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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4 16:55:28

루이스 피구/클럽 경력/FC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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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TYoZ0SWoAAguoC.jpg
▲ 1995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 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등번호 7
기록
파일:라리가 산탄데르 은행 로고(가로형/화이트).svg
172경기
30득점 61도움
26경기
7득점 10도움
파일:UEFA컵 로고 (1997-2005).svg
10경기
3득점 2도움
파일:코파 델 레이 로고.svg
26경기
4득점 7도움
파일:Supercopa-de-España-RFEF.svg
5경기
4도움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2경기
1도움
파일:UEFA 컵위너스컵 로고.svg
8경기
1득점 2도움
합산 성적
249경기
45득점 82도움
1. 개요2. 이적3. 1995-96 시즌4. 1996-97 시즌5. 1997-98 시즌6. 1998-99 시즌7. 1999-00 시즌
7.1. 레알 마드리드 이적 비화7.2.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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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스 피구 FC 바르셀로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스포르팅 CP에서 활약한 후 빅 클럽들이 노리기 시작했고, 피구 또한 해외 빅 리그 이적을 모색했다. 원래 당시 최고의 리그로 자타가 인정했던 세리에 A로 진출을 모색했지만, 선수와 에이전트가 각각 유벤투스, 파르마와 이중 계약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2년간 세리에 진출 금지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 2 이후 피구는 라리가의 바르셀로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1995년 애증의 팀이 될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3. 1995-96 시즌

첫 시즌 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눈부신 모습을 보여주고 피구의 활약은 대단했다. 리그를 3위로 마무리 하고 코파 델 레이도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비록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으나 피구의 활약은 바르셀로나 팬들의 마음을 바로 사로잡았다.

1995-96 시즌: 52경기(선발 46경기) 8골 14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33 2 5 11
UEFA컵 10 9 1 3 2
코파 델 레이 7 4 3 0 1
<rowcolor=#EDBB00> 합계 52 46 6 8 14

4. 1996-97 시즌

에인트호벤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던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로 합류하며 호나우두, 피구는 막강한 공격라인을 자랑하며 바르셀로나에 많은 우승컵을 안겼다. 컵위너스컵과 국왕컵, 수페르코파 3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1996-97 시즌: 50경기(선발 48경기) 8골 16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6 34 2 4 12
컵위너스컵 8 8 0 1 2
코파 델 레이 5 5 0 3 1
수페르코파 1 1 0 0 1
<rowcolor=#EDBB00> 합계 50 48 2 8 16

5. 1997-98 시즌

팀의 공격을 책임졌던 호나우두가 한 시즌만에 인테르로 떠나고 새로이 클루이베르트와, 히바우두가 영입되어 피구와 함께 막강한 3명의 조합이 탄생했다. 이때부터 피구는 더욱 더 물이올라 바르셀로나의 간판 선수가 되었으며 바르셀로나가 리그 우승을 탈환하는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97-98 시즌: 52경기(선발 52경기) 7골 17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35 0 5 10
챔피언스 리그 5 5 0 1 1
코파 델 레이 6 6 0 1 3
수페르코파 2 2 0 0 1
슈퍼컵 2 2 0 0 1
챔피언스 리그 2 2 0 0 1
<rowcolor=#EDBB00> 합계 52 52 0 7 17

6. 1998-99 시즌

바르셀로나에서 피구의 활약은 눈부셨다. 히바우두- 호나우두/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와 함께 3톱에 서서 프리 롤과 윙어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며 팀이 2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처럼 공격진에 활기와 파괴력을 불어넣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피구의 인기는 바르셀로나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그때 바르셀로나 팬 클럽들 중 하나가 이름이 '피구'였고 당시 칸테라에서 올라와서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라고 떠받들어진 펩 과르디올라의 부재 시 주장 완장은 늘 피구가 차고 다녔을 정도.

