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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09:19:35

열성어필

列聖御筆

1. 개요2. 내용3. 규장각본4. 장서각본5. 국립중앙도서관6. 국립고궁박물관7. 같이보기

1. 개요

조선 시대 역대 국왕들의 어필(御筆)들을 모아 수록한 책.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소장되었다.

2. 내용

조선시대에 어필은 제왕의 품격을 전해주는 상징물로 인식돼 국가적 차원의 최고보물로 여겼고, 왕이 새로 즉위하면 선왕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전대 왕의 어필간행 작업을 거행했다. 어필 발간은 왕명에 따라 종친부가 주도했고, 어필이 완성되면 왕과 세자에게 먼저 올리고 사고 등 관련 관서와 여러 봉안처에 나눠 간직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대규모의 전란을 거치면서 상당수 어필이 멸실되어 버렸다. 이에 1662년( 현종 3년) 남아있던 역대 임금 9명의 어필을 모아 열성어필을 처음 간행하였다. 1679년( 숙종 5년), 1722년( 경종 2년), 1725년( 영조 1년)에 점차 증보되었다.

옆나라 일본 또한 조선 임금의 어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에도 막부는 1642년( 인조 20년), 5차 조선 통신사의 방문에 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자 사당인 닛코 동조궁에 걸어둘 어필을 부탁하였는데 어필을 국외로 보내는 것에 대한 조정의 반대가 있어 이때는 의창군 이광이 대필하여 보냈다. 1655년( 효종 6년)에도 다시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사당인 다이유인(大猷院)에 걸어둘 어필을 요청했는데 이번에는 거절하기 어려워 효종이 직접 영산법계숭효정원(靈山法界崇孝淨院)이란 편액을 어필로 써서 6차 조선 통신사를 통해 선물로 준 바 있다. #

3. 규장각본

규장각본과 장서각본에 대한 내용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 왕실 자료 분류별 해제 : 3. 국왕의 서화 부분을 참조하였습니다.

현존하는 규장각 소장 왕실 어필 자료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현존하는 열성어필의 수는 적지 않은데 그 대부분은 규장각에 전하고 있다.
『列聖御筆』[1](奎 10310, 10311)은 역대 국왕들의 친필을 모아놓은 책으로 권말의 발문에 ‘皇明崇禎紀元後癸卯仲春’이란 기록으로 보아 1663년(현종 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列聖御筆』[2](奎 9833)는 1책, 2책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1책은 어필의 탁본을 모아놓은 것으로 〈奎 10322〉, 〈奎 10324〉, 〈奎 10326〉본과 동일한 판본이며 1725년(영조 1년)에 제작되었다. 제2책은 어필을 목판에 새겨서 찍은 것으로 〈奎 9828〉, 〈奎 9829〉, 〈奎 9832〉본과 동일한 판본이다. 『列聖御筆』[3](奎 10323, 10327)은 문종·세조·성종·인종·명종·선조·원종·인조·효종·현종·숙종 등 11왕의 어필이 수록되어 있으며, 『列聖御筆』[4]는 13왕의 친필이 수록되어 있다. 『御製御筆』[1]은 우측 상단에 열성어필이란 제목이 있고, 판심제는 ‘탁지정례’이다. 매면 4행 8자. 『列聖御筆』[5]-1은 다섯 왕의 어필과 난 그림이 수록되어 있으며 『列聖御筆』[5]-2는 여섯 왕의 어필과 난 그림이 들어있다. 『列聖御筆』[6]은 네 왕의 어필과 도장이, 『御前親幕題名帖』는 정조 때 만들어진 것이다.

4. 장서각본

규장각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규장각 다음으로 자료가 많으며 간략히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5.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본은 경종 3년, 1723년에 태조부터 경종까지의 국왕들의 친필을 모은 것이다.

으로 총 102쪽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열성어필 항목을 참조.

6.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본은 열성어필탁본첩(列聖御筆拓本帖)이라 되어 있으며 문종에서 숙종 때까지 필체를 모아놓았다. 고급스러운 능화(문양)판을 비단으로 짜서 만든 최고급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열성어필탑본첩

7.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