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6:22

왕필(후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유학자 겸 상서랑에 대한 내용은 왕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王必
? ~ 218년

[clearfix]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2. 정사 삼국지

조조의 부하로 삼보의 난 때 조조가 연주으로 임명되자 왕필이 사신으로 파견되어 헌제에게 글을 올렸다.

주부, 승상장사 등을 지냈으며, 여포가 조조에게 붙잡혔을 때 포박을 느슨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주부였던 왕필은 여포는 사나운 무리이고 그 무리들이 가까이 밖에 있어 느슨하게 해주면 안된다고 진언했다.

승상장사일 때 조조가 병사를 맡아 허도의 일을 감독하도록 남겼고 218년 봄 정월에 소부 경기, 사직 위황, 태의령 길비와 그의 아들 길막, 길목 등이 공모해 반란을 일으켜(경기-위황의 난) 허도를 공격해 자신의 진영에 불을 지르고 어깨에 화살을 맞아 부상당했으나, 공격하는 자가 누군지 몰랐던 왕필은 평소 친하던 김의의 집으로 달아나 의탁하려고 했다.

왕필은 밤에 김의를 부르자 김의의 집안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 얘기했는데, 그들이 길막 등으로 착각해 왕장사가 이미 죽었냐면서 그대의 무리들이 일을 이뤘다고 하는 왕필 입장에서는 호러 것을 듣고 다른 길로 달아났다. 일설에는 그의 장하독이 오늘 일이 어느 집안인지 아시는데 거기로 들어가겠냐고 물으면서 부축을 받아 남성으로 달아났으며, 날이 밝아오자 길막 등이 왕필이 죽은 줄 알고 흩어졌다가 패배했다고 한다.

왕필은 전농중랑장 엄광과 함께 그들을 토벌했지만 10여일이 지나 상처 때문에 죽었다고 하며, 조조가 왕필이 죽은 것에 크게 분노해 의 백관들을 업성에 불러 오게 했다가 불을 끄러 나온 자는 왼쪽, 끄러 나오지 않은 자는 우측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불을 끄는 것이 반드시 죄가 없을 것이라 여겨 모두가 왼편에 붙었는데, 조조가 불을 끄러 나오지 않은 자들은 반란을 도운게 아니라면서 끄러 나온 자들이 실제 적이라면서 모두 죽였다고 한다.[1]

조조는 왕필에 대해 자신이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부터 따르던 사람으로 충성스럽고 유능하면서도 부지런하며, 마음이 쇠나 돌처럼 굳어 훌륭한 관리로 때를 놓쳐 오랫동안 왕필을 부르지 못했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2]

반란의 상세 사항은 무제기에서 주석으로 나온 위무고사, 삼보결록, 헌제춘추, 산양공재기 등에서 인용되었다.

3. 삼국지연의

반란으로 죽은 조조의 충실한 부하였다는 왕필의 역사적 행적이 촉한정통론 괘씸죄(?)로 찍혔는지 무능한 관리로 나와 사마의가 술을 너무 좋아하고 성품이 너그럽기만 하고 엄하지 못해 이 일을 맡기기 힘들다고 할 정도였으며, 왕필이 김의의 집에 상처를 치료하러 들어갔다가 김의가 반란에 가담한 것을 알게 된 것은 김의의 아내가 왕필을 죽였냐고 한 것 때문으로 나온다.

일부 창작에서는 조조의 냉혹한 성격에 시너지를 더하여 아예 반란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쓰이는 등 연의와 연의 기반 삼국지 창작물에서의 그야말로 대접이 영 좋지 않은 삼국지의 대표적 피해자.[3]

4. 대중 매체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278.jpg
삼국지 13 PK, 14

삼국지 13 PK에서 추가되었다.

삼국지 13 PK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른쪽 손가락을 위로 올리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력 63/무력 48/지력 65/정치력 68. 특기는 문화 1, 순찰 2, 교섭 2. 중신특성은 화기생재이고 전수특기는 교섭이며 전법은 궁공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8, 무력 43, 지력 57, 정치 64, 매력 66으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5, 지력이 8, 정치력이 4 하락했다. 개성은 진흥, 진화, 주란, 주의는 왕도, 정책은 지역순회 Lv 2, 진형은 방원, 전법은 고무, 친애무장은 김의, 조조, 혐오무장은 없다.

4.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파일:전략왕필.png

무능을 드러내는 외모를 보여주지만 반군의 화살에 맞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죽은 척 하기를 이용해 몰래 빠져나가고, 친구 김의의 집에 갔더니 그가 반란에 가담한 것을 알고 아군을 찾아 도움을 청하는 근성을 보여준다. 난이 진압된 후 상처 악화로 사망한다.

4.3. 배철수의 만화열전 고우영 삼국지

성우는 정성화. 나레이션인 배철수가 소개하기를 ' 소크라테스같은 인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소크라테스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닌 공처가 소크라테스를 뜻한다. (...)