1998-99 시즌: 45경기(선발 45경기) 8골 19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4 34 0 7 17
챔피언스 리그 6 6 0 1 0
코파 델 레이 4 4 0 0 2
수페르코파 1 1 0 0 0
<rowcolor=#EDBB00> 합계 45 45 0 8 19

7. 1999-00 시즌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시즌 피구는 바르셀로나 입단 이래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 트레블을 할 정도의 폼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반 할은 이 시즌을 끝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바르셀로나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반 할의 바르셀로나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진출하게 되지만, 이후 바르셀로나와 보드진과의 불화설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사실 피구는 명목상으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활약에 비해 많은 주급을 받지 못했다 생각했고, 피구와 피구의 에이전트는 그것에 불만이 많았다. 결국 피구의 에이전트는 유로 대회가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추진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선 총 249경기 45골 87도움을 기록했다.

1999-90 시즌: 45경기(선발 45경기) 14골 22도움
<rowcolor=#EDBB00>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2 32 0 9 11
챔피언스 리그 13 13 0 5 8
코파 델 레이 4 4 0 0 0
수페르코파 2 2 0 0 3
<rowcolor=#EDBB00> 합계 45 45 0 14 22

7.1. 레알 마드리드 이적 비화

어떻게 상식적으로 구단이 절대 불허할 이적을 진행할 수 있었을까? 답은 바이아웃 제도 때문이다. 루이스 피구의 바이아웃 금액은 6,00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710억 원대)였는데, 이 금액을 정말로 지불하는 상식 초월의 행보를 보이는 구단이 등장한 것.

라리가에는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 A 팀 계약 시 일정 금액을 현금 지불하면 원 소속 팀의 방해 없이 선수와 접촉하여 이적을 추진할 수 있는 바이아웃 제도가 있다. 하지만 금액 자체는 얼마를 써도 문제가 없어서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쓰곤 하는데 재계약을 하면서 바이아웃 액수 또한 새로 지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나 존재하던 제도였다. 피구의 경우 바르셀로나와의 장기 계약에 묶여 있었고, 바이아웃 가격 역시 6,000만 유로로 당시 세계 최고액 이적료를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물론 2010년대부터는 이 정도 금액은 수비수나 골키퍼가 이적할 때도 나오는 수준이고, 자본에 버블이 끼기 시작하는 2020년대에는 웬만한 이름 있는 선수들이라면 나오는 금액대지만, 2000년 이전까지 유럽축구 시장에선 시장 가격을 아득히 뛰어넘는 액수였다. 피구 이전까지 사상 최고액 이적료는 1999년 비에리의 4,650만 유로였고 불과 3년 전 발롱도르 수상자이던 호나우두의 이적료는 2,800만 유로였다, 때문에 누구도 6,000만 유로를 진짜로 낼 거라곤 상상하기 힘들었고, 누군가가 등장하기 전까진 업계 관계자들조차 이 계약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조차 못했다. 때문에 바르셀로나 경영진은 재계약을 원하는 피구에게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피구의 에이전트가 바이아웃을 언급했을 때도 그런 금액을 지불할 팀은 없을 거라며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가 정말로 바이아웃 금액을 덜컥 현금으로 내놓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그 유명한 갈락티코스 정책의 시작이었다.[1] 이 사건 이후 라리가 선수들의 바이아웃 금액이 비정상적으로 상향되었다. 이를 테면 리오넬 메시의 경우 바이아웃을 행사하려면 7억 유로(약 9,200억 원)를 일시불 현금으로 질러야 한다. 또한 메시의 라이벌 호날두의 바이아웃 금액은 10억 유로, 그러니까 약 1조 3,200억을 지불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이 금액을 지불하고 선수를 살 구단은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유벤투스가 호날두를 영입했을 때는 바이아웃이 아닌 레알 마드리드, 호날두와의 협상과 합의를 통해 100M의 이적료로 호날두를 영입한 거다.[2] 2017년 8월 파리 생제르맹이 바르셀로나 선수였던 네이마르를 바이아웃 2억 2,200만 유로(약 2,900억)을 지불하여 영입하기 전까지는 다시금 바이아웃 제도가 사문화되다시피 했다.[3]

