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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22:54:28

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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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심명철.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7년 7월 15일
경기도 개성유수부 북부면 예빈리
(現 경기도 개성시 북안동)
사망 1983년 11월 7일 (향년 96세)
경기도 인천시
(現 인천광역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263호
가족 배우자 문○○
아들 문수일
학력 호수돈여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세례명 : 심명철)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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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87년 7월 15일 경기도 개성유수부 북부면 예빈리(현 개성시 북안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개성군 송도면 경정(현 개성시 관훈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가톨릭에 입교했고, 심명철(沈明哲)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결혼 후 아들이 9살이 되던 때에 남편마저 사망했기에 홀로 자식을 키워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업에 뜻을 두었고, 개성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1]를 졸업했다.

1919년 3월 3일 개성군 송도면에서 모교인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군중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형사가 "맹인 주제에 시위에 왜 가담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눈이 멀었을지언정 마음까지 멀었겠느냐? 눈이 멀었을지언정, 나라의 독립을 원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다."

이후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인천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다가 1983년 11월 7일에 사망했다.

사후 7년 후에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심영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 그녀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

3. 대중매체

4. 기타



[1] 현재 호수돈여자중학교 호수돈여자고등학교 대전광역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