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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11:31:58

요안니스 3세(트라페준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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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요안니스 3세(트라페준타 제국).jpg
이름 요안니스 메가스 콤니노스
(영어: John Megas Komnenos, 그리스어: Ἰωάννης Μέγας Κομνηνός)
출생 1321년
사망 1362년
직위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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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라페준타 제국 제15대 황제.

2. 생애

1321년경 미하일 메가스 콤니노스 안드로니코스 2세의 핵심 관료였던 콘스탄티노스 아크로폴리티스의 딸 아크로폴리티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트라페준타가 아닌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살았다. 1341년 부친이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로 재위할 뻔 하다가 메가스 둑스 직책을 맡은 환관 요안니스에 의해 림니아에 투옥되었을 때, 그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었다. 1342년 스콜라리의 지도자인 니키타스 스콜라리스와 그레고리오스 메이초아티스는 안나 여제를 축출하여 권력을 쟁취하기로 결의하고, 베네치아 선박을 타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잠입한 뒤, 그를 찾아가서 트라페준타 황제로 추대하겠다고 제의했다.

요안니스는 이를 수락하고, 3척의 제노바 겔리선과 2척의 트라페준타 소속 선박을 타고 트라페준타로 향했다. 1342년 9월 트라페준타에 도착한 뒤 요새로 진입했다. 안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황궁에서 사로잡혔고, 스콜라리들에 의해 목이 졸려 죽었다. 그해 9월 4일 크리소케팔로스 교회에서 대관식이 열렸고, 그 직후 안나를 추종했던 귀족들이 처형되거나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돌아오면 황위를 넘겨줄 걸 우려했는지, 부친을 구출하려 하지 않았고 사치와 방종에 몰두해 자신을 옹립한 스콜라리 세력의 반감을 샀다. 1344년경, 니키타스 스콜라리스는 림니아로 행군하여 미하일을 풀어준 뒤 패륜아를 폐위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트라페준타로 진격했다. 그해 5월 3일 요안니스는 성 사바스 수도원으로 추방되었고, 부친 미하일이 황위에 올랐다.

이후 요안니스는 반대 세력의 추대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부친의 의도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졌고, 1345년 아드리나오폴리스로 옮겨졌다. 1357년 시노페로 이동하여 황위에 복귀하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36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