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동음이의어 삼대 목록을 정리한 문서.모두 숫자 3과 관련되며 소설 삼대, 삼육대학교를 제외하면 '3대'라고도 적는다.
'3대'라는 표기는 ' 세 대'라고도 읽을 수 있다. 수 분류사 '대'는 순우리말 수사를 쓰기 때문이다. 가령 '자동차 3대'는 '자동차 세 대'로 읽는다. 종종 ' 석 대'라고도 한다. 다만 '세 대'로 읽는 이 '3대'는 개별 단어로서의 쓰임이 없다.
2. 한자어
2.1. 三代
아버지-아들-손자의 세 대를 뜻하는 말. 삼세(三世)라고도 한다.일반적인 핵가족은 부모-자식의 2대가 같이 사는 것이 보통이고, 3대가 같이 사는 것은 대가족으로 본다. 근대 이전에는 이주 노동이 흔치 않아 (주로 남자 쪽 집안에)[1] 3대 이상이 같이 사는 형태의 대가족이 일반적이었으나 현대에는 핵가족(2대) 혹은 독신/ 딩크족(1대)이 대부분이다.
3세대 모두 형제 없이 남자만 한 명씩 있는 경우 '삼대 독자(獨子)'라고 한다. 먼 옛날 3대 독자는 군면제 사유였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을 '삼대 세습'이라고 종종 언급한다.
2.1.1. 소설 삼대
자세한 내용은 삼대(소설) 문서 참고하십시오.2.2. 三大
자세한 내용은 삼대 문서 참고하십시오.3가지 큰 것. 2020년대 한국에선 종종 3대 운동의 의미로 '3대 (숫자)' 식으로 쓰곤 한다.
3. 지역
3.1. 三臺, 중국의 3개의 대(臺)
업성 삼대 중 유일하게 석축이 남아있는 금봉대 (금호대)
금봉대 옆의 전군동 유적
위진남북조기 하북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업성에 세워진 3개의 대(臺). 210-14년에 걸쳐 조조가 세워 업성의 서북쪽 방어 거점이자 일종의 시타델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삼대는 황제가 세울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조조가 삼대를 세운 것은 황위를 향한 그의 야심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조조의 사치의 상징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무기고이자 거대한 방어 시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금봉대 바로 아래에는 조조가 비상시의 군대 이동을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인 전군동이 남아있다.[2]
- 동작대 - 210년 건립. 관성대로도 불림.
- 빙정대 - 213년 동작대 북쪽에 건립
- 금호대 - 214년 동작대 남쪽에건립
조조가 세운 삼대는 307년 팔왕의 난 당시 파괴되었고, 335년 후조의 석호가 업으로 천도하며 과거 삼대를 재건하였다. 이때 조위의 삼대보다 더 화려하게 건설하였고, 기녀들을 불러 사치를 벌였다. 후대에 동작대가 사치의 상징이 된 것은 석호 시절의 기록이 와전된 결과이다.
3.2. 삼육대학교의 준말
자세한 내용은 삼육대학교 문서 참고하십시오.삼육은 '지/덕/체'를 뜻한다.
[1]
남자가 여자 쪽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주로
데릴사위라고 따로 구별하여 불렀다.
[2]
이는 조조의 고향인
초현에도 남아있다. 원소의 업이 자신에게 함락되었으니 자신도 언제든 뺏길 수 있다 여겨 방어력 보강에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