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 하루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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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db><colcolor=#000> みやこ はるみ
都 はるみ 미야코 하루미 | Miyako Haru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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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이춘미 (李春美) 1948년 ~ 1966년 기타무라 하루미 (北村 春美) 1966년 ~ 현재 |
출생 | 1948년 2월 22일([age(1948-02-22)]세) |
교토부 교토시 | |
학력 | 라쿠요 종합고등학교 (중퇴) |
데뷔 | 1964년 '곤란한 일이야' 「困るのことヨ」 |
활동 기간 |
1964년 ~
1984년 1989년 ~ 2015년 |
소속사 |
콜럼비아 음악예능 주식회사 선 뮤직 프로덕션 프로듀스 하우스 미야코 |
레이블 | 일본 컬럼비아 |
수훈 내역 |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자수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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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가수이다. 쇼와 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국민적인 엔카 가수로 수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또한 일명 '하루미 창법'으로 으르렁거리는 독특한 목소리와 주먹을 돌리는 등의 힘찬 제스처, 깊은 비브라토가 어우러지는 소유하고 있으며 이 덕분에 수 많은 히트곡을 낳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 생애
교토시에서 재일교포인 아버지와 일본인인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재일교포인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인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기타무라 하루미'라는 이름으로 다녔는데 졸업식 때 받은 졸업장에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이춘미'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본명을 알았다고 한다.예술을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5살 때부터 일본무용 등을 배웠고 6살 때부터는 직접 어머니께 낭곡과 민요를 배웠다. 그 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963년 제14회 콜럼비아 가요콩쿠르 대회에서 우승하여 이듬해인 1964년 데뷔하였고, 같은 해 '앙꼬 동백꽃은 사랑의 꽃' 「アンコ椿は恋の花」이라는 노래가 연달아 대박을 터뜨렸다.[1]
이로 인해 제6회 일본레코드대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1976년 '북쪽의 숙소에서' 「北の宿から」라는 곡으로 제18회 일본 레코드 대상과 FNS 가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1980년 '오사카 가을비' 「大阪しぐれ」라는 곡이 또 히트를 쳐서 제22회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 가창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일본레코드대상 역사 상 신인상, 최우수 가창상, 대상을 모두 수상한 것은 미야코 하루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1984년 갑작스런 은퇴를 선언하고 제35회 NHK 홍백가합전 출장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은퇴 후 음악 프로듀서 등으로 여러 동료 가수들의 음반 제작을 돕다가 제40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하여 무대로 복귀하였다.
2015년 전국 투어 공연 마지막 날 2016년부터 1년 간 가수활동을 휴업하기로 했지만 2021년이 되도록 복귀하지 않고 있다.
한 언론의 취재 결과 도호쿠의 호텔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3. 노래
앙코 동백은 사랑의 꽃 (アンコ椿は恋の花) (1966) |
북쪽의 숙소에서 (北の宿から) (1975) |
오사카 가을비 (大阪しぐ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