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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8:35:12

사비 에르난데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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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 경력

1.1. FC 바르셀로나

일단 사비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과르디올라 부임 전까지는 데쿠의 서브였다가 유로 2008을 기점으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 하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우선 사비는 오랫동안 후보였다는 인식과는 달리 1군 데뷔 이후 항상 팀의 베스트 일레븐 주전으로 활약해왔다. 데뷔 시즌이었던 1998-99 시즌에만 준주전으로 24경기를 소화했고 그 이듬해에 34경기에 출장하며 완전히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1] 22살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활약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 2005-06 바르셀로나의 더블 시즌 때 부상을 당해 이 해당 시즌에는 2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그 이전에 6년 만에 리그 우승을 탈환했던 2004-05 시즌에는 완전히 주전이었으며 해당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그 결과 스페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만 주전 여부와 별개로 당시 팀의 에이스는 호나우지뉴와 에투, 데쿠였던 것은 사실이고[2]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오랫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팀의 중심이었던 사비의 평가도 대체로 낮았다.[3] 그러나 호나우지뉴, 데쿠가 리빌딩 과정에서 부진, 불성실 등의 이유로 팀을 떠나고 펩 체제가 도래하면서 한층 더 성장한 사비는 08년부터 12년까지 문자 그대로 아예 다른 선수가 범접할 수 없는 당대 제일의 미드필더로 군림하였고, 스페인과 바르샤의 핵심 멤버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레전드급 선수로 자리매김하였다. 심지어 바르샤 은퇴 시즌인 2014-15 때도 로테이션 정책으로 인해 비록 서브로 출전했지만 무려 42경기에서 2100분이 넘는 출전 시간을 보이며 팀의 트레블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4] 사실상 꾸준함의 아이콘. 즉, 원래 잘했고, 펩의 부임 시점부터 베스트 일레븐 안에서의 주목도가 더욱 상승하였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무적 행진과 겹치게 되면서 더욱 떠오른 것이다.

2009-10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벌어진 엘 클라시코에서는 패스 마스터라는 별명에 걸맞은 엄청난 활약을 했다. 레알 수비진이 리오넬 메시에게 달라 붙은 틈을 타 킬패스를 찔러대며 어시스트 2개를 만들어내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첫 번째 골은 사비의 킬패스에 이은 메시의 공간 침투 합작품. 두 번째 어시스트도 사비가 후방에서 정확한 스루패스를 찔러주자 페드로가 받아서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메시에게 몇 번 더 정확한 패스를 찔러줬지만 이케르 카시야스의 야신 모드가 발동하며 추가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2010-11 시즌 엘 클라시코에서는 감각적인 선취 골과 완벽에 가까운 경기 운영으로 5:0 대승을 이끌었다.

20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 바르셀로나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자로 잰 듯한 킬패스로 페드로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것을 비롯, 완벽에 가까운 경기 조율로 바르셀로나의 3:1 완승을 이끌어냈다. 결승골을 기록한 리오넬 메시 다음 가는[5] 이날 승리의 최고 공신이었다.
2011-12 시즌은 좀 애매하다. 시즌 초반에는 이름값과 명성에 어울리는 활동을 해 주었으나,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침체된 경기력을 보였다. 대부분의 팬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 이 사람도 어느덧 만으로 서른 둘이다. 축구 선수, 그것도 활동량이 엄청난 미드필더로서는 이제 체력 문제가 발목을 잡을 나이다. 또 원래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엄청난 활동량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체력 문제는 노쇠화가 진행되며 어쩔 수 없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당장 그를 대신할 만한 선수가 없다는 점. 확실히 그가 체력 문제에 시달리기 시작한 2011-12 시즌 후반기 바르셀로나의 성적은 예전만 못하다. 물론 충분히 위력적이고 아직까지 세계 최강 팀이긴 하나 예전의 그 위압감은 못 낸다는 게 중론. 그렇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바르샤는 2011-12 시즌 통틀어 73%의 승률을 찍었고, 라리가에서 승점 91점을 찍었으며, 챔스도 4강에 가는 등 보통의 경우에는 호평받을 만한 성적을 냈으며[6], 사비 역시 시즌 전체를 돌이켜 볼 때 메시를 제외하면 팀 내에서 가장 잘한 축에 들었다. 기준이 높아 아쉬울 따름이지 이 정도로도 팀이나 개인이나 충분히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2013-14 시즌에는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겪는다. 크카모와는 대조적인 상황. 스페인 내에서는 가비 페르난데스를 대신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지만 델보스케 감독은 사비를 데려갔다. 다만 당시 사비 에르난데스는 개인 최악의 폼이었고, 이런 패착이 맞물린 결과 스페인은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달성하고 만다.

