박갑수․박영준․김학동, 신흥서관, 1980))

3.4. 여수시 오동도 토끼 설화(문정인 본, 채록시기 불명)

오동도 다리공사가 1935년에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다.

자산에 살던 토끼가 건너편 오동도 섬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서 해변으로 내려가 거기서 놀고 있는 거북이에게 수작을 걸었다. '거북아, 거북아, 나를 등에 태우고 오동도에 대려다주면 귀한 보물을 줄 테니 내 소원 좀 풀어주라' 고 간청하여 생전 처음으로 바다 한 가운데를 거북이 등을 타고 헤엄쳐서 오동도까지 가게 되었다. 오동도에 도착하자마자 토끼는 깡충 뛰어 섬에 오른 다음 약속했던 보물도 주시 않고 다망쳐 버렸다. 그때서야 토끼에게 속은 것을 깨달은 거북이는 숨차고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섬으로 올라 토끼가 잘 다닐 만한 숲 속 길 옆 바위 밑에 숨어서 토끼를 기다렸다.

오동도에 오른 토끼는 통쾌하게 토끼를 속여먹고 또 구경까지 하다보니 즐거운 마음이 무한량이라 섬 둘레를 쏘다니다가 거북이가 숨어있는 바위 옆을 지내게 되었다.

바위 밑에 숨어있던 거북이는 지나가는 토끼를 꽉 붙잡고 토끼의 껍질을 날카로운 이빨로 벗겨버렸다. 온 몸의 껍질이 벗겨진 토끼는 피를 뚝뚝 흘리며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그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던 오동도 산신령이 나타나 토끼더러 '이 미련하고 못된 토끼야! 착한 거북이를 속이고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떨고 있는 네 모습이 불쌍하여 방도를 가르쳐줄 터이니 듣거라.' 벌겨벗겨진 토끼는 산신령이 가르쳐준 대로 정상에 있는 억새풀 밭에 가서 딩굴었다. 그랬더니 토끼의 피부는 곱슬곱슬한 억새풀로 입혀져 더욱 예쁘게 되었다. 하지만 거북이를 속인 죄값으로 평생 소리내지 못하는 동물로 살도록 되어 목을 칼로 찔러도 작은 소리 하나 지르지 못하는 짐승이 되었다. (출처 : 여수문화연구소)

3.5. 오세아니아 북서부에 있는 뉴기니아 원숭이 설화

원숭이가 나무열매가 많이 열려 있는 섬으로 푸른 해오라기 를 타고 갔다. 푸른 해오라기가 빨리 돌아가자고 자꾸 재촉하자, 좀 더 열매를 먹고 싶은 원숭이는 그만 화를 내면서 해오라기의 털을 다 뽑아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해오라기의 날개가 돋아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해오라기는 그 섬에 원숭이를 놓아두고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바다를 건널 수 없게 된 원숭이는 한 가지 묘책을 마련하여 악어가 해안에서 자고 있는 동안에 모래사장에 많이 원숭이 발자국을 만들어 놓고 악어를 불러 깨우고는 누구의 동족이 많은가를 내기하자고 했다. 이에 응한 악어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고, 그 위를 밟고 올라가 숫자를 헤아리는 척하면서 바다를 건너 육지로 도망쳤다(출처 : 西岡秀雄(1956) 「兎と鰐の説話の伝播(下)」 三田史学会、p.114. 노성환의 2013년 논문에서 재인용)

3.6. 시베리아 동부에 거주하던 오로치족의 여우 설화

어느 나무 위에 한 마리 다람쥐가 일곱 마리 새끼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우가 나타나 새끼 한 마리를 주지 않으면 도끼로 나무를 쓰러뜨려 나무 꼬챙이에 끼어서 불에 구워먹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한 마리를 여우에게 던져주었다. 이러기를 매일 거듭하여 어느새 새끼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 일이 너무 슬퍼서 울고 있자, 푸른 해오라기가 찾아와서 그 까닭을 물어서 자세히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푸른 해오라기는 그것은 모두 거짓말일 뿐이며, 더군다나 여우는 도끼도 나무꼬챙이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앞으로 새끼들을 여우에게 넘기지 말라고 했다. 이 사실을 안 여우가 해오라기를 공격하다가 그만 해오라기에 붙잡혀 날아가다가 어느 외딴 섬에 떨어지고 말았다.

