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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c3f6b><colcolor=#fff>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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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 1768년 |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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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언어 | 영어 | ||||
모토 | 의문이 들 때는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을 찾아보라(When in doubt Look it up in Encyclopædia Britannica). | ||||
홈페이지 |
브리태니커 한국 온라인판(2011년) 회사 홈페이지 브리태니커 영문판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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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엔사이클로패디아 브리태니커, Encyclopædia Britannica)은 미국의 백과사전이다. 일반인 독자를 대상으로 저술된 백과사전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백과사전으로, 기술 언어는 영어이다. 1768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출판되어 현재는 미국에서 발행, 관리되고 있으며, 15판을 인쇄하고 2010년 이후 온라인 사전으로 이전되었다.2. 역사
브리태니커 백과는 현대까지 꾸준히 발행, 편집되는 백과사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2018년에는 250주년을 맞이했다.1768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콜린 맥파커가 집필하고 앤드루 벨이 간행한 것을 그 시작으로 본다.[1] 1870년에 영국 잉글랜드의 더 타임스지가 이에 관심을 갖고 출판 지원을 해 주었으며, 이후 11판은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협력한 판본이다. 1901년 이후 판권이 미국에 넘어가면서 그 이후 시카고에서 간행되고 있으며, 본고장인 영국에서 따로 발행되지는 않고 있다. 단, 영어 철자만큼은 미국식이 아닌 영국식을 따르고 있다.
2.1. 인쇄본의 종말
1980년대만 하더라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미국 중산층 서재의 필수요소였지만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인쇄본 브래태니커의 판매량이 점점 감소하다가[2] 결국 첫 인쇄판이 나온지 244년 만인 2012년에 인쇄본의 생산중단이 결정되었다. 호르헤 카우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회장은 "일부는 슬퍼하며 향수를 느낄 테지만 웹사이트라는 더 나은 도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인터넷판 브리태니커는 계속 업데이트 중에 있다.3. 인지도와 규모
이 백과사전이 가진 장점은 지식의 정확함[3]과 함께 어떠한 백과사전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항목만도 12만 개가 넘으며, 원본의 단어수(words)[4]가 무려 4400만 단어이다. 항목(문서) 500만 개의 나무위키, 600여만 개의 영어 위키백과에 비하면 적어보일 수 있지만,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와는 다르게 최소한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가 집필하고 검토하여 항목을 만들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매번 수록한 학자가 점점 늘어나는데, 1974년에 제작된 마지막판인 15판에는 4천명의 학자가 참여했고, 인쇄비를 제외한 편집 제작비가 그 당시 돈으로 3,200만 달러였다. 구성은 짧은 글로 이루어진 마이크로피디아(Micropædia) 12권, 긴 글로 이루어진 매크로피디아(Macropædia) 17권, 그리고 모든 권에 들어 있는 정보의 분류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프로피디아(Propædia) 한 권, 인덱스가 두권이다.
4. 한국어판 브리태니커
한국 사업은 1968년 한창기 등의 주도로 현지법인 '한국브리태니커회사'가 세워진 후 한동안 그 회사가 맡았지만, 2015년부터 관련 자산이 신규법인 디에디터로 넘어갔다.한국어판의 경우 항목이 누락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번역 항목 78,355 항목, 새로 쓴 항목이 3만 항목 정도. 한글판은 152만원에 판매되었으나 세월이 지나 품절됐고, 공공도서관 역시 점차 제적처리한 터라 2020년대 기준 종이책 브리태니커를 굳이 보려면 국립중앙도서관 혹은 국회도서관을 찾거나 헌책방을 전전해야 한다. 중고품 1질 전체가 15~20만원선에 판매되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보려면 플레이스토어에서 2만원에 볼 수 있다.
