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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3 00:19:14

법철학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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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구성
2. 내용3.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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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법철학 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또는 간단히 《법철학(Philosophie des Rechts)》은 1820년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자신이 베를린 대학교에서 1818년부터 1825년까지 가르치던 강의 '자연법과 국가학'을 위해 만든 강의록을 요약하여 출판한 서적(강요[1])이다.

오늘날 한국어 일본어 역본에서 표제로 사용하는 '법철학' 또는 '법의 철학'이라는 어휘의 원문은 'Philosophie des Rechts'로, 'rechts'라는 독일어 단어는 영어로 '권리', '옳음'을 뜻하는 'right'에 대응한다.[2] 따라서 헤겔의 '법철학'은 '권리의 철학', '옳음에 대한 철학'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으며[3], 실제로 책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법'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도덕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헤겔이 베를린에서 법철학을 강의하고 출판했던 19세기 초는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나폴레옹 세력이 몰락한 뒤 빈 체제에 따른 독일 연방이 출범한 때였고, 정치적으로도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이 갈등하던 혼란기였다. 헤겔은 이처럼 갈등하는 독일이 어떤 법을 가져야 하는지와 관련해 사유하였고 《법철학 강요》는 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 이전에도 법과 권리의 철학에 대한 연구 자체는 꾸준히 존재했으나, 학문으로서의 법철학(rechtsphilosophie)이 실정법학 밖의 자연법과 법윤리 등을 연구하는 철학의 한 갈래로 발전한 것에는 헤겔의 영향이 컸다.

동시에 <법철학 강요>는 고대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 근대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과 대결하고, 양자를 매개하고, 극복하고, 지양하려는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플라톤 국가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임마누엘 칸트 실천이성비판 등과 아울러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되어 왔다. #

1.1. 구성

본서는 Ⅰ.추상적 법(인격성과 소유권). Ⅱ.도덕(개별個別적 주체와 선善) Ⅲ. 인륜(가족, 시민사회, 국가)이라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은 추상적ㆍ직접적 단계가 구체화되고, 보다 고차의 현실 내에 기초를 지움과 동시에 그 추상성이 비판ㆍ부정되어 가는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이룬다. 실제로는 시간적으로 가족은 소유에, 국가는 시민사회에 앞선다. #
임석진 외 21인, 철학사전

법철학 강요는 추상적 법, 도덕, 인륜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추상적 법은 우리가 통상 '법'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형식적이고 성문적인 법령이다. 민법전이나 형법전에 적힌 법이 이에 해당한다. 법철학이라는 어휘의 원제 'Philosophie des Rechts'가 가리키는 것처럼, 제1부의 추상법은 '좁은 의미의 법'이고, 제2부는 '도덕', 제3부의 인륜은 '넓은 의미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recht(right)'가 '권리' 또는 '옳음'을 가리킨다고 본다면, 도덕도 인륜도 결국 인간이 따라야 하는 가장 넓은 의미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부의 추상법은 소유, 계약, 그리고 불법이라는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이는 현대 민법(일반 사법)의 주요 분야인 물권법, 계약법, 그리고 불법행위법에 대응한다. 헤겔은 이러한 법 영역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가 외부의 세계와 관계하고 타인의 자유로운 의지와 관계하면서 필연적으로 도출됨을 보여준다.

제3부의 인륜 장은 가족, 시민사회, 국가의 3개의 장으로 구상된다. 이는 현대 사법의 가족법, 현대의 사법, 그리고 공법 국제법이 규율하는 영역에 대응한다. 국가 장은 다시 국내법(사실상 헌법)과 국제법, 그리고 세계사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국내법 장에서는 입법권, 행정권, 그리고 군주권이 논의된다. 현대의 삼권분립이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간의 견제와 균형을 내용으로 하는 반면, 헤겔이 생각한 삼권분립은 입법권, 행정권, 그리고 군주권 간의 견제와 균형을 내용으로 하였다. 반면 헤겔은 사법을 시민사회 장에서 다루고 있다.