육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엉엉 소리를 내어 울고 있자, 새끼 물개가 물속에서 나와서 왜 우느냐고 묻자,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동물의 수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 종족도 많이 있느냐고 묻자, 새끼 물개는 이 작은 바다가 가득 찰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러자 여우는 너희 종족들을 다 불러 모으면 숫자를 헤아려주마 라고 하자, 정말 물개들이 다 모여서 바다를 가득 덮었다. 그러자 여우는 그 숫자를 헤아리는 척하며 바다를 건너고는 맨 마지막 물개 머리 위에 오줌을 갈기고는 육지로 올라서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물개들을 놀려댔다. 그러자 물개가 “너는 나쁜 짓을 하고도 기뻐하지만, 아마도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이 쳐놓은 덫에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과연 그 말대로 육지에서 덫에 걸려 죽고 말았다.(출처 : 小沢俊夫(1986) 󰡔世界の民話-シベリア東部-󰡕 ぎょうせい、pp.268-272. 노성환의 2013년 논문에서 재인용)

그 외에도 나나이족, 네기다르족, 기리야크족, 코리야크족, 도르간족, 에붼족에게도 유사한 설화가 존재한다.

3.7. 베트남의 토끼 설화

토끼 한 마리가 가족을 떠나 강가에 살고 있었다. 부모를 찾 아갈 때는 언제나 둥근 목재의 다리를 이용하였는데, 어느 날 태풍으로 말미암아 떠내려 가버리고 말았다. 슬퍼하는 토끼를 보고 악어가 원숭이의 여동생과 결혼시켜준다는 조건으로 토끼를 안전하게 맞은편 강 언덕까지 데려다 주었다. 토끼는 강둑에 오르자마자 악어가 속은 것을 조롱했다. 그 후 토끼는 풀을 잔뜩 뒤집어쓰고 숨어있는 악어의 등 위에서 풀을 먹고 잠들어 있었을 때 악어는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익사시키고 말았다.(출처 : 西岡秀雄(1956), 노성환의 2013년 논문에서 재인용)

3.8. 중국의 소수민족 요족의 설화

옛날 토끼의 꼬리는 다람쥐와 같이 길었다. 어느 날 토끼가 맞은편 강가에 돋아있는 풀을 뜯어먹고 싶었으나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때마침 악어들이 헤엄쳐 왔기 때문에 토끼가 악어에게 “나의 종족은 너희들보다 몇 십 배나 많다.”고 했다. 그러자 악어는 화를 내며 “이 강에서만 하더라도 악어가 천 마리 이상은 살고 있다.”고 응수했다. 그래서 토끼는 악어를 맞은편 강가를 향하여 일렬로 나란히 세워두고 악어 등에 올라 숫자를 헤아리는 척하며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가로 내려설 때 토끼는 “너희들은 나에게 속았다. 단지 내가 풀이 먹고 싶어서 너희들을 속였을 뿐이다.”하며 말했다. 바로 그 때 맨 끝에 있던 악어가 토끼 꼬리를 물고 끊어버렸다. 그리하여 토끼의 꼬리가 지금처럼 짧아진 것이다.[13]

기미시마 히사코(君島久子)의 1991년 논문에 의하면, 유사한 설화는 중국 남부지방에 상당수 발견된다고 하나 오노하라 다카모리(斧原孝守)의 2011년 논문에 의하면, 중국 북부지방인 랴오닝성, 산시성(山西省), 저장성, 후베이성, 장쑤성에서도 유사한 설화가 발견된다고 하며 고지마 요시유키(小島櫻禮)의 2004년 논문에 의하면, 대만 지방에서도 유사한 설화가 확인된다고 한다.

