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브록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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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 |
1964 | 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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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영구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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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SL | No.1 | No.2 | No.6 |
<rowcolor=#ffef00> 로저스 혼스비※ | 아지 스미스 | 레드 션다인스트 | 스탠 뮤지얼 | |
<rowcolor=#ccac00> No.9 | No.10 | No.14 | No.17 | |
<rowcolor=#ffef00> 에노스 슬로터 | 토니 라 루사 | 켄 보이어 | 디지 딘 | |
<rowcolor=#ccac00> No.20 | No.23 | No.24 | No.42 | |
<rowcolor=#ffef00> 루 브록 | 테드 시몬스 | 화이티 허조그 | 브루스 수터 | |
<rowcolor=#ccac00> No.42 | No.45 | No.85 | 🎙️ | |
<rowcolor=#ffef00> 재키 로빈슨 | 밥 깁슨 | 어거스트 부시 | 잭 벅 | |
※ 혼스비가 전성기를 보낸 시기에는 등번호가 따로 있지 않았다. 부시 스타디움 왼쪽 담장에 다른 영구 결번 야구인들과 함께 그의 이름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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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명예의 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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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보텀리 | 켄 보이어 | 루 브록 | 잭 벅 | 거시 부시 |
디지 딘 | 짐 에드몬즈 | 프랭키 프리시 | 밥 깁슨 | 칙 헤이피 | |
제시 헤인스 | 화이티 허조그 | 로저스 혼스비 | 토니 라 루사 | 마티 마리온 | |
윌리 맥기 | 조 메드윅 | 자니 마이즈 | 스탠 뮤지얼 | 브랜치 리키 | |
레드 션다인스트 | 마이크 섀넌 | 에노스 슬로터 | 아지 스미스 | 빌리 사우스워스 | |
브루스 수터 | 커트 플루드 | 밥 포쉬 | 조지 키셀 | 테드 시몬스 | |
샘 브리든 | 크리스 카펜터 | 테리 무어 | 조 토레 | 페퍼 마틴 | |
팀 맥카버 | 마크 맥과이어 | 해리 브러킨 | 빈스 콜먼 | 레이 랭포드 | |
모트 쿠퍼 |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 스캇 롤렌 | 톰 허 | 존 튜더 | |
빌 화이트 | 키스 에르난데스 | 찰스 코미스키 | 맷 홀리데이 | 훌리안 하비에르 | |
맥스 레이니어 | 호세 오켄도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루 브록 | |
헌액 연도 | 1985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9.75% (1회) |
윌리 스타젤 ( 피츠버그 파이리츠) |
→ |
루 브록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피트 로즈 ( 신시내티 레즈) |
1966년 ~ 196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도루왕 | ||||
모리 윌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
루 브록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바비 톨렌 ( 신시내티 레즈) |
1971년 ~ 197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도루왕 | ||||
바비 톨렌 ( 신시내티 레즈) |
→ |
루 브록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데이비 로프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시카고 컵스 등번호 24번 | ||||
루 존슨 (1960) |
→ |
루 브록 (1961~1964) |
→ |
엘리스 버튼 (1965)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20번 | ||||
게리 콜브 (1962~1963) |
→ |
루 브록 (1964~1979) |
→ | 영구결번 |
|
|
<colbgcolor=#c41e3a><colcolor=#ffef0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o. 20 | |
루이스 클락 "루" 브록 Louis Clark "Lou" Brock |
|
출생 | 1939년 6월 18일 |
아칸소 주 엘도라도 | |
사망 | 2020년 9월 6일 (향년 81세) |
미주리 주 세인트찰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유니언 고등학교 - 서던 대학교 A&M 칼리지 |
신체 | 180cm / 77kg |
포지션 | 좌익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6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 CHC) |
소속팀 |
시카고 컵스 (1961~196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4~1979)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영구결번 헌액자이다.선수 시절 통산 3,023안타 938도루를 기록하면서 리키 헨더슨에 이어서 메이저 리그 역대 도루 2위에 올라 있는 도루의 달인이다.[1]
2. 생애
브록은 1939년 아칸소 주의 엘도라도라는 도시에 태어났다. 브록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브록이 태어나자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으며,브록은 루이지애나 주의 농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다. 브록은 당시 대부분의 흑인들이 그렇듯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다행히 어릴 때부터 야구와 농구에 두각을 나타내던 브록은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58년, 대학리그에서 .645의 타율을 기록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1959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팬암대회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브록에게 메이저리그이 구단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그 중 시카고 컵스가 1961년 브록과 3천달러에 계약하며 브록은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컵스에 입단한 브록은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361, 181안타를 기록하며 리그를 씹어먹고 1962년부터 1군에 콜업되어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게 되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게 된 1962년 타율 .263, 9홈런 16도루, 1963년에는 타율 .258, 9홈런, 24도루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하였고 1964년 시즌 도중 컵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3:3 트레이드로 카디널스로 이적하게 된다.[2][3]
당시 카디널스의 감독이었던 자니 킨 감독은 브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브록의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덕분에 브록은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컵스에서 타율 .251 54안타 2홈런 10도루로 저조한 성적을 보이던 브록은 카디널스에서 타율 .348 146안타 12홈런 33도루를 기록하며 잠재력이 폭발한다. 다음해인 1965년에는 .288 182안타 16홈런 63도루,1966년에는 .285 183안타 15홈런 74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 메이저리그의 최고의 리드오프로 떠올랐다.
