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ピアノ騒音殺人事件1974년 8월 28일에 일본 가나가와현 히라츠카시 타무라[1]의 현영 주택 「현영 요코우치 단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피아노 살인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정신질환자이면서 소리에 극단적으로 과민했던 남자가 "피아노와 목수질 등 아래층에서 나는 소음이 시끄럽다"라고 아래층의 피해자 일가에 살의를 품고 모녀 3명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동시에 인근으로부터의 소음 문제를 클로즈업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 발단
2.1. 범인의 삶
이 사건의 가해자 오하마 마츠조(大浜松三)는 1928년 6월 4일생으로 도쿄도 고토구 카메이도에서 태어났다.그의 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오하마는 원래 성격이 밝고 활발했으나 10살 시절 말 더듬이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어울린 탓에 말더듬증이 생기며 자존심이 낮아졌다. 성적이 우수해 구제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동급생들 앞에서 교과서 읽기를 잘 못해 망신당하는 등 열등감을 가지며 나태해져 졸업직후 친척이 운영하는 군수물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47년 군수물자 공장을 그만두었고, 1948년 구니타치역(도쿄도 구니타치시 소재)에 역무원으로 채용되어 몇 년간 일했지만 경륜 도박으로 돈을 엄청 날렸으며, 1951년에 공금 횡령[2]으로 도주하다가 날치기까지 했고 결국 붙잡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나중에 여러 직장을 옮겨다니는 중에 노숙인 경험까지 했을 정도라고 전해진다. 고향으로 귀향하여 농사일을 돕기도 했지만 역시 의욕이 떨어져 집에 처박혀 살며 형의 책망을 받았고, 다시 도시로 나오기도 했다.
1959년 데릴사위 형식으로 결혼했다가 아내가 전남편을 만난 걸 알게 되어 11개월 만에 3만엔의 위자료와 함께 이혼하게 되었다.
그 후 자동차 회사에서 2교대로 일하며 밤샘 작업을 하고 아침에 자는 일이 많아져 편두통이 생기는 등 예민한 성격이 생겼고, 이른 아침의 참새 소리도 시끄럽게 받아들이곤 했다. 이후 1963년 또다시 재혼하게 된 오하마는 자신의 스테레오 라디오소리에 불평하러 온 이웃과 트러블이 생겼고 그때부터 소음에 대해 더욱 민감하고 신경질적인 남자가 되었으며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동네에서 짖는 개를 죽여 직접 자수하거나 티비를 볼 때도 이어폰을 꽂고 볼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한다.[3]
1967년부터 오하마 부부는 기숙사에서 오하마는 보일러 담당, 아내는 기숙사 관리인으로 취직했으나 기숙사 동료들의 마작하는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퇴직한 후 지금의 SUMCO가 되는 전자 금속 회사에 취직했고 1970년 5월 오하마와 그의 아내는 가나가와현 히라츠카시의 모 공영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2.2. 아래층 가족의 소음
이사하고 두 달 후인 1970년 8월, 아이들을 포함한 오쿠무라 4인가족이 바로 아랫층에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이 집안은 어린 딸 2명을 두어서 애들의 소음으로 시끄러웠고 특히 가장인 남편은 목수일이 취미였기 때문에 매주 주말마다 공사소리를 냈다. 더군다나 공영주택 특성상 벽과 바닥이 얇아 사건이 일어난 해당 주택은 양쪽 집 사이 마룻바닥이 12cm에 불과해 소음이 윗층까지 매우 잘 울리는 실정이었다.오하마는 이 때문에 더욱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종종 아랫층으로 내려와 오쿠무라 부부에게 고충을 호소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73년 6월부터 오쿠무라 집안의 장녀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랫층에선 매일같이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오하마는 계속되는 피아노 소리의 스트레스로 근무하던 공장에서 실직하였고 아내와의 이혼 문제로 심적 고통이 심한 상태였으며 10월부터 편두통이 재발하거나 이명이 생기는 등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그로 인해 취업도 하지 않는 등 자포자기한 생활을 이어가기까지 했다.
아랫층 부부에게 계속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부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결국 그 집안이 고의로 소음을 일으킨다고 믿게 되어 이 이상 계속되면 살해하기로 결심해 아내에게 보복을 시사하는 발언과 각종 소리, 방음에 관한 지식을 익힌 후 이혼 문제로 아내가 친정에 가 있는 점을 이용해 회칼 등 흉기와 신고를 막기 위한 전화선 절단기 등을 구매하였다.
3. 사건 발생
1974년 8월 28일 아침 7시 15분부터 매미소리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아랫층에서는 전보다 2시간 일찍이나 피아노 소리가 들려서 완전히 폭발해 버린 오하마는 당장 오쿠무라 가족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오전 9시 20분, 남편(36세)이 출근한 것과 아내(33세)가 쓰레기를 버리러 외출한 것을 확인한 뒤 아래층 일가 현관문 앞의 전화선을 절단하고는 문을 열어 둔 아랫층 일가로 침입하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피아노를 치던 장녀(8세)는 가슴팍을 회칼에 찔려 사망했고 옆에 있는 차녀(4세)도 같이 살해하였다.
