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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반부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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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내물 마립간의 왕비
보반부인 | 保反夫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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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신라 미추 이사금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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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효과로 복원한 황남대총 피장자의 모습 | |||
출생 | 330년대 중반 ~ 340년대 초반(추정)[1] | ||
사망 | 연대 미상[2] | ||
능묘 | 황남대총(추정) | ||
재임기간 (음력) |
신라 왕비 | ||
356년 4월 ~ 402년 2월 (4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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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본관 | 경주 김씨 | |
부왕 | 미추 이사금[3] | ||
모후 | 광명부인 | ||
형제자매 | 자매 - 아류부인 | ||
부군 | 내물 마립간 | ||
자녀 |
슬하 3남 아들 - 태자 김눌지[4], 김복호, 김미사흔 |
||
신장 | 143cm(추정)[5] | ||
호 | 보반부인(保反夫人) | ||
이칭 |
내례길포(內禮吉怖)[6], 내례희부인(內禮希夫人)[7] |
1. 개요
[clearfix]
1. 개요
신라의 공주이자 왕비. 본관은 경주 김씨. 미추 이사금의 딸, 내물 마립간의 왕비, 눌지 마립간의 어머니.미추 이사금의 두 딸인 보반부인과 아류부인은 각각 친척인 내물 마립간과 실성 마립간과 결혼했는데, 이로 인해 내물 마립간과 실성 마립간은 미추 이사금의 사위 자격으로 차례로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 미추 이사금 시기와 남편 내물 마립간 시기가 너무 차이나는데, 학계에서는 신라 초기 왕계에 기년 조작이 있다고 본다.
별칭은 내례길포(內禮吉怖) 또는 내례희부인(內禮希夫人). 여기서의 내례(內禮)는 당시 발음이 '노레'에 가까웠는데, 6세기 신라의 인명인 내례부지의 사례를 참고하면 현대어의 누리에 대응되는 낱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능묘는 비정된 곳이 없으나 대릉원의 남분 황남대총이 아들 눌지 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설이 인정받고 있으나 남편 내물 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으니 내물 마립간 설이 맞다면 보반부인도 황남대총 북분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북분의 주인이 그녀라면 황남대총 북분 금관의 주인이기도 할 것이다.
[1]
남편인
내물 마립간이 330년대 중반에서 340년대 초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내물 마립간과 같은 나이에 결혼했다면 보반부인은
330년대 중반에서
340년대 초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
3남 미사흔을
393년에 보았으므로 최소한 그 때까진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왕비는 김씨로 미추왕(味鄒王)의 딸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물 이사금조
[4]
《삼국사기》엔 태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5]
출처 황남대총의 북분 주인 머리부터 발까지의 길이로 추정한 키인데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이 보반부인의 가정하면 아류부인의 키는 143cm가 된다.
[6]
어머니는 보반부인(保反夫人)(또는 내례길포(內禮吉怖)라고도 한다.)으로 미추왕(味鄒王)의 딸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 마립간조
[7]
어머니는 내례희부인(內禮希夫人) 김씨로
미추왕의 딸이다. -
삼국유사 왕력편 눌지 마립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