다음 해인 1968년 브록은 타율 .279 184안타 6홈런으로 타격면에서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도루는 62개를 기록하며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소속팀인 카디널스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3승4패로 패하며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브록은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타자 중 한명이었지만 선구안은 최악에 가까워서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나이가 30대에 들어서면서 삼진은 줄어들고 볼넷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브록은 1973년을 제외하고 1970년부터 1976년까지 3할대 타율을 기록했는데 특히 1974년에는 35살의 나이에 타율.306 194안타, 118도루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통산 최다도루 1위에 올랐다.[4]
1975년에는 .309 163안타 56도루를 기록했으나 신시내티 레즈의 조 모건과 신예들에게 밀려 도루 순위에서 2위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브록은 8월 24일 통산 800번째 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3번째로 800도루의 고지를 밟았다.[5]
1976년에도 브록은 타율.301 150안타 56도루를 기록했으나 도루왕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7년 8월 29일, 통산 893번째 도루로 타이 콥을 넘어서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1위에 올랐다.[6]
1978년 브록은 타율 .221 66안타 17도루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에 주위에서는 브록에게 은퇴를 권했지만 브록은 떠밀려서 은퇴하는건 바라지않는다며 거절했다. 1979년 타율 .304 123안타 21도루로 재기에 성공했는데 8월 13일에는 개인 통산 3000안타를 기록했고, 이후 23안타를 더 치며 시즌을 마무리하였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타율 .293, 출루율 .343, 장타율 .410, OPS .753, 순장타율 .118, 3023안타, 149홈런, 938도루, BB/K 0.44, wRC+ 109를 기록했다.
3. 사망
2015년 11월 11일,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고 한다. 이어서 2017년 4월 13일에는 뼈암 투병으로 인해 구단 행사에 불참하게 됐단 소식까지 알려졌다. 이후 암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2020년 9월 6일 혈액암 등 여러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났다.[7]4. 명예의 전당 입성
메이저 리그 역사상 최초로 900도루의 고지를 돌파했으며, 은퇴 당시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웠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서는 당연히 첫 턴으로 들어갔다. 다만 현 시점에서 세이버상 WAR은 40을 살짝 넘는 정도로 낮은데, 일단 브록은 출루율이 높지 않았고 OPS도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수비력이 극도로 나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세이버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기에 3000안타, 900도루라는 경지를 돌파한 루 브록은 한 번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루 브록 | 26 | 146 | 152 | 43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Left Field (36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루 브록 | 45.2 | 32.0 | 38.6 |
좌익수 HOF 입성자 평균 | 65.2 | 41.5 | 53.3 |
5. 기타
- 브록은 실력뿐만이 아니라 인품 또한 훌륭했는데 선수 시절 세인트루이스에 루 브록 소년 클럽을 세워 청소년 선도에 힘썼고,그로 인해 1975년에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브록은 Brock World Product International 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메이저 리그와 청소년 선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 샌디 코팩스는 루 브록이 신인 시절 기습번트 출루 후 도루를 수차례 기록하자 일부러 그를 수차례 맞춘 적도 있다. 온화한 샌디 코팩스의 커리어 중 드문 일.
- 1991년 5월 리키 헨더슨이 자신의 메이저 리그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경신한 경기의 현장에 있었고, 즉시 리키의 기록 경신을 축하해주었다.