헤겔이 생각한 인륜은 유학의 삼강오륜에서 말하는 인륜에 상응한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인륜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 관계에서의 그른 행동은 인륜에 어긋난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으나, 누군가가 국가의 법을 어겼다고 해서 그가 인륜에 어긋난다고 말하면 어색하다. 그러나 유학의 삼강오륜에서의 군위신강이나 군신유의, 충 개념을 생각해보면 국법을 어기는 일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다. 바로 이러한 광의의 인륜 개념이 헤겔의 인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의 인륜 개념은 협소한 의미의 인륜 개념이 되었다고 하겠는데 이것이 바로 헤겔이 비판하는 지점이다. 헤겔은 근대의 계약론적 사고가 부부간의 결혼을 계약으로 파악하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마치 계약으로 파악하는 데 이는 오류라고 비판한다. 가족 내의 구성원 간의 관계,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추상법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인륜의 관계이다. 이 점에서 홉스, 로크, 루소 등이 제창한 사회계약론적 사고를 헤겔은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점을 보면 헤겔을 계몽주의적 사상가나 근대적 사상가나 합리주의적 사상가나 진보적 사상가 중 하나라고 하기 어렵다.

2. 내용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종료하여 확고한 모습을 갖추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나타난다(Als der Gedanke der Welt erscheint sie erst in der Zeit, nachdem die Wirklichkeit ihren Bildungsprozess vollendet und sich fertig gemacht hat). 개념이 가르쳐주는 것을 역사는 또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나타내주기도 하거니와 현실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이념적인 것이 실재적인 것에 맞서서 나타나는 가운데 이 실재하는 세계의 실체를 포착하여 이를 지적인 왕국의 형태로 구축한다. 철학이 회색의 현실을 회색으로 그려낼 때 생명의 형태는 이미 낡아져버렸으니, 회색에 회색을 덧칠한다 해도 생명의 형태는 젊음을 되찾지 못하고 다만 그 진상이 인식되는 데 그칠 뿐이다.[4]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풀이해 보자면, 이 말은 철학이 현실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현실을 넘어선 것을 말하는 철학은 결국 비현실이나 말하는 철학, 그러므로 무의미한 철학이 된다. 현실이 변화한 후에야 변화한 현실을 설명하는 철학이 등장할 수 있다. 현실이 먼저 변화하고 그에 이어 변화한 현실을 그리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한다. 그래보아야 그것은 회색(개념)에 회색(개념)을 덧칠할 뿐이며, 회색빛 철학에서 푸르른 생명의 역사가 나올 수는 없다. 그래서 미네르바의 부엉이(철학)은 황혼이 깃들 무렵(세계의 역사가 다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현실의 변화에 앞선다고 주장하는 "철학", 스스로 현실이 어떻게 되어 갈지를 예측하고 장래의 현실을 미리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철학", 현실을 자기가 보여주는 모습에 맞추어 바꾸어 놓겠다고 주장하는 "철학"은 모두 진정한 철학이 아님을 의미한다. 가령 시장경제를 극복한 공산주의의 미래를 미리 선취했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의 변화에 앞서 현실이 도달하게 될 이상을 보여주고 동시에 현실을 그 이상에 맞추어 변화시킬 수 있는 철학이라고 주장하지만, 헤겔 관념론적 입장에서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이는 현실을 철학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현실에 맞추어야 하며, 현실이 철학에 앞서지, 철학이 현실에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시장경제를 순수한 완전경쟁이 이루어지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이상에 맞추어야 바꾸어야 한다는 고전 자유주의자, 신고전 자유주의자, 질서 자유주의자, 통칭 신자유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철학적 저작으로서의 이 글은 추호도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구상을 내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교훈은 결코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라는 인륜적인 우주가 어떻게 인식되어야만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존재하는 것을 개념에 따라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이 곧 이성이기 때문이다. 개인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모든 개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시대의 아들(ein Sohn seiner Zelt)이다. 철학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것이 철학이다(so ist auch die Philosophie ihre Zelt in Gedanken erfasst). 어떤 철학이 그가 처해 있는 현재의 세계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한 개인이 그의 시대를, 즉 로도스 섬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간다는 망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 개인의 이론이 실제로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어 마땅히 있어야만 할 세계를 건립한다면 그 있어야만 할 세계는 물론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 속에만 있을 뿐이다. (중략) 앞에 인용된 어투를 조금만 바꾸어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사견을 붙이자면) 존재하는 것은 곧 이성이다. 즉 이성 없는 것은 없다(nihil est sine ratione).

이 말은 모든 존재하는 것은 다르게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존재하는 것이 다르게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존재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일이 이성의 일이다. 존재하는 것이 다르게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존재하는 이유(= 이성, 즉 존재하는 것의 배후의 이성)을 발견하는 일이 바로 인간 이성의 일이라는 말이다. 존재하는 것의 이성(객관적 이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성(주관적 이성)만 가져다 들이대면, 존재하는 것들의 세계가 이성적이지 않고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래서 자기의 이성에 맞게 존재하는 것들을 뜯어 고치려 하게 된다. 존재자를 부존재자에 맞추어 뜯어 고리쳐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바로 자신의 시대를 뛰어 넘어, 현재의 세계를 뛰어 넘어, 있는 세계가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세계,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당위로서의 세계를 건립하려는 태도다. 그러나 이미 있는 것들은 그렇게 있는 이유가 있다. 이성 없는 것은 없다(nihil est sine ratione).