3.9. 기타

마루야마 아키노리(丸山顕徳)의 2008년 논문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세레베스, 말레이반도, 인도, 스리랑카, 캄보디아, 민나다오에서도 유사한 설화가 존재한다고 한다.(출처 : 丸山顯德(2008) 「環太平洋神話への眼差し - 古事記 稻羽の素兎の事例 -」 󰡔花園大學日本文學論究(1)󰡕(花園大學日本文學會、p.4.)

4. 대중문화 속의 이나바 흰토끼

5. 같이보기



[1] 石破洋(2006) 등, 노성환(2013)에서 재인용 [2] 楜胡厚生(2000) 등, 노성환(2013)에서 재인용 [3] 한국 오동도와 일본 이나바의 토끼설화의 비교연구 등 참조 [4] 고금소총이 순수 한문으로 쓰였다는 것은 편찬시기를 추정하는 데 아무 의미가 없다. 환단고기 화랑세기 필사본처럼 저술시기가 고대, 중세에 쓰여진 진서인지 혹은 현대에 만든 위서인지 논쟁이 있는 책들 역시 순수 한문으로 쓰였다. 과거에는 지식인이라면 한문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한문으로 책을 위작하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쉬웠다. [5] 수중동물이 자신을 속인 토끼에게 보복하고 보복이 성공한다는 것, 제3의 신비한 존재가 등장하여 토끼를 도와주는 점 등 [6] 고사기 원문에는 '와니(和邇)'라고 씌었는데 와니는 악어를 뜻한다. 그런데 일본에는 야생 악어가 없기 때문에 해석에 문제가 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신화가 실제로 악어가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사투리로 상어를 와니라고 부르기도 하므로, 대다수 학자들은 상어라고 보는 설을 지지한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상어 대신 악어로 묘사하는 사례도 있다. 고사기의 '와니'가 상어/악어라고 보는 설 외에도 바다뱀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상어/악어설에 비하면 소수의견이다. [7] 또 바다에 어떻게 악어가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바다악어가 있다. 단순히 바다와 강의 경계선에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망망대해에서 유유히 해엄치는 모습이 발견된다고도 한다. [8] 여기서 야카미(八上)는 오늘날 돗토리현 야즈정(八頭町)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즉 야카미히메란 야카미(야즈)의 아가씨란 뜻. 야카미 지방 호족의 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야카미히메의 한자 표기에서 여신이라고 특정할 만한 표현이 없기 때문에, 야카미히메를 신이 아니라 무녀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9] 이즈모 지방의 민속에서 오오쿠니누시는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의약의 신이 올바른 처방을 알려줌은 당연한 일. 그리고 향포는 실제로 지혈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10] 이후 고사기에는 오오쿠니누시가 고난을 겪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11] 일본어로 읽으면 미타라시이케(みたらしいけ). 한자로 쓴 御身洗池란 지명은 '높은 분(御 토끼)이 몸(身)을 씻은(洗) 못(池)'이란 뜻이다. 미타라시 못은 물이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고사기에선 오오쿠니누시가 흰토끼에게 강어귀에 가서 몸을 씻으라고 했는데, 하쿠토 신사의 전설에선 못에서 씻었다고 설명한다. [12] '자라 별'자이다. [13] 출처 : 斧原孝守(2011) 「中國の因幡のシロウサギ」󰡔シロウサギの世界-白兎はどこ からきたの-󰡕<平成22年度鳥取大学地域貢献支援事業シンポジウム報告書>(門田眞知子編輯) p.10. 노성환의 2013년 논문에서 재인용 [14] 초기 레벨이 31레벨이므로 기본 31레벨에 해당하는 악마를 신월/만월 컨디션에서 합체시켜 합체사고를 유발해야 한다. [15] 화염, 빙결, 전격 내성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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