6. 연도별 성적
루 브록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61 | CHC | 4 | 12 | 1 | 0 | 0 | 0 | 1 | 0 | 0 | 1 | 3 | .091 | .167 | .091 | .258 | -0.3 | -0.2 |
1962 | 123 | 477 | 114 | 24 | 7 | 9 | 73 | 35 | 16 | 35 | 96 | .263 | .319 | .412 | .731 | 0.3 | 1.0 | |
1963 | 148 | 588 | 141 | 19 | 11 | 9 | 79 | 37 | 24 | 31 | 122 | .258 | .300 | .382 | .682 | 1.7 | 2.6 | |
<rowcolor=#ffef00>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64 | CHC/ STL | 155 | 695 | 200 | 30 | 11 | 14 | 111 | 58 | 43 | 40 | 127 | .315 | .358 | .464 | .821 | 4.6 | 5.8 |
1965 | STL | 155 | 697 | 182 | 35 | 8 | 16 | 107 | 69 | 63 | 45 | 16 | .288 | .345 | .445 | .791 | 3.9 | 4.2 |
1966 | 156 | 678 | 183 | 24 | 12 | 15 | 94 | 46 | 74 | 31 | 134 | .285 | .320 | .429 | .749 | 3.3 | 3.4 | |
1967 | 159 | 724 | 206 | 32 | 12 | 21 | 113 | 76 | 52 | 24 | 109 | .299 | .327 | .472 | .799 | 5.2 | 5.6 | |
1968 | 159 | 712 | 184 | 46 | 14 | 6 | 92 | 51 | 62 | 46 | 124 | .279 | .328 | .418 | .746 | 5.3 | 5.8 | |
1969 | 157 | 710 | 195 | 33 | 10 | 12 | 97 | 47 | 53 | 50 | 115 | .298 | .349 | .434 | .782 | 3.2 | 3.0 | |
1970 | 155 | 729 | 202 | 29 | 5 | 13 | 114 | 57 | 51 | 60 | 99 | .304 | .361 | .422 | .783 | 2.1 | 1.9 | |
1971 | 157 | 721 | 200 | 37 | 7 | 7 | 126 | 61 | 64 | 76 | 107 | .313 | .385 | .425 | .810 | 3.9 | 3.6 | |
1972 | 153 | 676 | 193 | 26 | 8 | 3 | 81 | 42 | 63 | 47 | 93 | .311 | .359 | .393 | .752 | 2.1 | 1.7 | |
1973 | 160 | 727 | 193 | 29 | 8 | 7 | 110 | 63 | 70 | 71 | 112 | .297 | .364 | .398 | .762 | 2.5 | 2.1 | |
1974 | 153 | 702 | 194 | 25 | 7 | 3 | 105 | 48 | 118 | 61 | 88 | .306 | .368 | .381 | .749 | 3.0 | 3.5 | |
1975 | 136 | 574 | 163 | 27 | 6 | 3 | 78 | 47 | 56 | 38 | 64 | .309 | .359 | .400 | .758 | 2.2 | 1.8 | |
1976 | 133 | 544 | 150 | 24 | 5 | 4 | 73 | 67 | 56 | 35 | 75 | .301 | .344 | .394 | .738 | 1.9 | 1.5 | |
1977 | 141 | 521 | 133 | 22 | 6 | 2 | 69 | 46 | 35 | 30 | 74 | .272 | .317 | .354 | .670 | -0.7 | -0.9 | |
1978 | 92 | 317 | 66 | 9 | 0 | 0 | 31 | 12 | 17 | 17 | 29 | .221 | .263 | .252 | .514 | -1.8 | -1.9 | |
1979 | 120 | 436 | 123 | 15 | 4 | 5 | 56 | 38 | 21 | 23 | 43 | .304 | .342 | .398 | .739 | 0.8 | 0.7 | |
MLB 통산 (19시즌) |
2616 | 11240 | 3023 | 486 | 141 | 149 | 1610 | 900 | 938 | 761 | 1730 | .293 | .343 | .410 | .753 | 43.2 | 45.3 |
7. 관련 문서
[1]
대도 계보는
빌리 해밀턴-
타이 콥-루 브록-
리키 헨더슨으로 이루어진다.
[2]
컵스가 트레이드 대가의 핵심으로 받아온 투수 어니 브롤리오가 2시즌동안 6승만을 거두며, 이 트레이드는 컵스 역사상 최악의 조공 트레이드로 평가받는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이 트레이드는 경영진과 팬들의
인종차별주의의 결과로, 컵스 팬들이 야구계에 흑인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에 집단으로 반발해 경영진에게 압력을 가해
이루어진 트레이드라고 한다. 이 시대착오적
인종차별의 결과를 컵스는 톡톡히 치른다.
[3]
컵스가 브록을 트레이드 하려고 한게 앞에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브록의 극악의 수비력이었다. 어느정도였냐면 무려 7번이나 외야수 부분 실책 1위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컵스 시절에도 많은 실책을 했지만, 이놈의 수비력은 카디널스 가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통산 실책수가 196개로 200개에 육박한다. 브록보다 통산 실책수가 많은 외야수가 34명인데, 전부 데드볼 시대에 뛰었던 선수들이다. 바꿔 말해 라이브볼 시대 최악의 외야수비로 불리는 선수가 브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브록이 3000안타와 당시에 통산 최다 도루를 기록했음에도 평가절하를 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 극악의 수비력 때문이다.
[4]
브록이 깨기전 내셔널리그 통산도루 1위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뛰었던 맥스 캐리의 738도루였다.
[5]
1번째는
빌리 해밀턴, 2번째는
타이 콥
[6]
이는 1991년 5월 1일
리키 헨더슨이 939도루로 경신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도루 1위였다.
[7]
그로부터 일주일 전인 8월 31일에는 어메이징 메츠의 에이스였던
톰 시버도 세상을 떠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