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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02:21:21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4
}}} ||
그리스의 축구인
파일:Charisteas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
Άγγελος Χαριστέας | Angelos Charisteas
출생 1980년 2월 9일 ([age(1980-02-09)]세)
그리스 세레스 스트리모니코
국적
[[그리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 88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단장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1997 / 유스)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1997~2002)
아티네코스 (1998~1999 / 임대)
SV 베르더 브레멘 (2002~2005)
AFC 아약스 (2005~200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6~2007)
1. FC 뉘른베르크 (2007~2010)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9 / 임대)
AC 아를 아비뇽 (2010)
샬케 04 (2011)
파네톨리코스 (2011~2012)
알 나스르 (2013)
기타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2019~2020 / 단장)
국가대표 88경기 25골[1]( 그리스 / 200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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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의 前 축구선수.

UEFA 유로 2004에서 깜짝 활약으로 조국의 역사적인 우승을 이끌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나 이후에는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이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2.1.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그는 논 리그의 스트리모니코스에서 활약한 뒤 아리스 테살로니키에 입단하면서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데뷔 첫 시즌부터 신입답지 않은 기량으로 팀을 2부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1부리그에서의 첫 시즌에 라이벌인 PAOK를 상대로 멀티골을 집어넣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12경기 4골을 기록했다.

이후 후반기에 아티네코스로 임대를 떠나면서 잔여 시즌은 타 팀에서 보냈다. 임대 복귀 후 하리스테아스는 2000-01 시즌 동안 31경기에 나서 10골을 득점하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2.2. SV 베르더 브레멘

그가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국 리그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자 유수의 유럽팀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2002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과 계약을 채결했다. 아리스의 발표에 의하면 이적료는 300만 유로라고 한다.

첫 시즌에 리그 31경기 9골, UEFA 컵 4경기 2골을 기록하며 아주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지난 시즌에 비해 득점포가 주춤했고, 무엇보다 아이우통[2] 클라스니치가 절정의 활약을 보여준 탓에 시즌 중반부터는 서브 공격수로 나섰으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DFB 포칼 우승을 견인했다.

스타덤에 오른 유로 대회를 마치고 맞이한 2004-05 시즌에는 기존의 클라스니치와 여름에 클로제가 영입되면서 입지가 더욱 크게 좁아졌다. 전반기동안 단 3번의 선발 출전외에 주로 교체로만 경기를 나섰으나, 리그에서 11경기 5골을 기록하며 출전시간 대비 준수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AFC 아약스로 이적했다.

2.3. AFC 아약스

2004년 12월, 그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명문팀인 AFC 아약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적료는 500만 유로 언저리라고 한다. 분데스리가 전반기가 끝나고 이듬해 1월 1일에 정식으로 팀에 합류했다. 참고로 그가 아약스로 이적한 배경의 중심에는 대표팀 감독인 오토 레하겔이 있었다. 그는 하리스테아스에게 겨울 이적시장 기간동안 정기적으로 출전할 수 있는 팀을 찾아 떠나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고.

여튼 아약스는 유벤투스으로 떠난 이브라히모비치의 대체자로 그리스의 스트라이커를 영입했고, 전임자 못지 않게 뛰어난 활약을 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위트레흐트를 상대로한 데뷔전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 종료까지 13경기 4골에 그치며 기대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

2005-06 시즌 초반에는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9월 27일,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2라운드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콜로 투레와 충돌로 인해 머리를 다친 이후로 2달 가까이 경기에 나서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기량 저하를 겪으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팀은 리그 4위로 마무리하며 최악을 시즌을 보낸 건 덤.

다음 시즌에는 개막을 앞두고 헹크 텐카터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하리스테아스가 4-4-2 전형에서는 좋은 스트라이커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4-3-3 전술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고, 하리스테아스는 팀의 5번째 스트라이커로 전락했다.

2.4.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그는 팀에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면서 이적을 모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잉글랜드나 독일 무대의 이적을 희망했다. 그러나 결국은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아약스의 최대 라이벌인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페예노르트의 일부 팬들은 이번 이적에 대해 Wij willen geen neus라는 구호[3]를 외치며 격렬하게 반대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회장의 사퇴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여튼 시위에도 불구하고 팀에 합류를 한 그는 스파르타 로테르담을 상대로 풀타임 출전하며 첫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10라운드 로다 JC전에서 첫 득점을 신고했다. 12월부터 2월까지 리그에서만 8골을 득점하며 일부 팬들의 비난을 잠재웠지만, 여전히 그를 못마땅해하는 페예노르트 팬들도 있었다. 모든 대회 통틀어서 36경기 11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5. 1. FC 뉘른베르크

2.5.1. 2007-08 시즌

2007년 7월 6일, 그는 분데스리가의 뉘른베르크와 250만 유로의 이적료에 4년 계약을 맺고 팀에 입단했다. 그는 4부리그인 SC 빅토리아 함부르크와의 포칼컵 1라운드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2골을 기록하면서 6:0 대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첫 시즌에는 주전 스트라이커임에도 리그 24경기동안 4골에 그치며 팀의 2부리그 강등에 원흉이 되고 말았다.

2.5.2. 2008-09 시즌

결국 다음 시즌은 2부리그에서 맞이하게 됐고, 2부리그에서도 전반기 동안 14경기 1골에 그치며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2.5.3. 바이어 04 레버쿠젠 (임대)

2009년 2월 2일, 잔여시즌 종료까지 임대를 떠났으며, DFB-포칼 준우승을 경험했다.

2.5.4. 2009-10 시즌

전 시즌에 팀이 다시 승격함으로써 그는 1부리그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2010년 3월 12일에 헤르타 베를린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나서지는 못했으나, 팀의 강등 탈출을 도왔다.