이런 초유의 이적을 계획한 것은 당시 레알 마드리드 회장 선거에서 밀리고 있던 플로렌티노 페레스. 2008년 피구와의 인터뷰 겸 보스만 룰 특집 기사를 낸 포포투 영국판에 따르면, 피구 자신도 바이아웃 조항을 주급 인상에 미온적이었던 바르셀로나를 압박하려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지 마드리드 이적은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 당시 마드리드의 회장이었던 로렌소 산스 전해 챔스 우승을 해서 지지 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에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당선 가능성은 낮게 예측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데, 페레스 측은 피구에게도 우상이었던 전설적인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파울루 푸트리를 통해 피구의 에이전트 주제 베이가에게 줄을 대서 협상을 진행해달라고 피구에게 비밀리에 접근, "100만 달러를 줄 테니 내가 당선되면 마드리드로 반드시 이적해 달라"라는 계약을 제안한다.[4][5] 페레스가 낙마하더라도 피구가 선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조건과 함께. 페레스 낙선을 기정사실로 보던 피구 측은 당연히 얼씨구나 하고 그 계약을 받아들였다.[6] 실제로 1998-99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 바르셀로나가 도심 퍼레이드를 나갔을 때 피구는 도청 테라스에서 카탈루냐 포르투갈 국기를 몸에 두르고선 레알 마드리드를 까는 구호까지 외쳤을 정도.

문제는 페레스가 피구와의 이 비밀 계약을 흘리면서 결국 레알의 소시오들은 페레스를 찍었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으로 당선이 되어 버렸다는 것. 페레스는 이러한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인지 계약서에 피구가 레알로의 이적을 거부하면 페레스에게 막대한 위약금(약 25.6m 유로, 22m 파운드)을 지불해야 한다는 페널티 성격의 조항을 삽입해놓았고, 이 때문에 인터뷰에선 바르셀로나에 남겠다고 확언을 해놓고서도 레알 마드리드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때문에 피구는 페레스 회장이 당선되고 행선지에 대해 묻자 바르셀로나 구단 측에 "내 위약금을 대신 내주면 잔류할게"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시전해버린다. 당연히 바르셀로나 측에선 레알 마드리드에 줄 돈은 한 푼도 없다며 거절했고, 페레스가 곧바로 바이아웃을 포함한 계약 일체를 강행해 피구가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마드리드에서 계약 확인 기자 회견을 한 피구의 얼굴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피구는 실제로 회장 투표 이전에 심경이 불안한 듯 사르데냐에서 휴가를 보내다가도 언론사 스포르트에 연락해 인터뷰를 진행해 "바르셀로나에 남겠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최초로 밝힌다. 이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회장 선거 운동 현장에서 페레스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으나, 페레스는 마치 자신이 이미 회장이라도 된 듯 피구의 이름이 새겨진 레알 마드리드 저지를 입은 소년 팬과 사진을 찍어 언론사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피구는 계약서를 직접 와서 검토하지 않았으니 페널티 조항에 대해서 모른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루이스 피구의 서명이 없으니 나는 서명을 하지 않았고 에이전트인 조제 베이가와 브로커 역할을 한 파울루 푸트리의 책임이라고 법정 공방을 하게 되면 둘은 큰 곤경에 처할 위기였다. 이 때문에 파울루 푸트리와 조제 베이가는 연일 루이스 피구의 집에 전화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것이 현재 놓인 유일한 옵션이라고 설득을 해댔고 루이스 피구는 아무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등 언론사와 에이전트 양쪽에서 시달렸다고 한다. 조제 베이가는 자신이 페레스와 피구 양면에서 소송을 당하는 상황을 우려해 굉장히 불안해했다고 하며, 실제로 페널티 조항의 위약금은 구단 이적료로 쓰일 만한 거액이었으므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베이가가 이토록 불안해한 것은 계약서에 직접 서명한 것은 다름 아닌 본인인 데다가 루이스 피구는 계약서를 직접 보지도 않고 자기가 구두로 계약서 내용을 불러줬으니 이 내용에 대해 공방이 붙었으면 법정에서 매우 불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패배라도 한다면 십중팔구 거액의 위약금은 자기 몫으로 내야 할 상황이었다.