조조가 위왕에 자리에 오르면서 수도를 업으로 옮기게 되어 허도를 책임질 책임자로 그 누구도 예상못한 왕필을 앉히는데, 이것은 조조가 아직도 자신에게 반항하는 한실의 신하들을 걸러내기 위해 미끼로 왕필을 내세웠던 것. 조조의 예상대로 김위와 경기, 위황 등의 한실의 신하들은 정월대보름 행사에 맞춰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어림군을 장악하지만, 이미 모든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조조는 하후돈 기갑부대(?!)[4]를 보내 반란군과 반란에 가담한 백성들을 잔인하게 진압한다.

왕필은 반란이 일어나기 전 김위와 술을 마시다 허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나서다 경기가 쏜 화살에 맞아 사망. 만화 본편에서는 화살에 맞은 채 도망치다가, 조조가 모든 뒤처리를 다 끝낸 뒤에 뒤늦게 반란 소식을 알리고 픽 쓰러져 죽는다. 이 때 주위 사람들의 표현이 일품. '올림픽 마라톤 때 시상식에 폐회식까지 다 끝난 뒤에 들어오는 선수 같구먼.'. 조조도 저 바보의 꼴을 보라며 비웃는다.

4.4. 고우영 삼국지

알콜중독자에 무능한 인물로 나온다. 사실 이런 보잘 것 없는 인물에게 중책을 준 이유로 조조에게 반감을 품은 불순세력들을 걸러내기 위함이였다. 조조의 계획대로 경기, 김위 등 반 조조세력이 왕필을 우습게 보고 난을 일으키고 사전에 예측한 조조에 의해 일망타진된다. 왕필은 왕필대로 난리 도중에 입은 부상이 도져 죽는데 조조는 잘써먹었다는 투로 그의 죽음을 비웃는다.

여담이지만 본편 한정으로 왕필의 아내는 악처 수준을 넘어 의부증 부정망상 증세가 심각하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옷에 묻혀온 머리카락을 보고 바람을 피웠다고 마구 구타를 하더니 머리카락을 안 묻혀오자 "니가 이젠 대머리 여자 바람핀다 이거제? 일루 와. 니 오늘 죽었어~!!!"라고 할 정도(...)

4.5. 신삼국

본인은 등장하지 않지만 불을 끄러 나온자와 그렇지 않은자를 구분하는 내용은 그대로 재현됐는데 말도 안되는 OX로 사람을 도살한 연의의 조조와 달리 여기선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 일단 조조가 그냥 가만 있던 사람은 백기 아래에 불을 끄러 나와 적과 맞서 싸운자는 홍기 아래에 서라고 하자 상당수가 홍기 아래에 섰는데 조조는 백기 아래에 있는 자들에겐 금수문양을 내리니 각자일을 보라고 하며 홍기 아래에 선 자들을 모두 체포하라 지시하고 홍기밑에 선 사람들은 그저 불을 끄러 나왔을 뿐이라고 억울해하자 너희처럼 기력이라곤 없는 문신놈들이[5] 무슨 힘이 있다고 불을 끄고 적과 싸우냐며 너희가 오복루에 온건 적을 도운 것이라며 그들을 모두 참수하라고 지시한다.

4.6.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

황족 유막의 시종으로 과거에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떠돌다가 유막이 거둬줬다고 하며, 5년간 유막을 섬기다가 조조가 형양 전투에서 패하고 원소에게 의탁하기 전에 양주에서 군사를 모집하려고 하면서 조조와 만나게 되었다. 유막은 황실로 가기로 하면서 조조의 수하가 되어 시종이 된다.

조조가 연주에 기반을 마련하자 글을 읽을 줄 아는데다가 이전의 주인이었던 유막이 낙양에 있다는 이유로 주부에 임명되어 조조가 정식으로 연주 자사에 임명될 수 있도록 낙양으로 향했는데, 중간에 장양에게 붙잡혔다가 그 수하인 동소의 도움으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해 조조를 조정의 칙령에 따라 연주자사에 임명된다. 이후 행군주부에 올라 조조 군영의 장수들을 감독하고 정보를 보고했다.

옥대밀조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유수상부에 임명되어 허도의 일을 담당했고 경기, 위황 등이 군사를 일으켜 부상을 입고 진압하기 위해 말 위에서 지휘하다가 고꾸라졌고 결국에는 사망했다.


[1] 물론 이는 조조의 다분한 궁예질이었다. [2] 조조의 수하 문관으로는 거의 최고참급인데 진궁, 허사, 왕해, 필심, 위충 장막이 난을 일으킬 때 나갔고 조지, 임준은 일찍 사망해서 짬으로는 순욱, 정욱과도 안 밀린다. [3]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조조의 심복 측근으로써 일해온 걸로 봐서 위험인물로 찍히지도 않았을테니 토사구팽으로 버려졌을 가능성은 영 희박하다. [4] 고우영 삼국지에서 만화적 허용으로 진짜 기갑부대로 등장한다.조조가 이런 전차부대를 가지고 있었으면 벌써 천하통일쯤은 하고도 남았다 [5] 참고로 뒤에 밝혀지길 이들은 대부분 황궁 내시들 이라고 한다.고자인것도 억울한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04
, 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04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