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20:06:37

윤김지영

파일:윤김지영한국일보사진.jpg
이름 윤김지영[1]
본명 윤지영[2]
출생 1979년[3] ([age(1979-12-31)]~[age(1979-01-01)]세)
경상남도 마산시
(現 경상남도 창원시)[4]
가족 언니 윤지선[5]
현직 창원대학교 철학과 조교수
약력 건국대학교 연구교수
학력 파리 제4대학교 철학과 학사
파리 제4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파리 제1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논란 및 사건사고4. 비판5. 저서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TERF 계열 래디컬 페미니스트.

이름은 윤김지영윤지영을 혼용한다. 본인이 윤지영으로 발표한 논문을 다른 사람이 윤김지영의 글이라고 인용하기도 하거나, 반대의 일이 자주 있다. 창원대에서는 본명인 윤지영을 사용하고 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로서 2018년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이란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언론과 출판 분야에서 페미니즘 진영의 강경·극단화를 주도한 학자다.

2. 생애

일란성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는데 부모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수녀원에 들어갈 뻔했지만 자매의 끈질긴 투쟁으로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되었고, 보수적인 집안의 신앙적 분위기에 대한 반항심으로 페미니즘 철학을 전공했다. #

언론에서 젠더 기사 관련 전문가 인터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친페미 성향을 지닌 기자나 언론들이 윤김지영을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기 위해 자주 섭외한다. 젠더 뉴스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면 이나영과 더불어 눈에 익을 정도. 그러나 미러링 방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래디컬 페미라서 무조건 남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그녀의 부적절한 발언들이 논란이 되었다. 뉴스에서는 이름이 윤지영이 아닌 윤김지영으로 나온다. 요컨대 윤지영=윤김지영, 언니 윤지선도 마찬가지.

또한 TERF다. 다양한 인터뷰에서 'TERF 역시 페미니즘의 한 갈래로서 긍정한다'는 식으로 논조를 흐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TERF 계열의 세미나, 토론회에 자주 얼굴을 비춘다. 게이나 트랜스젠더, 여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긍정하는 입장이다. 게이 또한 남성이므로, 게이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여성혐오보다 훨씬 미약하기 때문에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된 논조이다. 같은 맥락에서 트랜스젠더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MtF든, FtM이든, 트랜스젠더를 '여성성'을 공격하는 망상 내지 정신병으로 이해한다.[6]

2018년 7월 20일 스브스뉴스에서 진행된 워마드 관련 토론인 워마드, 어떻게 볼 것인가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2018년 7월 24일(실제 방송 7월25일 오전 0시10분 시작) MBC에서 진행된 100분 토론 790회 '남혐 vs 여혐... 대한민국을 흔드는 위험한 이분법'에 패널로 참여했다.

2021년 4월 1일, 건국대학교를 떠났으며, 고향에 있는 창원대학교의 철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

3. 논란 및 사건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윤김지영/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비판

국내 페미니즘 진영에서 워마드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수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워마드 옹호 문제는 국내 페미니즘 진영의 궁극적인 족쇄가 되었고, 설령 가장 온건하고 건설적인 제안을 내놓을지라도 워마드의 비행에 준하는 취급을 받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상아탑에서 논문을 쓸 수 있다' 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윤김지영은 그 권력을 워마드를 옹호하기 위해 십분 활용해 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강단 페미니스트들의 묵인과 관망은 결국 워마드의 비행을 전혀 콘트롤하지 못하는 무질서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이슈에 대해서도 단순히 그것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회 일반의 상식과 교양에서 한참 괴리된 극단적 주장을 내놓아, 타인을 설득하는 힘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남성혐오에 대해서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고 극구 부정함으로써 혐오 이슈를 염려하는 진지한 사람들까지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국내 문화사회학 분야에서 이와 관련해 제기된 진지한 비평이 유명하다. 이에 대해 윤김지영은 매사 합리주의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게 설명하라는 요구 자체가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반론을 내놓았다. 이것은 한때 이리가레 등의 프랑스철학에서 학문함에 있어 용어나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거나 체계적이고 일관되며 확고한 지식을 생산하려는 것 자체를 남근선망(...)으로 이해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 남성혐오는 없다."고 말하는 사상은 페미니즘 전체 학계의 입장이 아니다. 래디컬 페미니즘 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왜곡시키면서 페미니즘을 배웠다는 사람들이 자칭 칼럼니스트라는 감투를 쓰고, 비난하면서 페미니즘 자체의 이미지를 하락시켜 안티페미니즘을 양성해냈고,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끼리 싸우다 죽어버리라고 하는 페미니즘의 ㅍ자도 듣기 싫어하는 논페미니즘까지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논란 항목에서 보이듯, 자기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없이 오로지 주장을 위해 주장하는 음모론을 주창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00분 토론에서 소위 '일베유저 600만 명 설' 같은 경우. 일베의 사회적 해악에 공감하는 사람들조차 이 주장에는 황당해 했다. 통계 자료의 오용에 대해서는 아예 실시간으로 부정당하는 수준이었다고도 회자될 정도.

