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철도사고 요약도 | ||
발생일 | <colbgcolor=#fff,#191919>1973년 8월 12일 04시 43분경 | |
유형 | 탈선 및 화재 | |
원인 | 졸음운전으로 인한 과속 | |
발생 위치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884 경부선 영동역 |
|
탑승인원 |
기관사 1명 기관조사 1명 차장 1명 |
|
피해 | 인명 |
주민 사망 32명 중상 5명 경상 4명 |
차량 | 유조화차 23량 폭발 및 전소[1] | |
시설 | 역 주변 민가 25동 전소 | |
운영기관 | 대한민국 철도청 | |
사고열차 | 열차번호 | 제1042열차 |
편성 정보 |
벙커C유 12량 나프타유 1량 항공유 8량 AP유 3량 솔벤트 1량 휘발유 3량 경유 3량 설탕 2량 쌀 2량 석회가루 1량 기관차 1량 |
|
출발역 | 장생포선 장생포역 | |
종착역 | 경원선 청량리역 |
[clearfix]
1. 개요
1973년 8월 12일 오전 4시 43분에 영동역에서 벌어진 유조열차 폭발 사고. '영동역 유조열차 탈선 사고'라고도 한다.2. 사고 진행
새벽 4시 40분 청량리로 향하던 1042열차는 과속해 미륵역을 통과했고, 이를 목격한 미륵역 직원이 영동역에 급히 무전을 보내 화물열차의 과속 사실을 알렸고, 무전을 수신한 영동역의 박희범(당시 54세) 조역이 무전으로 다급하게 "과속이다. 속도를 줄여라."라고 지시하였으나 응답이 없었다.또한 열차 후미에 탑승하고 있던 차장 구자인도 과속으로 미륵역을 통과하는 것을 목격하고 제동장치를 수 차례 당겼으나 열차는 영동역을 향해 70㎞/h의 속도로 과속하고 있었다.
한편 영동역 구내의 상행선 선로는 선로 다지기 공사가 한창이었고 이로 인해 임시로 하행선 선로로 운행해야만 했다, 문제는 당시 열차의 운행 속도가 영동역 구내 제한속도인 30㎞/h의 두 배인 80㎞/h로 영동역에 진입했던 것.
미륵역 통과 3분 후인 새벽 4시 43분,[2] 영동역 역무원 배석원(당시 40세)이 사고열차 수신호를 위해 역 승강장으로 나가고, 당시 조역이었던 박희범(당시 54세) 역무원이 모래주머니를 들고 나갈 때 쯤 승강장에서 50미터 떨어진 상행부본선으로 진입하던 중 기관차가 원심력으로 인해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쓰러지며 유류탱크가 연쇄적으로 폭발하였다.
이후 불길을 뚫고 들어간 구조반에 의해 후미에 연결되어 있던 벙커C유 화차 8량은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열차에서 분리되었다.
폭발로 인해 불기둥이 300m나 치솟았고, 이로 인해 철로 주변 민가 25채가 전소되었고 주민 40여명이 소사(燒死)하였다.
규모가 큰 화재여서 영동소방서의 소방관과 경찰, 예비군 인력과 대전, 청주, 옥천, 보은, 무주, 김천 등지에서 소방차 13대와 대전 주둔 미군 소방대와 공군 소방대를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류화재 소화약품의 부족으로 불길은 사고 발생 13시간 만인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잡히기 시작했고 선로복구 작업도 12일 오후 6시에 완료, 시체 발굴은 13일 0시에 시작되었다.
3. 사고 원인
경찰조사에 따르면 기관사의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1973년 당시 철도청 소속의 기관사가 1,584명에 기관차가 586대였는데 외국의 경우 기관차 한 대당 승무원 다섯 명이 붙는 걸 감안하면 인력이 부족했고, 기관사 1인의 1개월 근무규정 시간은 192시간인데,[3] 보통 규정시간보다 30~50시간 이상을 초과근무를 찍는 것이 다반사에, 6등급 6호봉의 월급이 64,770원으로 보일러 기술자와 비등한 수준이었다.[4]
- 기관사가 졸 경우를 대비한 과학적 대응책이 미비한 것도 주 원인으로 지적되었다.[5]
- 하술하듯이 대전, 청주, 옥천, 보은, 무주, 김천 등지에서 13대의 소방차가 달려왔으나 정작 유류화재 진압이 가능한 차량은 대전에서 온 1대 뿐이었다.
