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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2-12 23:21:17

애니메이트(커뮤니티)



1. 개요2. 역사3. 현황과 성향4. 출신 인물들5. 흑역사
5.1. 애니자료 CD 제작/판매5.2. 채팅방 느낌표 과다사용으로 회원(3) 징계 사건
6. 기타

1. 개요

애니동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ENTER]는 그 의미를 갖는다.

PC통신 하이텔(당시 케텔) 시절부터 존재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별칭 애니동. 주소는 http://animate.kr, 옛날 주소인 http://cafeanimate.net로도 포워딩을 통해 접속이 가능했었으나, 현재는 animate.kr로만 접속 가능하다.

2. 역사

1989년, 당시 대학생인 박병호 등의 주도로 '준비동호회' 형태로 발족해서 이듬해에 정식 출범했다. 이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애니메이션 관련 동호회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1] 1990년대 PC통신의 전성기에 3대 애니메이션 동호회 중 하나로 꼽혔으나 애니메이션 동호회들이 동영상과 자료 중심으로 변질되어 가자 점차 변방으로 밀려났다. 애당초 저작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민감한 편이어서, 자료실에는 오프닝/엔딩 이외에는 아예 동영상을 올리지 못한다는 내부 규정이 있었다.[2] 그러나 충성도 높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는 만화/애니메이션 평론/감상 중심 커뮤니티로 운영되어 왔다.

2000년대 들어 PC통신이 몰락하면서 운영사들이 하나 둘 텔넷 접속을 없애고 웹으로 전환하던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터미널(VT) 동호회로 버텨 왔으나, 2004년 하이텔이 텔넷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파란을 출범시키기로 하자 이에 집단반발, 현재의 웹 커뮤니티로 이전하였다. 이전 관련해서 하이텔 측에서 자료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꼴사나운 사태도 벌어졌으나, 회원들의 반발과 언론 보도 등에 힘입어 하이텔 측이 물러나면서 무사히 이전을 완료하였다. 이전 과정에서 VT 잔류를 원하는 일부 회원은 웹 애니동에 가입하지 않고 하이텔에 잔류하였다.

3. 현황과 성향

현재는 올드팬들의 친목 커뮤니티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는 면도 있으나,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내용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신규 멤버의 유입은 매우 적은 편이다.[3]

회원들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편으로, 1970년대생이 주축인걸로 사료된다. 따지고 보자면 대한민국 오타쿠 1세대들로, 만화/애니메이션 감상이 취미의 영역으로 태동한 1980년대 말 20~30대였던 회원부터 중학생일 때 가입해서 현재는 사회인이 된 회원도 있다. 개중에는 아예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 등 서브컬처 각 분야로 진출한 회원들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대원씨아이에서 한국판 뉴타입을 창간했을 때 편집장이 애니동 회원이었고, 편집과 기고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상당수 애니동 회원들. 옛날 작품 관련해서 아무리 검색해 봐도 모르겠을 때 여기서 물어보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 등, 상당히 내공이 높은 동네다.

그 나이대에 아직도 모에 로리지온, 누님연방을 논하는 무서운 동네. 주요 파벌은 치도리파와 텟사파가 있다. (믿으면 많이 곤란하다. 그냥 컨셉놀이일 뿐. 그래도 아직까지 그런 것들로 놀 수 있는 순수성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한듯?)

다만 아주 드물게 1980년대 중후반생의 젊은 회원들도 있다. 19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PC통신 및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접한, 당시의 국딩 내지는 초딩이 가입한 케이스인데[4] 사실 이들도 현 시점에서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의미는 없는 듯.

운영방침은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어서 실명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비회원이 읽을 수 없는 몇몇 게시판이 있다. 후원회비를 낼 경우 정회원. 내지 않을 경우 준회원이며 양쪽의 차이는 거의 없다. 후원회비는 서버 임대료나 오프라인 모임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PC통신 시절부터 운영진을 1년에 한 번 선거로 뽑는 민주적인 운영을 해오고 있으며 회원들은 이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자평하기도 한다.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지만 한 번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면 무서운 곳이다. 연륜+지식+경험 등을 바탕으로 하는 고품격(?) 키보드 배틀을 볼 수 있다. 사실 1990년대 YMCA라든가 YWCA, 학부모 단체 같은 기성세대들의 편견에 치열한 맞불을 놓았던 주축이기도 했고, 특히 그 절정에 달했던게 1997년 하반기의 세일러문 파동.[5] 이래저래 시대를 앞서나간 선구자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4. 출신 인물들

전성기 애니메이트의 회원수는 약 3만명 이었고, 90년대 후반 당시 한국 서브컬처 분야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던 사람은 대부분 회원이었다고 봐야 하므로, 이곳 출신이거나 회원으로 활동했던 업계인은 꽤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위키에 페이지가 있는 인물만 따지면, 1990년부터 2년간 초대와 2대 시삽(회장)을 지낸 박병호 교수를 비롯해 루리코, 김유식, 김형태, 김용하, ESTi(시삽), 선정우(시삽), 박무직, 임주연, 송락현 등이 있다.

5. 흑역사

<회원 정보 삭제. 전/현 회원에 대한 정보를 동의없이 올리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만일 올리고 싶으시다면 각 회원에게 개별적으로 허락을 맡으시거나 개인정보 누출로 인해 고소할 지 모르는 경우를 대비해 법무사와 상담을 받고 올리시기 바랍니다.>
…라고 길게 적혀 있다.
이 항목에 이게 달려 있는 이유는 하이텔 애니메이트가 오래된 역사 만큼 흑역사도 많기 때문이다.