2014년 1월 16일에 2013-14 시즌과 월드컵이 끝난 후 미국 MLS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하는 것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떴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월드컵 이후 미국, 중동 등 링크가 뜨면서 사비가 팀을 떠날 것으로 보였으나 새로운 감독이자 팀 레전드 출신인 루이스 엔리케의 설득으로 1년 더 팀에 남기로 선언하였다.

2014-15 시즌에는 상당한 부진을 겪었는데 예전의 패스마스터는 어디로 갔는지 엘클라시코에서 패스 성공률 74%를 찍는 굴욕을 맛봤다.

2015년 5월 21일, 결국 2014-15 시즌 종료 후 알 사드 SC 이적이 확정되었다. 알 사드와 2년 계약을 체결했고 1년 연장 옵션도 포함되어 있는 조건으로 알려졌다. #

그리고 결국 현지 시간 기준 5월 23일 캄 노우에서 바르셀로나 소속 라리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이니에스타와 40분경 교체되어 나가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 팬들은 짠하고 아쉽다는 반응이었지만 하지만 아직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과 유벤투스와의 챔스 결승전이 남아있기에 더블, 잘하면 트레블도 도전 가능한 상황이었다.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 확정. 영혼의 콤비이자 스스로 언젠간 자신을 은퇴시킬 만한 인재라고 인정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단 둘이서 트로피를 들고 싶다며 그를 이끌고 둘이서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리가에서의 모든 경기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사상 최초의 두 번째 트레블을 향한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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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까지 교체 출전하면서 자신의 바르셀로나 마지막 시즌을 두 번째 트레블로 장식하였다. 원래는 벤치를 지킬 예정이었으나 부주장 이니에스타와 감독 엔리케가 상의 끝에 사비를 배려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사용한 공인구를 챙긴 차비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을 신호로 바르셀로나의 우승이 공식 발표되는 장면이 묘미. 바르셀로나가 무관이었던 시즌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부상으로 은퇴한 또 다른 레전드 카를레스 푸욜에 비하면 사비는 바르셀로나가 다시금 정상에 서서 유럽 축구 클럽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시즌에. 트레블의 광명까지 누리며, 축제 분위기 속에서 명예롭게 마지막 시즌을 장식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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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 에르난데스 퇴단식 연설 내용]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뼛속까지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길고 길었던 17번의 시즌을 지나 오늘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음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누가 뭐래도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고의 클럽입니다.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제 가족, 아내, 그리고 여기 계신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준 환상적인 분들입니다.

마치기 전에 루이스 엔리케 감독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저희는 6월 7일[7], 두 개의 트로피[8]를 더 들고 이 곳에서 트로피 셀레브레이션을 할 것입니다.[9]

감사합니다!

Visca Barça, Visca Catalunya[10]

FC 바르셀로나 통산 기록: 767경기 85골 184도움
라리가 8회: 1998-99,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2005-06, 2008-09, 2010-11, 2014-15
코파 델 레이 3회: 2008-09, 2011-12, 2014-15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6회: 2005, 2006, 2009, 2010, 2011, 2013
UEFA 슈퍼컵 2회: 2009, 2011
FIFA 클럽 월드컵 2회: 2009, 2011

1.2. 알 사드 SC

2015년 5월 말에 2년 계약으로 알 사드로 이적한 사비는 정작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팀이 16강(5월말에 경기가 있었다)에서 레흐위야에게 패해 일찌감치 탈락하여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뛰지 못했으며, 2016년에도 팀이 챔피언스 리그 2차 예선에서 알 자지라 클럽에게 승부차기로 패배하며 연이어 ACL 본선에서 뛰지 못하게 되었다. 알 사드로서는 팀이 아챔 진출권을 얻지 못해 비싼 돈 들여 영입했던 라울 곤살레스가 아챔에 나가지 못했던 일이 되풀이된 셈이다.

2017년 1월 알 사드와 1년 재계약을 맺음으로써 2018년 여름까지 클럽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계약 종료 후 은퇴할 것을 시사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돌았던 지도자의 길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2018년 마음을 바꾸어 2019-20 시즌까지 2년 간 연장 계약을 맺고 선수로 활동하나 싶었는데, 또 다시 마음을 바꿔 2019년 5월 3일 2018-19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지도자의 길로 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9-20 시즌 전부터 FC 바르셀로나 감독 부임설이 돌았지만 키케 세티엔이 바르셀로나에 부임한 뒤, 알 사드와 감독 계약을 맺었다.