상황이 극에 치닫자 조제 베이가와 파울루 푸트리는 심각성을 깨닫곤 사르데냐로 전용기를 타고 가서는 피구를 하루종일 쫓아다니며 설득했고 피구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런 와중에 피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섞였고 계약 거부설이 스포츠 신문 1면을 앞다퉜다. 결국 피구와 파울루 푸트리, 조제 베이가는 레알 마드리드행을 접고 3천만 유로의 해결책을 찾았고 셋은 페레스 회장을 찾아가 싹싹 빌며 계약을 무위로 되돌려 달라고 부탁하려는 계획까지 세운다. 하지만 페레스 회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리스본의 조제 베이가 에이전트 사무실에서 넷이 사자 대면을 하게 된다. 밤부터 시작된 설득의 시간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고 페레스는 피구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3천만 유로가 아니라 피구 당신이다"라고 말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달라고 오히려 부탁하며 자신의 갈락티코스 계획에 피구가 중심에 서게 될 거라며 설득했다. 마침내 아침이 됐을 때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행을 결정했다.

5일 뒤, 가스파르트가 당선이 되고 당선 축하연을 열었는데 가스파르트에게 피구의 전화가 걸려온다. 피구는 당선을 축하한다는 형식적인 축하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지금 두 개의 비행기 티켓이 있어요. 하나는 리스본에서 바르셀로나행, 다른 하나는 리스본에서 마드리드행"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거액의 지급 보증서를 써주지 않으면 바로 휴가지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남겼고 한밤중에 가스파르트 회장이 "어떻게 지급 보증서를 써주겠냐. 지금 한밤중이다. 불가능한 제안이다"라고 답했더니 피구가 "그럼 여기까지네요. 마드리드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가스파르트 회장이 TV 방송에 나와 공공연하게 폭로했다.

하지만 피구는 이에 대해서 가스파르트 회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으며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판단은 결국 각자의 몫.

한편 피구는 이적 결정 후 스포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 측이 피구에게 그다지 애정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적을 결심했다고 말하고 있다. # 근데 이적하기 싫었다 쳐도 이미 이적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후일 피구가 다큐멘터리에서 밝힌 바로는, 이미 계약적으로 연봉 협상이 끝났으니 계약 갱신에 대해서 더 이상은 협상 생각이 없다는 투로 자신에게 못박은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고. 이 때문에 피구는 바르셀로나가 자신을 팬들의 사랑만큼 대우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자신의 짧은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인지는 개개인의 판단의 몫이지만.
사람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법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5년 동안, 팀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어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열린 유로 2000 대회 당시에 포르투갈 대표팀은 4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 기회에 대해 바르셀로나에게 이야기를 했죠. 바르셀로나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으니까요. 그 당시 이야기에 대해 많은 소문이 있었죠. 제가 최고액의 계약을 원했다고요. 많은 돈을 원했다는 거죠.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난 바르셀로나에 남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바르셀로나에서 뭘 해줄 수 있는지, 뭘 원하는지 듣고 싶었죠. 그런데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좋아. 떠나도 좋아. 이적료만 많이 남겨주고 넌 가도 좋아” 난 클럽이 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이적을 결정했죠. 계약 조건도 더 좋았죠. 레알 마드리드의 멤버로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팀의 명성을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행운을 잡은 겁니다.

7.2.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폭풍

앙숙 레알 마드리드로 다이렉트 이적을 해버린 루이스 피구는 바르셀로나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첫 엘 클라시코 경기부터 바르셀로나 팬들은 관중석에서 엄청난 수위의 욕설로 피구를 맞이하였다.[7] 이때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서포터즈의 분노로 인해서 피구의 안전이 우려될 정도로 험악했다고.

물론 피구 이전에도 바르셀로나에서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례는 제법 많았는데, 주젭 사미티에르 같은 고전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사이에 베른트 슈스터, 루이스 미야, 미카엘 라우드럽 등 여러 선수들이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바 있었다. 앞의 사례들을 보면 바르셀로나에서 뛰다가 구단과의 갈등으로 엿 먹으란 뜻에서 레알로 이적한 케이스가 많았다. 특히 라우드럽.