결국 열악한 대우와 빡빡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고 당시 열차의 기관사는 23년간 무사고 기록을 남겼던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그 숙련된 베테랑도 과로로 인한 졸음 앞에선 무력했던 것.[6]
4. 사고 이후
이 사고로 45가구 231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사망자들은 영동고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안치소에 안치되었다.철도청은 영동군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고대책수습본부를 통해 희생자 한 명당 80만원씩(미성년자는 40만원), 가옥 가구당 실비보상을 지급하고 부상자 치료비를 전액 부담키로 했다.
5. 참고 자료
6. 둘러보기
역대 대한민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word-break: keep-all; min-width: 100px; min-height:2em" {{{#!folding [ 2020년대 ] {{{#!wiki style="margin:-5px 0" |
발생일 | <colcolor=#000> 사망 | 사건명 |
2024년 6월 24일
|
23 | ||
2022년 10월 29일
|
159 | 이태원 압사 사고 | |
2020년 4월 29일
|
38 |
-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19년 5월 29일27 25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2018년 1월 26일51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2017년 12월 21일29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2017년 3월 31일22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고 2014년 12월 1일27 501오룡호 침몰사고 2014년 5월 28일21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사고 2014년 4월 16일299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10년 12월 13일22 제1인성호 침몰 사고 2010년 3월 26일46 천안함 피격 사건
- [ 200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08년 1월 7일40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03년 2월 18일192 대구 지하철 참사 2002년 4월 15일130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25일25 제7호 태창호 사건 2001년 9월 11일2,996 28 9.11 테러 2001년 7월 24일20 진주 관광버스 추락 사고 2000년 10월 27일22 장수 88올림픽고속도로 추돌 참사
- [ 199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99년 10월 30일56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1999년 6월 30일23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1998년 10월 29일27 부산 범창콜드프라자 화재 1998년 7월 31일~8월 1일103 1997년 8월 6일 228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1996년 7월 26일20 철원 군부대 산사태 1996년 4월 4일21 양평 버스 추락 사고 1995년 8월 21일37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1995년 6월 29일502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5년 4월 28일101 1994년 10월 24일29 충주 제5호 화재사고 1994년 10월 21일32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3년 10월 10일292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7월 26일68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6월 10일20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 1993년 4월 19일34 논산 정신병원 화재 1993년 3월 28일78 1993년 1월 7일28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1992년 10월 22일28 대양하니호 침몰 사고 1991년 11월 3일22 인제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11월 4일21 소양호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9월 1일25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추락사고
-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89년 9월 17일24 전북 모래재 버스 추락 사고 1989년 7월 27일79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1988년 3월 25일22 안양 봉제공장 화재 1987년 11월 29일115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년 8월 29일32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1987년 6월 16일29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1986년 7월 30일21 고창 거룻배 전복 사고 1985년 1월 11일38 양강교 버스 추락사고 1984년 3월 24일29 영덕 시루봉 CH-53 추락 사고 1984년 1월 14일38 부산 대아호텔 화재 사건 1983년 10월 9일25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1983년 9월 1일269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4월 18일25 대구 초원의집 화재 1982년 6월 1일53 청계산 C-123 추락사고 1982년 4월 26일62 우순경 사건 1982년 2월 5일53 제주 C-123 추락사고 1981년 11월 22일33 부산 금정산 버스 추락사고 1981년 5월 14일55 경산 열차 추돌사고 1981년 2월 28일24 대림호 침몰 사고 1980년 6월 5일23 광주 지하살롱 화재 사고