2. 국가대표 경력

2000년 11월 15일에 있었던 네덜란드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사비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발탁되어 첫 메이저 대회를 치렀다. 하지만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스페인이 치른 다섯 경기에서 세 경기만 출전하였다. 그래도 한국과의 8강전에 교체 출전했으며 세 번째 승부차기 키커로 나선 사비는[11] 상단 구석을 노린 완벽한 킥으로 골을 성공시켰으나, 이운재의 선방으로 인한 호아킨 산체스의 실축으로 인해 5위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유로 2004에서는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는 등 대회 내내 벤치를 지켰으나[12]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우크라이나전 4:0 대승하여 MOM에 뽑히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 16강전까지 전 경기에 출전했으나, 16강전이었던 프랑스전에서 사비는 비에이라의 퍼포먼스에 억눌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고 경기가 1:1로 팽팽하게 진행되던 와중에 마르코스 세나와 교체되어 나갔다. 이후 스페인은 바로 비에이라에게 역전골을 헌납하였고, 지단이 쐐기골을 넣음으로써 패배해 16강에서 아쉽게 마무리한다.[13]

그리고 대망의 유로 2008에서 사비는 본격적인 무적 함대의 전성기를 알리며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그리스 전을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출전했던 사비는 90%에 육박하는 패스 성공률과 준결승전에서의 선제 득점, 결승전에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전술의 핵심이자 상징적 인물로 군림한 첫 메이저 대회로 평가된다.

1 카시야스 · 2 알비올 · 3 피케 · 4 마르체나 · 5 푸욜 · 6 A. 이니에스타 · 7 다비드 비야 · 8 사비 · 9 토레스
10 파브레가스 · 11 카프데빌라 · 12 V. 발데스 · 13 마타 · 14 알론소 · 15 라모스 · 16 부스케츠 · 17 A. 아르벨로아
18 페드로 · 19 요렌테 · 20 J. 마르티네스 · 21 실바 · 22 J. 나바스 · 23 레이나
파일:스페인 국기.svg 비센테 델보스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무적 함대의 조타수로 대활약, 골은 없었지만[14] 완벽한 패스 플레이를 펼치면서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소위 스페인의 꾸역꾸역 승리에는 사비와 이니에스타가 중원을 완전히 장악한게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사비는 이 대회에서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축구계에서 꽤 권위 있고 신뢰도 높은 개인상인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15]

2011년 3월 25일, 체코와의 경기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유로 2012에서도 전 경기에 출전하며 세계 최고 미드필더의 위용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스페인의 유로 2연패에 톡톡히 기여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이 압권. 또 2회 연속 유로 결승전에서 도움을 올린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다만 30대에 접어든 2012년 이후부턴 슬슬 폼 하락이 느껴졌지만 아직 은퇴를 운운할 정도는 아니었다. 허나 리즈 시절 거의 경기마다 보여준 유려한 탈압박과 공격 전개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는 점, 또 하도 당한 상대팀들 역시 중원의 사령관인 사비를 막기 위해 수비 라인을 뒤로 내리고 카운터 어택을 노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하여 엄청난 활동량으로 전진 압박을 통해 공격 전개 자체를 못하게 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팀들이 많아진 점 등이 동시에 맞아 떨어지면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이름값보단 못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사비는 조별 리그 1차전만 뛰고 2차전부터는 선발에서 제외되었다. 다만 이는 사비라는 선수의 기대치에 걸맞지 않았다는 거지, 사비의 플레이 자체가 매우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네덜란드전 전반 25분경, 사비의 기가 막힌 스루패스가 쇄도하던 디에고 코스타에게 정확히 배달되었지만 슛을 날리기 직전 걸려 넘어져 페널티 킥을 얻어내었고 샤비 알론소가 깔끔하게 성공시켜 선제 골에 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물론 결과는... 애초에 사비가 피지컬이 좋은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신기의 볼키핑과 유려한 탈압박으로 버티는 선수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 두 개 모두 폼이 떨어지게 된 것이 국대에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디펜딩 챔피언으로는 충격적인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봤고 사비는 월드컵 이후 스페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사비의 국가대표 데뷔 경기가 네덜란드전이었는데, 마지막 경기도 네덜란드전이었다.[16]