존재하는 것들의 총체인 세계는 복잡하다. 적어도 개인의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고 해서 세계가 이성이 없다고, 이유없다고, 부조리하다고, 불합리하다고 불평부터 할 수 없다. 개인의 이성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의 이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럴 확률이 훨씬 더 크다. (적어도 세계가 부조리해도, 그 부조리를 불평하고 있는 개인보다는 합리적일 확률이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섣불리 세계를 자신의 이성에 맞추어 뜯어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세계가 어땠었고, 왜 이렇게 되어 왔고, 어떻게 변화하여 가는 지를 인식하려 해야 한다. 이해하려 해야 한다. 이러한 세계 이성을 인식하도록 돕는 개념의 체계를 만드는 일이 바로 철학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섣불리 존재하는 것을 뛰어넘어, 세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고, 신세계를 만들려고 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려고 한다면 이는 어리석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세계는 변화하여 새로이 존재하고, 새로운 세계가 되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또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카를 마르크스 자신이 헤겔 철학을 '뒤집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마르크스가 헤겔을 왜곡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김수행 역)에서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내려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위에 인용한 헤겔의 법철학 강요의 구절을 패러디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에 근거한다. 그는 도래할 자본주의 너머의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착상한 자신이 이성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헤겔은 존재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시민사회의 질서가 다르게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철학은 마르크스 자신의 말대로 헤겔 철학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헤겔은 철학은 세계의 변화에 앞설 수 없고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며 설명하는 개념의 체계일 뿐이라고 했다면, 마르크스는 철학은 세계의 변화에 앞서 세계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헤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산주의도 '그럴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산업 혁명 당시 노동자들의 환경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열악했다. 노동자들은 무려 하루 16시간 혹사당했으며, 어린이들도 만 7세부터 일하다가 요절당했다. 마르크스 본인은 자신이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고 웅변해왔지만, 실은 이전부터 꾸준히 누적되어온 노동자들의 불만을 포착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다시 헤겔로 돌아가 보면,
자각적 정신으로서의 이성(Vernunft als selbstwusstem Geiste)과 눈앞의 현실로 존재하는 이성(vernunft als volhandener Wilklichkeit) 사이에 있는 것, 즉 한 쪽의 이성을 다른 쪽과 구별하여 후자에서 만족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직 현실의 이성을 개념으로까지 해방하지 않은 채 추상체에 머물러 있는 족쇄이다. 이성을 현재라는 십자가 위에 드리워진 장미로 인식하여 여기서 현재를 기쁨으로 맞이한다는 이성적 통찰이야말로 철학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현실과의 화해(die versohnung mit der Wirklichkiet) 의 길이다.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강요

참된 철학은 현실 세계에 비현실적인 당위를 폭력적으로 부과하기 위해 세계와 갈등하고 대결하고 투쟁하게 만들지 않는다. 도리어 철학은 세계와 화해하게 한다. 개인의 이성이 세계의 이성을 개념으로 인식하여 마침내 세계의 이성 속에서 자신의 이성을 발견하고 그와 동시에 세계의 이성은 개인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개인의 이성은 세계의 이성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만들어 낸 세계 이성을 자각하며 마침내 주관과 객관이 주체와 세계가 화해하고 그리하여 자족하게 된다. 이것이 헤겔 철학이 선물하는 세계와의 화해에서 비롯한 안식이다.

3. 비판

법철학 강요에서 드러난 헤겔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는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라는 비난이 따라 왔다. 대표적으로 칼 포퍼는 헤겔의 정치철학이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가문의 군주제를 정당화하는 어용 철학이자 -열린 사회의 철학인 자유주의를 교묘하게 왜곡하여- 닫힌 사회의 철학인 부족주의를 부활시키는 반동적인 철학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5] 가령 포퍼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공격의 소재로 삼는다.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세계에서 신이 내딛는 발걸음과도 같아서 국가의 근원은 스스로를 의지로 현실화해나가는 이성의 힘이다.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강요

