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우트로피우스 (Eutropius)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마기스테르 메모리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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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정치인, 역사가. 4세기에 활동한 인물로, 로마 제국의 역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2. 생애
출생지에 대해서는 보르도 출신이라는 설,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설, 소아시아의 그리스계 인물이라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지만 정설은 없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마기스테르 메모리아이(magister memoriae: 황실 서기관)에 취임했고, 363년 사산 왕조와 전쟁을 벌인 율리아누스와 동행하며 원정 상황을 착실하게 기록했다. '배교자 황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반그리스도교 성향이 강했던 황제를 근처에서 모실 수 있었으니 그 역시 이교도였던 듯하다. 발렌스 황제 시기에도 살아 있었는데, 황제에게 로마의 역사를 요약한 저서를 바쳤다. 387년 집정관을 역임한 에우트로피우스와 동일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3. ≪로마 사략(Breviarium Historiae Romanae)≫
에우트로피우스는 364년에 요비아누스 황제가 죽고 발렌스가 새로운 황제가 되자, 학문이 짧은 임금이 로마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이해하도록 ≪로마 사략≫을 집필했다. 그는 저술의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건국에서부터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쟁들이나 시민들의 일들에 있어서 두드러지는 로마의 역사를 시간순에 따라 간략히 이야기식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이 책은 기원전 753년 로마시 창건부터 364년
요비아누스 황제 사망년까지 1116년에 걸친 역사를 총 10개 범주로 구성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1.
갈리아 대참사까지의 로마의 초기 역사(
리비우스의 <로마사> 1~5권 참고)
2.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정복( 리비우스의 <로마사> 6~15권 참고)
3. 리구리아 전쟁과 제2차 포에니 전쟁( 리비우스의 <로마사> 16~30권 참고)
4.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와의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 유구르타 전쟁( 리비우스의 <로마사> 31~65권 참고)
5. 마리우스의 부상( 리비우스의 <로마사> 66~86권 참고)
6. 술라의 내전, 카이사르의 내전, 카이사르의 죽음( 리비우스의 <로마사> 87~116권 참고)
7.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후계자들( 리비우스의 <로마사> 117~142권 참고, 수에토니우스 저서 참고)
8. 네르바에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까지(현재는 전하지 않는 4세기 여러 역사가들의 저작 참고)
9.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까지(현재는 전하지 않는 4세기 여러 역사가들의 저작 참고)
10. 디오클레티아누스부터 요비아누스까지(에우트로피우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집필함.)
각 범주의 분량은 짧고 문체는 명확하며 간단했다. 이 책의 첫 독자가 될 발렌스가 제국의 변방 일리리쿰[1] 출신으로 무식한 사람이라 로마의 역사와 전통을 잘 모르므로, 에우트로피우스는 길고 복잡한 사건을 너무하다 싶을 만큼 단순하게 요약해서 서술했다.
리비우스가 기원전 753년 로마시 창건부터 기원전 9년까지 744년 동안의 역사를 142권에 걸쳐 서술한 반면, 에우트로피우스는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364년까지 1116년에 걸친 역사를 단 10권으로 설명했다.2.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정복( 리비우스의 <로마사> 6~15권 참고)
3. 리구리아 전쟁과 제2차 포에니 전쟁( 리비우스의 <로마사> 16~30권 참고)
4.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와의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 유구르타 전쟁( 리비우스의 <로마사> 31~65권 참고)
5. 마리우스의 부상( 리비우스의 <로마사> 66~86권 참고)
6. 술라의 내전, 카이사르의 내전, 카이사르의 죽음( 리비우스의 <로마사> 87~116권 참고)
7.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후계자들( 리비우스의 <로마사> 117~142권 참고, 수에토니우스 저서 참고)
8. 네르바에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까지(현재는 전하지 않는 4세기 여러 역사가들의 저작 참고)
9.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까지(현재는 전하지 않는 4세기 여러 역사가들의 저작 참고)
10. 디오클레티아누스부터 요비아누스까지(에우트로피우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집필함.)
이렇듯 에우트로피우스는 로마 역사를 극도로 간략하게 요약하느라 역사의 흐름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생략했다. 그는 이토록 짧은 ≪로마 사략≫에서 '로마인들은 항상 그들의 문제를 극복해왔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제시했다. 또한 포에니 전쟁 시기 원로원의 활약상을 부각하면서, 황제에게 원로원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달라고 은근히 암시하기도 했다. 개인의 주관에 따라 제한된 분량 속에서 사건의 전개와 결과만 엉성하게 기술했으므로, 당연히 깊은 성찰이나 조직적인 사실 관계의 진술 등등 일반적인 역사서의 미덕을 기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심지어 서술한 사건마저도 일부에선 왜곡하여 적었음을 후대 학자들이 밝혀내기도 했다.
일반적인 역사서였다면 아예 역사에서 잊혀도 무방할 만큼 수준 미달이지만, 애당초 무식한 발렌스 황제에게 로마 역사를 대강이나마 이해시키려는 목적에서 읽기 쉽고 부담스럽지 않게 서술한 책이기에 일반적인 기준을 들이댈 수가 없다. 문체 또한 로마 지식인이 쓴 글말로서는 매우 단순하여 이해하기 쉽다. 발렌스 황제는 ≪로마 사략≫을 읽어보고는 만족했다고 전하는데, 이마저도 그에게는 길었는지 페스투스(Festus)라는 다른 역사가에게 지시하여 안 그래도 짧은 ≪로마 사략≫보다 더 짧게 로마 역사를 요약한 글을 쓰게 하였다.
수박 겉핥기로나마 전체 로마사를 거의 다 포함하기에 기나긴 로마 역사의 흐름을 대강이나마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히 군인 황제 시대에 관해서는 현존하지 않는 사료의 내용을 참고하였으므로 1990년대 이래 이 시대를 집중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한편으로, 로마의 지식인이 무식한 황제를 위해 단순한 문체로 로마 역사를 간결하게 서술한 책이란 점 덕분에,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학교 수업용 라틴어 독본 겸 로마사 개요서로 널리 애용되었다.
[1]
오늘날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