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4:30:03

아이신기오로 훙저우

[ 펼치기 · 접기 ]
더시쿠 · 러오단 · 소오창가 · 익황제 · 보올룽가 · 보오시
리둔 바투루 · 아르군 · 자이칸 · 선황제 · 타차 피양구
천명제 · 성의용장패륵 보올룽가 · 화석장친왕 · 통달군왕 야르하치 · 독의강과패륵 바야라
다라광락패륵 · 화석예열친왕 · 진국근민공 아배 · 삼등진국극결장군탕고대 · 이혁패륵 망고이태 · 화석요여민친왕 아파태 · 숭덕제(패륵) · 이혁패륵 덕격류 · 이혁진국장군 · 이혁영친왕 · 보국개직공 · 화석예충친왕 · 화석예통친왕 · 홍대자

화석숙무친왕 · 낙격 · 낙박회 · 보국공 엽포서 · 화석승택유친왕 석새 · 진국각후공 고새 · 보국공 상서 · 8황자 · 순치제(패자) · 보국공 도새 · 화석양소친왕 박목과이
승서 · 승호 · 승경 · 새음찰흔 · 고산패자 윤제 · 장화 · 화석이밀친왕 · 장생 · 만보 · 화석성은친왕 윤지 · 옹정제(화석옹친왕) · 화석항온친왕 윤기 · 윤조 · 화석순도친왕 윤우 · 화석염친왕 · 이혁패자 · 보국공 윤아 · 윤위 · 윤자 · 화석이의친왕 윤도 · 화석이현친왕 · 다라순근군왕 애신각라 윤제 · 윤기 · 다라유각군왕 윤우 · 화석장각친왕 · 화석과의친왕 윤례 · 윤개 · 윤직 · 다라간정패륵 윤의 · 다라신정군왕 윤희· 다라공근패륵 윤호 · 군왕품급성패륵 윤기 · 화석함각친왕 윤비 · 윤원
화석단친왕 홍휘 · 홍분 · 홍윤 · 홍시 · 건륭제(화석보친왕) · 화석화공친왕 · 복의 · 화석회친왕 복혜 · 복패 · 다라과공군왕 홍염 · 다라이각군왕 홍위 · 봉은보국공 홍환 · 보국공 영경

화석정안친왕· 단혜황태자 · 다라군왕 · 화석이단친왕 영성 · 화석영순친왕 · 화석질장친왕 · 화석철친왕 영종 · 화석의신친왕 · 영유 · 영모 · 화석성철친왕 영성 · 다라패륵 영기 · 영경 · 영로 · 가경제(화석가친왕) · 영선 · 화석경희친왕 영린

·다라은지군왕 혁위 · 다라혜질군왕 혁계 · 함풍제(황태자) · 화석돈근친왕· 화석공충친왕 · 화석순현친왕 · 다라종단군왕 혁합 · 다라부경군왕 혁혜

자녀 없음
#!wiki style="margin: 5px 10px""background: #89236A; color: #00386a"
역대 청 황제 · 역대 청 황태자 · 역대 청의 황녀
※ 기록이 있는 인물만 기재
}}}

<colbgcolor=#fecd21><colcolor=#00386a> 愛新覺羅 弘晝
애신각라 홍주
시호 화석화공친왕(和碩和恭親王)
출생 1711년
사망 1770년 (향년 58~59세)
부친 청 세종 옹정제
모친 순각황귀비 경씨

1. 개요2. 생애
2.1. 가족 관계
2.1.1. 부인2.1.2. 자녀들
3. 미디어믹스

[clearfix]

1. 개요

청나라의 황족.

2. 생애

옹정제의 5번째 아들. 순의황귀비 경씨 소생이며 1711년에 태어났고[1], 1733년에 화친왕으로 책봉되었고, 옹정제가 죽고, 건륭제가 즉위한 후에 내무부와 어서처의 일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다가 1770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로 건륭제는 종친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걸 가능한 막고[2] 분봉왕공을 줄였는데[3] 홍주에게는 옹정제의 번저시절 재산을 전부 주고 정사에 참여시키며 홍주가 갖가지 기행을 저질러도 용서해주었다.

<소정잡록>과 <청사고>에서는 홍주가 눌친을 폭행하고, 자기 장례식을 치르고 갖가지 행패를 부리고 교만했다고 나온다. 실록과 기거주에서도 눌친을 폭행한 사실이 나와있지만 <소정잡록>에서 나온 것처럼 반미치광이는 아니었으며 건륭제에게 공손했고 일반 관리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4]

2.1. 가족 관계

2.1.1. 부인

2.1.2. 자녀들

3. 미디어믹스

3.1. 연희공략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애신각라 홍주(연희공략)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바로 손윗형인 건륭제와는 두어달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2]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건륭제는 숙부들인 이의친왕 윤도, 순근근왕 윤제, 장각친왕 윤록에게 계속 정무를 맡겼다. 하지만 황족들의 유교 교육을 강화해서 정치적 야망을 억제시키고 대신들과의 교류를 차단해서 황족들이 정사에 깊게 관여하는 걸 방지했다. [3] 작위와 니루를 소유한 황족들이 많아져서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4] <소정잡록>의 저자인 소연은 본래 예친왕 다이샨의 작위 계승자였으나 가경제에 의해 왕작을 잃었고, 옹정제 이후 하오기 왕권이 약화되는 처지에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황제를 비난할 수 없어서 대신 홍주를 비난했다는 주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