포퍼는 헤겔이 군국주의 국가였던 프로이센 왕국을 세계 정신과 동일시하여 프로이센 왕국의 승리가 곧 절대 정신의 자기 실현이라는 식의 어용 철학을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주의적 정치철학이 수많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와 부족주의를 자유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궤변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헤겔이 말하는 국가는 특정 시기에 현존하는 특정한 국가의 정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헤겔이 특정 시기에 현존하는 특정한 정부-가령 18세기의 프로이센의 군주정-을 절대정신과 등치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말한 세계사 속에서 자신을 의지로 실현시켜 나가는 이성으로서의 세계 정신은 결코 특정 국가와 동일시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국가들의 배후에 있는 국가의 이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이념이라고 하면 특수한 국가나 특수한 제도를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이념을 즉 이 현실적인 신을 그 자체로 고찰해야 한다.

현실로 있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개체적인 국가이며, 더 나아가서는 특수한 국가이다. 개체성은 특수성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즉 개체성이 국가 그 자체의 이념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특수성은 역사에 속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가로서 저마다 서로 독립해 있으며 따라서 국가 간의 관계는 외면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들 국가를 넘어서는 제3의 연결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제3자라는 것이 바로 세계사 속에 현실로 군림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절대적 심판자 구실을 하는 정신이다.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강요

헤겔은 현실에 존재하며 흥망성쇠하는 국가'들'이 아니라 국가의 '이념'을 현실적인 '신'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국가들을 넘어서는 제3의 연결자이자 국가에 대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정신에 대해 말함으로써 국가를 넘어서는 국가의 이념으로서의 절대 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 정신은 결코 특정한 국가의 정부와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역사 속에서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물론 몇몇 국가가 연합하여 다른 나라에 대해서 흡사 법정과 같은 구실을 할 수도 있을 테고, 예컨대 신성동맹처럼 국가연합이 생겨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는 영구평화에서처럼 언제나 상대적이고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언제나 특수자를 제치고 스스로의 힘을 관철시키는 유일 절대의 심판자는 그 자신이 보편자로 활동하는 유라는 것을 세계사 속에 드러내는 절대적인 존재인 정신이다.

국가들을 뛰어넘는, 어느 한 국가로 환원되거나 어느 한 국가와 동일시될 수 없는, 국가의 이념으로서의 절대 정신은 그렇다고 해서 국가들의 연합체 같은 것과도 동일시 될 수 없다. 헤겔은 18세기의 신성 동맹이나 20세기의 국제연맹, 오늘날의 국제연합(UN) 등도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헤겔이 구상하는 국가들의 이념으로서의 국가는 결코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연합/총합 같은 것이 될 수 없으며 그 이상의 존재다.

헤겔은 아마 자신이 봉사한 프로이센 왕국에 대해서도 그 프로이센을 절대정신과 동일시했다기보다는, 그 프로이센이 역사 속의 국가들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절대)정신의 의지의 실천에 역사상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보았고 그 점에서 특별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센이 곧 정신인 것도 국가의 이념인 것도 아니며 국가의 이념에 비추어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다. 헤겔은 국가가 완전무결한 존재이며 국가의 모든 결정은 힙법이라는 식의 단일행정부이론이나 국가무오류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헤겔은 국가도 오류를 저지르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국가란 예술작품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세계 내에 따라서 자의와 우연과 오류가 만연해 있는 곳에 자리잡은 채 그것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자칫하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증스러운 인간, 범죄자, 병자 또는 장애자라도 여전히 그가 살아있는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실로 이 적극적 긍정적인 것으로서의 생명은 이러한 결함을 무릅쓰고 존속하니 이 긍정적인 것이야말로 여기서 문제가 된다.

헤겔, 임석진 역, 법철학

[1] 중요한 부분의 요약이라는 의미의 '강요(綱要)'로, '요약', '요강'의 동의어이다. 강제로 요구한다는 의미의 '강요(強要)'가 아니다. [2] 영어 역본에서는 'Elements of the Philosophy of Right'가 가장 일반적인 표제로 사용되고 있다. [3] 최치원. "헤겔 권리철학 (법철학) 서문에서 ‘이성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의미 – 고 유임수(1942.11.18.-2021.12.11) 교수님을 추모하며" 한독사회과학논총 31, no.4 (2021) : 159-191. [4] 이는 푸르른 생명에 비하면 개념이란 회색의 덧칠에 불과하다는 괴테의 비유를 차용한 것이다. 참고로 헤겔은 괴테를 존경하여 괴테의 문학이 자신의 철학의 진리를 문학적으로 선취하였다고 괴테에게 고백한 바 있다. [5] Karl Popper, Open Societies and Its Enemies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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