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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9 10:23:22

반진전쟁



1. 개요2. 배경
2.1. 진시황의 전국통일2.2. 호해의 폭정
3. 전개
3.1. 진승의난3.2. 6국의 부활3.3. 유방, 항우의 활약
4. 결과와 영향

1. 개요

시기: 기원전 209년 음력 7월~ 기원전 207년 음력 11월 17일

반진전쟁은 진나라 말기에 벌어진 전쟁이다.

2. 배경

2.1. 진시황의 전국통일

진왕 영정( 진시황)은 왕위를 노렸던 노애의 난을 진압하고 상방 여불위를 제거하면서 실추되었던 왕권을 회복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진나라는 소양왕 시기부터 쌓아온 국력을 바탕으로 군비를 확충하는 한편, 함양과 촉에는 각각 운하인 정국거, 제방인 도강언을 건설해 각각 물자운송과 곡창지대를 만들게 했다.

한편 6국의 대신들을 매수해 6국을 이간질시켰고, 그 결과 6국은 진나라의 침공 때 분열되면서 서로 돕지 못하게 되었다.

진나라는 기원전 230년 를 시작으로 (기원전 228년), (기원전 225년)]], (기원전 223년), (기원전 222년), (기원전 221년]]를 차례로 멸망시키면서 전국통일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6국 통일전쟁 중 초나라 최후의 명장 향연의 분전, 형가의 진시황 암살시도 등이 있었지만 진나라를 막는데는 모두 실패하게 된다. 통일 이후 진나라는 6국 유민들을 각종 토목공사, 군역, 각종 세금, 대외 원정[1]등에 동원하면서 비참한 삶을 살게되면서 진나라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태였다.

2.2. 호해의 폭정

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전국 순행 중 사구라는 곳에서 사망하게 된다. 환관 조고, 승상 이사는 진시황의 유지를 조작해 태자 부소가 아닌 호해를 황제로 추대했고, 태자 부소와 몽염을 시황제의 명령을 조작해 자결하게 만들었다.( 사구정변)

이세황제로 즉위한 호해는 선대 진시황의 대규모 토목공사들(만리장성, 진시황릉 건설)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백성들의 불만은 커져가게 된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점 때문인지 호해는 형제자매들(진시황의 아들과 딸들)을 모조리 처형해버린다.

자신의 즉위에 기여한 승상 이사랑 반진봉기에 대응해야한다는 숙손통을 처형시켰으며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단해야한다고 건의한 풍거질과 풍겁도 자결하라고 명을 내려서 죽였다. 그리고 모든 국사를 조고에게 맡기고 흥청망청 놀아버리면서 중앙정부의 기능상실을 불렀고, 이는 진승의난 때 장한의 반격 이전까지 진나라가 제대로 대응을 못하게 한 원인이 된다.

3. 전개

3.1. 진승의난

반진전쟁의 서막을 알린 전쟁으로, 진승의 장초국은 초반에 잘나갔으나 세력 이탈과 장한의 활약으로 1대 6개월의 단명 왕조로 멸망했다.

그러나 진나라가 장초군을 진압하는 사이 6국(연, 제, 초, 조, 위, 한)의 후예들은 혼란을 틈타 6국을 재건운동에 참여하면서 6국 대부분이 부활하고 만다.

3.2. 6국의 부활

3.3. 유방, 항우의 활약

4. 결과와 영향


[1] 몽염의 흉노 정벌, 백월 정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