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국민은행의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마산여고 재학 시절 팀의 주축 선수로서 활약하면서 청소년 대표에도 뽑히기도 했었다. 즉, 유망주.
프로 2년차부터 팀의
식스맨과 주전을 오가면서
센터로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상대 센터들을 봉쇄하는 수비전문 선수에서 출발해 공격력을 발휘하는 센터로서 점차 성장했다.
정선민과 같이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어린 시절부터 자주 경기에 출전하면서 경험을 쌓아 점차 WKBL의 대표 센터로 성장했다. 2005년, 프로 7년차에 이르러 비로소 리그 베스트 5에 뽑히면서 본격적으로 주가를 높혔다.
하지만,
정선민과 신정자 트윈타워를 보유하고도 가드진이 약해서 우승에 실패했다고 판단한
국민은행 수뇌부는 가드진을 보강하기 위해
2006년
김지윤을 영입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트레이드 카드로 제시한 것이 바로 신정자. 결국 김지윤과 1라운드 신인지명권과 맞
트레이드로
금호생명 이적이 결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은행의 치명적인 실수였다.[1]
트레이드로 건너온
금호생명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더욱 원숙하게 발휘하면서 팀의 주전 센터로 자리잡았다. 외국인 선수가 폐지된
2007년 이후로는 그야말로 WKBL에서 골밑을 완전히 장악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7년 이후 4시즌 연속 리바운드 연속 1위.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뛰면서 꾸준히 리바운드를 잡은 결과 통산 3,000리바운드를 넘겨 WKBL 통산 리바운드 1위 자리에 올랐다.
2011-12 시즌 전까지 윤덕주상[2]만 두 번 받았을 뿐, MVP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는 점과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워낙 신한은행의 위세가 세기 때문에. 2010-11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 팀을 올려놓았지만 0:3으로 패퇴한 아쉬움이 남았다.
2011-12 시즌에도 팀의 대들보이자, WKBL 최고의 센터로서 주가를 올렸다. 팀의 정규시즌 2위를 이끌면서 활약했다. 또한
2011년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를 통해 국가대표 주축 센터로서 자신의 입지도 높혔다. 비록 2011-12 시즌 PO에서 지면서 챔피언 결정전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팀 내 최고의 선수로서 활약을 인정받아 정규시즌 MVP에 오르면서 MVP를 차지하지 못한 한도 풀었다. 남은 한은 이제 우승 뿐이다.
2012-13 시즌 개막 후, 여전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3경기 연속
트리플 더블의 기록을 작성하면서 그야말로 날라다니는 중. 하지만 신한은행도 같이 날라다니고 있다. 공헌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보였지만 팀은 감독의 리더십 부재와
프런트의 삽질이 겹치면서 꼴찌로 침몰하며 활약이 빛이 바랬다.
뛰어난 리바운더에 미모로 인해 붙여진 별명은 미녀 리바운더. 그런데 실제 터프한 플레이 스타일인지라 여농팬들 사이에서는
누님 또는 정자소문으로 불리고 있다.
FA를 앞두고 2015년 1월 28일 KDB생명과 신한은행 간 2:2
트레이드[3]로
신한은행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신한은행과 3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뒤이어 좀 뜬금포로
SBS 스포츠의
윤성호 아나운서와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소식이 나왔다.
2015년
5월 24일에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