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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주화파 Peace Democrats |
|
<colbgcolor=#8c8c8c> 한글 명칭 |
민주당 주화파 코퍼헤드 |
창립 | 1860년 |
해체 | 1868년 |
이념 |
반폐지주의 잭슨 민주주의 |
지도자 |
클레멘트 밸런디검 (
OH) 알렉산더 롱 ( 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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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eace Democrats미국에서 1860년부터 1868년까지 존재했던 민주당의 계파. 주화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들이 남북 전쟁 국면에서 남부와의 전쟁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카퍼헤드(Copperheads)라는 멸칭으로도 자주 불렸다.
이들과 반대로 남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들과 협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측을 민주당 주전파라고 불렀다.
이들이 직역하여 '평화민주당' 내지는 '민주당 평화파'로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1860년 선거 직전 민주당은 노예제 문제로 스티븐 A. 더글러스를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북부민주당)과 존 C. 브레킨리지를 내세운 노예제 절대사수파 남부민주당으로 분열되었다. 남부민주당은 이후 남부맹방을 건국한 핵심 세력이 되었다. 한편, 연방에 남은 북부민주당의 경우 전쟁 초기에는 더글러스가 링컨의 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등 전쟁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더글러스가 전쟁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 뒤 서서히 주전파와 주화파로 분열되었다. 특히 남북전쟁이 당초 북부의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고 인명피해가 늘어나면서 노예제 폐지를 포기하는 대신 남부를 다시 연방으로 끌어들어야 한다거나, 아예 즉각적으로 종전하고 남부맹방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화파가 민주당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주화파의 세력은 북군이 전쟁에서 선전할수록 약해졌고, 고전할수록 강해졌다.민주당 주화파의 지도자 클레멘트 밸런디검(Clement Laird Vallandigham)은 강경한 반전파였고, 다양한 방식으로 링컨 정부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여 정부의 감시 대상이었다. 1863년 전쟁이 백인들의 자유를 '링컨 왕'에게 희생하며 노예를 해방시킨다고 비난했다가 오하이오 군관구 사령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서기도 했다. 공화당은 밸런디검이 배신자, 반역자라는 프로파간다를 내세웠는데, 학계에서는 공화당의 부당한 정치공격이라는 설과 밸런디검 등이 연방의 전쟁 수행을 실제로 불법적으로 사보타주했다는 설이 모두 존재한다.
18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자체는 물론 주화파 내에서조차도 내부 분열이 심각했다. 민주당 주전파가 링컨 지지로 이탈한 가운데 민주당은 당을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를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남북전쟁 초기 연방군을 이끌었던 조지 B. 매클레런 장군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부통령 후보로는 밸런디검의 측근 조지 H. 펜들턴이 선출되어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민주당이 밸런디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종전과 평화를 위주로 한 플랫폼을 내건 반면, 남군과 싸워 명성을 얻은 매클레런 본인은 즉각적인 평화에 반대했다. 이로 인해 민주당의 선거운동은 모순과 비효율성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링컨에게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1864년 9월 애틀랜타를 함락시키면서 북부 시민들은 연방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깨달았고, 민주당 주화파의 세력은 타격을 받았다. 11월의 선거에서 매클레런은 득표수로는 전체의 45%를 얻었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링컨에게 압도적으로 패했다. 전쟁이 연방의 승리로 끝난 뒤 밸런디검 등 강경 주화파는 준 반역자로 취급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지만, 호레이쇼 시모어 등 온건 주화파는 전쟁 이후 다시 합쳐진 민주당에서 주요 정치인이 되었다.
3. 성향
민주당 주화파는 주로 남부 농촌과 인구 구성이 비슷했고 잭슨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리노이,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 중서부 주의 남부 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했다. 전쟁 이전부터 민주당 당세가 상당했던 뉴욕주 및 주변의 코네티컷, 뉴저지에서도 대규모 징병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 그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민주당 주화파는 내부에서 다양한 성향으로 갈라졌다. 뉴욕주의 호레이쇼 시모어처럼 당장의 전쟁 수행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으면서도 유리한 조건으로 종전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는 대신 평화 협상을 하는 것이 좋다는 온건파가 있었다. 반대로 밸런디검을 중심으로 한 계파는 전쟁의 승리 조건을 포기해서라도 즉각적인 평화를 주장했다. 보통 카퍼헤드라고 불린 것은 밸런디검의 강경파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