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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03:54:31

신라사선

1. 개요2. 행적

新羅四仙

1. 개요

또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 신라국기(新羅國記)≫에는 “귀인들의 자제 중 아름다운 자를 가려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하여 받들었으며, 이름을 화랑이라 하고 나라 사람들이 다 받들어 섬겼다”고 하였다. 이는 대개 왕의 정치를 돕기 위한 방편이었다. 선랑이었던 원화로부터 신라 말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백여 명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사선(四仙)이 가장 어질었으니, 저 ≪ 세기≫ 중에 설하는 바와 같다.
해동고승전 권제1 석법운

남북국시대 전설적인 화랑 4인조. 네 명의 이름은 영랑(永郎), 술랑(述郎), 남석(南石), 안상(安詳)이다.[1]

활동한 시대는 통일신라 효소왕 시기로 여겨지며 고려, 조선시대까지 여러 문인들의 기록에서 최고의 화랑으로 칭송받았고 사선의 행적을 성지순례하는 게 유행했다.

2. 행적

사실 실제 역사적 인물로서의 뚜렷한 행적 기록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전국 각지(주로 지금의 강원도 지역)에서 이들이 수련하면서 거쳐갔던 명승지에 이들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관동팔경 총석정과 삼일포의 이름이 이들과 관련돼있다. 삼일포는 네 화랑이 3일간 유람하고 갔다고 해서 삼일포. 이외에도 금강산 영랑봉과 영랑대, 속초시 영랑호, 강릉시 한송정, 고성군 선유담, 경상북도 울진군 월송정 등이 이들의 행적과 연관된 이름들이다. 이름만 남긴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삼일포에는 영랑도남석행(永郎徒南石行), 술랑도남석행(述郎徒南石行)이라고 직접 새겨놨다는데, 지금은 북한이 점령한 곳이라 남북분단 이후 지금까지 그게 남아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네 명은 금강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하며, 서라벌에서 열리는 무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영랑호의 경치가 너무 좋아 대회 날짜도 잊고 계속 머물렀다는 식이다. 몇몇 이야기에서는 아예 신선으로 묘사한다.

네 명 중에서는 영랑이 대장이었는지, 관련된 행적이나 기록이 특히 많은 편이다. 울산광역시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져있는 '술년 6월 2일 영랑 성업(戌年六月二日永郎成業)'도 사선 중 영랑의 수련이 끝났음을 기념한 것이며, 영랑의 이름은 속초시 영랑동으로도 남아있다. 술랑과 남석랑은 기록이 별로 없고, 안상은 젊을 때 효소왕 때의 국선(화랑의 1인자) 부례랑(夫禮郞)의 낭도로 있었는데, 북명(원산만)에서 부례랑이 말갈[2]에게 납치당했을 때 주군의 구출에 공을 세웠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남아있다.

달랑 넷이서만 돌아다닌 건 아니고 이들도 낭도를 이끌고 다녔는데, 가령 영랑의 낭도로는 진재(眞才)와 번완(繁完)이 유명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내내 국가적 행사였던 팔관회에서도 신라사선을 주제로 한 사선악부(四仙樂部) 행사가 포함됐다고 하며 이인로는 사선을 주제로 시를 쓴 게 남아있고 조선시대 정철 관동별곡에서도 사선이 언급된다.

[1] 해당 연구에 의하면 남석은 기록에 따라 '남석행', '남석랑', '남랑'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안상도 '안랑'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2] 혹은 고구려 잔존 집단 등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