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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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왕(燕王)
臧荼 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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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연왕(燕王) | |
씨 | 장(臧) | |
휘 | 도(荼) | |
생몰 기간 | ? ~ 기원전 202년 7월 | |
재위 기간 | 기원전 206년 음력 2월 ~ 기원전 202년 7월 |
1. 개요
초한쟁패기의 인물.2. 생애
원래는 진나라 말기 진승·오광의 난을 틈타 기원전 209년에 재건된 연나라의 왕 한광의 장수로, 조나라가 진나라 장군 장한의 공격으로 거록에서 포위되자 이를 구원하러 갔다. 이후 조나라 구원에서 주축이 된 초나라의 항우를 중심으로 다른 제후들의 구원군과 연합하여, 함께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했다.이후에도 한나라에 엿을 먹이는 일이 있었다. 훗날 진희가 난을 일으키고 흉노와 내통을 시작할 때 노관도 장승이라는 자를 흉노에 사신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이 때 장도의 아들인 장연(臧衍)이 흉노로 도망쳐 머물고 있었는데 장승을 설득하여 진희를 치는 일을 미루도록 만들었다. 이 일로 노관은 유방의 의심을 사서 끝내 반역자가 됐으니 끝까지 유방을 물먹인셈.
다만 묘하게도 본인들이 살아 생전 의도한건 아니지만(...) 한고조 유방과는 인척이다. 장도의 손녀인 장아(臧兒)가 한경제의 부인인 효경황후의 어머니이기 때문.[5]
[1]
한광의 근거지 였으며
베이징과
톈진 사이에 있는 것으로 추정. 그런데 장도의 근거지인 계(薊) 역시 근처에 있었다. 아마도 방 빼고 나가라고(...) 요구한 장도에게 한광이 반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2]
단, 이는 항우의 허락을 받지 않고 멋대로 한 일이다. 항우는 이 일로 장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훗날
유방에게 항복하는 계기가 된다.
[3]
반란을 고변한 것은 이전에 고제에게 파견했던 소섭도미와 온개였고 이들에게 공격당했다고 한다.
[4]
아무리 혼란기라고 하나 황제로 추대한 다음 거의 바로(...) 반란을 일으킨 것. 이전에 한광을 죽인 일도 그렇고 당시의 혼란을 보여주는 인물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5]
경제는 고제의 손자다. 즉 고제의 손자와 장도의 증손녀가 결혼한 것. 문제는 고제가 46세 때 낳은 늦둥이긴 하나 경제는 문제가 15세 때 낳은 아들이라 합치면 2대 59년으로 고제가 늦춘 세대차가 어느 정도 벌충된다. 효경황후는 재혼이었지만
한무제를 포함한 자녀들을 가졌으므로 젊다고 볼 여지가 있고 장도는
장이만큼은 아니지만 고제보다는 연장자일 확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