두 사람을 죽인 오하마는 매직펜을 이용하여 부부에 대한 원망을 휘갈겨 썼지만 이것도 잠시였고, 외출하고 온 부인이 돌아오자 그녀도 찔러 살해하였다. 유유히 도주하려 했으나 사건 전날 오쿠무라 일가 옆으로 이사를 와 입주 인사를 하러 왔으나 오하마가 오쿠무라 부인을 이야기하며 욕을 퍼붇는 것을 들었던 이웃이 이를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으며 오하마는 짐을 챙겨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하였다.
'바다에서 죽고 싶다.'라고 생각해 바다로 투신자살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내기도 했고 일가족을 몰살한 후 그럴 계획이었으나 이를 알게 된 경찰이 인근 바다에 병력을 배치하며 결국 하지 못했다. 예상한 건지 농로에 오토바이를 버린 후 택시에 타 근처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나가와현 북쪽 군마현의 요코카와역에서 내려 노상 방치된 차에서 노숙하며 그 와중에 소매치기도 저질렀다. 그러나 경찰이 전국 지명수배를 내린 것을 알게 되자 8월 31일 새벽 12시, 가나가와현으로 돌아와 경찰에 자수하여 체포되었다.
4. 재판
재판 공판에선 오하마의 방 소음을 측정한 시 직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첫번째 측정은 오후 2시경으로 주위의 소음은 44데시벨이었다.하지만 아랫층의 피아노 소리는 측정되지 못해서 두번째 측정은 오전 7시 30분으로 변경하여 측정했지만 창문을 연 상태였음에도 상한치는 44db이었다.
1971년 5월 결정된 소음과 환경의 기준에선 주택가는 낮 50db, 아침저녁 45db, 심야 40db등으로 적혀있었는데 아랫층의 소음은 규정 이내였다. 단 당시 피아노를 친 건 15분 내외에 후에 밝혀진 거지만 경찰관이 친 것이었다.
이용된 측정기준은 가나가와현의 공해 방지 조례에 근거하였지만 조례에는 40~45db의 경우 인체에 대한 영향은 '수면에 방해된다, 아플때 잠들 수 없다'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오하마의 아내 A씨도 증인으로 출석해 "피아노 소리는 자신에게도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고 얘기했다.
오하마를 감정한 정신과 전문의도 "그는 정신병이 없다, 지능도 보통 책임능력은 있지만 소음공해 탓인지 도덕감정이 마모된 정신병질에 해당된다."라고 밝혔다.
1975년 8월 11일 검찰측은 논고에서 "사건은 계획적인 범죄이면서 살해방법은 잔학하며 피아노 소리가 불쾌하다는 범행동기에 참작의 여지는 없다. 극악무도한 범죄에 극형 이외의 형벌은 없다."라고 말하며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1975년 11월 20일 요코하마 지방법원 오다와라 지부는 구형대로 피고에게 사형을 판결하였다.
사건이 언론에 의해 전국으로 퍼지면서 소음 피해자들에 의해 구명탄원활동이 이루어졌다.
1976년 5월, 도쿄고등법원으로 항소한 피고에 대해선 정신감정이 시행되었다.
여기서 심신상실로 감정결과가 제출되었지만 피고인은 동년 10월 5일 "구치소 내 소음을 참지 못하겠다, 죽고싶다."면서 느닷없이 항소를 취하하였다.
이에 변호인은 "공소취소는 무효다."라고 주장하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도쿄고법 형사4부는 "피고 본인 의사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면서 1976년 12월 16일 기각결정을 내린다. 이로써 1977년 4월 16일을 기하여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하지만 오하마는 사건 발생 [age(1974-08-28)]년이 지난 현재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 오하마는 50년 넘게 복역 중이며 나이는 [age(1928-06-04)]세로 일본에서 가장 오랫동안 수감된 사형수이자 최고령 사형수이다.
그는 '자신이 소리에 대해 병적으로 민감하다.'라고 자각은 하였으나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선 1977년에는 "나야말로 진짜 소음공해의 피해자"라며 얘기했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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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문제가 최초로 주목받게 된 사건이다.[4] 이 사건 이후 공동주택에서의 소음 관련 사건이나 소송이 빈발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피아노소음'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인의 소음에 대한 생각이 극적으로 변화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 이 사건은 소음 피해자의 고충을 사회 전체가 들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로 건축되는 공동주택의 바닥두께는 1500mm로 전보다 약 3cm 가량 두껍게 만들도록 법이 개정된다. 업라이트 피아노에는 음을 약하게 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기도 했다.
- 당시나 현재나 층간소음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기 때문에 당시에 소음 피해자 모임에서 가해자인 오하마를 소음 피해자로 옹호하며 탄원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동시에 살해당한 피해자를 소음 가해자로 판단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와 검찰, 법원이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