팀 동료였던 호나우두도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피구에 비하면 그리 파장이 큰 편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시기도 한 시즌이었고 인테르로 이적한 뒤에 다시 스페인으로 리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8] 전 바르사 감독이던 루이스 엔리케는 반대로 레알에서 바르사로 다이렉트 이적했지만 레알에서의 활약이 미미했고 계약 만료로 이적한 경우라 피구만큼의 파장은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서포터들이 곱지 않게 봤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주장까지 선정되고 은퇴 후에는 감독이 되는 영예까지 누렸다. 에투도 마드리드에서 돌고 돌아 바르사로 간 케이스지만, 엔리케와 마찬가지로 레알에선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피구는 팬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바르셀로나의 부주장이었던 데다가 주장인 펩 과르디올라가 결장하는 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던 선수였고 바이아웃, 즉 돈 때문에 이적한 사례라 후폭풍이 아주 폭발적이었다. 당시 피구는 바르셀로나의 아이콘이었고, 혹자는 그 실력과 상징성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곧 피구라고 할 정도였다. 이적하고 바로 보여준 미친 활약 때문에 당시 팀 동료였던 펩 과르디올라마저도 어디서 데려온 거냐며 크루이프에게 물어볼 정도였다고. 그 상징성은 오늘날 메시가 2010년대 중반까지 보여준 것에 비견될 정도였다. 당시 스페인 뉴스는 물론 유럽에서 피구의 활약과 상징성이 심심치 않게 다뤄졌다. 지금으로 따지면 메시 혹은 이니에스타가 레알 마드리드로 간 것과 비슷한 것이다. 혹은 호날두가 바르사로 이적했다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피구는 오늘날까지도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선수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피구가 레알로 이적하자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의 비난은 엄청났다. 거리 곳곳에서 피구의 사진이 불태워진 건 물론이요, 피구가 엘 클라시코 날이 되어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으로 오면 피구에게 온갖 쓰레기와 욕설이 날아들었다. 코너킥 차러 가던 피구에게 양주병을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피구가 제대로 뛰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바르사 팬이 돼지 머리를 투척한 사건.[9] 오죽했으면, 바르셀로나의 주장 펩 과르디올라가 팬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10] 피구는 엘 클라시코가 열리기 전 시합에서 고의로 퇴장을 당해 엘 클라시코 더비를 일부러 빠질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어차피 계약의 세부 상황이 일반에 알려질 일은 없겠지만 배신감으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날뛴 바르셀로나의 울트라스에 비해 피구 자신은 조용히 처신했다. 바르셀로나에 대한 적의감을 나타내지도 않았고 그나마 비난을 했던 것은 자신의 가치를 정당히 평가해주지 않았던 당시의 보드진과 회장인 호안 가스파르트.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바르셀로나에 대한 호감은 그대로 드러냈던 모양이다. 후일 다큐멘터리에서 밝히기로는 바르셀로나 시절은 본인의 커리어는 물론이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손꼽는다고 한다. 이때 아내를 만났고 딸까지도 세상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이 시기를 말할 수밖에 없다고. 이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2021년 무렵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까지도 바르셀로나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실제로 2003년 당시로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더 먹어주는 특급 유망주였던 히카르두 콰레스마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기자 회견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피구가 자신에게 갈 수 있다면 바르셀로나로 가라고 충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가 피구의 이적 시 선수 본인과 상호 동의하에 내걸었던 바이아웃 조항에 적혀 있는,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금액을 어찌 됐건 받게 됐다.

그래도 돈 보고 이적했다는 말은 듣기가 거북한지 상기 서술한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축구 선수의 커리어는 결코 길지 않다. 누구든지 선수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게 쳐주는 클럽으로 이적하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했다.

피구의 상황은 극한 상황에 다다르고 신변에도 위협을 느끼기도 했으나 어찌 됐건 그런 상황에서 리그 우승에 기여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한편, 그가 떠나온 바르셀로나는 상황이 극적으로 뒤바뀌어 레알 마드리드를 조롱하던 피구가 합류해버린 시점에서 5년 동안 트로피를 단 한 개도 들지 못하고 호안 가스파르트 회장은 2003년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임한다. 그러곤 꽤 시간이 흐르도록 역대 최악의 회장이라는 불명예를 안는다.[11]당시 바르셀로나로서는 라리가 최고의 선수를 한순간에 잃고 대체자는커녕 거액의 이적료를 받아들고도 이제 막 회장단이 들어서 허둥지둥하느라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페레스 회장은 잘 알려졌듯, 장기 집권했을 뿐만 아니라 갈락티코스 계획을 현실화해 수많은 돈과 트로피를 들게 했다는 영예를 안았다.


