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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4 00:13:06

마르티누스

성인
마르티누스
Martinus
파일:마르티누스.jpg
<colbgcolor=#1e1412><colcolor=#e7cb87> 출생 316년 혹은 336년
로마 제국 일리리쿰 관구 판노니아 사바리아
사망 397년 11월 8일 (향년 60세 혹은 81세)
로마 제국 갈리아 관구 캉드
종교 기독교
직업 군인, 성직자( 주교)
재임 기간 제3대 투르대교구장 주교
371년~ 397년 11월 8일
성인명 마르티노[한국가톨릭]
마틴[대한성공회]
[언어별 명칭]
라틴어: 마르티누스 (Martinus)
영어: 마틴 (Martin)
프랑스어: 마르탱 (Martin)
독일어: 마르틴 (Martin)
스페인어: 마르틴 (Martín)
이탈리아어: 마르티노 (Martino)
축일 11월 11일[3]
10월 12일[4]
수호 거지, 군인, 기사, 재봉사, 포도주 양조업자, 숙박업자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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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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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톨릭 투르대교구장
2대 3대 4대
리토리우스 ( 338년~ 370년) 마르티누스 ( 371년~ 397년) 브리시우스 ( 397년~ 4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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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 마르티누스의 망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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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군인, 주교. 흔히 지명을 이름에 덧붙여서 투르의 마르티누스로 불린다.

갈리아 지방의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 361년에 제대를 한 후 교회에 몸담았다. 371년에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갈리아 지방에 잔존해 있던 로마 다신교를 몰아내는 데에 큰 공헌을 했고, 프리실리아누스파[5]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것에 반대했다. 현재 그의 묘가 안장되어 있는 투르의 생마르탱 성당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떠나기 전에 들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순례지로 손꼽힌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그리고 루터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2. 성 마르티누스의 망토

파일:반다이크마르티누스.jpg
자신의 망토를 자르는 성 마르티누스 (De Heilige Martinus van Tours snijdt zijn mantel in tweeën)
안토니 반 다이크 作, 벨기에 신트마르티누스 성당
마르티누스는 갈리아 지방에서 군인으로 복무할 때 독특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아미앵의 성문에 당도한 그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거지를 보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의 소중한 망토를 검으로 잘라 거지에게 주었다[6]. 그날 밤, 곤히 잠들어 있던 마르티누스는 꿈속에서 예수가 자신이 이전에 거지에게 주었던 망토를 두른 채 나타나더니 그의 주변에 몰려 있던 천사들에게 "저 마르티누스는 아직 예비 신자임에도 나에게 이것을 입혀 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신묘한 꿈을 꾼 뒤 잠에서 깨어난 마르티누스는 놀랍게도 잘라져 있던 자신의 망토가 원래 상태로 깔끔히 복구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일이 그가 자신의 신앙심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어 18세 때 정식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 일화를 기점으로 마르티누스의 망토는 귀중한 성유물이 되어 그의 사후 마르무티에 수도원에 위치한 프랑크 왕국 메로베우스 왕조 군주 기도실에 고이 보관되었고, 국왕이 전투에 임할 때나 서약을 맹세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이후 망토는 행방이 묘연하다가 679년 왕실 보물고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798년경 카롤루스 대제가 생드니 대성당의 수도자들에게 망토를 양도해 발두아즈에 있는 마을인 뤼자르슈로 옮겨졌다.


[한국가톨릭] [대한성공회] [3]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회 축일. [4] 정교회 축일. [5] Priscillianism. 4세기의 영지주의를 기반으로 한 금욕주의적 기독교 분파로 가톨릭 정교회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했다. [6] 일부 문헌에서는 마르티누스가 망토 전체를 거지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