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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0 11:46:47

양흔

楊欣
(? ~ 278)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장수. 천수 사람.

2. 생애

금성태수를 지냈고 263년에 촉 정벌군이 일으킬 때 양흔은 등애의 명으로 감송으로 파견되었으며, 강유의 군대는 종회가 한중에 진입한 것을 알고 물러나자 양흔이 강유를 강천구까지 추격해 큰 싸움을 벌여 강유를 패주시켰다.

이 밖에도 진서 단작전의 단작의 말에 따르면 강유관의 형세를 핍박했다는 이유를 들어서 양흔의 부하 30명이 봉해졌다고 한다. 등애전에 따르면 강유관은 제대로 된 보급도 없이 비전투손실로 지치고 다친 선두진영이 도착하자 수문장 마막이 항복했다고 하는데 그 선두진영은 양흔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작은 이 이야기를 들어 금성 이서에서 양흔의 소속이 아니면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제대로 된 보상 문제를 지적했다.

진나라에서는 270년에 나헌이 죽자 감군이 되었다가 양주자사[1]로 옮겼으며, 272년에 돈황태수 윤거가 죽자 돈황의 현령인 양징을 태수로 추천했다가 공조 송질이 양징을 폐출하고 의랑 영호풍을 태수로 삼도록 표문을 올리자 병사를 파견해 공격했지만 송질에게 패했다. 돈황을 통치한 영호풍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고 동생인 영호굉이 276년에 뒤를 잇자 영호굉을 토벌해 그 목을 베는 등의 전공을 세웠다. 278년 6월에 독발수기능의 세력이 약화되자 독발수기능의 한 무리인 강족과 화친을 끊었다. 이것이 얼마나 생각없는 짓이나면, 독발수기능을 약화시킨 사마준의 성공 요인중 하나가 바로 이민족 포섭이었으니… 아무튼 그 결과로 이에 분노한 강족 약라발능이 양주에 침공하여 양흔은 싸우다가 전사한다.

3. 삼국지연의

촉 토벌전에 참가해 1만 5천명을 이끌고 감송으로 가서 강유의 뒤를 공격하는 역할을 맡아 감송의 여러 촉군의 영채들을 불태웠으며, 후군에서 강유에게 보고하면서 강유가 급히 부장에게 거짓으로 자기 깃발을 세워 등애와 대치하도록 하면서 후군을 철수해 밤을 새워 감송을 구하러 가자 강유와 마주치게 되었다.

양흔은 강유가 오자 싸우지 못하고 산길을 따라 도망쳤으며, 강유가 양흔을 추격했지만 놓쳤다. 강유가 영채를 거두면서 양흔은 강천구에 이르렀다가 강유가 나가서 싸우자 양흔은 바로 도망갔는데, 강유가 세 번 화살을 쐈지만 모두 피했으며, 강유가 타던 말이 앞발을 잘못 디뎌 강유가 낙마하자 되돌아와서 강유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강유가 훌쩍 뛰어나 일어나 창을 냅다 찌르면서 창이 양흔이 탄 말의 머리에 꽂히자 등 뒤에서 위군이 몰려들어 구해주면서 철수했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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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3, 14

모든 능력치가 60 근방. 애초에 모든 전투에서 패배한 기록도 많고 약라발능의 화친을 끊어서 스스로 죽게 했으니 능력치 배치는 적절하다. 삼국지 8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5/69/63/56. 분전, 정란,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0/67/63/56/63 으로 총합 309에 특기는 겨우 화시 1개.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 합은 312로 역시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삼국지 13에서 복귀했는데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1/68/61/58. 특기는 순찰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순찰이고 전법은 기방강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0, 무력 68, 지력 61, 정치 58, 매력 64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화공, 소심, 소침, 주의는 패도, 정책은 화계연구 Lv 2, 진형은 어린, 전법은 제사, 업화, 매성,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4.2. 삼국전투기

연의에서 강유를 재빠르게 위협한 것 때문에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퀵실버로 패러디되었다. 독발수기능의 난 (5)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전광석화와 같이 강유를 추격해 위기에 몰아넣은 걸로 유명하다고 서술되어 있다.

검각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등애 휘하로 촉 정벌에 참여했으며, 왕기와 견홍이 강유와 맞붙어 시간을 끄는 동안 훨씬 돌아들어가 강유의 후방을 노리려 했다. 강유는 이를 눈치채고 빠지려 했지만 결국 따라잡여 타격을 받았으며, 그대로 강유를 잡을 뻔했지만 요화의 적절한 지원에 막혀서 강유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등애와 함께 음평 산길을 탔고 강유관 공략에도 참여했다. 강유관의 마막이 싸우지도 않고 바로 항복한 뒤에는 만약 자신들이 실패한다면 마막 또한 나중에 배신자로 몰려 죽을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괜찮은 거냐며 묻기도 했다.

이후 산을 내려와서 다른 위군과 같이 촉에 공세를 가했으며, 제갈첨이 부성을 버린 뒤에는 견홍과 함께 부성을 접수했다.

성도 전투 편에서는 등애가 체포되자 견홍 등과 함께 위관에게 따지러 갔지만 위관의 설득을 듣고 일단 행동을 멈췄고, 종회가 반란을 획책할 당시에는 다른 제장들과 함께 구금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견홍 사후 사마준의 새로운 파트너로서 서량으로 향했다고 언급됐다. 그러나 독발수기능의 난 (5)에서 호열, 견홍과 다르다고 하면서 을 끼고 있는 장면에서 그가 뭔가 삽질을 할 것임이 예견되었고, 결국 다음 화에서 약라발능에게 사망한다. 이 때 평은 일 못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순서를 대단하지 않은 이유로 무시한다고 평했다.


[1] 화양국지의 원문에는 양유로 나와있지만 위서 등애전에서 양흔이 양주자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