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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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福岡3人連続保険金殺人事件1978년부터 1979년에 걸쳐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 보험금을 노리고 사람을 해한 사건이었다.
2. 단순사고? 계획살인? 사건의 시작
피해자 가토(가명)가 발견된 장소의 현재 사진.
1979년 5월 9일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니시구에서 한 대학생이 새벽에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 길가에 쓰러져 있던 사람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술 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줄 알고 깨우려던 대학생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남성이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었다.
대학생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피해 남성은 복부에 타이어 자국이 나 있었고 심장파열이 사인이었던 걸로 밝혀졌으며 혈액에서 알코올이 발견되어 취중에 도로에 누워 있다가 지나가던 차량이 미처 이를 피하지 못하고 친 사고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험 많은 담당 형사는 이것이 교통사고일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량이 치고 지나갈 경우 신체의 앞뒤로 타이어 자국이 나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처음 신체가 차에 치일 때 앞바퀴에 치이면 그 충격으로 신체가 지면에서 튀어올라 엎어지면 뒷바퀴가 지나가면서 엎어진 신체에 타이어 자국을 내기 때문인데 피해 남성은 신체의 앞부분에만 타이어 자국이 있었고 등 쪽에는 전혀 아무런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둘째로, 피해자 근처의 도로 지면에 떨어져 있던 오일의 흔적이 문제였다. 보통 고속으로 지나가는 차에서 엔진오일이 떨어진다면 엔진오일이 땅에 떨어지면서 튀기 때문에 땅에는 튀어있는 자국이 남아야 정상이지만 피해자 근처의 엔진오일은 둥근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피해자를 친 차량이 낮은 속도이거나 엔진만 켜놓은 채 주행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이 두 가지 근거를 가지고 담당 형사는 이 사건이 우연한 단순 사고일 리가 없으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도로에 눕힌 다음 차량으로 밟고 지나간 의도적인 계획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를 치고 간 차량의 타이어 자국을 조사한 결과 대형 덤프트럭의 타이어 자국으로 드러났으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해자의 시신 근처에서 수평기가 떨어져 있었다.
3. 수평기가 가리킨 범인
신원조사 결과 피해자는 가토 슈지(가명)라는 37세의 남성으로, 인근의 모리타 토목(가명)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으며 모리타 토목의 사장인 모리타 사장(가명)과 아버지가 친구인 관계로 소개를 받아 입사해 일하던 중이었다. 온화하고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가토는 딱 하나, 술을 마시면 심한 주사를 부리는 게 흠이었을 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모리타 사장의 말에 의하면 가토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갔다가 가토가 취해서 먼저 집에 돌아가겠다고 해 먼저 보내고 나서 자신은 지인들과 술을 계속 마셨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가토가 죽은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변 동료들도 조사했지만 이들의 알리바이에는 문제가 없었다.그런데 현장에서 발견된 수평기에 대해 조사하니 그 수평기는 가토의 것이 아니었다. 가토는 회사에 수평기를 두고 다녔고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다. 형사는 이 수평기가 범인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평기의 판매 경로를 추적했다.