-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79년 10월 27일26 은성탄광 화재 1979년 4월 14일44 함백 탄광 폭발사고 1978년 7월 23일33 한강대교 버스 추락 사고 1977년 11월 11일59 이리역 폭발사고 1976년 10월 28일34 동해 어선 조난 사고 1976년 5월 18일23 답곡리 버스 추락사고 1976년 2월 28일32 화천 버스 추락사고 1974년 11월 3일88 대왕코너 화재사고 1974년 6월 28일28 대한민국 해경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 1974년 2월 22일159 YTL30호 침몰 사건 1973년 8월 12일32 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고 1973년 5월 16일22 영일 건널목 열차 추돌사고 1972년 12월 24일30 파크로버호 침몰 사고 1972년 12월 2일53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1972년 8월 1일26 의암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12월 25일166~191 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0월 13일20 남원역 열차 추돌사고 1971년 5월 10일80 청평호 버스 추락 사고 1971년 5월 10일31 질자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 15일326 남영호 침몰사고 1970년 11월 5일31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1970년 10월 14일46 모산 수학여행 참사 1970년 8월 21일25 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참사 1970년 4월 8일33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69년 9월 17일37 창녕 기관선 - 남지교 충돌 사고 1969년 1월 31일41 천안 열차 추돌사고 1968년 10월 30일48 산청 버스 추락 사고 1968년 1월 8일41 함양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10월 16일42 금릉 버스 추락 사고 1967년 9월 15일29 삼양수산 원양어선 침몰 사고 1967년 4월 8일80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1967년 1월 19일39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년 1월 14일93 한일호-충남함 충돌 사고 1967년 1월 1일41 서문시장 화재 1966년 1월 18일22 중구 남산동 판자 아파트 화재 1964년 7월 29일95+ 서해 어선단 실종 사고 1963년 10월 23일49 여주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 1963년 6월 25일70 거제 장승포 산사태 1963년 1월 18일140 연호 침몰 사건 1962년 9월 7일36 한남동 나룻배 침몰 사고 1960년 3월 2일62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1960년 1월 26일31 서울역 압사 사고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59년 7월 17일67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 1957년 2월 22일21 한강 미 공군 C-124A 추락 사고 1956년 1월 12일66 태신호 화재 1955년 3월 2일42 부산역 열차 화재 1953년 11월 27일29 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월 31일56 오산 건널목 추돌 사고 1953년 1월 25일66 행운환 침몰 사고 1953년 1월 9일330 창경호 침몰 사고 1952년 11월 16일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1년 7월 11일94 제5편리호 침몰 사고 1951년 7월 11일30+ 제13호 침몰 사고 1950년 6월 30일23 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49년 10월 5일71 평해호 침몰 사고 1949년 8월 18일51 대강 터널 질식 사고 1948년 6월 8일150 미군 독도 오폭 사건 1947년 8월 19일23 태양환호 침몰 사고 1946년 11월 13일42 영등포역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10월 22일59 어청도 기뢰 폭발 사고 1945년 9월 29일73 대구역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24일549~,000+우키시마호 사건
[1]
벙커C유 4량, 나프타유 1량, 항공유 8량, AP유 3량, 솔벤트 1량, 휘발유 3량, 경유 3량.
[2]
당시 영동역과 미륵역 간 거리는 약 7㎞였다고 한다.
[3]
하루 평균 7시간.
[4]
당시 숙련기관사의 대부분이 보일러면허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철도 기관사의 대우가 얼마나 열악한 지 알 수 있는 대목.
[5]
당시 철도청에서는 기관사가 사전에 서행구간을 홛인하고 서명을 받는가 하면, 승무원들이 전방의 장애물이나 신호를 확인하는 복창을 필히 하도록 안전수칙을 갖추고 있었으나, 기관사가 졸 경우에 대한 졸음방지 내부규정에 따르면 야간열차에 기관사/기관조사가 조는지 감시하는 지도원을 동승시키거나, 기관사나 기관조사 중 한 명이 졸면 물을 끼얹거나, 통과역에서 직원이 나와 모래주머니를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6]
11일 오전 6시 40분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같은 날 23시 24분에 제1042열차에 탑승하여 동대구역을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