2.6. AC 아를 아비뇽

2010년 8월 10일, 그는 프랑스의 아를 아비뇽과 계약하게 되면서 대표팀 동료인 앙겔로스 바시나스와 재회했다. 7경기동안 무득점을 기록하고 11월 26일에 계약해지로 팀을 떠났다.

2.7. 샬케 04

2011년 1월 31일, 샬케와 6개월의 단기계약을 채결하게 되면서 반년만에 독일로 복귀했다.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첫 경기를 치른 하리스테아스는 교체로 들어온지 52초만에 첫 터치로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견인했다.

4월 13일에는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디펜딩챔피언인 인터밀란을 상대로 후반 13분에 에두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별다른 활약은 없었고, 팀은 2:1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다.

5월 31일, 팀이 포칼컵에 우승하면서 2번째 포칼컵을 거머쥐었다.

2.8. 파네톨리코스

2011년 7월 27일, 그는 새로 승격한 파네톨리코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게 되면서 9년만에 자국 무대로 복귀했다. 리그와 리그컵에서 26경기동안 4골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2.9. 알 나스르

1시즌만에 자국 리그를 떠나 인터밀란의 관심을 받기도 했던 하리스테아스는 2013년 2월 17일에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알 나스르에 입단했다. 계약기간은 1년 반. 알 힐랄과의 프린스 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 4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했고, 팀은 우승에 실패했다.

2012-13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1년 2월, U-21대표팀의 주력 선수로 활약하던 하리스테아스는 러시아를 상대로 A대표팀에 데뷔했다. 이 날 그는 2골을 터트리며 임팩트있는 모습을 남겼다.

이후 그는 레귤러 멤버로 거듭나며 조국의 UEFA 유로 2004 본선행에 기여했다.

3.1. UEFA 유로 2004

본선 기간 동안 그는 조별리그 2차전 스페인전에서의 동점골을 시작으로 8강전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20분에 자고라키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이 골로 강적 프랑스를 상대로 예기치 못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된다. 도박사들 오열

4강에서 체코를 만나 다시 한번 연장접전 끝에 델라스의 헤딩 결승골로 승리하며 그리스 축구 역사상 최초로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사실 조별리그 통과한 순간부터 역사는 새로 쓰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승전 상대는 개최국 포르투갈. 당시 발롱위너인 루이스 피구를 필두로 후이 코스타, 페르난두 쿠투, 데쿠 그리고 당시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포진된 포르투갈은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심지어 개최국으로서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리스의 우승을 점치지 않았으나..
파일:Charistea_Final_goal.jpg
포르투갈과의 결승전에서 헤딩으로 결승골을 터트린 하리스테아스 (28초부터)

전반부터 그리스는 세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둔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포르투갈의 공세를 차단했다. 그렇게 전반은 0:0으로 마무리 되고 후반 12분, 우측에서 올린 바시나스의 코너킥을 하리스테아스가 높은 타점으로 수비수 2명과 히카르두 골키퍼를 이겨내고 헤딩으로 연결시키면서 골을 성공시켰다. 뜻 밖의 실점을 허용한 포르투갈은 남은 시간동안 미칠듯이 골문을 두드렸으나, 그리스는 대회기간 내내 보여주었던 특유의 우주방어를 여지없이 선보이며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결국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끝나면서 대회 기간동안 기적을 써내린 그리스는 기여코 첫 우승을 거머쥐며 기적의 종점을 찍는데 성공한다. 우승의 일등공신인 하리스테아스는 이 대회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한동안 주가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또한 대회 베스트 팀에 이름을 올렸고, 2004 발롱도르에 노미네이트 되며 1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3.2. 대회 이후

센세이셔널 했던 유로 대회 후에는 대표팀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는 못했다. 2008년, UEFA 유로 2008 본선에 참가한 카리스테야스는 지난 대회와 달리 본선 기간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팀도 마친가지로 부진한 경기력을 일관하며 3전 전패,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감하면서 디펜딩 챔피언으로 체면만 잔뜩 구겼다.

2년뒤 남아공에서 열린 2010 FIFA 월드컵[4]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참가하게 됐다. 그리고 1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으나,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후반 16분에 교체되었으며, 팀은 0:2로 패하며 좋지 않은 출발을 보여주었다. 경기전 대한민국의 각종 언론들은 유로 2004의 활약상만 보고 하리스테아스를 요주의 인물로 점찍었으나, 실상 이미 기량이 쇠퇴한지 한참 지났으며,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으로 자신의 폼이 정상이 아님을 증명했다.

1차전 이후 남은 경기는 벤치를 지켰고, 팀은 조별리그 최종전인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되면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월드컵도 막을 내렸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한동안 대표팀에 승선되지 못하다가 이듬해 10월에 크로아티아, 조지아와의 유로예선 2연전을 앞두고 오래간만에 소집됐다. 그리고 11일 조지아를 상대로 후반 40분에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지난 해 5월 25일 북한전 이후 1년 5개월여만에 A매치 득점을 신고했다.

2011년 11월 15일, 루마니아와의 친선전 이후 다시 대표팀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2013년 여름에 현역에서 은퇴함에 따라 국가대표도 같이 은퇴하게 되었다.

4. 은퇴 후

2019년부터 프로 첫 팀이었던 아리스 테살로니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1]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 역대 최다 출전 9위, 역대 최다 득점 2위 [2] 리그에서만 무려 23골을 기록했다. [3] 우리는 코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해석되는데 코는 아약스의 선수들을 경멸할때 쓰는 속어이다. [4] 우크라이나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2차전 경기를 마친 뒤 셰브첸코의 눈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