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파 순조대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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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탈닌 |
출판사 | ARC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1. 10. 04. ~ 2022. 10.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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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물 웹소설. 작가는 탈닌.[1]줄여서 유학순조로 불린다.
2. 줄거리
영국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던 나
하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비행기 사고의 여파에서 깨어난 내가 눈을 뜬 곳은, 조선.
하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비행기 사고의 여파에서 깨어난 내가 눈을 뜬 곳은, 조선.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1년 10월 4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였다.네이버 시리즈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2022년 10월 18일에 336화로 본편 완결, 337화와 338화는 후일담, 339화는 후기로 끝을 맺었다.
4. 등장인물
4.1. 조선
4.1.1. 조선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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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
주인공. 영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다가 웬 영국산 신령을 만나고, 대화 직후 사고로 1700년대 후반의 아기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정조의 아들 순조가 되는 운명으로 태어난 것을 깨닫고 자신과 조선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조가 죽은 후 수렴청정을 하게 된 정순왕후와 거래를 해서 박해를 막고 시파의 자리를 남겨두었지만 정순왕후가 끝내 배신해 대대적인 박해와 환국을 계획하자, 역으로 이들이 선을 넘어 정조대왕까지 모욕하도록 유도해 단숨에 벽파와 외척을 박살낸다.
이후 정약용 형제, 박지원과 그 제자들을 다시 조정에 불러오고, 천주교도들을 유럽에 파견하면서 개혁을 준비한다.
참고로 초반에는 급진적인 제도 개혁과 감찰로 대대적인 반란을 유도하고 일거에 진압한 다음. 개혁에 필요한 명분과 자원을 대거 확충할 계획이었으나, 기민하게 손을 들고 항복하면서 조정에 자리를 보존한 사대부들 탓에 일이 길어지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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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
원역사에서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을 했던 여군. 여기서도 겨우 10살인 손자를 좌지우지할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낸 이공이 거래를 제안하자, 고민하다가 이를 받아들인다.
표면적으론 벽파가 주도권을 잡되 시파 역시 최소한의 세력은 지키며 손을 잡고 약속을 지키나 했으나, 원 역사에서 벽파와 손잡고서 엄청난 박해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여인천하를 열었던 장본인답게 뒤에서는 대대적인 천주교, 시파 박해를 준비하며 이공의 뒤통수를 치고서 자신이 전권을 좌지우지하려고 시도한다.[2]
그러나 이공 역시 정순왕후의 생각을 알았기에 김조순을 움직여서 미리 천주교, 시파와 짜고서 벽파가 숙청하려던 시파의 스승 중 정조대왕이 있다는 걸 언급하게 만들면서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킨다. 40년 전에 죽은 성호 이익조차 시파 인물들의 스승이라는 이유로 죄인이라고 깎아내린 벽파는 자연히 불과 몇년 전에도 시파 인물들과 초계문신제를 거행한 정조대왕조차 사문난적으로 몰고 간 역적이 된 것. 정순왕후는 12살짜리 손자인 이공의 경고에 감옥에 갇힌 친가인 경주 김문 친척들의 생명이나마 보존하기 위해서 결국 원역사보다 훨씬 일찍 수렴을 거두고 칩거하게 된다.
그러나 역전의 기회가 있다고 여기며 간신히 조정의 중역으로 남은 김사목에게 임금의 개혁을 꼬투리 잡게 만들라고 시켰으나, 김사목은 그녀를 철저하게 어리석다고 평하면서 자신들은 지방의 벽파까지 끌어내 일망타진할 요량으로 살려두었단 걸 상기시키며 거부한다. 분노를 씹으며 김노경처럼 자신의 말을 따르는 이들을 통해 김사목이 떠난 사이 일을 벌리지만, 김일주가 역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치고 경기와 영남의 은결을 전부 정리해 바치면서 완전히 버림받는다. 김일주에게 당신의 시대는 저물었으며, 원래부터 저항할 능력이 안되었다는 철저한 무시는 덤.
