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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한 등애를 서술하는 문서.2. 설명
말더듬이였다는 고증을 살리고 있으며 산악 영화 클리프행어의 게이브 월커를 패러디하였다. 산악인 아이덴티티 때문에 해당 캐릭터를 선택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물 설명을 봤을 때는 게이브 역을 맡았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패러디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등애를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밑바닥부터 한단계씩 밟고 올라온 의지의 사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베스터 스탤론 역시 등애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 출신에 언어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밑바닥부터 올라와 대성한 배우인만큼, 정말 적절한 패러디가 아닐 수 없다.실베스터 스탤론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인 만큼 게이브 월커 뿐만 아니라 람보, 록키 발보아 등으로 패러디 되기도 한다.
3. 작중 행적
국산 전투 편에서 서질과 함께 진태의 부장으로 처음 등장. 진태 등과 함께 국성을 성공적으로 공략해냈으며, 강유가 퇴각하는 척하며 요화를 보내 기습하려고 했을 때는 그걸 예측하고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요화가 머리를 써서 강을 건너는 척만 하고 동쪽의 조성을 공략하려 했지만 등애는 거기까지 읽고 미리 조성에 가서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묘사됐다.적도 전투 편에서 여남 방면으로 이동해 있었다고 언급되었고 낙가 전투 편에서 실제로 연주자사가 되어 있던 것으로 묘사된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난을 일으킨 관구검의 격서를 받자마자 관구검 일파가 낙가를 노릴 것을 예측하여 진작에 달려와 낙가를 확보해 놨다고 묘사됐다. 이후 낙가성 밖에 있던 사마사의 진영이 문앙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자 성 안에 주재하던 등애가 신속하게 대응에 나서 문흠 일당을 낙가에서 퇴각하게 만들었다고 묘사되었다.
고관 전투 편에서는 안서장군으로 승진하고 다시 옹주로 발령받으며 서량으로 돌아왔다.[1] 등애는 진태군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종제로 물러난 강유를 칠 것을 제의했다. 주변에서는 아군의 전력이 보강된 이상 강유를 신경쓸 필요가 그리 크진 않을 거라 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지만 등애는 강유의 베테랑 병사들과는 달리 아군의 지원군은 전투 경험이 많지 않고, 또한 강유는 아군이 지켜야 할 많은 거점 중 하나를 골라잡아 공격해올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56년경 적도 방면의 방비가 튼튼하단 걸 깨달은 강유가 기산으로 돌아서 공격하려 했지만 등애는 강유의 행보를 예측하였기에 기산을 미리 점거해 놓았다. 강유는 기산쪽이 막히자 동정을 거쳐 남안으로 더 돌아서 가려고 시도했고 그를 위해 무성산을 넘으려 했지만 등애는 또 무성산에서 강유를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묘사했다. 이후 강유가 일이 꼬여서 퇴각하려 하자 퇴각하는 강유군을 단곡에서 따라잡아 큰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고관전투 이후 중앙으로 간 진태를 대신해 대촉방면 사령관이 된 것으로 묘사됐다.[2] 등애 본인은 중앙으로 불려간 진태를 두고 명문가 도련님은 출세 가도를 달린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검각 전투 편에서는 262년경 공격을 들어온 강유를 박살내서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고 언급되었다.
사마소가 촉 정벌을 준비할 당시, 등애는 촉 정벌에 회의적이었지만 사마소의 설득 끝에 대충 납득했고, 촉 정벌에 참여했다. 등애는 적도에서 출발해 강유가 지키는 답중 방면으로 움직였다. 강유가 등애만 막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등애도 강유를 뚫어야 촉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강유를 집중공략하는 행보를 보였다. 등애는 제장들을 모아 놓고 무턱대로 힘으로 공략했다간 큰코다칠 거라고 경고했고, 파상공격을 선택, 지속적으로 공격해 조금씩 상대를 쇠하게 만들어 잡는 작전을 시행했다. 실제로 등애의 작전대로 왕기, 견홍, 양흔이 차례로 강유를 압박해서 몰아붙였지만, 요화의 지원과 강유의 뒤를 잡았던 제갈서의 삽질이 겹치면서 강유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
제갈서가 강유를 놓친 일을 사과하자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넘기고 자기를 따라올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제갈서가 당초 임무대로 강유의 뒤를 쫓아 검각에 가겠다고 하자 힘 낭비라면서 한심해했고, 이에 제갈서가 대안이 있냐고 묻자 당당하게 산을 넘겠다고 말했다.
