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a650><colcolor=#fff> 변중석
邊仲錫 | Byun Jung S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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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1년 8월 16일[1] |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옥마리 (現 북한 강원도 통천군 옥마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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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7년 8월 17일 (향년 86세)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종교 | 개신교[3] |
배우자 | 정주영(1936년 결혼, 2001년 사별) |
자녀 |
장남
정몽필 (1934~1982)[4] 차남 정몽구 (1938~) 삼남 정몽근 (1942~) 장녀 정경희 (1944~) 사남 정몽우 (1945~1990) 오남 정몽헌 (1948~2003) 육남 정몽준 (1951~)[5] 칠남 정몽윤 (1955~) 팔남 정몽일 (1959~) 차녀 정정인 (1979~) 삼녀 정정임 (1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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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의 아내로, 1936년 정주영과 결혼해 그를 조용히 내조하며 현대가의 대모로 불렸다.2. 생애
1921년 8월 16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옥마리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정주영과 결혼했다. 변중석과 같은 동네에 살던 정주영의 숙부가 후덕한 외모의 변중석을 마음에 들어해 정 회장에게 연결해줬으며, 마침 서울에서 일하던 정주영은 선 소식을 듣고 통천으로 넘어와 얼굴 한 번 본 뒤 바로 결혼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변중석은 정주영과 만난 지 40여일 뒤 결혼하면서 부부가 된다.참고로 정주영은 변중석을 만나기 2년 전인 1934년, 짝사랑하던 한 여성과 교제하며 장남 정몽필을 낳았으나, 집안의 반대로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이별했다. 즉 홀아비 신세였던 것. 변중석이 정주영에게 시집왔을 때 정몽필은 이미 2살이었는데, 변중석은 정몽필도 친자식처럼 양육하였고 정몽필도 변중석을 자신의 친어머니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이 후 서울에서 사업하던 정주영을 따라 이사한 뒤 사업가인 남편을 내조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38년 2남 정몽구를 시작으로 1948년 5남 정몽헌까지 총 4남 1녀의 자녀를 낳았고 6남 정몽준부터 삼녀 정정임까지 5명의 의붓자식을 두었다. 정주영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국내 굴지의 재벌이 되었지만, 변중석은 조용한 내조로 남편과 달리 대중매체에 거의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고 며느리들에게도 조용한 내조를 가르쳤다.
평소 정주영에게 조용하고도 협력적인 내조를 해줬고, 옛날 스타일의 여성에 걸맞게 남편에게 별다른 참견이나 반발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내조의 시간이 있었던만큼 성격도 보살 소리 들을 정도로 온화했다고 한다. 정주영도 이런 아내의 내조를 두고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내를 존경한다.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이, 평생 변함없는 점들을 존경한다. (하기야) 존경하고 인정할 점이 없다면 사랑도 할 수 없다. 내가 돈을 번 것도 모두 아내 덕택이었다.
다만 딱 한번 남편에게 반발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1982년 장남 정몽필이 경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였다. 정주영은 정몽필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업무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 그 날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귀가했는데, 평소 어떤 일에도 남편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던 변중석은 집에 돌아온 정주영에게 "사업하느라 애들 다 죽인다!"며 크게 화를 내고 오열했다고 한다. 정주영도 이 날만큼은 아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고.
1980년대 후반 이후 건강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1990년 4남 정몽우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극도로 쇠약해져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여 17년간 치료를 받았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VIP 특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정주영과 자식들이 꾸준히 병문안을 다녀갔다. 1990년대 이후 입원하는 바람에 현대가의 행사에도 전혀 참석하지 못했고, 2001년 남편 정주영의 장례식과 2003년 5남 정몽헌 회장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정몽헌은 자살하기 몇달 전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병문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식들과 현대 직원들은 정몽헌이 죽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지만, 이 때만 해도 의식이 살아있을 때라 상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결국 알아챘다고.
16년간 계속 입원생활을 하다가 2007년 8월 16일 86번째 생일을 맞았으며, 다음 날인 17일 별세하였다. 유해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에 위치한 선영에 안장되었고, 남편의 옆자리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