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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0 15:21:10

박송봉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31년 9월 20일에 태어났다. 항일 빨치산인 연길대대 정치위원 박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도 지하무장투쟁을 하는 등 좋은 성분 출신이었다. 물론 1934년에는 박길이, 1936년에는 어머니가 모두 살해되면서 어려서는 만주를 떠돌면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만경대혁명학원을 제2기로 졸업, 1951년에 루마니아로 유학갔다. 심창완이 동기다. 대학 졸업 이후 동력기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1957년 귀국 이후 조직지도부, 과학교육부, 기계공업부 등에서 두루 근무했다.

1981년 10월,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으며 1983년 6월 조선로동당 6기 7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3년 9월, 김일대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4월 13일, 해방 40주년, 당창건 40주년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6년 6월 과학교육부 제1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87년 9월 소련을 방문했다, 1988년 10월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88년 10월에 동독, 1989년 5월에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음으로 이중수훈자가 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를 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뭔가 열심히 일을 했던 모양이다. 2016년 3월 30일자 로동신문 기사 <위대한 당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일군>에 따르면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서 고난의 행군 시기 공장과 기업소들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전국 방방곳곳을 다니며 똥꼬쇼를 했다고 한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2000년 6월 4일에 재혼식을 올렸고 그날 후지모토도 참석했다고 한다. 후지모토는 일본 여권 갱신을 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을때 그와 동행을 하면서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허담, 리창선, 리봉원과 함께 일본에서 온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친절하게 잘 대해준 참으로 멋진 사람으로 회고했다.

2001년 2월 20일에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박송봉동지는 당과 수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며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 온 재능있고 충직한 혁명전사이다. (...) 그는 당 및 국가경제기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였으며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강행군을 하던 어려운 때에 당의 선군혁명로선을 높이 받들고 헌신적인 투쟁을 벌려 우리 혁명의 전환적국면을 열어 나가는데 기여하였다. (..) 박송봉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당에 무한히 충실하였으며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박송봉동지는 당과 혁명에 대한 끝 없는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 혁명적원칙성과 겸손한 품성으로 하여 우리 당의 높은 신임과 인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랜 기간 높은 충성심과 실력으로 우리 당을 받들어 온 박송봉동지를 잃은것은 우리 혁명의 큰 손실로 된다."라고 거의 국장이 거행되는 고위 엘리트급의 후한 찬사를 보냈다. 그가 사망한 이후 후임 제1부부장으로 주규창이 임명되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김정일은 "박송봉 제1부부장은 혁명의 길에 나선 첫 시기부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변함없이 당을 충실하게 받들어온 나의 참된 혁명동지이며 전우였습니다.박송봉 제1부부장처럼 당에 충실한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것입니다."라고 교시하였다.

김정은 시대에도 당의 유능한 일군으로 선전되고 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조선로동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충직한 혁명동지'의 한 사람으로 허담, 연형묵, 김중린, 허정숙, 김국태, 김용순, 김양건, 전병호, 리찬선, 리제강, 리용철, 강량욱, 리종옥, 김락희, 안달수와 함께 박송봉을 언급하였으며 2022년 5월 15일자 로동신문은 박송봉을 박식가로 추켜세우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공학박사라고 다정히 불러주시며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과업들을 수시로 맡기군 하시던 박송봉동지, 그는 인민경제 그 어느 분야에 대해서나 막힘이 없는 박식가, 만능가였다."라고 칭송했다.

2012년에 제작된 조선기록영화 "만경대혁명학원에 깃든 위대한 사랑"에 따르면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