한국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980년대 출생의 자녀를 둔 집에서 자녀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라면 웬만하면 다들 사들였을 정도로 당시에 인기였다. 말하자면 자녀를 우등생으로 키우는 필수요소로 여겨졌다. 색인, 출처 각각 1권 포함 27권(28권짜리도 있다). 1992~1998년판까지 동아일보와 공동출판했고, 1995년에 150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웅진출판에서 판매하였다. 1994년까지는 한국브리태니카회사에서 직접 판매했는데 1995년에 미국 본사 방침에 의한 판매조직 숙청의 여파로 웅진출판이 판매대행을 하게 된 것. 단행본 550권짜리 200자 50만 장 분량의 14만 4천 원짜리 세계 연감도 있다.
5. 아동용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의 아동용 버전인 " The Young Children's Encyclopedia"가 있다. 총 16권이다. 7년 간의 작업 끝에 1970년에 발매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어, 일본어로도 번역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판매 사이트에 사진을 찍은 내용 일부가 나온다. 링크, 링크 2, 링크 3, 링크 4. 대한민국에서는 1979년 2월 1일에 처음으로 "브리태니커 어린이 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동년 3월 20일에 나왔다. 이후에도 1981년, 1989년 등 얼마간 재판되었다. 한국 버전은 1979년 첫 번역이라 그런지 읍니다체가 나오고, 이름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현지화 되었는데 정작 그림은 그대로라 괴리감이 있다. 한국판 고유로, 한국에서 그린 삽화가 따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해외의 각종 문화도 다루다보니 한국에서 1970~80년대 당시 생소했던 음식(메이플 시럽, 또르띠아) 등을 이 책에서 배운 사람들이 있다.또 "Britannica Learning Library"라는 작품이 있으며, 2015년 11월에 미래엔의 자회사인 아이세움에서 브리태니커 측에서 라이선스를 얻어 " 브리태니커 만화 백과"라는 아동용 학습만화로 출간하였다. 처음에는 Why? 과학 마냥 과학 분야만 출간하다가 후에 인문사회 분야도 출간되었다. 총 50권이며 가격은 예림당에서 발행하고 있는 Why? 계열 학습만화와 동일한 1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6. 구독 방법
원전이나 다름없는 진짜 책, CD, DVD로 판매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온라인으로 볼 경우 요약적인 설명만 나와 있으며 제대로 된 내용을 보려면 당연히 결제해야 한다. 아이리버와 카시오의 일부 전자사전에도 들어있으며 삼성전자의 휴대 전화인 애니콜 코비에도 이 사전이 들어있다. 단, 전자사전에 내장되어 있는 버전들의 경우 업데이트가 불가능하다.공짜로 보고 싶으면 원조 지식과 정보의 바다인 도서관을 이용하자. 사서가 좀 신경 쓰는 도서관에는 한국어판이 전질로 들어와 있을 테고, 제대로 된 대학도서관이면 최신 영문판 전질은 기본이고 온라인 DB 검색도 무료로 가능할 수도 있다. 심지어 연도별로 브리태니커 연감을 보존서고에 예쁘게 넣어놓은 곳도 있다.