[1] 90년대 말부터 유럽 축구는 유럽 경제가 호황을 맞고 아시아, 미국, 아프리카 등 당시로서는 축구의 변방이던 지역으로 중계권을 수출하며 적극적으로 진출한 덕에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었고 이적료 또한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었다. 그 전까지는 세리에 A가 유럽 최대의 축구 시장으로 통했지만 레알의 갈락티코스 이후로 라리가가 최대의 시장으로 떠올랐다. [2] 역으로 바이아웃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주고 영입하기도 한다. 바이아웃을 통한 이적 역시 클럽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라도 협상 과정을 거치는데, 규모가 작은 클럽에서 갑자기 시장 가치가 폭등한 유망주가 나온다거나 하면 원 소속 구단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이적료를 올려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바이아웃은 무조건 일시불로 지급해야 하기에 당장 장부 관리에 무리가 가므로 바이아웃보다 좀 더 내는 대신 할부로 이적료를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 [3] 1억 5백만 유로(1,300억)로 역대 1위였던 폴 포그바의 기록을 단숨에 2배 이상 넘겨버렸다. [4]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피구 이적 비화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푸트리는 일부러 베이가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전화를 끊었음에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전화하는 척을 페레스 앞에서 했다고 한다. 그러곤 수수료 1000만 유로를 요구한다고 대담하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페레스는 500만 유로를 제안했고 600만 유로에 합의를 본 푸트리는 베이가에게 "이 친구야 자그마치 수수료가 600만 유로야!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이런 기회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어!"라고 말해 설득했다고 한다. [5] 이때의 바이아웃 금액에 대해서 축구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다 되어갔던 호안 가스파르트 당시 회장은 그 누구도 이 가격을 낼 수 없다고 확신했고 베이가와도 바이아웃 수표를 가져오면 그때부터 협상을 해주겠다고 큰소리쳤으며 이적료를 내겠다는 클럽의 정체에 대해선 일말의 의심도 없이 피구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지 계약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다고 한다. [6] 넙죽 받은 것처럼 서술되었지만 피구는 실제로는 베이가를 설득해 레알 마드리드가 제안한 기존 주급의 4배라는 거액의 계약에 근접하도록 바르셀로나 회장 선거 당시에 후보들과 임원들에게 접근해 설득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아웃 이야기를 듣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거짓말로 치부했다고. 피구는 페레스의 제안을 임금을 올리려는 거짓말로 치부하는 호안 가스파르트 당시 부회장에 염증을 느꼈고 이적을 진행해달라고 베이가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7] 당시 증언에 따르면 인간의 창의성이 이토록 대단하구나 싶은 온갖 다채로운 욕설들이 난무했다고 한다. "배신자 유다" 정도면 귀여운 표현이었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독실한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유다라는 말은 절대로 가볍게 나오는 말이 아니다. [8] 대신 레알 갈 때도 갑자기 이적해버렸고 레알을 나간 이후론 인테르의 라이벌 AC 밀란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인테르 팬들이 "너 같은 놈은 관광으로라도 밀라노에 오면 안 된다"라는 걸개를 걸어 분노를 표하긴 했다. [9] 뒤의 푸욜을 보면 관중들에게 던지지 말라고 하고 있다. [10] 펩도 후일 밝히기로 여러 가지로 피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워낙 절친했던 탓에 감정적으로 격양돼 이적 당시 울먹이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팬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격하기도 했다. 경력이 오래된 축구 관계자들도 이런 광경과 분위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11]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운영 파탄으로 인한 막대한 적자로 성골이자 상징 그 자체였던 리오넬 메시를 잃어먹은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가 이견의 여지 없는 바르셀로나 역대 최악의 회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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