조사 결과 그 수평기는 한 건축회사 사장이 산 것으로 드러났고 그 건축회사 사장을 조사하자 인근 토목회사의 다카이 사장(가명)에게 빌려주었다고 진술했다. 다카이 사장을 조사해 수평기에 대해 물었지만 다카이는 수평기를 잃어버렸는지 도둑맞았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지만 우연히 다카이의 회사에 피해자 가토를 죽였을 법한 대형 덤프트럭이 있었고 현장에 떨어진 엔진오일과 비슷한 엔진오일이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자 담당 형사는 다카이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피해자의 신체에 남은 타이어 흔적이 다카이의 대형 덤프트럭 타이어의 문양과 일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다카이가 은행에서 1,500만 엔을 대출해 갚지 못하던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내자 형사는 더욱 다카이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카이와 가토는 전혀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생면부지인 사람을 의도적으로 계획해서 살인을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사건에 새로운 실마리가 나타났다. 경찰은 피해자 가토의 신변을 조사하면서 그의 보험 관계도 조사했지만 다카이와 연관지을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피해자가 사건 발생 직전 무려 8,000만 엔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고 그 보험금의 수령인으로 지정된 사람이 모리타 사장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자 경찰은 모리타를 용의 선상에 두고 모리타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카이는 토목회사를 차리기 전에 한 회사에서 현장감독으로 일했는데 그 회사가 모리타 토목이었던 걸로 드러났다. 즉 모리타와 다카이는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리타는 여기저기서 많은 빚을 지고 있었는데 빚의 액수가 다 합쳐서 무려 7,500만 엔에 달했다. 심지어 지인의 가족이 노후자금으로 모은 600만 엔을 빌려가 놓고 갚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다시 말해 모리타와 다카이는 모두 많은 빚이 있었고 이 빚을 갚지 못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결국 이들이 피해자 가토의 생명보험금 8,000만 엔을 노리고 가토를 계획적으로 살해했을 개연성이 커 보였다.
결국 경찰은 1979년 9월 모리타와 다카이를 유력한 용의자로 규정하고 경찰에 소환하려고 했으나 자신들이 의심받는다는 걸 눈치챈 이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이들은 후쿠오카현을 벗어나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경찰은 모리타를 추궁했고 결국 모리타는 범행을 시인했다. 가토에게 건축 일을 하니 위험한 만큼 생명보험을 들어 두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 8,000만 엔의 생명보험을 들게 한 다음 자신의 예전 직원이었던 다카이를 끌어들여 다카이에게 술에 취한 가토를 도로에 눕혀 놓고 덤프트럭으로 치어 죽이게 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4. 악마보다 더한 부부의 보험금 연쇄살인
모리타는 자신의 지인인 토모코(가명)의 내연남인 하마다 타케시에게 노후자금 600만 엔을 빌렸는데 이것이 문제였다.하마다는 20년 동안 여러 번 형무소를 들락거린 질이 나쁜 인간이었고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77년에 출소해 토모코를 만나게 되었다. 토모코는 죽은 남편이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인 유미코(가명)와 타카시(가명)라는 남매를 데리고 하마다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출소한 하마다는 딱히 일자리가 없었고 생활 형편이 어려운 처지였다. 여기에 하마다가 알고 지내던 여성이 맡겨둔 돈이 있었는데 이 돈을 모리타에게 빌려주었다. 노후자금 600만 엔의 실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는 모리타가 그 600만 엔을 갚지 못하면서 지인 여성이 자신의 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해서 하마다를 협박하던 상황이었다.
결국 하마다는 모리타를 압박했고 모리타에게 빚을 한 방에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면서 가르쳐 준 것이 다름 아닌 생명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이었다. 모리타에게 가토를 생명보험에 가입하도록 시킨 다음 실행범으로 다카이를 끌어들이고 사건 당일 모리타가 가토를 꼬드겨서 하마다의 집에 불러서 가토를 만취하게 한 다음 모리타는 알리바이를 위해 하마다의 집에 남고 하마다와 토모코가 만취한 가토를 차에 싣고 미리 정해둔 도로가에 도착하여 도로에 가토를 눕혀 놓았으며 대형 덤프트럭을 몰고 뒤따르던 다카이가 만취한 가토를 차로 압살하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다카이는 무려 3분 동안 앞바퀴로 가토를 눌렀던 걸로 드러났지만 미처 자신이 트럭에서 내리면서 수평기가 땅에 떨어진 걸 알지 못했다.
이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으나 모리타는 하마다와 토모코가 이전에도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했다고 진술해 경찰들을 경악시켰다.