윤김지영은 자신의 정당성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싣기 위해 이것저것 전부 끌어오기는 하지만, 이는 사과 상자 무게를 늘린답시고 썩은 사과까지 집어넣는 것과 다름이 없다. 썩은 사과가 다른 사과들까지 함께 썩어 들어가게 만들듯이, 윤김지영의 증언들은 전문가라는 네임밸류를 등에 업고 여성계와 언론에 숱하게 인정받고 유통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다른 메시지들에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혼합되어 버렸다. 썩은 사과를 하나라도 발견한 소비자는 다시는 그 사과 상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남성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며 이는 백래시라고 주장하지만, 그런다고 과연 페미니즘의 브랜드 가치가 썩은 사과 수준을 탈출하게 될 지는 의문이다.

윤김지영의 메시지 상당수는 연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학문이라는 영역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일반 여성 대중에게 최대한의 충격을 주어서 그들을 '전사'로 만드는 데에만 치중하고 있다. 예컨대 윤김지영은 워마드를 변호하면서 '심지어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음을 폭로했다' 고 말한다. 하지만 게이들은 그 정의(定義) 상 여성에 대한 성적 이끌림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의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게이들도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게이가 성적 취향(페티시)에 불과하다는 해묵은 오류와도 맞닿아 있다. 이들은 딱 이성애자 남성들이 남성을 대상화하는 것만큼만 여성들을 대상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장을 하려면 학문적으로 굉장히 많은 논쟁을 준비해야 하며, 그 논쟁의 결과로 젠더, 퀴어, 문화 관련 담론의 패러다임 전체를 뒤집어 엎거나, 아니면 제 주장이 뒤집히거나의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윤김지영은 모든 남성이 다 여혐의 가해자라는 것만을 부각시킬 뿐, 어떻게 게이가 여혐을 하는지를 학문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는 빈약하다.

윤김지영의 이러한 활동은 여성들의 동원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실제로 혜화동에 매우 많은 여성들이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여성들이 정치적 압력을 지닌 하나의 세력으로서 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원의 지렛대가 된 건 윤김지영과 같은 극단적인 연사들의 "떨쳐 일어나라!" 같은 선전 메시지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빅 텐트가 되기보다는 극단화와 열화를 초래했고, 페미니즘이 열린 집단이기보다는 닫힌 집단이 되게 만들었다. 불편한 용기가 내부고발자들에 의해 어떤 문제가 터진 사례다.

단순히 여성들의 동원에 있어서라면 윤김지영은 매우 성공적인 데마고그(demagogue)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적 권력을 쟁취하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해서 윤김지영은 어떤 비전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여성들을 젠더전(gender-戰)의 전장으로 불러모으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인 것이다.

