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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0:42:37

아크사이친

악사이친에서 넘어옴
카슈미르의 지역 구분
인도 <colbgcolor=#ffffff,#191919> 미정 <colbgcolor=#006400> 파키스탄 <colbgcolor=#ff0000> 중국
잠무 카슈미르 라다크 시아첸 빙하 아자드 카슈미르 길기트 발티스탄 카라코람 회랑 아크사이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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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hina_India_western_border_88.jpg

영어: Aksai Chin
중국어: 阿克赛钦(Ākèsàiqīn, 아커싸이친)
힌디어: अक्साई चिन(Aksā'ī cin, 악사이친)

1. 개요2. 역사

1. 개요

아크사이친은 중국이 실효 지배 중인 카슈미르 지역이다. 중국어로는 아커싸이친이라고 부른다. 면적은 38,850 km². 지도상의 붉은 영역 중 북쪽의 가장 큰 땅덩이만 해당하며, 그 이남은 뎀초크 지역(파리가스) 등 다른 분쟁 지역이다.

이 지역은 티베트 고원 북서쪽 쿤룬 산맥의 바로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지구에 속해 있는 예청 현으로, 남부 일부는 티베트 자치구의 아리 지구로 편입시켰다. 이 지역은 아크사이친 호와 아크사이친 강이 흐르고 있다.

중국으로서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티베트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잇는 주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쿤룬 산맥을 지나는 두 개의 도로 중 서쪽 간선인 219번 국도가 이 지역을 지나며 이 산맥을 지나는 다른 도로로는 이 도로보다 2,000 킬로미터쯤 동쪽으로 가야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동쪽의 칭하이성과 티베트를 잇는 109번 국도가 나온다.

인도는 그밖에도 파키스탄이 중국에게 넘긴 카라코람 회랑의 영유권이나, 중인전쟁으로 상실한 동부 뎀초크 지역의 영유권도 주장한다.

평균 해발고도가 5,000m를 넘어가고 기후도 극도로 건조하고 물도 없고 춥기 때문에 사람은 물론, 웬만한 생물조차 살 만한 환경은 아니다. 그런 연유로 면적은 상당히 넓지만 인구는 군인밖에 없다. 인도가 놔뒀다 빼앗긴지 1년 넘도록 모른게 괜히 그런게 아니다. 주요 거주지(?)로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톈수이하이 기지와 톄룽탄 기지가 있으며 군기지 생필품은 모조리 외부 보급을 해야 한다.

2. 역사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여느 지역이 그렇듯 워낙 오지인 탓에 근대 이전에 이곳의 통치권은 불분명하였다.

영국-시크 전쟁 이후 영국 속국 잠무 카슈미르 번왕국이 세워져 카슈미르가 영국의 세력권에 들어오면서 영국은 이곳에 대한 지리조사 및 국경 그리기 시도를 시작한다. 영국이 이 지역에 그린 첫번째 선은 영국령 인도의 공무원 윌리엄 존슨이 그린 '존슨 선'. 다만 이 선은 타국의 점유관계를 막론하고 지리적인 조사 이후 자연환경에 따라 선을 그은 만큼 아크사이친은 물론 오늘날 중국의 영토로 확실하게 인정된 신강 남쪽 일부까지 주장하여 전통적인 '카슈미르'의 영역을 지칭하는 선으로는 쓰여도 국경에 관련해서는 쓰이지 않는다. 1897년 이 선의 영국 군관 존 알도 경의 제안으로 개정된 것이 오늘날 인도가 주장하는 카슈미르의 중인국경이다. 또한 1959년 이전까지 중국 또한 암묵적으로 인정하던 국경이다.

존슨 선의 개정 이후 만들어진 국경 제안이 한가지 더 있었으니 이것이 맥카트니-맥도날드 선이다. 1893년 중국의 카슈미르 국경 지도들을 건네받은 영국 당국은 아크사이친 지역을 약 반분하는 제안을 만들고 1899년 중국에 제안을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 이 제안은 잊혀진다. 영국령 인도 당국 또한 기존의 개정판 존슨 선을 인도의 카슈미르 국경으로 간주한다.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에도 인도는 존슨 선의 고수를 주장했으나 지역이 워낙 척박하니만큼 제대로 된 통제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1956년 이전 1950년대에 중국군이 아크사이친을 점거한 것으로 여겨지나 정확한 연도나 일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전술한듯 이곳이 워낙 척박하여 중국이건 인도건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1950년대 당시에 본 지역은 정확한 지도가 뜸했기 때문에 언제 중국군이 이 지역으로 넘어왔는지 불분명한 것.

아크사이친의 영토분쟁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58년 중국에서 편찬된 공식 지도에 아크사이친과, 중국이 동시기 아크사이친에 건설한 티베트와 신장을 잇는 도로가 포함되면서다. 이 지도에서 중국의 아크사이친 점거를 확인한 인도는 중국 측에 항의를 하였다. 참고로 1958년 시점에 중국은 아크사이친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카슈미르 방면에 중인국경에 대해 명확한 중국의 주장은 없었던 것. 이 영토 분쟁은 티베트 관련 분쟁과 함께 중인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1959년 중국은 60년 동안 썩어가고 있던 전술한 맥카트니-맥도날드 선 제안을 승인하고[1] 1960년엔 맥카트니-맥도날드 선도 파기, 모호한 일련의 구 청조시절 지도들을 바탕으로 아크사이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1962년 중인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하면서 중국의 아크사이친 점거는 굳혀졌고 오늘날까지 대치 상태로 이어진다.

2020년 6월 17일 갈완계곡에서 600명 규모의 난투극이 벌어져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당시 중국측이 사용한 무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기사 자세한 것은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문서 참조.


[1] 아크사이친 일부만 받는 국경이지만 신설한 티베트-신강 도로는 이 국경 상 중국령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