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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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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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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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베 야스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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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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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역 무차별 살상사건,
서현역 칼부림 사건과 유사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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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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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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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여대생 살인사건, 금전적 사리사욕 목적이나 살인 전과가 모두 없는 피고인에게 하급심의 사형 판결이 최고 재판소에서 그대로 유지된 유례가 없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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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 사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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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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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구마 살인사건, 자칭 '기도사'라고 활동하며 구마 의식을 명목으로 신도 6명을 구타하여 살해했고 일본의 10번째 여성 사형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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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가와 마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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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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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카와오키 역 흉기난동과 그 외 1명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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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가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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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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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초1 유괴 살인사건으로 피살자가 한 명이지만 죄질이 흉악해 위와 같이 2013년 2월 21일 사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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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야마 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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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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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연쇄 강도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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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야시 미츠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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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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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후지 히로사키지점 방화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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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 츠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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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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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다크사이트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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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뱌아시 카즈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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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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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 강도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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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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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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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현
구루메시에서 보험금을 목적으로
4명의 여성 간호사의 가족들을 연쇄 살인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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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리 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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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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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시 병원장 부인 살인사건 및
구마모토 강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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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카와 마사카쓰(西川正勝·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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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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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2년에 스낵바 여주인 4명을 살해한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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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타 코이치(住田紘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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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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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여성 1명을 강간 및 토막살해한 혐의. 피살자가 1명이었고 전과도 없었으나, 워낙 죄질이 흉악해서 이례적으로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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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 테루히코(関 光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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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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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 비록 범행 내용은 인간 말종이지만 1997년 이래 20년 만에, 그것도 재심 중에 사형이 집행되어 일본의 형사 체계의 문제점이 논쟁의 도마에 오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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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및 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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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06일 ~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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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를 퍼뜨려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테러를 지시한
옴진리교 교주와 테러를 실행한 옴진리교 간부 13명. 여기에는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을 실행한 범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중 나머지 범인 1명은 재판을 받기전
무라이 히데오 척살 사건로 인해 먼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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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게이조(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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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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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전직 야쿠자 2명이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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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모리 히로야(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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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지 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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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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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시내에서 주부 2명을 연달아 강도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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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야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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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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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부터 다음 2005년 1월까지 약 1개월간에 걸쳐 후쿠오카 현내 에서 여성 3명을 잇따라 강도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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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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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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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일가족 살인사건(2003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와 2명의 아이를 포함, 일가족을 강도 살인. 일본 법무성이 사형수 신원을 발표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외국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번이 2번째이다. 나머지 공범 두 명은 중국으로 도주하는데 성공했으나 양국의 사법공조로 귀국 즉시 공안에게 체포되어 각기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당해에 집행되었다. 이러한 협력을 기념(?)하고자 함인지, 특이하게도 이번 집행은 아베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차 중국에 방문하고 있었을 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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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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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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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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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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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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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요 무선 살인 사건의 범인. 한때 자신이 일했던 전기상점에 침입해 망치로 2명을 폭행하고 현금 22만엔과 손목시계 2개를 가져갔다. 이후 증거 인멸을 위해 석유 스토브를 발로 차서 불을 질러 점원 1명을 살해하였다. 현재 일본의 최장기간 복역(현재 [age(1970-11-12)]년) 사형수로 복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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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마 마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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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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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음 살인 사건의 범인. 현재 일본 최고령 (1928년생, 현재 [age(1928-06-04)]세) 사형수로 복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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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오카 토시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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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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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장전선 단체 '늑대'의 멤버로 미쓰비시 중공업, 미쓰비시 물산 등 본사 건물에 폭발 살인사건을 일으켜 8명을 살해하였다. 현재도 그의 공범 2명이 도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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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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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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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살인을 저지른 연쇄 강도살인범. 1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형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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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구치 마사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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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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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상대의 남편을 폭력 조직에 의뢰해 살해하였고, 이후 대금 상환을 위해 남녀 3명을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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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가와 하지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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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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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던 한 여성을 강간하려다 실패해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가나가와는 10년전에도 강도살인죄로 1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지 3개월만에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1심에서는 지능이 낮다고 판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형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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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테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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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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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를 칼로 살해하고 금고에서 30만엔을 탈취한 뒤 부모의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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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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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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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베이스 사건,