정치세력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과장된 수사와 극단적인 주장까지 불사해야 했기에, 윤김지영의 논리 역시 전적으로 그 극단성을 정당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논리는 대개 어지러울 정도의 현학적인 사변과 기이할 정도로 강한 자기확신의 혼합이다. 인문학계에서 이런 종류의 글에 대해서 건전한 비판의식을 얼마나 많이 보여줄 지는 미지수지만, 어쨌거나 정치공학적으로는 그럴듯하므로 서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확신에 찬 주장은 마땅히 확신에 찬 반론을 받을 '권리' 가 있으며 그것이 어떤 학계에서건 통하는 동료평가의 원칙이다. 불행히도 윤김지영은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윤김지영의 일관적인 여성혐오-중심적 접근은 (비록 학문적 기여를 위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여성혐오 담론 전체를 퇴행적 프로그램으로 몰아갈 위험요소가 되는 듯 보인다. 과학철학 분야에서 제시된 바로서, 어떤 이론이 전진적이기 위해서는 그 이론을 통해 기존 이론으로 예측되지 않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적으로 예측해야 한다. 즉 여성에 대한 개념화, 혐오에 대한 개념화, 여성혐오의 원인과 결과, 여성혐오의 잠재적 요인, 그 경계 조건, 한계와 제약점, 정학적인 면과 동학적인 면, 분석 수준의 명시를 통하여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기존 학계가 흥미로워하며 반길 수 있는 생산적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적어도 해당 용어를 창안한 이브 세지윅(E.K.Sedgwick)은 그렇게 해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상 모든 남성의 가해 사건은 윤김지영의 입을 거치면 여성혐오가 되고, 세상 모든 여성의 가해 사건은 그 여성 혐오에 대한 거룩한 절규가 된다. 그 사건들을 마냥 여성혐오의 익숙한 용어로만 보도하면서 뒤늦은 사후 정당화에만 머무르는, 학문으로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만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땜질식 이론이 인문학에서 어디까지 허용될 지는 언급이 없으나, 어느 학문분야에서건 보통 이런 방식의 논의는 생산성이 떨어진다. 이 이후로 "사실은 이것조차도 여혐이었다." 외에 학자들이 할 말이 더 없게 되고 "이게 진짜로 여혐인가?" 의 의심을 품는 순간 학문 공동체에서 괴리된다.

프랑스 철학 박사학위자로서 사회과학적 현상에 대한 협소한 인식론을 고집한다는 것 역시 특징적인 부분이다. 설령 인문학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활용해서 사회문화를 비평한다 할지라도, 그 비평이 그 사회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 설명하는지 객관적으로 검토해 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윤김지영의 인식론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사변과 담론을 보강하기 위해 또 다른 사변과 담론을 끌어들인다. 현실을 설명하려는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길 포기하고 그저 이론을 위한 이론으로서 열화되는 것이다. 이는 유사한 전문가 포지션의 이현재나 유민석 등의 비평가들 역시 인문학 배경인 만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문성의 부재는 특히 모욕죄 성범죄와 같은 형법상 범죄에 대해 가해자로서의 여성을 변호하며 남성에 대한 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뚜렷하게 드러난다. 윤김지영은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유책성과 같은 형법상 범죄의 성립요건에 대해 끊임없이 남성의 모든 행위는 여성혐오이고 여성의 모든 행동은 정당하다는 식으로 언급하며 자신만의 사변을 끌어들여 외연을 확장하거나, 때로는 새롭게 정의한다. 그녀의 '만물여혐' 담론에서는 모든 것이 해체되어, 그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정의된다.

그녀의 전공인 철학에서는 그와 같은 사고방식이 훌륭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법률에 기반하여 엄밀성과 객관성이 중요한 법학, 특히 그 중에서도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기반하여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하는 형법학계에서는 그와 같은 사고방식은 비웃음거리에 불과하다. 형법학계가 그녀에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범죄의 구성요건에 사변을 들이대어 해체하고 새롭게 정의하려는 수많은 범죄자들의 시도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는 것은 여성혐오에 대한 유쾌한 전복이자 미러링이다'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혼내주기 위해 치마 속을 촬영했다'는 주장은 형법적으로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법률은 정의규정을 가지고 있고, 정의규정이 부재한 경우 판례가 형성되어 있다. 사상을 끌어들여 정의를 자기 멋대로 내리려는 시도가 있다면, 대법관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판례를 제시하며 상고기각 판결을 내릴 뿐이다.

