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70125> 뱌체슬라프 루돌포비치 멘진스키 Вячесла́в Рудо́льфович Менжи́нски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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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러시아어:Вячесла́в Рудо́льфович Менжи́нский 폴란드어:Wiaczesław Rudolfowicz Mężyński 영어:Vyacheslav Rudolfovich Menzhinsky 한국어:뱌체슬라프 루돌포비치 멘진스키 |
출생 | 1874년 8월 19일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 |
사망 | 1934년 5월 10일 (향년 59세)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 |
묘지 | 크렘린 벽 묘지 |
학력 |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법학부) |
직업 | 혁명가, 정치가 |
정당 |
[[소련 공산당|]] ( 1918 ~ 193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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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뱌체슬라프 멘진스키는 러시아 제국의 혁명가, 소련 공산당의 지도자, 정보기관 체카의 수장이다. 겐리흐 야고다, 니콜라이 예조프, 라브렌티 베리야의 직책상 선배지만, 그들보다는 온건하고 상식적이었다.2. 생애
그는 폴란드계 러시아인 귀족인 교사 집안에서 5남매로 태어났다. 또한, 그의 집안은 로마 가톨릭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러시아인으로 기병대 학교 수사관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역사 교사였다. 1898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02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에 가입하였고, 1905년 그는 RSDLP의 페테르부르크 위원회의 군사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1906년 멘진스키는 혁명활동으로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RSDLP의 외국 지부에서 일하며 벨기에와 스위스, 프랑스, 미국에서 망명하여 혁명 활동을 계속했고,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은 은행에서 일하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일어나자 멘진스키는 여름에 러시아로 돌아왔고, 10월 혁명 이후 멘진스키는 재정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영사로 있기도 했고 1919년부터 그는 체카 최고위원회의 위원이 되었으며, 5년 후에는 체카가 이름을 바꾼 통합국가정치국(OGPU)의 부국장이 되었다. 통합국가정치국의 국장이었던 펠릭스 제르진스키가 사망한 1926년 7월, 그는 연방국가정치부 부장이 되었다. 멘진스키는 부장으로 있으면서 방첩작전을 수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반 소련 세력의 중심 인물이었던 보리스 사빈코프와 시드니 레일리를 소련으로 유인해 체포하기도 했다.멘진스키는 체카 원로였을 당시 스탈린에게 충성을 다했고, 1930년과 1931년의 숙청을 지휘 감독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척추 질환과 협심증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말년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내다가 1934년에 병사했다.
3. 여담
- 멘진스키의 후임자였던 겐리흐 야고다는 1938년 자신의 재판에서 멘진스키를 자신이 독살했다고 자백했지만 재판에서 고문에 의한 진술이 많았음을 고려할 때 신빙성은 적다.
- 러시아어, 폴란드어 등을 포함한 10개 이상의 언어[1]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이들의 재정적인 전쟁 수단을 박탈하려고 러시아에 있는 은행을 파괴하는 데 개인적으로 지휘한 적이 있다.
- 레닌훈장과 적기훈장을 수여받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