아사마 산장 사건의 범인. 일본
적군파의 3인자로, 해당 사건 외에도 2명을 추가로 살해해 총 17명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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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리 카츠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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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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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카이도 본청에 소화기 폭탄을 폭발시켜 2명을 살해하고 8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국제 앰네스티 일본 지부에 따르면,
엔자이 가능성이 가장 높은 7명의 사형수 중 한명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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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쿠마 다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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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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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기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인 전 경찰관 사와치 카즈오와 함께 보석상, 귀금속 업체 등을 털며 약 1억엔에 달하는 강도살인 행각을 벌였다. 카즈오는 1심에서 사형, 이노쿠마는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최종적으론 이노쿠마와 카즈오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다. 카즈오는 형 확정 후 13년 뒤인 2008 복역중 위암으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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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노 세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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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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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사업 경영이 난항을 겪자 쇠 방망이로 2명을 살해한 뒤 현금 2000만엔과 수표 3000만엔을 강탈하는 강도살인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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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요시 히데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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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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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언니에게 경력을 사칭해 많은 사기 행각을 벌이던 중 사기 행각을 들키며 많은 빚을 지게 되자 이에 격분해 아내의 친족 4명을 부엌칼로 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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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타 마사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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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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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을 빼앗을 목적으로 칼로 경찰관을 여러번 찔러 살해, 이후 권총을 탈취해 은행으로 들어가 직원 한명을 살해한 뒤 60만엔을 강탈하였다. 6년전, 전직 경찰관이었던 히로타는 자신의 욕을 하던 상사를 괴롭히기 위해 그의 권총을 훔쳐 우체국에서 강도 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막장 행각이 드러나며 법원에서 징역을 선고 받았고, 이후 감옥에 들어가서도 '서장을 죽이겠다.' 라고 말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가석방이 허가되었고, 가석방이 된지 단 5일만에 해당 범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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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토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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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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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을 목적으로 젊은 여성 2명을 직업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인 후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살해 이후 보험금 3000만엔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자신의 애인인 기타노 히로시와 함께 체포되며 해당 범행을 모두 히로시가 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이는 토모코의 위증이였다. 토모코는 1심에서 사형, 히로시는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이후 2심에서 히로시는 무죄임이 밝혀져 석방되었고, 토모코는 사형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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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사키 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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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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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육상
자위관이었던 시바사키는 은행 강도를 위해 권총을 빼앗으려 칼로 경찰 2명을 살해하였으나 경찰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총을 탈취하는데엔 실패했다. 재판에서 시바사키는 '큰 돈을 가지는 것이 인생에서 승리의 상징이다' 라고 생각해 해당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변호 측은 그가 극도의 정신 장애가 있어 해당 범행을 저질렀다며 무죄 혹은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 부탁했지만, 결국 그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현재 극도의 정신 장애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언어 구조 자체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이학만과 유사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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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마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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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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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 상고심에 재심 2차 청구까지 이어지면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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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리 아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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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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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 소속 18~19세의 미성년자 3인조가 1994년 9월 28일부터 10월 8일까지 시비가 붙은 일반인 총 4명을 폭행살인하고 시신을 유기한 오사카·아이치·기후 연쇄 린치 살인 사건의 범죄자. 1심에서는 코바야시만을 주범으로 보아 사형, 남은 2인에게는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졌으나, 2심에서 피고인 모두가 동등하게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아 전원 사형을 선고한 후 상고가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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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야시 마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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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마사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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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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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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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오사카 생매장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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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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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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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토막 살인사건의 실행범. 피해자의 목을 전기톱으로 참수하는 행동을 저질렀으며 일본에 배심원제(재판원 재판)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사형이 확정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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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다카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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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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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1,2심까지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피해자 유족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보내고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 개선의 요지가 보이지 않자 최고 재판소가 2심으로 파기 환송을 보내면서 아이러니하게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상고를 기각. 사형이 확정되었다. 현재 사형 대기중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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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무라 사네오(北村実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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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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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타 연쇄 살인사건, 남편과 아내, 장남, 차남까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은 이례적인 사건. 2011년 10월에 4명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차남이 양친에게 편지를 주고받게 하지 못한 구치소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모두 집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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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무라 마미(北村真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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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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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무라 타카시(北村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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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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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무라 타카히로(北村孝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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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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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유타로(만 1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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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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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노마키 살인사건의 범죄자. 1999년 이후로 나타난 첫 소년 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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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지마 카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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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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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녀 꽃뱀 살인사건의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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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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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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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연속 살인 방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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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타카히로(白石隆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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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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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가와현 토막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자. 아이스 박스에 피해자 9명의 머리 일부분을 보관했으며 연쇄살인이 아닌 연속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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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마츠 사토시(植松 聖.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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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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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의 주범. 사망자 19명, 부상자 26명이라는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정남규같이 카메라를 보고 웃는 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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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이 하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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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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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노인요양시설 연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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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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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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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하여 여성의 집에 침입해 자고있던 여성의 부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한 후 방화를 저질렀다. 범행당시 엔도 유키는 미성년자인 19세였지만, 2022년 소년법 개정 최초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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