결국 모든 힘과 권위를 잃고 쓸쓸이 살다가 얼마 못가 병사한다. 죽기 직전에 찾아온 이공에게조차, 내가 맞고, 네가 틀렸으며, 너 때문에 조선이 쇠락하리라고 저주를 퍼부었지만, 이공이 보기에는 작은 궁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던 할머니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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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 김씨
김조순의 딸이자 순조의 중전. 참하고 아름다운 미인으로 순조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건강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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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정조대왕. 순조의 아버지이자 선왕. 작품 시작과 동시에 사망한 인물이나, 벽파 시파 할 것 없이 정조의 치세를 고평가하며, 백동수와 정약용, 김조순 등은 전부 정조가 먼저 연을 이어두었고, 이를 순조가 제대로 휘어잡아 개혁을 해나가는 등 개혁을 위한 유산을 제대로 준비해준 개혁군주로 평가받는다.
4.1.2.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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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
순원왕후 김씨의 아버지로 이공의 장인. 정조가 아들을 보좌해주길 바라고 간택한 인물이다. 이공의 칼이자 행동대장으로서 사전에 정순왕후의 벽파가 시파와 천주교를 몰살하려들자 이공의 명대로 협조하는 척 나서면서 많은 천주교도의 목숨을 구명했고 벽파를 몰고가는데도 앞장서서 환국을 주도했다. 이후 이공의 심계에 감탄하면서 충신이 된다.
그 후에도 이공의 측근으로서 청나라에 가서 가경제에게 만주를 개방해 청과의 무역을 공식화하는 일을 성공한다.
본래는 세도정치 시대를 연 인물답게, 막후의 실력자로서 나라를 좌지우지할 권신을 꿈꾸었으나, 이공의 확연한 능력과 권위, 그리고 사마의를 예시로 든 경고에 시대의 명신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박지원 사후 산당은 이공의 명 아래 사실상 김조순 휘하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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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환지
노론 벽파의 거두. 어린 순조의 언변에 속아서 정조 어찰첩을 전부 불사른다. 그 후에도 순조의 심계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으나, 벽파에는 심환지 외의 인물들이 아직 세대교체가 되지 않아 부족한 판이라[3] 박해가 뒤집혀 역으로 몰락하는 순간까지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고 일거에 몰락한다. 결국 서용보, 권유와 같이 사약을 받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조차 순조에게 굴복하지 않고 벽파에게 저항심과 자긍심을 심는 유언을 남기며 그를 숙청한 군왕 순조 앞에서조차 '영상'이라고 칭해진다. 그러나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벽파는 결국 해체수순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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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시파의 거두이자 대학자로 유명한 위인. 형제인 정약종이 골수 천주교도이며 본인도 그만큼 의심받아 벼슬을 그만둔 상태였으나 이공이 다시 불러오면서 조정에 다시 출사하게 된다.
토지개혁을 골자로 한 부의 재분배를 목표하는 공당을 세우게 된다. 이공의 계획을 때로는 엇나가게 만드는 행복 탓에 독자들 사이 호불호가 갈렸으나, 정약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신의 정치학이나 사상을 몰아붙이는 건 아니었고, 조선에 언제라도 명분이 설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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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주
경주 김문의 거목. 살아있는 경주 김문 적통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벽파의 쇠락 이후 고향으로 낙향한다. 이후 정순왕후와 김노경을 통해 이공의 개혁을 반대하라는 밀지를 받으나, 이공의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영남 사대부를 전부 적어서 넘긴다. 경악한 정순왕후에게 왕의 정통성과 군사력, 정치력을 따져볼 때 자신들은 다 죽어도 왕을 끌어내릴 가망이 희박한데 왜 그래야만 하느냐고 비웃는다. 설마 늙은 여인 한명 때문에 그래줄 것 같냐고 물어보며 완전히 손절한다.
이후 김사목을 경주 김문이자 벽파의 수장으로 지지하며 그를 뒤에서 받치는 역할을 시행한다. 산당에 한 자리를 차지해 박지원, 박준원 등과 투닥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십수년을 경주 김문의 거목으로 활약했으나, 어느샌가 너무나도 바뀌어버린 조선의 모습과 세대교체 되기 시작한 선비들의 모습을 보고, 과거의 조선과 선비들이 이제는 사라졌다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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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추사체로 알려진 위인. 서예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능통한 인물이다. 경주 김문의 차세대를 이을 인물로, 김일주와 김사목에게 사사건건 대들며 정순왕후와 내통까지 하던 김노경이 멍석말이 안 당한 것도 아들 김정희 덕분.
