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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塞王)
사마흔 司馬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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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colbgcolor=#FFFFFF,#191919> 새왕(塞王) | |
성 | 사마(司馬) | |
휘 | 흔(欣) | |
사망지 | 성고(成皐)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203년 |
재위 기간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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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한쟁패기의 인물로, 진나라와 초나라, 한나라의 장수이자 초나라의 분봉왕으로 초한쟁패기의 주요 나라에서 모두 관직 생활을 해본 흔치 않은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2. 생애
사마흔은 역양(약양)에서 옥리를 한 적이 있었고 항량에게 덕을 베푼 적이 있다고 하며, 반진 봉기 진압을 위해 장한을 따라 종군했다. 승승장구하던 장한이 항우에게 거록대전에서 패하자,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한 허가를 받기 위해 장한은 사마흔을 함양으로 파견했다. 하지만 당시 진나라의 조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조고는 3일 동안이나 사마흔을 만나주지 않았다.사마흔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장한에게 돌아오는데, 조고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까봐 왔던 길과 노선을 달리해서 장한에게 돌아왔다. 실제로 조고는 돌아가는 사마흔을 도중에 죽이려고 했으나 그가 이런 분위기를 깨닫고 다른 길로 돌아가는 바람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사마흔은 장한에게 진나라 황실이 조고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있으며 장한이 전쟁에서 이기건 지건 무조건 조고에게 죽게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조고 입장에서는 장한이 전쟁에서 이길 경우 자신의 견제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죽이려고 할 것이고 전쟁에서 질 경우 패전의 책임을 물어 죽이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사마흔은 갈 곳이 없어진 장한을 동예와 함께 설득해서 결국 항우에게 항복하도록 했다. 이 공로로 장한은 옹왕, 사마흔은 상장군에 봉해졌다. 항우가 20만 진나라 병사를 갱살해버린 신안대학살에서도 사마흔은 장한, 동예와 함께 살아남았다.
이후 항우의 18제후왕 분봉때 옹왕 장한, 적왕 동예와 함께 새왕에 봉해져 약양을 도읍으로 했고 장한, 동예와 함께 유방을 견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유방의 한나라가 관중정벌을 할 적에 동예와 함께 한나라에 항복했는데, 팽성대전에서 유방이 크게 패해서 달아나자 다시 초나라에 투항했다.
기원전 204년 대사마 조구, 적왕 동예와 함께 성고를 지키다가 항우가 팽월을 치러 나간 사이에 치고 나온 유방에게 패해 결국 자결한다. 전투가 끝난 후 사마흔의 머리는 당시 한나라의 수도이자 그가 한 때 도읍을 둔 약양[1]에 효수됐다. 지조가 없이 진나라, 항우, 유방, 항우 순으로 줄타기를 했기 때문에 유방 입장에서 영 좋지 않게 보였고 경고 차원에서 효수한 것으로 보인다.
