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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7 19:39:30

아이신기오로 호오거


청의 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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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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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 황제 · 역대 청 황태자 · 역대 청의 황녀
※ 기록이 있는 인물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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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86a><colcolor=#fecd21> 愛新覺羅 豪格
애신각라 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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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화석숙무친왕(和碩肅武親王)
별호 패륵(貝勒) ⇒ 화석숙친왕(和碩肅親王)
생몰년도 1609년 ~ 1648년(40세)
부친 청 태종 숭덕제
모친 계비 우라나라씨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부인3.2. 자녀들
4. 대중매체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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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의 제2대 황제인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의 장자이며 세조 순치제 풀린의 이복형으로 어머니는 계비 우라나라씨였다. 숭덕제의 장자로 전공을 세워 황위 계승자로 내정되었으나, 배다른 숙부이자 라이벌인 도르곤의 지지파가 팽팽히 맞서 황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도르곤의 라이벌로서 섭정직을 놓고 경합을 벌였으나, 결국 패배하고 옥사했다. 시호는 숙무친왕(肅武親王)이었다.

2. 생애

1609년 홍타이지와 우라나라(오랍나랍)씨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무용이 뛰어나 몽골족 및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부친인 홍타이지를 따라 출정하여 종종 무공을 세웠다. 청 숭덕 원년(1636년)에는 숙친왕(肅親王)에 봉해졌다.

1643년 홍타이지가 급사한 후, 황위를 계승할 유력한 후보로 정황기, 양황기, 정홍기, 양홍기 등 4기의 지지를 받았으나 다른 유력 후보이며 그의 숙부인 도르곤을 옹립하려는 세력과 대립했다. 당시 종친의 수장이자 홍타이지의 이복형이었던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은 호오거와 도르곤 양쪽 모두 황위에 올리지 않고 대신 호오거의 이복동생인 6세의 풀린을 순치제로 즉위시켰다.[1] 호오거는 도르곤과 함께 순치제의 후견인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순치제의 시대에 섭정왕으로서 권세를 가진 도르곤은, 정적인 호오거를 실각시키기 위해 무고를 했고 결국 호오거의 작위를 박탈한 후, 유금했다. 호오거는 순치 5년(1648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순치제는 도르곤의 사후, 형 호오거의 원죄를 풀어 명예를 회복시켰고, 1651년 아들인 부수에게 숙친왕을 잇게 하는 한편 도르곤의 작위를 박탈했다.[2] 시호는 '무'(武)로 정식 칭호는 숙무친왕(肅武親王)이다. 순치제의 친정 이후에 작위가 복권되었다.

3. 가족 관계

3.1. 부인

3.2. 자녀들

4. 대중매체

5. 여담

호오거의 아들 중 작위를 받은 것은 아들 부수로 현친왕이었으며, 다섯째 아들인 맹권(猛瓘)은 온량군왕(温良郡王)의 작위를 받았다.

호오거로부터 시작된 숙친왕 작위은 영구 세습이 가능한 철모자왕 중 하나로 제11대 헌장(憲章)까지 이어졌다. 헌장은 제10대 숙친왕 선기(善耆)의 장자로 카와시마 요시코로 잘 알려진 셴위(顯玗)의 이복오빠다.
[1] 나이는 호오거가 훨씬 많았지만 적출로서 계승권은 어머니의 신분이 우세한 풀린이 더 우세했다. 사실상 호오거는 서자였으나 풀린은 적복진 소생의 적자였다. [2] 그 뒤 아들 부수의 작위는 숙친왕에서 현친왕(顯親王)으로 변경되었다. [3]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의 외손녀였으나 숭덕 원년에 망고이태와 망고제격격이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하자, 그녀 역시 호오거(호격)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 [4] 몽골 코르친부(호르친부, 과이심부) 명안 패륵의 손녀이며 효단문황후에겐 당질녀, 효장문황후와는 당자매지간이다. [5] 몽골 차하르부(찰합이부) 링단 칸(임단한)의 부인이었으나, 후금에 투항하여 호격의 부인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