아버지와는 달리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청해서 영국행 외교관을 자청해서 배에 올라버린다. 당연히 손자의 일탈에 김일주는 경악. 한동안 영국에서 수학하다가 김일주가 천주교도들의 외교업무 파견을 지지하면서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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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목
벽파가 선을 넘는 순간. 사전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벽파를 심문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으나 언제든 이공이 자신의 목을 날릴 수 있는데도, 지방의 벽파 지지자들도 끌어낼 미끼로 살려뒀음을 깨닫고 왕의 치부를 찌르자는 정순왕후의 명령을 무시한다.
김사목의 예상대로 이공은 벽파가 지방의 사대부들까지 끌어모아서 자신의 개혁을 반대하다가 선을 넘어서 숙청할 명분을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김일주가 정순왕후와 확실히 손절하고 벽파 일부를 숙청해가면서 이공에게 고개를 숙인 덕에 벽파는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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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북학파의 거두. 높은 벼슬은 하지 못했지만 정조가 아끼던 박제가, 유득공 등의 인물들의 스승이며 그 본인도 중상학파로서 뺄 수 없는 인물이기에 이공이 다시 조정에 불러온다.
상공업의 대대적인 개혁을 논하면서도 고령의 나이 탓에 청과의 무역 개방을 본국의 산업이 짓눌린다고 반대한다. 본인 말로는 청의 저력이 어마무시한데다 책임지기도 전에 죽을 게 뻔한 자신이라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4]
비록 찬밥 신세였으나 왕의 외조부 박준원과 같은 반남 박문에 어린 소년왕의 총애를 받는 박지원이라서 산당의 사실상 키잡이로 대우받는다. 만일 박지원이 급사라도 한다면 서얼에 대한 차별을 거두기는 했지만 제자인 박제가와 유득공, 이덕무는 아직 출생의 한계로 살짝 무시당하는 신세에 정쟁에 무게감도 부족하기 때문.
사망 전에 영국의 기계와 조선의 노동력, 자원이 결합된 공장에서 나온 면포로 백성들이 차려입고, 젊은이들의 생각이 바뀌어가는 걸 보고서 안심하면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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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영
풍양 조씨. 대대적인 토지 개혁 후에 새로이 발생하는 부정 부패 소탕에 공을 세워서 인정받은 능력자.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는 언행으로[5] 순조의 흥미 반 짜증 반을 샀으나. 근왕파 대신이 되어 권세를 잡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드러낸다. 즉 김조순의 포지션에 오르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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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수
조선 삼군부 제조. 정조가 발굴한 무인으로 순조 역시 신뢰하며 자신의 호위를 맡긴다.
나폴레옹에게 모의훈련에서 크게 망신당한 일로 낙향하면서, 조선군의 대대적인 개혁을 위한 기회를 마련해준다.
4.1.3.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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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
정약용의 형. 천주교에 투신한 인물로, 박해를 피할 수 없었지만 미리 이공과 말을 맞춘 덕에 상황이 역전되면서 살아남는다.
그 후 프랑스에 간 이승훈을 대신해서 천주교도들의 마을을 조성하고 힘을 합쳐 살아가도록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수년간 그렇게 지내면서 순조의 개혁으로 점차 생활이 좋아지자 핍박받으면서도 성장하던 교세가 오히려 축소되는 것을 깨닫고 천주교의 입지를 키우기 위해서 이승훈과 같이 나라의 국책에 발맞춘 만주 이주를 자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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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원 역사에서 순교한 천주교도. 여기서는 살아남아 유럽까지 파견을 가게 된다. 여기서 나폴레옹을 만났을때 특유의 대쪽 같은 심성으로 나폴레옹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해 김건순, 황사영이 제지할 정도였으나 나폴레옹이 머지 않아 몰락할 것이라는 걸 정확히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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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순
이승훈, 황사영과 같이 프랑스로 파견을 가게 된다. 유럽의 제도와 기술에 특히 관심이 많았고, 나폴레옹의 패도를 꺼리기는 했으나, 황제라면서 속에 숨기고 티를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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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
천주교도. 원역사에서 황사영 백서 사건을 저지른 천주교의 X맨. 정약종과 다른 교인들과 같이 잡혀왔으나, 순조가 어느정도 예법을 바꿔서라도 제사를 지내고 도첩을 내려서 불교나 도교와 같이 관리하겠다고 하자 거세게 반발하다가, 어설프게 반항하거나 거짓말 말라는 경고를 듣는다. 이후 프랑스에 사절로 파견되나 나폴레옹에게 푹 빠져 항상 나폴레옹 곁에 붙어다녔고 김건순과 이승훈에게 우려를 듣지만 이를 듣는 척도 안하고 러시아 원정에도 따라갔다 실종처리되었다. 이후로는 아예 언급도 안되는 걸 보면 후퇴길에 얼어 죽었거나 카자크에게 썰렸거나 어쨌든 죽은 것으로 처리한 듯.
