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라에서 뽑음
國選국선변호인이 이 글자를 쓴다. 한자는 같지만 다른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국회의원 선거를 이렇게 줄이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많이 쓰이지 않느나, 선거관리위원회 내부에서는 국선이라고 줄여 사용한다.
2. 신라시대의 화랑 혹은 화랑 지휘관의 호칭
國仙여러 해가 지난 후, 왕은 나라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풍월도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시 영을 내려 양가의 남자 중 덕행이 있는 자를 뽑고 그 명칭을 고쳐 화랑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처음으로 설원랑(薛原郞)을 받들어 국선을 삼았으니, 이것이 화랑국선의 시초였다. 그래서
명주(溟州)에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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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미륵선화 미시랑 진자사}}}{{{#!wiki style="text-align:right"
왕은 나라를 일으키려면 풍월도를 먼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시금 영을 내려 귀인과 양가의 자제 중에서 얼굴이 아름답고 덕행이 있는 자를 선발해서 분장을 시켜 화랑 또는 국선이라 하였다.(花郞亦曰國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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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진흥왕.}}}{{{#!wiki style="text-align:right"
신라시대 화랑 중에서, 왕이 특별히 임명한 자를 이르는 말. 화랑과 같은 뜻 다른 말이라는 해석과, 화랑들 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총지휘자라는 해석이 있다.
최초의 국선은 설원이라고 하며, 여러 일화를 모은 형식인 삼국유사의 특성상 국선의 자세한 계보는 전하지 않으나 이후 삼국유사에서 국선으로 칭해지는 인물이 여럿 등장하며, 고려사 등 고려시대의 기록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충렬왕이 민적(閔頔)이라는 자를 국선으로 지목한 기사 등이 있다.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국선이 언급되지 않으며, 위서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도 국선이 나오는데 여기선 화랑의 우두머리격으로 풍월주라는 것이 나오고, 화랑세기에서 국선은 사다함과 문노를 국선으로 삼았다는 기사 이후로 등장하지 않다가 신문왕대 김흠돌의 난 이후 풍월주를 폐지하고 다시 국선을 부활시켰다고 쓰고 있다.
2.1. 역대 국선 역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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