모리타는 하마다가 가토를 죽여 보험금을 타내자고 말하기 1주일 전 모리타가 빚을 갚기 힘들다면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라면서 토모코의 의붓딸 유미코를 살해하자고 해 모리타를 경악하게 했다. 유미코에겐 1,000만 엔의 생명보험이 가입되어 있었는데 그걸 노리고서 모리타에게 범행에 동참하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모리타는 차마 그건 못 하겠다면서 거절했고 그 대신 제안받은 것이 바로 모리타의 직원 가토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결국 사건의 주범으로 하마다가 체포되었다. 토모코는 체포하려고 했으나 간경화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한 후 경찰의 감시를 받는 중이었으며 이들의 여죄를 조사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가토가 죽기 1년여 전인 1978년 3월 24일 토모코의 친척인 리에(가명)가 욕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고 그녀가 가입했던 생명보험에서 150만 엔이 지급되었는데 그 보험금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하마다와 토모코였다. 그녀가 자신의 보험금 수령 위임장을 써서 대리인으로 토모코를 지명해서 토모코에게 보험금이 갔지만 위임장을 정밀 감식한 결과 위임장의 필체는 리에의 것이 아닌 토모코의 것이었다. 조사 결과 하마다와 토모코는 리에를 집에 초대해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인 다음 잠이 든 리에를 욕조에 넣어서 질식사시켰던 걸로 밝혀졌다.
리에를 죽인 뒤인 1978년 7월 1일 의붓아들인 타카시를 농수로로 끌고 가서 질식사시킨 다음 시너가 든 비닐봉지를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래서 타카시가 시너를 흡입하다가 몽롱한 상태에서 농수로에 빠져 죽은 걸로 위장했다. 타카시의 명의로 들어둔 1,000만 엔의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짓이었다.
토모코는 전 남편이 병으로 죽은 뒤 보험금으로 1,700만 엔을 수령했던 전적이 있었지만 하마다와 도박에 빠져서 그 보험금을 모두 날려 버렸고 도박에 중독된 나머지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빚을 해결하려고 하마다와 토모코는 토모코의 친척과 의붓아들을 살해했다. 하마다는 경찰의 추궁에 "토모코가 멍청해서 그랬다. 내가 말한 대로 유미코를 처음부터 죽여버렸으면 일이 쉬웠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5. 사건 이후
토모코는 간경화가 악화되어 결국 1980년에 사망했다. 1982년 3월 29일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하마다에게 사형, 모리타에게 15년형, 다카이에게 13년형을 선고했다. 하마다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1984년 6월 19일, 후쿠오카 고등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하마다는 최고재판소에 다시 상고했지만 1988년 3월 8일 최고재판소는 하마다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다.하마다는 사형 확정 이후에도 리에와 타카시는 사고사였으며 자신은 살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가토의 죽음은 모리타와 다카이가 범인이며 자신은 종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었다. 다만 당시 경찰의 추궁에 자백한 내용이 후일 거짓으로 드러난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지간해서는 10년 내에 사형을 집행하는 특성상 사형이 집행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하마다는 2015년 기준으로 27년째 사형수로서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구속기간까지 합치면 45년이다. 일본 법무부는 하마다의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는데 일각에서는 일본 법무부가 하마다의 범행 중 두 건에 대해서는[1] 직접적인 물적 증거가 없고 피살자가 한 명이면 일본 법률상으로 매우 특별한 경우[2]를 제외하면 무기징역 선고를 검토할 수 있기 때문에 사형 집행을 미루는 게 아닌가라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 사법상의 암묵적 관례로 80세가 지난 사형수는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런 소문 탓인지는 몰라도 하마다는 80세 이후로는 재심청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 기준으로 하마다의 나이는 89세였다. 사형을 적극 집행하던 하토야마 구니오 법무상도 그의 사형 집행만큼은 끝내 하지 않았다. 다만 사형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나이를 감안하면 2~3년 내에 감옥에서 죽을 운명이니 사형당하는 것과 다를 것이 별로 없었다.
2017년 6월 26일 법무성은 후쿠오카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던 하마다(90)가 토사물이 목에 막혀 질식사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마이니치 신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