하이텔 애니동은 1990년대 만화/애니메이션 소비층의 폭증과 PC통신의 중흥에 힘입어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단순히 흥미삼아 가입한 사람에서부터 만화/애니메이션에 전문가급 지식을 갖춘 마니아[6], 만화가나 애니메이터 등의 업계종사자까지 회원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고, 많은 회원 수 만큼 회원들간의 충돌도 적지 않게 일어났다. 분쟁 속에서 징계를 받아 퇴출된 회원도 상당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운영진과의 친분 등 불공정한 요소가 작용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5.1. 애니자료 CD 제작/판매

자료실에 업로드된 MP3, 동영상(주로 오프닝, 엔딩), 이미지 파일을 백업 제공한다는 명분 하에 '생생CD' '3차CD'란 이름으로 제작 판매했다. 회원들이 원했던 것이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 저작자의 저작권 자료를 바탕으로 수익사업을 한 것. 그 수익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3차CD 사업을 공약으로 하여 당선된 시삽은 그 수익금으로 오프라인 동호회실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5.2. 채팅방 느낌표 과다사용으로 회원(3) 징계 사건

당시 하이텔 특성상 동호회 당 채팅방이 하나였고 최대 12명의 회원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7] 한데 어느날 부시삽과 대화를 나누던 그룹과 특정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던 그룹이 채팅방을 같이 공유하게 되어 특정 이슈 그룹의 한 명이,

"관련 주제가 아닌 다른 대화는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느낌표를 과다사용했고 이에 부시삽 그룹의 한명이 '여기 부시삽도 있는데 말조심해라'고 하자 '시삽은 관리하는 것이지 군림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등 가벼운 키배가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날 그 회원은 그 부시삽에 의해 다짜고짜 회원(3)이 되어 애니동에 접근할 수가 없게 되어 시삽 개인 메일과 외부 게시판에 호소하고 난리쳐서 간신히 애니동에 복귀하게 되었다.[8]
그 뒤에 운영진은 자신들의 운영미스를 정당화한답시고
"바다가 좋다!!!!!!!!!!!!!!!!!!!!!!!!!!!!!!!!!!!!!!!!!!!"

- [시끌별 녀석들]에서
느낌표 사용을 자제합시다. [ENTER]를 누르십시오.

이런 내용을 대문(애니동 메뉴로 들어가기 전에 거치게 되는 화면)에다가 한동안 걸어놓았다. 이렇듯 운영진 심기를 거스르면 바로 퇴출될 정도로 고압적인 운영이 잦았다. 비슷하게 상영회 진행에 대한 불만을 게시판에 토로했다가 회원(3)이 될 뻔한 회원도 있을 정도.

6. 기타

나우누리에서는 ANC가 이곳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동호회였다.

현재는 회원가입을 받지 않으며, 게시판에 글도 일년에 한두건 올라갈 정도로 활동이 멈춘 상태. 다만 아직 홈페이지가 유지되고 있으므로 폐쇄된 것은 아니다. 본 항목에 써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과거형임을 숙지하고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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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립일 기준으로 보면 그 이전 천리안(당시 피시서브)에 애니메이트 동호회가 존재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최초의 PC통신 애니메이션 동호회는 아니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동호회라는 의미이다. [2] 1990년대 말까지는 애니동에서도 MP3나 동영상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빨리 저작권을 존중하는 태도로 돌아선 것은 옳은 일이나, 그것 때문에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말은 올바른 설명이 아니다. 다른 커뮤니티도 동영상을 맘대로 올리던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우누리의 경우도 당시 ANC 시삽이던 김창균씨가 그야말로 학살(...)에 가까운 광역 자료삭제를 하며 정상화를 시켰는데 이 분도 애니메이트 활동을 동시에 했던 사람이다. [3] PC통신 초창기의 커뮤니티였기에 친목질의 폐해를 잘 몰랐던 것이다. 기존 회원들끼리 자화자찬하면서 두터운 벽을 쌓는 분위기를 운영진이 방치하는 한 어떤 커뮤니티도 오래가지 못한다. [4] 1999년 국민PC 보급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컴퓨터 자체도 그리 쉽게 구입할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초고속 인터넷이 막 도입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아직은 어린이들이 인터넷과 PC통신을 접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5] 1차적으로 1997년 여름에 주부동측이 세일러문을 변태 만화로 모독하는 것도 모자라, 시청자들을 전부 변태로 몰아가는 미친 짓거리를 시전했다. 이에 애니동측이 발끈하여 주부동을 털어버렸으며 뒤이어 발생한 KBS의 방영중단 사태에 대해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오프라인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때마침 KBS측 담당 PD가 방영중단의 전말을 PC통신에 공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불과 3개월 만에 조건부 심의허가가 내려져 방영이 재개된다. [6] 당시 오프라인이건 PC통신이건 일본 문화의 유입이 금지된 상태였고, 한국어판으로 나온 작품이 적은데다 감상할 매체의 입수가 어렵다보니 만화/애니메이션 감상을 취미로 하기에는 어느정도의 재력과 일본어 실력이 필요했다. 이들의 주된 소비창구는 회현 지하상가와 대만대사관(현재의 중국대사관) 근처로 대변되는 직수입서점 및 LD샵 등이었다. [7] 그래서 채팅방 메뉴 이름이 '12인이 있다!' 였음 [8] 나중엔 하이텔에 소모임이란 이름으로 소규모 동호회를 개설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 당시엔 큰 규모의 동호회만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애니동 내에 작은 소모임들이 여러개 있었고 회원(3)이 되어 퇴출된 회원은 그 중 한 소모임의 일원이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동호회에서 강퇴당하면 하이텔 내에서는 애니 등에 대해 교류할 마땅한 장소를 박탈당하는 셈이라 제법 손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