안드로이드 앱으로도 출시되어있으며 2만원에 판매하는 유료앱이다. 단 콘사이스판이니 유의. 영문판 앱도 있으며 iOS 전용으로 출시되었다.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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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을 세운
위만에 대해서는 "위만이 고조선을 지배했다 하여 중국계 국가가 됐다고 보기는 힘들며, 오히려 정황상 위만은 이전에도
한나라 소속으로 일한 장군이었을 뿐 태생은 조선 혈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일본의
신토에 대해서는 "신토는
한반도의
샤머니즘으로부터 매우 짙은 영향을 받았다"고 기술되어 있다. 더불어 막상 자국 내에서는 흔히 "쇄국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가혹한 평가를 받는
흥선대원군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5] 이건 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닌 원본 영문판이 이렇단 얘기다. 따라서
한국사라는 주제에 무관심으로 대응하거나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 떡밥 등에 넘어가는 매체는 전혀 아니니 한국인 독자 입장에서도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다만 브리태니커가 무조건 한국 학계와 뜻을 같이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도 있는데 21세기에도 한국인이 퉁구스 제족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을 조금씩 밀고 있는 매체라는 점이 이런 사례에 해당된다. 한국인이 퉁구스 제민족의 일부일 가능성은 1970년대 이후 한국 학계에서는 사실상 가능성을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는 브리태니커에선 2018년까지도 묘하게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위 문단의 내용들은 브리태니커의 편집진이 한국 학계를 특별히 존중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학계와 해외 학계의 견해가 온전히 일치하는 부분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
영어 위키백과가 지적받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각 항목별로 내용의 길이가 고르지 않고 지나치게 간략한 항목과 지나치게 세세한 항목이 마구잡이로 섞여있다는 건데, 사실 이 문제는 브리태니커가 훨씬 심하며, 거의 넘사벽 수준이다. 데스크톱으로 인터넷판을 볼 경우 꼴랑 5줄 정도로 서술되어 있는 항목이 무수히 있는가 하면 "유럽의 역사(
History of Europe)" 같은 항목은 15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이것은 단순한 단점이 아닌 것이 브리태니커는 편집 방식이 일반 백과사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974년의 15판부터 간단한 서술의 마이크로피디아와 길고 깊은 내용의 매크로피디아로 나뉘어 편집된다. 이는 당시 편집장인 모티머 J. 애들러가 도입한 방식으로 애들러는 백과사전의 알파벳 순 나열을 '알파벳주의'로 부르며 혐오하였고 주제별 배열법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주제별 배열법을 도입하기에는 불편함이 컸기 때문에 그 둘을 타협한 것이 15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다. 1권으로 이루어진 프로피디아는 모든 지식을 개괄하여 주제별로 배열하였고 이는 매크로피디아의 목차 역할을 한다. 매크로피디아를 읽다 세세하고 자질구레한 내용은 마치 주석처럼 마이크로피디아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 배열은 알파벳순이기 때문에 이전처럼 원하는 것을 찾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컴퓨터, 온라인판에서 프로피디아가 삭제되고 매크로피디아와 마이크로피디아의 구분이 사라진 데다 인쇄판은 더이상 출판되지 않게 되자 애들러가 구상한 것은 자연히 흑역사화되었고 그 결과로 간략한 항목과 세세한 항목이 "마구잡이로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 영문판 브리태니커의 첫 항목은 아악(a-ak)이다. (a-ak (ancient East Asian music): see gagaku) 마지막 항목은 지브니(Zywny)인데, 별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프레데리크 쇼팽의 첫 스승이어서 백과사전에 올랐다. 즉 처음과 마지막 항목이 모두 음악과 관련이 있다.
- 영국의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은 이 책을 매우 좋아해서 자주 읽었고, 극지방 탐험 때도 이 책을 가져갔다. 섀클턴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불쏘시개로는 최고였다고. 사실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책이 불쏘시개 용도로도 잘 쓰였다는 점에 대한 아이러니한 감정을 나타낸 것.
- 서브컬처와 관계된 문단도 있는데, 디즈니와 닌텐도 관련문서가 가장 많다.
8. 외부 링크
- 한국어
[1]
표지에
엉겅퀴꽃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그 기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국화가 엉겅퀴이기 때문.
[2]
2010년판의 판매량이 저조해 2011년판은 만들지도 못했을 지경. 2010년판은 12,000부를 찍었는데 그 중 8,000부만 팔렸다.
[3]
그래도 사람이 하는것이기에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출판 당시와 이후 상황이 달라져서 처음에는 맞는 것이 틀린 것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틀린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4]
글자수(characters)와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자소서 같은 것을 학교나 공공기관 등에 제출할 때 글자수를 주로 보지만, 영미권에서는 학교에서 에세이를 제출하라 할 때 단어수(words)를 주로 본다.
[5]
실제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해가 많았다. 2010년대 넘어서부터
조선과 조선 말기에 대한 연구가 더욱 대중적으로 퍼지며 흥선대원군에 대한 고지식한 비판은 많이 사라진 편이나, 과거에는 명성황후에 대비되는 효과나 그냥 꽉막힌 쇄국주의자로 비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