4.2.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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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지기트 소드남도르지
만주와 외몽골을 관할하는 몽고친왕. 청나라의 혼란으로 만주로 유출되는 난민 문제에 골머리를 썩다가 조선 사신들과 접촉해, 조선이 만주 통과를 허가받을 걸 빌미로, 난민들이 조선에서 넘어온 것으로 꾸민다.
그러나 수년 후 즉위한 도광제가 과거의 일을 묻어두고, 만주의 난민 문제를 친왕들의 태만함을 원인으로 몰면서 숙청을 피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출병할 처지에 놓이고, 이 때 접촉해온 조선의 뜻에 결국 의친왕과 같이 조선의 편에 붙어 청에서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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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제
가경제의 뒤를 이은 청나라 황제. 군기처에서 입지를 쌓으며 반란군을 토벌하면서 황태자 시기를 보내고 가경제가 별장에서 사망하면서 뒤를 이은 황제가 된다. 즉위하자마자 흔들리는 황권을 다잡을 요량으로 소드남도르지를 겁박하며 만주의 난민들을 치우라고 명해 만주에서 대학살을 일으킨다.
이를 노린 조선의 역습에 의한 전쟁조차 천조를 바로 세울 기회로 여기는 등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만주 길림성부를 시작으로 만주와 직예의 팔기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산해관이 무너지면서 수도까지 잃게 된다. 심지어 프랑스와 영국이 각자 함대를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온 것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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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조선과 인맥을 가진 친왕. 조선과 무역이 확대되면서 그의 가문도 부흥했지만, 그 조선이 도광제의 황권강화용 표적이 되자 하루아침에 멸문의 위기에 몰린다.
이에 김조순과 접촉해 정보를 주면서 적당히 합을 맞춰서 군사적 충돌은 막고, 황제의 분을 풀어줄 것을 제안하지만 역으로 배를 갈아타라는 제안을 받는다. 고민하다가 조선의 실력을 본 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전재산을 바쳐서 조선 원정군을 채비시키는 대신 군단의 지휘권을 가져간다.[6]
4.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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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요잔
요네자와 번의 전대 번주. 쇠락해가던 요네자와 번을 자기대에 재건해낸 수완가. 중계무역을 하기 위해 찾아온 박제가와 회동을 가진다. 류큐를 손에 넣고 청과 유럽과 교역하는 사쓰마 번을 예시로 들며, 어차피 빼앗길 것이라면 제 몫은 지켜야 하지 않냐는 박제가의 말에 결국 동의. 조선이 청에서 들여오는 포목을 받아서 다시 다른 번에 파는 중계무역을 시작해 사쓰마의 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4.4.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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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의 황제. 원역사처럼 유럽의 패권을 쥔 군사천재. 머나먼 조선에서 온 이승훈, 김건순, 황사영에게 관심을 가진다. 황사영은 무적의 상승장군처럼 보이는 나폴레옹의 패권 행보를 신앙처럼 찬양하게 되고, 김건순은 그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기술과 제도는 배울 점이 많다 여겨 호의적이었으나, 이승훈은 나폴레옹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걸 깨닫고 그를 경계한다.
결국 원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엘바에서 탈출해 벌인 최후의 전투에서도 패배해 몰락한다. 그러나 여기부터 원 역사와 다른 미래가 이어지는데, 나폴레옹과 그 추종자들이 살아도 살지 못한 것처럼 만들기 원하던 영국은 그를 조선에 떠넘겨버린다. 조선에 들어온 그는 일단 몰락했어도 서방 제국의 황제였기에 이공에게도 존대를 받으며 안락한 삶을 살게 된다. 물론 갑작스러운 폭탄 떠넘기기에 열받은 이공은 단순히 그를 놀릴 생각은 없었고... 나폴레옹은 점차 조선의 군제 개혁과 신무기 도입 사업에 의견을 내게 된다.
