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벌초( 伐 草)는 조상을 모신 묘에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2. 기원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에는 조상들의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3. 상세
벌초를 하는 시기는 봄, 가을 2번하는 것이 보통으로 봄은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한다. 허나 가을의 경우 딱히 추석 당일이 아니더라도 추석 몇 주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있다.[1]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모든 조상들을 포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많은 수의 묘를 벌초해야 된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조상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과거에는 상술했듯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보통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 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1980년대 ~ 9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있던 분들도 대부분 늙으신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 하게 되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기는 쪽으로 넘어갔다[2]. 초창기에는 그냥 마을에서 그나마 좀 젊은 사람들한테 술값이나 밥값 좀 쥐어주고 맡기는 형태가 많았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벌초를 대행해주는 전문업체도 생겨났고, 코로나19 범유행 이후로는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는 쪽이 많이 늘어났다. 또한 시간이 없어서 벌초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 마찬가지로 벌초를 대행해주는 전문 업체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왕릉 같은 경우는 문화재로 분류되기 때문에 문중에서 벌초를 담당하지 않고 나라에서 일용인부와 공공근로자를 동원해 하고 있다.
과거에는 낫이나 원예용 가위같은 걸 써서 했지만 요즘에는 예초기란 아주 좋은 도구가 있다. 군대에서 웬만하면 한번씩 돌리기에 경험자에겐 익숙한 도구일 것이다.
그 외에 벌초를 하면서 사고가 많이 나는 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추석을 앞둔 벌초 때 예초기 돌리다가 땅벌집 건드리는 바람에 땅벌들에게 공격을 받고 응급실 신세를 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예초기와 관련된 사고도 많은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잡아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바닥의 돌 같은 게 튀어서 맞아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3] 그래서 벌초할 때는 선 캡이나 헬멧, 고글 같은 걸로 얼굴 및 눈을 보호하는 게 좋고, 일자형 날보다는 힘은 떨어지지만 안전한 원형톱날이나 나일론 커터 또는 예초기 롤러를 쓰는 게 좋다. 간혹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회포 푸신다고 막걸리와 같은 약주 거하게 드시고 예초기 돌리다가 사고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야생의 들판은 유행성 출혈열이나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을 유발하는 쥐와 작은소참진드기 등 온갖 종류의 치명적인 병원균, 바이러스를 보유한 전염병 매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벌초를 하다 절대로 맨 땅이나 풀밭에 그냥 드러누워서는 안된다. 이외에도 묘의 위치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곳에 있거나 무덤으로 가는 길 자체가 어지간한 등산로보다 위험하다면 이동하는 도중에 사고가 날 수 있는지라 매우 조심해서 움직일 것. 특히 벌초를 하러 갈 때는 낫, 호미, 예초기, 갈고리 등의 위험한 도구도 함께 지참하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등의 사고가 나는 순간 소지하고 있던 도구에 신체를 심하게 베이거나 찔리는 등 2차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데다 묘지 특성상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의 언덕이나 산중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구조대원이나 전문 의료인의 처치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4] 또한 벌초해야 할 묘지가 매우 험한 위치에 있거나 가는 길이 험하다면 앞서 언급한 음주 후 보행은 사고 가능성을 크게 높이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 된다.
4. 기타
여전히 돌아가신 분을 매장하는 장례가 치러지고 있으나 과거처럼 선산에 모시기 보다는 가까운 공동묘지에 모시는 경우도 많고, 아예 화장 후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선산에 모시더라도 화장한 후 가족 납골묘를 선산의 특정 지역에 마련하여 좁은 지역에 수십 구의 유골을 수용할 수 있는 묘를 마련하기도 하고.[5] 그 외에 각종 다양한 장례 방법이 늘고 있어 벌초란 문화 자체가 서서히 축소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젊은 세대 대부분이 벌초나 제사같은 풍습에 부정적인 걸 보면[6] 미래에는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제주특별자치도에는 2000년대까지 매해 음력 8월 1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벌초에 참여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한 '벌초 방학'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고 또한 효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주도의 주요 행사였던 벌초문화도 점차 간소화된 것. 이 때문에 같은 제주도민인데 벌초방학을 모르는 세대가 생겼다. #
5. 관련 문서
[1]
대체로 추석을 앞두고 몇 주 동안 주말을 할애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1년 동안 일반 잡초 외에도
칡 넝쿨이나,
환삼덩굴,
아까시나무 같은 것들도 자라나는 경우가 있어서 벌초를 하기 전에
제초제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
[2]
농촌 지역 산림조합이나 단위농협에서 이런 대행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3]
이는 대체로 일자형 날을 쓰다가 많이 발생하는 사고다. 일자형 날은 파워가 좋아서(웬만한 나뭇가지도 다 자른다.)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풀속에 있는 돌이 많이 튀어서 사고를 당하는데, 대체로 눈을 다치는 사고가 많다.
[4]
거기에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조상의 무덤으로 이동하는 벌초 특성상 평일보다는 다같이 모이기 쉬운 주말에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면 대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병의원은 아무리 잘해도 토요일 오전 진료를 끝으로 휴무 모드에 돌입하는지라 믿을 구석은 종합병원의 응급실 밖에 없어지기 때문. 또한, 벌초를 하러 간 다른 구성원들도 이동과 노동으로 소모된 체력+대부분 험한 지역에 위치한 묘지의 특성상 오고 가는 것 자체가 난도가 높은 상황으로 인해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만큼 부상자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힘들다.
[5]
이 경우 1,000년 정도 수용이 가능하다.
[6]
사실 밖으로 표출만 하지 않을뿐이지, 벌초 한번 하는데 드는 고생이 작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변해가면서 현재는 나이든 세대도 대부분 벌초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