[1] 한국과의 8강전 경기에서 승부차기 세 번째 키커로 나와 골대 오른쪽 모서리에 박아버리는 완벽한 승부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2] 물론 사비도 라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수준급 선수였으나 호나우지뉴는 04년 FIFA 올해의 선수상, 05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06년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상을 수상한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또한 에투는 2004-05~2005-06 시즌 라리가 득점왕과 2005-06 시즌 챔스 도움왕을 차지하고, 05년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 06년 UEFA 올해의 공격수상을 수상한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으며, 데쿠는 04년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상과 발롱도르 2위에 오르고, 06년 UEFA 올해의 미드필더상을 수상한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다. 특히 데쿠는 포지션이 꽤 겹치다 보니 사비가 바르셀로나에서 데쿠 후순위 이미지를 가지는데 일조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사비의 위상이 더 대단하다. [3] 사비 에르난데스가 잉글랜드의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은 적도 있긴 했으나 그때 그 평가는 나름 정당했다. 2010년대 중반 넘어가면서 축구 팬들이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아 피를로, 샤비 알론소에 비해 램파드나 제라드를 조금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램파드나 제라드는 전성기가 이 선수들보다 더 일찍 왔고 그 당시 이들은 PL과 유럽 대항전을 쥐락펴락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는데 사비 등이 이 활약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다. (단, 국대 한정해서는 피를로가 이미 2006 독일 월드컵을 우승해서 램파드, 제라드보다는 이미 높았다.) 그때 이들이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했으며, 세계 축구인의 전반적인 견해가 그러했다. 특히 오프사이드 룰 개정으로 인해 축구 라인이 3선에서 4선으로 넓어지고 4-4-2가 쇠락하며 램파드나 제라드 같은 피지컬 좋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들이 손해를 보고 이들이 이득을 본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점유율 축구가 대세가 되면서 패스와 조율에 특화된 플레이 메이커 유형의 중앙 미드필더가 박스 투 박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도 크게 작용한다. 발롱도르 순위를 보면 사비는 2007년까지 발롱 유효표를 받은 적이 없고 심지어 50인 후보에 든 것도 2005년 단 한 번에 불과하다. 실력을 떠나 당시 선수 개인에 대한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은 사실인 것이다. [4] 1996-97 시즌이 선수 시절 최전성기 중 하나로 꼽히는 델 피에로의 경우도 해당 시즌 출전 시간이 총 2000분대 초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사비에게만 이중적인 잣대가 지워진다는 사실을 지우기 힘들다. [5] 사비를 최고 수훈 선수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메시가 결승골을 넣기는 했지만 메시가 결승골을 넣기 전까지 맨유의 미드필더들은 거의 공을 만지지 못하는 수준으로 사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에게 신나게 털리고 있었다. 박지성은 박살나는 맨유 미드필더진에서 정말 눈물 빠지게 뛰어다녔지만 체력만으로 기량의 열세를 극복할 수는 없었고 결국 60분대부터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고 맨유 미드필더들은 제대로 바르사를 압박하지 못했다. 메시가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바르사 미드필더진의 이런 압도적인 플레이 덕분이었던 것이다. [6] 리버풀이 프리미어 리그 개편 이후 가장 호조를 보인 것은 2008-09 시즌이며, 이 시기 이견의 여지가 없는 정상급의 강팀이었다. 그럼에도 2011-12 시즌의 바르셀로나가 모든 면에서 성적이 더 좋다. [7] 연설 당시는 5월 23일 [8] 5월 31일 코파 델 레이 결승 / 6월 7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9] 실제로 두 대회 모두 우승하며 트레블 달성 [10] 바르셀로나 만세, 카탈루냐 만세 [11] 지금은 너무 유명하지만 당시엔 신인선수 였던지라 SBS 송재익 해설위원이 얼굴만 보고 루이스 엔리케가 나온다고 착각했다가 등번호를 확인하고 사비로 정정할 정도로 인지도가 없었다. [12] 당시 사비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기에 본인의 실력을 뽐낼 기회가 없었다. [13] 그러나 자신들이 4:0으로 이겼던 우크라이나가 8강까지 올랐다. [14] 어시스트 2개, MOM 2번, 슈팅은 7경기 동안 7개, 패스 성공률은 평균 81%, 평균 활동량은 약 14km. [15] 2010년 사비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가 서로 양분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두 선수를 제치고 수상한 사례다. 이후 2018년에 루카 모드리치가 수상하면서 호날두와 메시가 서로 양분하던 수상 양상도 다시 한 번 더 깨지게 된다. [16] 이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마찬가지다. A매치 데뷔 경기가 2006년 5월 27일 러시아 전이었는데 마지막 경기도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러시아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