당시 유럽인들은 청나라를 강대국이라 경계하고 있었으며, 나폴레옹도 이는 똑같았다. 때문에 러시아나 영국, 프로이센을 상대할 때 못지않은 열정과 주의를 가지고 군사작전을 세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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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나폴레옹의 패전으로 파멸할 위기에 놓인 프랑스를 구해낸 외교관. 원 역사대로 중반부 이후부터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고립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그의 행보를 막아세우려고 노력했다. 결국 프랑스는 패전했으나, 탈레랑은 프랑스가 재기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조선에서 온 사절단과 접촉해 일부 기술자들을 조선으로 보내서 성공의 발판을 만들어준다.
5. 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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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공당의 등장
원 역사 벽파의 몰락과 시파의 재등용, 대대적인 개혁 예고와 경장안만을 평가하는 군주 이공의 치세가 시작된다. 전처럼 학풍과 사상만 가지고, 상대를 몰락시키려고 들어서는 왕의 손에 죽는다는 걸 깨달은 정약용, 김일주 등 새로운 조정의 거목들은 주류에서 밀려난 중상학파를 불러모으는 등 이공이 좋아할만한 경장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 든다.
의도는 좋았지만 하나 문제가 있었는데, 이공이 몇번이나 조정을 두고 뒤에서 작전을 짜는 신하들을 저격했었는데 이 때문에 신하들이 수시로 국왕과의 독대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에 피곤한 이공은 아예 그들이 따로 회의를 할 건물을 마련해주는데 이것이 정약용이 주도한 공당,[7] 김일주,김사목의 산당.[8]으로 두개 당으로 나뉘어진다. 이공은 묶어부를 때는 반드시 산공당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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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의 번 세력 구도 변화
본래 근대에 이르러 막부와도 맞서 싸우며 무진 전쟁까지 일으켜 일본의 주도권을 쥔 세력은 삿쵸 동맹으로 잘 알려진 조슈 번과 사츠마 번처럼 일본 서남부 번들이었다. 특히 사츠마는 이 당시에도 류큐를 점령하고 청과 사무역을 벌이며 막대한 수익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과 협업해 증기기관을 들여와서 면포 공장을 차린 조선은 영국과 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큰 시장이 필요했다. 이공이 떠올린 것은 일본 동북부의 번들이었다. 막부 자체는 쇄국 중이었으나, 사츠마 번처럼 독자적으로 교역을 할 수 있을만큼 번주들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을 떠올린 이공은 곧 요네자와 번을 비롯한 동북부 번주들과[9] 비밀리에 접촉해 자신들의 면포를 사서 다른 번에 다시 파는 중계무역을 제안했고, 요네자와 번의 우에스기 가문을 필두로 야심만만한 번주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적자를 걱정한 영국에게 류큐의 실태와 번들의 각자도생 기질을 알려주면서 동인도회사의 함대가 류큐의 사츠마 군을 공격하게 한다. 당연히 류큐는 물론 본토까지 공격받자 사츠마 번은 미쳐 날뛰었으나 어디까지나 이익을 보던 건 사츠마 번. 다른 번들이 이제와서 이득을 독점하던 사츠마를 도와줄 이유가 없었기에 해전은 영국 함대의 대승으로 끝나고 영국은 일본 서남부를 시장으로 손에 넣는다. 조선과 동북부 번들은 면포 중계무역으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고, 영국도 청에서 본 적자를 일본에서 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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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전쟁
일의 시작은 전쟁 자체보다 10년은 먼저 계획되었던 일이었다. 당시 대청 무역으로 먹고살던 상인들이 많은 서북의 안정과, 영국에 제안한 면포공장이 이득을 내기 위해서는 청나라에 공무역을 제외하고도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해야 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가경제에게 아편중독에 도움이 되는 조선산 인삼을 어필하거나 하면서 만주의 통금을 해제하고 무역을 위한 길을 사용하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청은 각지에서 터지던 반란과 그 뒷처리로 혼란스러웠으며, 여기다 번국의 작은 부탁을 어겨서 반감을 사서 혼란을 더 키울 수는 없다고 여기고 이를 받아들여준다. 그러나 뒤에서는 청나라 군기처와 김조순 사이에 하나의 밀약이 더 맺어진다. 이는 만주의 난민들은 조선인이다.라는 일종의 합의였는데, 사실 가경제가 즉위 초기부터 이미 만주에는 수십만 이상의 한족 난민들이 들어가 살고 있었다. 만주의 팔기와 친왕의 책임방기와 사욕이 어우러진 결과였으나, 어쨌든 잘못하면 고관대직 여럿의 목이 날아갈 법한 망신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만주의 난민들은 청국인이 아닌 조선계 불법 월경자로 여겨지며 무자비하게 착취당하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적지 않은 수의 난민들이 아예 자기들은 조선인이라고 고향을 바꿔대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렇게 수년이 흐르고, 조선은 서방의 문물을 받아들여 정예군을 양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밀리에 천주교도들과 전 삼군부 제조 백동수, 변경의 군관들을 만주로 잠입시켜 뒤에서는 총기와 물자를 지원해 민병대를 결성시킨다. 가경제 사후 즉위한 도광제는 자신의 황권을 확고하게 만들 작정으로, 자신도 합의하고 단물을 받아먹었던 만주의 난민 문제를 건드린다. 이에 만주의 친왕들은 황제의 분풀이를 피하기 위해서 만주 난민들을 대대적으로 핍박한다.
