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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29 15:13:11

수트리움 공방전


삼니움 전쟁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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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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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삼니움 전쟁 시기인 기원전 311-310년, 삼니움 편에 가담한 에트루리아군이 로마의 동맹 도시인 수트리움을 포위하면서 벌어진 공방전.

2. 상세

기원전 313년, 삼니움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로마군은 삼니움 측으로부터 평화 협약을 맺자는 제안을 받자 공세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이후 양자간의 협상이 이어지던 기원전 312년, 로마가 삼니움을 복속시키면 그 다음은 자기들 차례라고 판단한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전쟁을 선포했다. 삼니움인들은 이에 호응해 평화 협상을 취소했고, 로마는 북쪽의 에트루리아, 남쪽의 삼니움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기원전 311년, 에트루리아군은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30마일 남짓 떨어진 수트리움 시를 포위했다. 로마 원로원은 수트리움을 구하기 위해 당해 집정관인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를 파견했다. 로마군이 접근해오자, 에트루리아군 내부에서는 "그대로 포위하고 있자"는 주장과 "평원으로 나아가 응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는데, 결국 후자가 체택되었다. 바르불라가 수트리움 인근에 도착한 지 이틀 후, 양군이 평원에서 전투를 벌였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전투는 하루 종일 진행되었으며 양자의 사상자가 막대했다. 그러다가 로마군이 예비대를 투입하자 더 이상 전투할 여력이 없던 에트루리아군이 자기 진영으로 후퇴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군은 이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 포위를 뚫을 수 없었고, 에트루리아군은 이듬해까지 포위를 이어갔다.

기원전 310년, 새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가 지원군을 이끌고 수트리움으로 향했다. 에트루리아 당국 역시 지원군을 보냈고, 양자는 다시 한 번 격전을 벌였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이번에도 로마군이 좀더 우세한 전과를 거뒀지만 포위망을 뚫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이에 룰리아누스는 한 번도 군대가 통과한 적이 없던 키미니 숲을 돌파한 뒤 에트루리아의 주요 도시 국가 중 하나인 페루시아에 접근하면서 각지를 약탈했다. 에트루리아 측은 급히 대군을 편성해 맞섰으나 페루시아 전투에서 패배했다.

수트리움을 포위 공격하고 있던 에트루리아군은 이 소식을 접하자 급히 포위를 풀고 철수하면서, 로마는 수트리움을 지킬 수 있었다. 그 후 에트루리아 연맹의 페루시아, 코르토나, 아레티움이 평화 협약을 요청했고, 로마는 이들과 30년 휴전을 맺기로 했다. 다른 에트루리아 도시 국가들은 병력을 규합해 로마에 맞섰지만 바디모 호수 전투에서 패배한 뒤 기원전 308년 역시 30년 휴전을 맺고 전쟁에서 이탈했다. 이로써 로마는 삼니움 쪽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