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2:25:31

무라사키



村崎[1]

1. 개요2. 실존인물3. 가상인물
3.1. 주술회전 고죠 가문의 술식
4. 밴드
4.1. 1960년대 결성된 오키나와의 밴드 무라사키4.2. 2020년 결성된 듀오 무라사키

1. 개요

자주색 내지 보라색을 뜻하는 일본어.
한국어의 ' 보라'와 마찬가지로 주로 여자 이름으로 쓰인다. 다만, 야쿠모 유카리의 이름자도 위의 한자여서, pixiv 등지에서 이것으로 검색하면 '무라사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의 팬아트보다는 유카리의 팬아트가 훨씬 더 많다

한국에서는 식용으로 사용되는 대왕오징어[2]에 대해서도 무라사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갈색인 간장을 무라사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원래 무라사키가 짙은 붉은색을 뜻하는 포괄적인 단어였기 때문.

2. 실존인물

3. 가상인물

3.1. 주술회전 고죠 가문의 술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무하한 주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밴드

4.1. 1960년대 결성된 오키나와의 밴드 무라사키

오키나와를 근거지로 결성된 일본의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일본의 딥 퍼플로 통하는 밴드다. 외부에서만 일컫는 칭호만이 아니라 실제 멤버들도 흠모하는 밴드가 딥 퍼플로서 이를 일본식으로 번역한 무라사키(자줏빛)가 밴드 이름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였다.[5]

당대 오키나와의 상황을 짚어야만 밴드의 배경을 알 수 있는데, 오키나와 전투 종료 직후부터 미군정이 들어서며 기지화된 오키나와는 미국내지 서양 문화가 다이렉트로 유입될 수밖에 없던 일본과 미국 문화 교류의 아교 역할을 담당했다. 더욱이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라 오늘내일로 지내던 주재 미군들은 각종 유흥으로 공포심을 달래고 있었으며 부대 주변을 향락가로 조성시키는데 앞장서곤 했다. 여기에 음악과 라이브 문화도 배제될 수는 없는터라 미국인들과 오키나와 거주민들은 60년대 말엽 선풍적이던 하드 록 밴드를 결성하는 일이 잦았으며 근방 클럽들은 일본 가요계로 진출할 수 있는 시금석의 역할을 담당하곤 했다.[6] 가데나 공군기지앞에 위치한 코자(지금의 오키나와시)가 그런 배경에서 성장한 기지촌 도시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오키나와에 거주하던 시로마 가문의 토시오, 마사오, 츠토무 삼형제가 'PEANUTS'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 후 일본계 미국인이던 죠지 무라사키(본명 히가 죠지)가 키보디스트로 가입하여 밴드는 '무사사키'로 이름을 교체하고 각종 멤버들을 영입하며 6인조 밴드로서 미군 근방에서 실력을 갈고닦아오곤 했다. 삼형제의 막내였던 츠토무는 개편 뒤 얼마안가 탈퇴하고 그들의 우상이던 딥 퍼플따라 이들 또한 멤버는 정신없이도 교체되는 운명이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후, 1975년 무라사키는 오사카의 8・8 록 데이 행사에 출연, 강렬한 사운드로 본토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화려한 본토진출의 막을 올렸다.

파일:5149Of2iPCL.jpg

이들이 1976년 발표한 'Murasaki' 셀프 타이틀 앨범은 오키나와씬을 대변하는 작품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하드 록 본연에 충실한 사운드와 프로그레시브 록적 장대한 진행, 미국물 많이도 먹던 멤버답게 유창한 영어로 무장된 가사 등 당대 어지럽던 오키나와의 분위기를 함축시킨 독특한 포지션으로서 평단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롤링 스톤 재팬 선정 100대 명반 57위 등극할 만큼 시대적 의미가 깊은 작품. 그리고 동년 10월에 발매된 싱글 'Free'는 일본 최초의 12인치 싱글이었다.

그렇게 일본 본토까지도 진출하면서 나름의 인지도를 쌓아올리는 음원과 라이브 활동을 이어가긴 했지만 78년 주축이던 죠지 무라사키를 비롯한 연쇄 멤버 이탈이 발생하면서 밴드는 정전 상태로 돌입하고 만다. 멤버 교체를 단행하면서 연명시키긴 했지만 결국 81년 공식 해산을 발표하며 밴드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죠지 무라사키는 "죠지 무라사키 앤 마리너스", 시로마 형제는 "아일랜드", 드러머 미야나가 에이이치는 "헤비 메탈 아미" 등의 그룹으로 활동하는 등 각자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세월이 흐른 2000년이 되어서 황혼기 밴드들이 그렇듯이 재결성되어 라이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키보드의 죠지 무라사키를 중심으로 당대 활동했던 드러머 미야나가 에이이치, 기타의 시모지 유키오와 히가 키요마사 등이 함께하고 있다. 현재는 오키나와시의 라이브 하우스인 7th Heaven Koza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에는 이들의 왕년의 활약을 소재로 가져온 영화인 미라클 시티 코자가 상영되기도 했다.[7]

그러나 원년 멤버였던 시로마 삼형제는 배제된 상태. 원년 멤버였던 보컬 시로마 마사오는 절도 강간 등으로 3번이나 검거되는 등 영 좋지 못한 행실들만 보여주고 있는 상태다.

4.2. 2020년 결성된 듀오 무라사키

홈페이지

보컬과 키보드 멤버 둘로 이루어진 밴드. 한자는 자줏빛을 뜻하는 본래 뜻이 아난 '群咲'로 표기된다.
[1] 무라(村)와 사키(崎) 모두 성씨나 지명에 굉장히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 때문에 나온 말장난.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합쳐진 성씨와 지명이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무라사키노역이 있다. [2] 정확하게는 식용으로 쓰이는 대형종은 대왕오징어라고 잘못 불리는 훔볼트오징어이며 진짜 대왕오징어와는 다른 종이다. [3] 작가의 분신이라는 분석이 있다. [4] 한 시리즈에서 같은 성을 쓴 만큼 두 캐릭터 사이엔 관계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5] 키보디스트 죠지 무라사키는 아예 " 존 로드 연주법"이라는 책을 냈을 정도. [6] 대한민국의 신중현, 조용필, 사랑과 평화 등이 미군 부대를 통해 초기 인지도를 쌓아올렸던 배경과 상당히 흡사하다. [7] 무라사키의 곡 <Mother Nature's Plight #>가 OST로 등장한다. 키리타니 켄타가 주연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