3. 대중매체에서
3.1. 초한전기
초한전기에서는 초반부, 자신의 집에 열어진 연회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한 항량과 항백, 항우를 심문하면서 등장한다. 원래는 경면형[2]을 내리려 했다. 뇌물을 바치려는 항백에겐 눈길 하나 안주고는 항량 일가의 진실을 꿰뚫어보고 도주할 시간을 준다. 처음에는 벌을 받으니 차라리 죽이라고 뻗대던 항우도 그를 칭찬하며 함께 했음 좋았었다라고 할 정도로 인식을 바꾼다.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이후 오광과 진승의 반란에 장한과 같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장한을 감시하라는 조고의 명령을 따랐지만, 장한과 맺어진 신희공주가 어의를 시켜 자신의 어머니를 치료해주자 감동, 진심으로 장한을 따른다. 그러나 전황은 악화되어 병력이 부족하자 장한의 부탁으로 병력을 충원받으러 가지만 이미 조고에 의해 꽉 틀어쥐여진 데다 병력조차 없는지라 겨우 겨우 긁어모은 극소수의 병력이라도 데려간다.이후 거록대전에서 대패를 하고 희망이 없어지자 장한에게 항복을 권한다. 그렇찮아도 진심으로 서로 사랑했던 신희공주도, 충성을 바치던 호해도 조고에게 잃은 장한은 사마흔의 권유에 항우에게 항복을 하게 되지만, 이후 벌어진 신안대학살에 희생된 진나라 장병들의 제를 장한이 올리는걸 말리면서도 그 자신도 씁쓸해 한다. 장한 사후에는 등장이 뜸하다가, 초나라 장수 조구를 보필하면서 재등장. 주발과 하후영의 도발에 넘어가려는 조구를 범증까지 거론하면서 말리지만 조구는 말을 듣지 않고 출전하다 대패를 하게 되고 성을 잃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66화, 67화에서 진평의 이간계에 희생된다. 이간계에 속은 항우의 압박에 몰려 자신의 행적을 정리하는 글을 쓰다가 회한에 젖어 칼도 아니고 젓가락으로 자살한다. 젓가락에게 독백을 하는 장면이 짠하다. 이 사건은 이후 벌어진 항우 진영내 비(非)초나라계에 대한 대숙청의 시작이자 항우가 범증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된다.
3.2. 고우영 초한지
고우영 초한지에서는 동예와 단짝 친구로 나오는데, 강직한 군인의 이미지로 나온다. 진나라 군을 이끌고 항우와 싸우던 장한이, 마지막으로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사마흔을 함양으로 보내는데 조고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후한 대접을 하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면서도 '전우들과 함께 누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전우들에게 미안하구나.'라고 아쉬워한다.[3] 관중정벌 때도 한신이 "사마흔은 함부로 항복할 사람은 아니지."라고 말해서 먼저 항복한 동예를 창피하게 만든다. 이후 계책을 써서 포로로 잡은 뒤 번쾌가 '이런 장수는 포박을 풀고 예의를 갖추는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팽성대전 이후 다시 초에 투항했다가 배신자는 역겹다며 항우가 사마흔과 동예를 처형시키자 살려달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동예와는 달리 말 없이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다.
3.3.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유방전에서 적으로 등장한다. 병과는 경기병, 능력치는 무력 70, 지력 89, 통솔 83, 민첩 73, 행운 66. 성격은 보통.
동아 전투에서는 장한 휘하에서 참전한 것으로 나오다가 동아 전투의 패배로 군을 나누어 퇴각하자 사마흔으로 복양으로 도주하면서 시간을 끌기 위해 추격한 유방군과 복양성에서 싸웠다가 복양성이 함락된다. 또다시 도주해 당림에서 유방군과 싸우는데, 이 때 항량의 사자가 나타나 항량의 구원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선택지가 뜨고 항량의 구원, 사마흔의 추격 둘 중 어느 쪽을 우선하는지 나오며, 사마흔의 추격을 우선으로 하면 사마흔을 퇴각시켜도 붙잡지 못하고 돌아가서는 유방이 항우에게 살해당한다. 항량의 구원을 우선으로 하면 유방군이 철수하면서 항량의 죽음을 애도하고 항우와 의형제를 맺는다.
항우가 팽성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와서 싸우면서 장한의 지시로 원군을 요청하는 사자로 파견되었지만 조고에게 암살당할 뻔 하며, 장한에게 부패한 진나라 조정의 상황을 알린다. 결국 장한과 함께 항우의 초군에게 항복한 후에 진이 멸망하면서 옹왕에 임명되었다.
유방이 서쪽에서 군사를 이끌고 장한, 동예를 물리친 후에는 자신에게 오자 역양에서 맞서 싸우는데, 동예의 부하인 이지가 와서 항복 권유를 하자 분노해서 감옥에 가둔다. 유방군의 관영이 동예를 끌고 와서 항복하겠다는 것에 속아서 들어오게 했다가 관영이 일으킨 화재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번쾌와의 단기접전으로 붙잡혀 유방에게 항복한다.
수수대전에 참전했다가 초군에게 패해 붙잡혔다가 동예와 함께 처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