이에 길림장군 푸준은 기병 3천, 보병 6천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청소작업에 들어간다. 순조롭게 난민들을 학살하던 푸준이었으나, 수년에 걸쳐 백동수와 조선 군관들이 조직한 민병대에 역토벌 당해 대패하고, 푸준은 성난 백성들에게 산채로 찢겨죽는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를 시작으로 조선에서는 청의 일방적인 폭거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선전포고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도광제와 청의 중신 대부분은 사태를 낙관하고 있었다. 도광제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친조선 파벌 친왕이던 의친왕과 몽고친왕을 압박한다. 결국 두 친왕은 숙청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가며 조선 원정군을 준비한다.
6. 여담
작가의 닉네임(탈닌)과 더불어 숙청에 능숙하고 냉혹한 면모를 보이는 주인공의 성격 탓에 주인공에게 순탈린(순조+스탈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탈닌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정립된 시발점이기도 한데 이 순탈린과 다음작품인 단종이 너무 강함(일명 단탈린)에 이어 소현세자는 아빠가 너무 싫다까지 일관되게 모략과 권모술수로 초반에 정국을 휘어잡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이 영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과 작중에서 외국을 등쳐먹으면서 조선을 키우는 제국주의적 행보를 보여 미래의 혐성을 퍼트린다는 드립도 종종 나온다. 주인공 자신도 자기가 하는 행동이 제국주의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국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는 등 전혀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 전개에서 벽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장면이 나온것 때문에 노론음모론 논란이 있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노론음모론이 아니다. 애초에 주인공은 처음에는 벽파를 전멸시킬 생각이 없었다.
[1]
전작으로 삼국지: 유선의 동생이 되었다.
[2]
실제 역사에서도 순조가 장성하자 수렴청정을 거뒀다가, 자신의 수족들이 예상 외로 몰리자 재수렴을 하려고 들어서,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제정신이십니까?"라며 대거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실패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던 권력에 미친 인물이다.
[3]
실제로도 벽파는 정순왕후 사후 꼴랑 2년만에 몰락했다. 인재가 없다고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심환지 사후에는 단합력이 산산조각 났던 듯.
[4]
박지원이 청을 방문한 시기에 청은 전성기 말이었다. 그러나 이후 가경제 치세에는 가경제의 허울뿐인 개혁, 묘족과 백련교의 연이은 난과 그로 인해 드러난 중앙군의 무력화, 점차 퍼지기 시작하는 아편의 폐해로 쇠락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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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뜻을 알아서 움직였다는 말을 대놓고 한다.
양수가 생각나는 일이고, 순조도 경고하나 설령 언젠가 토사구팽당하더라도 좋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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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문의 기둥뿌리를 뽑는 대신에, 여차할 경우 무장사병들을 보전할 수 있고, 덕분에 의심도 꽤 풀어서 일가족을 북경에서 탈출시켜 몽골로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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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을 필두로 한 빈부격차 완화를 중시 여기는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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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산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정당. 사실 김일주와 김사목은 개혁안을 짜내는 걸로는 명학자이자 수십년을 고민한 정약용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박지원과 그 제자들을 영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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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 따지자면 도호쿠. 혼슈에서도 북쪽 지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