5. 저서

6. 여담

난해하다는 철학계 글쓰기 스타일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현학적인 글쓰기를 자랑한다. 물론 일상용어까지 현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논문에서의 글쓰기는 독자가 마치 묶여있는 매듭을 하나하나 풀듯이 독해할 것을 요구하는 수준이다. 또한 국어사전을 들추어 보아야 할 생소한 단어들도 파상공세를 퍼붓듯이 나열하는 경향이 있다. 페미니즘 진영에 손희정, 유민석 등 현학적인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윤김지영의 경우 유독 튄다.

윤김지영은 논문에서 "~를 철저하게 논증하였다", "이제부터 ~를 통렬하게 비판하겠다", "~를 낱낱이 폭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를 날카롭게 해부하였다"와 같은 표현들을 즐겨 사용한다. 똑같은 학술적 글쓰기라도 학계 관점에서 보면 도대체 왜 이런 표현을 동원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 전문 분야에서는 그 논문의 논리를 심사하는 것은 투고자 본인이 아니라 리뷰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매우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어조가 대부분이며, "강한 주장에는 강한 근거가 필요하다" 가 기본 원칙이다. 간단히 말해, 철저한 논증을 보여주면 되지 '철저한 논증'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철저하게 논증하였다'라고 말해보아야 논증이 더 철저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공이 전공인지라 프랑스어에 능통하며, 뭔가 있어보이기 위해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프랑스산(産)의 사상가들이나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와서 자신의 논리를 정립하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논문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요 개념들은 전부 괄호로 옆에 프랑스어를 병기한다. 때문에 프랑스 철학을 모르면 반론은 고사하고 어느 부분이 설득력이 부족한지 의구심을 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논리구조가 엉망이고 횡설수설임에도 내용이 난해해보이고 뭔가 대단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는 전형적인 페미니스트들의 글쓰기 수법이자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 철학자들이 사용하던 논법이다. 만약에 윤김지영의 논법들을 영어로 번역해서 주장해보라고 한다면 금방 그 실체가 들통날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 맥락'이 있는데, 페미니스트들의 발언이나 행동들을 무조건 쉴드치는 것 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면서 편을 들어주려고 교묘하게 사용한다. 예를 들면 '슬라임 자체를 코르셋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여성들 의견에 담긴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같은 식이다. 이 단어는 '전후사정' 으로 치환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물론 이 맥락이라는 단어를 활용해서 자신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의 적들의 편을 들어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실명과 직업을 공개한 페이스북 계정과 다르게 트위터 계정은 비밀로 유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트위터 글을 캡처하여 피해 여성에게 잘못을 지속해서 돌리는 사람들이 속출해서 트위터에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공개함으로써 윤김지영임을 밝혔다.
실명도 없고 닉네임도 없는 제 트위터 계정글을 굳이 염탐한 후, 캡처해가서 악의적으로 오독하여 트위터 일탈계하는 여성에게 성폭력의 피해를 돌린다라고 억측을 하는 글들에 대해 반박합니다. 글이 매우 길어서 제 페이스북 계정링크를 올리오니 일독 부탁드립니다. #[7]
2020년 3월 27일, 윤김지영
2018년에도 알게 모르게 "윤지선과 저 윤김지영이" 어떤어떤 강의를 제공한다는 글을 몇 차례 써서 자신이 윤김지영임을 암시하였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조건은 남자를 동족상잔하는 것이라고 강의한 적이 있다. 남페미의 조건이 남자를 동족상잔하는 것이라고 강의한 윤김지영의 강의를 들은 트페미의 후기를 박제한 트위터 박제보관소 @


[1] 성이 윤김씨인데 김은 모친의 성이라고. 물론 법적인 성씨는 아니고 본명은 당연히 윤지영이다. [2] 호적에도 올라간 본래 이름이며, 대학에서도 본명을 사용한다. [3] 출처 [4] # [5] 윤김지영처럼 래디컬 페미니스트이다. 세종대학교 초빙교수이며 남성혐오 논문 게재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6] 요약하면 - 게이, 트랜스젠더, 기타 성소수자는 차별해도 되지만, 여자는 차별하면 안된다는 말. [7] 현재는 링크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