등애는 본인이 제갈서에게 말했듯 검각 돌파는 애시당초 불가능이라고 여겼기에 산을 넘는 데 가능성을 걸고 촉 정벌에 나섰다고 묘사되었다. 수하들과 험준한 음평 산길을 매달리고 굴러가며 넘어갔고, 산에서 내려올 무렵에는 전군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는데, 딱 도착하고 보니 내려가는 길목에 촉의 관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생 짐승조차 지나다니지 않는 험한 산중턱에 관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기에[3] 등애는 털썩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그러나 등애는 머리를 싸매고 있어 봐야 체력과 식량만 소모될 뿐이라고 생각하여 빠르게 정신을 추스르고 휘하 장병들에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고 말하며 적의 관문을 공격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 와중에 전속이 개죽음 당하긴 싫다며 명령을 거부하려 들자 진짜 개죽음이 뭔지 보여 주겠다며 전속의 목을 베려 하기도 했으며 이에 전속은 도망쳤다. 따지고 보면 모두 개죽음을 당할 거라는 전속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공격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정작 관문을 수비하던 적장 마막이 아무런 저항없이 관문을 열고 항복해버리자 벙찐 모습을 보였다.
검각 전투 후반부부터 등애에게 콧수염이 생겼다.
강유관에서 재정비를 마친 등애군은 바로 덕양으로 향했고, 빠른 움직임으로 평지에 내려와서 늦게 영격을 나온 제갈첨군을 박살냈다. 제갈첨이 부성을 버린 뒤에는 전술의 폭이 넓어졌다고 좋아하며 견홍과 양흔을 보내 부성을 접수하게 한 뒤 자신은 사찬, 등충과 함께 면죽 공략에 나선다. 거센 저항에 사찬과 등충이 공략에 실패하자 이들의 목을 베려 했으나, 등충의 탄원으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줬고, 이후 면죽까지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이후 유선이 등애에게 투항 의사를 밝혔고, 등애는 당연히 쌍수들고 환영했다. 등애 본인은 살다살다 이렇게 로또가 연속으로 맞는 경우도 있다며 좋아했다.[4]
성도에 도착한 등애는 유선의 항복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고, 사찬이 황호를 잡아오자 교활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라며 사형을 명하기도 했다.[5] 등애는 촉 정벌의 일등 공신이 되어 태위로 승진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촉에서 새로운 전운이 감돌았다고 나레이션으로 서술되었다.
성도 전투 편에서는 등애와 종회의 차이점이 잠깐 묘사된다. 분명 여러 가지로 알찬 쪽은 등애였음에도 굉장히 있어보이는 귀족 자제 종회와는 달리 등애는 태도와 말투가 세련되지 못했기에 이전 촉 관원들에게서 비웃음을 샀다고 묘사됐다.
그리고 촉 멸망 이후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이 성공 후 곧잘 보여주는 독단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등애는 촉 멸망 이후 여세를 몰아 오도 밀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프로젝트를 폭풍처럼 쏟아내며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사마소가 위관으로 하여금 일에는 절차가 있으니 좀 기다리라는 말을 전하자 크게 답답해하며 일에는 때가 있어 무작정 기다릴 수 없고, 국가 대계를 위해 움직이는데 눈치 같은 건 보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등애를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종회에 의해 꼬투리를 잡히게 되었고, 결국 위관에 의해 체포되는 신세가 된다.
이후 성도 전투(7)에서 낙양으로 압송되던 도중 사찬의 도움을 받아 풀려나게 되었고 성도로 향하지만 그 직후 위관의 명을 받은 전속이 이끄는 궁병에게 화살을 맞고 사찬, 등충과 함께 죽게 된다. 임팩트 있게 최후를 맞이한 강유와는 대조적으로 허무하게 최후를 묘사했다.
[1]
이 때 깨알같이 등애를 못 알아본 진태의 부하 한 명이 등애를 수상한 사람 취급하는 바람에
등짝에 물세례를 맞는 개그씬을 찍기도 했다. 그 부하는 등애에게 그대로 제압당해 살해당할 뻔한 걸 진태가 새로 온 부하놈이 잘 모르고 결례를 범했다고 사과하며 간신히 구출했다(...)
[2]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등애는 실질적 총사령관은 맞되 진태의 직위를 이어받은 건 아니었다. 정서장군직을 이어받은 인물은 낙하산으로 꽂힌 사마망.
[3]
이 때 배경의 달에
익숙한 쉼표 문양이 묘사되어 있다.
[4]
등애의 촉 정벌은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산짐승도 안 다닐 길에 떡하니 관문이 있는 걸 보고 좌절했지만 운 좋게 관문을 지키던 적장이 바로 항복했고, 덕양을 치고들어갔을 때는 운 좋게 적의 영격이 늦어져 평지에서 싸워 기세를 잡았으며, 또 운 좋게 적이 부성을 버리는 바람에 적진 한복판에 성이 생겼으며, 마지막으로 유선이 빠르게 항복하며 촉한 정벌의 최고 공로자가 되기까지 했다.
[5]
다만 황호는 사찬에게 뇌물을 먹여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